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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644화


“아, 젠장! 이 피부 상한 것 좀 봐. 흐미∼, 매끄러웠던 이 몸의 팔이 왜 이리도 거칠어 졌지?”

목적지를 거의 앞두고 잠시 나와서 쉬게 된 동천은 자신의 옥 같던 피부를 그리워하며 새삼 사정화와 있을 때가 그래도 좋았다고 생각했다. 마차를 옮긴 뒤에는 여기를 봐도 무뚝뚝한 사내놈이고 저기를 봐도 험상궂게 생긴 사내놈들뿐이었으니, 쾌적한 환경과 아름다움에 너무 길들여져 있던 동천으로서는 참으로 견디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 외로 크게 화를 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흘 전에 마중 나온 자들 중 안면이 있는 소식통에게 앞으로 2틀 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사실 그 할멈하고 같이 지내는 것보다는 낫잖아?”

간만에 긍정적인 면을 보여준 동천은 사내놈들을 피해 약간 떨어진 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실개천이 흐르는 곳에 앉아있다 보니 졸졸졸 소리가 귓가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만 같았다.

‘아, 좋다! 아참? 그건 그렇고, 곧 당도하는 것은 불문가지인데 칼부림이 문제네?’

동천은 되도록 편안하게 살고 싶었다. 그런 그에게 사정화를 보좌하는 일은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약왕전의 생활도 위험이 전혀 없는 동시에 권력을 누릴 수 있어서 즐겼던 것인데 이제 그게 아닌 상황이 기다리고 있자 갈등이 생겼던 것이다.

“에이, 까짓 거 그런 일이 기다리고 있으면 약왕전의 소전주를 내세워서 치료 담당으로 돌려달라고 하면 되겠지 뭐. 하하, 이 몸은 너무 평범한 천재라도 문제인가?”

일단 마음이 편해진 동천은 바닥에 누워 의미 없이 나뭇가지에 걸린 나뭇잎들을 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곧 나뭇잎 세기를 중단해야만 했다. 자의 근처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기척을 느꼈던 탓이다.

“거기 누구요?”

동천 딴에는 멋있게 일어나려고 했는지 천천히 누웠던 상체를 일으킨 뒤에 바닥에 손을 집고 가뿐히 일어서서 물었다. 그러나 상대는 대답이 없었다. 조용히 물러서려는지 상대는 옆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그 이동방향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던 동천은 고개를 돌리며 계속 상대를 따라가다가 한계에 다다른 목의 당김을 느끼곤 멈춘 뒤 잠시 고민했다.

‘따라가, 말아?’

그 사이에 의문의 상대는 이미 영향권 밖으로 사라졌다. 물론 동천이 뒤따라간다면 상대를 확인할 순 있었지만 그 뒤가 문제였다. 방향치라서 되돌아오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에이! 귀찮게 따라가서 뭐 한댜? 이 몸은 그냥 편하게 살란다.”

투덜거리며 일행에게로 돌아온 동천은 서당주(西堂主)인 살검호(殺劍虎) 선호균(宣虎菌)에게 방금 전의 일을 알려주며 대응해야 하는 것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선호균이 말했다.

“하하, 어디에서 또 버러지들이 궁금하여 주위를 탐색했나보군요.”

서당주의 대답에 심각함이 없자 동천은 내심 안 따라가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별 것 아닌가보지요?”

선호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잘 모르시겠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사방이 무림인들로 넘쳐나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이런 살벌한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적아(敵我)를 일찍 구분하는 것이 필수이기에 종종 상대의 신분을 살펴보려는 족속들이 있는 것입니다.”

“아아, 그렇구나. 저는 공연히 쫓아갈 뻔했는데 안 쫓아가길 잘했군요.”

“그렇지요. 하지만 간혹, 정말 고수가 살펴보다 갈 때가 있으니 우연찮게 보았다해도 앞으로는 절대 혼자서 움직이시면 위험합니다.”

그런 소릴 들으니까 더욱 혼자서 움직이고 싶어진 동천이었지만 온몸이 근질거리는 것을 참으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친 후 마차에 올라탄 일행들은 사람이 불어난 만큼 위세 당당하게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다. 아울러 마차 6대와 그 주위를 호위하듯 나란히 달리는 말들의 힘찬 움직임 또한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주위를 어지럽게 했으나 그들을 막을 만한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는 듯 보였다.

그런 것이 마치 자신의 힘인 것만 같아 가슴이 뿌듯해진 동천은 뿌듯한 김에 편히 등을 기대고 낮잠을 즐겼다. 주위 사람들이 보던 말던 먹었으니 자야했던 것이다.

“드르렁, 푸우∼. 음냐리.”

옆 사람의 다리에 한쪽 다리까지 걸치고 모로 누워서 퍼질러 자던 그는 어느 순간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자는 그를 한심하게 지켜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리고 딴청을 부렸다.

“요새 날이 좀 미지근하지?”

“봄이니까 그런가 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어서 여름이 안 오려나…….”

영양가 없는 대화들을 주고받던 그들은 알게 모르게 동천의 눈치를 봤다. 예전에는 한밤중에만 가끔 다른 사람처럼 변했는데 이제는 낮잠을 자고 나서도 사람이 변했던 것이다. 그들은 혹시나 싶어서 동천에게 물었다.

“약소전주님도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봄이 좀 그렇지요?”

“난 계절을 안 가리네.”

진중한 동천의 대답에 사람들은 생각했다.

‘변했구만?’

‘저 인간이 소악마라고 소문났을 때 알아봤지. 저렇게 변하니 그런 소문이 안나?’

‘괜히 말 걸지 말자.’

동천은 사람들의 생각을 알 턱이 없었지만 분위기 상으로는 대충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에 관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구석에 밀려 슬픔을 달래던 책들을 자신의 앞쪽으로 끌어다 놓은 뒤 묵묵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브락. 사브락.

책장 넘어가는 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졌다. 평탄한 길로 달리는 마차가 아니었음에도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는 사람들의 귓가에 천둥처럼 들려왔다.

그들은 약소전주의 전신(全身)에서 마치 사정화를 보는 듯한 무겁고 어두운 기운이 물씬 풍겨 나오자 자신들도 모르게 정자세로 앉게 되었는데, 그 때문인지 감히 입을 여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고 그저 저녁이 빨리 다가오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때가 되어야 저녁을 먹기 위해서 마차가 멈추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저녁이 되자 마차가 멈추었다.

“험험, 배고프구먼? 나가서 먹지?”

“그럽세. 마침 나도 나가려고 했다네.”

배고프다는 핑계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나가자 텅 빈 마차 안은 본의 아니게 동천이 전세를 내고 들어앉은 형국이 되었다.

“…….”

탁!

잠시 후 책을 덮고 일어난 그는 천천히 밖으로 나와 옹기종기 모여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을 지나쳐갔다. 적게는 3명에서 많게는 7명까지 나뉘어 모여 앉은 그들은 각자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먹는 중이었는데 다른 이들은 예의상 같이 드시겠냐고 물어보았지만 유독 동천과 같은 마차를 타고 왔던 무사들은 애써 모르는 척 자기들끼리 음식을 먹었다.

동천은 내심 어이가 없고 가소롭기도 했지만 꼭 그들만의 잘못도 아니었기에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런 그들을 지나쳐 사정화 쪽으로 걸어가자 그녀의 신분이 증명하듯 확실히 고급으로 바뀐 식단이 그를 반겼다. 그것 때문에 여행 내내 사정화에게 빌붙었던 동천. 그러나 현재의 그는 이전의 동천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사정화를 멀리할 이유가 있을까? 당연히 없었다. 되려, 혼자 먹겠다고 해봤자 귀찮은 일이 벌어질 소지가 있고 구태여 맛있는 음식을 마다할 이유가 없기에 순순히 찾아간 것이었다.

“오늘은 좀 늦었구나.”

음식을 한 입 베어 문 사정화가 지나치듯 말하자 정원이 실실거리며 끼여들었다.

“켈켈, 그러게나 말입니다. 평소에는 늦을 새라 달려들어서 소신은 웬 배고픈 승냥이가 덤벼드는가 했었는데 말입니다. 켈켈켈!”

동천은 정원의 깔보는 듯한 가벼운 비유를 무감각하게 넘기며 말했다.

“다행이 그 배고픈 승냥이가 태상림주님은 못 먹을 것으로 단정지었나 보군요.”

잠시 무슨 소리인가 머리를 굴리던 정원은 심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해석하기에 따라서 수십 가지의 비유를 적용할 수 있었기에 자신을 욕하고자 했던 말인지, 아니면 웃자고 했던 말인지 그 진의를 간파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게 무슨 뜻인가, 약소전주?”

동천은 정원이 묻자 표정 없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원은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분위기에 내심 움찔했지만 그렇다고 상대의 앞에서 기죽을 그녀가 아닌지라 당당히 마주보았다. 그제야 동천이 입을 열었다.

“불쾌하실 지 모르겠으나 그 뜻은 편하게 해석하심이 좋을 듯 합니다.”

그러자 정원의 눈이 커졌다.

“뭐, 뭐라?”

정원은 동천의 간 큰 대답에 화가 났지만 그것보다는 한번도 보지 못했던 약소전주의 모습 때문인지 당황하는 마음이 더욱 컸다. 얘가 어제 뭘 잘못 먹어서 자신이 누구인지 헷갈리는 것은 아닌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였으니 그녀의 입장에서는 확실히 당황할 만도 했다.

“됐어. 식사 중에 떠들지마.”

“예? 예, 아가씨. 켈켈…….”

사정화가 중재 아닌 중재에 들어서자 그걸로 상황은 종결되었다. 정원은 여전히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은 채 동천을 노려보았고, 동천은 묵묵히 음식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사실 사정화도 이런 동천을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일전에 비무에서 보여주었던 분위기가 다시금 풍겨오자 생각없이 넘기기에는 무언가 걸렸기 때문이었다.

‘저렇게 분위기가 바뀐 데에는 분명히 어떠한 변수가 작용한 것만 같은데 마치 알려주고 싶지 않다는 표정인걸.’

은연중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기도(氣度)는 폼만 잡는다고 해서 누구나 다 발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정량 이상의 정신수양과 그것이 뒷받침 될만한 경험.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굳은 신념이(좋은 쪽이건, 나쁜 쪽이건) 어느 하나 모자라지 않게 어울려야만 내보일 수 있는 일종의 경지인 셈이다. 그런데 장난기 가득하고 놀기 좋아 하는 동천이 그런 기도를 뿜어내고 있었으니 궁금하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이리라.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사정화는 물어본 동천으로 인해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게 되었음에도 눈동자를 거두지 않고 빤히 바라보았다. 모닥불에 비추어진 그녀의 전신은 무언가 신비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 때문인지 미세하게 흔들리던 동천의 눈빛이 힘겹게 제자리를 잡았다. 그는 쓰윽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그녀에게 재차 물었다.

“아가씨, 제 얼굴에 뭐 묻은 것이라도 있습니까?”

그제야 사정화가 대답했다.

“음, 아냐. 먹어.”

그녀답게 간단히 대답한 사정화는 곧 동천에게서 관심을 끊었다. 방금 전까진 물어볼 까도 했지만 지금의 동천도 굳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로서는 이중인격 같은 것만 아니라면 괜찮다고 여긴 것이리라.

“……!”

‘이중인격?’

갑자기 그것에 생각이 미친 사정화는 거두었던 시선을 다시금 동천에게로 던졌다. 그녀는 확실하게 해결하고 넘어가자는 쪽으로 마음을 바꾼 것이다.

“동천. 예전에도 한번 물었을 거야. 하지만 그때 너는 아니라고 말했지. 이제 오늘 다시 한번 물어보겠어. 저녁만 되면 성격이 뒤바뀐다던데 사실이야?”

동천은 먹던 음식을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목소리는 엉뚱한 곳에서 들려왔다.

“아가씨, 그런 소문이 있었습니까? 켈켈, 어쩐지 오늘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래서 그런 느낌이 들었었군요? 그럼, 정신분열입니까요?”

사정화는 시선을 줄 가치도 없다는 듯 고정한 그 상태에서 입을 열었다.

“할멈, 조용.”

“예, 아가씨. 켈켈!”

찔끔한 정원이 알겠다며 입을 닫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알게 모르게 동천에게로 향했다. 겉으로는 안 듣는 척 했지만 뚫린 귀로 알아서 들려오는데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말이 나와서 거론하는 것이지만 그동안 사정화는 산채에서 생활해오며 역의 성격으로 바뀐 동천을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밤중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 대할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또 이곳에 올 때 마차에 동승하긴 했지만 잘 때는 당연히 떨어져 잤으므로 마음먹고 몰래 훔쳐보지 않는 한 진실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던 점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달랐다. 그들은 한밤중에 누군가 일어나서 쳐다보면 차가운 기도를 내뿜으며 신비롭게 사라지는 동천의 행각을 심심치 않게 보아왔던 터라, 과연 이제와 약소전주가 어떠한 대답을 해줄 것인지 귀담아 듣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전부 다 이쪽으로 쏠렸군.’

동천은 자신에게로 몰린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진 않았지만 어쩐지 우리 안의 동물이 되어 구경거리가 된 듯한 느낌에 절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것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은 눈앞에서 아가씨의 질문을 받고도 대놓고 인상을 찌푸리는 약소전주의 행각을 대단히 높게 사주었다.

그래도 몇몇은 ‘저러다 맞으면 안 아플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동료들에게 말해봤자 뒷전으로 밀릴 것이 뻔했기에 함부로 입을 여는 자들은 없었다.

“저녁만 되면 성격이 바뀐다, 라…….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정신분열을 일으킨다던가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정화는 아름다운 눈동자를 빛내며 물었다.

“그렇다면 네 관점에서 그것과 정신분열은 뭐가 다른 것이지?”

“충분히 다릅니다. 전자는 제 의지로 인하여 지금처럼 성격이 차분하게 바뀌는 것이고, 후자는 제가 의도하지 않는 상황에서 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좀더 자세히.”

불충분했던지 사정화가 좀더 자세한 내용을 원했다. 동천은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말문을 열었다.

“듣는 귀가 있으니 전음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정화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원은 대뜸 구겨진 주름살을 더욱 일그러트렸다.

“약소전주, 이제와 숨길 것이 무에 있다고 전음으로 말하는가. 켈켈, 자신이 떳떳하다면 그냥 터놓고 말하게.”

동천은 무심하게 대꾸했다.

“죄송합니다. 당연히 제 스스로는 떳떳하지만 아가씨 외에는 밝히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뭣이?”

쾅!

그녀의 용두괴장이 바닥을 무섭게 내리쳤다. 어린놈이 오냐오냐 해줬더니 위아래도 모르고 마구 기어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옆에서 지켜본 사정화의 입장은 사뭇 달랐다. 그녀는 앞뒤 가리지 않고 나서려는 할멈이 골치 아프게 굴자 차갑게 굳은 얼굴로 명령을 내렸다.

“할멈, 잠시만 멀리 떨어져 있어.”

“예? 아니, 아가씨!”

“어서!”

“예에, 정 그러시다면야. 켈켈켈!”

민망함을 감추려는 듯 웃음소리를 목청껏 높인 정원은 동천을 힐끔 바라보며 그다지 많지 않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사정화는 유일하게 끼여들 수 있었던 존재가 사라지자 화제를 다시 본 괘도로 끌어들였다.

“이제 말해봐.”

고개를 끄덕인 동천은 전음을 시작했다.

『사실 제가 새로운 내공심법을 익히고 있사온데 그것은 시전자가 가장 침착한 상태가 되어야 최고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진 특이한 신공(神功)입니다. 헌데, 아시다시피 제 성격으로는 궁합이 최저인지라 저는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러던 중 자기최면이라는 방법을 얼핏 듣게 되었고 큰 기대를 걸지 않은 상태에서 3, 4년을 소비했는데 놀랍게도 어느 날 침착해진 제 자신을 느낄 수 있었던 겁니다.』

일견 그럴 듯한 이야기에 사정화가 조용히 물었다.

“그것이 바로 현재 네가 보여주는 모습이다?”

동천은 바로 수긍했다.

『그렇습니다. 안타깝게도 잠들기 전에 건 최면은 다시 깨어난 뒤에야 효력이 발생하는데 그 효과가 길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지금의 제 모습은 결코 인위적인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기최면을 걸때마다 제 내면에 잠재된 차분한 성격을 끌어올리게 최면을 걸었으니까 말입니다.』

점점 흥미가 느껴진 사정화는 동천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끈기 부족에 제 멋대로 까불고 생각의 깊이까지 모자란 동천에게서 눈앞에 보이는 면이 있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물론, 전적으로 동천의 말을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내뱉는 그의 연기가 완벽에 가깝자 설정이 조금 미흡했음에도 7할 이상은 믿음을 준 상태였다. 그녀도 이번에는 전음으로 물었다.

『재미있어. 그 무공의 이름은?』

동천은 목소리에 은근히 힘을 주며 말했다.

『역심무극결(逆心無極缺)입니다!』

“효과는?”

『오직 이 내공을 바탕으로 펼칠 수 있는 절초를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문득, 사정화의 눈빛이 가늘어지는 듯 보였다.

“호오! 보여줄 수 있어?”

동천은 사정화가 중요한 대목이 아닐 시에는 전음을 피하자 그도 굳이 내공을 낭비할 생각이 없는지라 그대로 말했다.

“어렵습니다.”

“왜지?”

『어떠한 제약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위험해?”

『두 번은 버거운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한 번은 괜찮다는 소리지?”

『아무리 그러셔도 아직 손에 익지 않은 절초라서 불가합니다.』

“그래? 하지만 말은 그래도 자신감에 찬 목소리인걸?”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불가합니다. 그것은 함부로 보여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도?”

“죄송합니다. 때가 되면 보여드리겠습니다.”

대화가 쉴 틈 없이 진행되었음에도 동천의 대답에는 막힘이 없었다. 사정화는 정말 잘 피해 가는 동천의 대답을 들으면서도 얄밉기보다는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저 잔머리만 뛰어난 녀석에서 알게 모르게 성장하더니 의술에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더니만 이제는 누가 봐도 어엿한 무사로 대할 수 있을 정도의 기개가 느껴졌던 것이다.

그것이 비록 일시적인 모습일지라도 그녀의 관점에서는 나쁜 모습만 아니라면 괜찮았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참았다. 그녀는 애써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좋아. 아쉽긴 하지만 너도 다 생각이 있어서 내뱉은 말일 테니까 존중해줄게.”

그런 그녀와는 반대로 동천은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동천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됐어. 음식이 좀 식긴 했지만 어서 먹도록.”

그제야 이야기가 다 끝나자 본의 아니게 소란 죄로 멀리 밀려났던 정원이 슬그머니 제자리로 돌아왔다. 사정화는 다가오는 그녀를 잠깐 보는 듯 했으나 곧 신경을 끊었고, 사람들은 궁금증을 해소하기는커녕 더욱 궁금해지자 그저 애꿎은 가슴만을 조용히(?) 두들길 따름이었다.

‘이런 젠장! 오늘밤에 잠자긴 다 글렀잖아?’

‘흐미, 코 후비다가 코딱지가 더 안쪽으로 들어간 형국이 아닌가.’

매사에 거칠고 참는 것보다는 무력을 즐겨했던 마교도들답게 동천이 상급자만 아니었다면 벌써 칼부림이 났어도 심하게 났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 힘의 논리에서 밀려난 자들은 참고 인내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그렇게 따스한 봄날의 밤은 천천히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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