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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649화


푹!

“커헉?”

“이런, 여기도 아픈가?”

“흑흑! 아픕니다요. 아파 죽겠습니다요!”

오늘도 어김없이 침놓기에 열을 올리는 동천이었다. 달콤한 숙면이 끝나고 나흘이 지난 상태였지만 그는 여전히 박심을 괴롭히는데 침술을 고집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박심의 온몸을 찔러가며 가학적인 고통을 즐기는 가운데 동천은 침술에도 재미를 붙여 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것 참! 찌르는 재미가 쏠쏠하네?’

같은 부위를 찔러도 아주 미세한 깊이의 차이에 의해 아파하거나 아예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박심을 볼 때마다 무언가 희열이 느껴지는 동시에 어째서 이곳을 이렇게 찌르면 아프고 안 아파하는 것인지가 흥미로웠다.

그럴 때마다 그는 사부에게 받아 외웠던 의학서적들의 내용을 떠올리며 차근차근 실마리를 풀어갔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또 재미가 있었으니 박심으로서는 죽어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푸욱!

“윽? 으으, 여긴 좀 괜찮습니다요.”

알아서 평가를 해주는 박심의 대답에 동천이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도 이젠 나름대로 길들여져서 그때 그때의 상황을 정확히 집어주는 경지에 올라섰던 것이다.

물론 박심의 입장에서는 있는 그대로를 알려주지 않으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기에 어쩔 수 없는 삶의 몸부림이었지만 말이다.

“그으래? 그렇다면 이곳 넓적다리 안쪽에 숨겨진 맥당혈에다가 두 치 반을 더 찔러보겠네.”

푹!

빠르고 간결한 동천의 손놀림이 이어지자 박심이 반응을 보였다.

“끄아아아악! 박시임 살류!”

“응? 여기가 아닌 게벼? 좀더 옆인가?”

박심 스스로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동천이 마냥 아무 상관도 없는 부분들만 찔러댔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며칠 간 찔리고 평가를 해주었던 정리를 생각하여 알게 모르게 침술과 내상치료를 병행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치료의 주된 내용은 전신의 기운을 북돋아 오르게 하고 상처가 덧나지 않게 하며 회복의 속도를 가속화시켜주는 치료가 대부분이었는데, 그것만으로도 간간이 귀의흡수신공의 치료를 병행해주자 지극히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소전주님, 출동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박심에게는 환호할만한 일이었고 동천에게는 짜증이 나는 소리였다. 드디어 올 것이 오기는 했지만 동천으로서는 드물게 일(?)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었는데 그 흐름이 끊기게 되자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상을 쓰며 밖으로 나간 동천은 소식을 전해온 일반무사에게 물었다.

“출동이라니. 본 소전주의 임무는 환자를 돌보는 것일 뿐일텐데?”

진한 턱수염과 부리부리한 눈동자 덕에 산적두목 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는 사내는 생긴 것만큼 강직한 태도로 대꾸를 해주었다.

“속하는 그저 금면마제(金面魔帝)님의 명으로 전달을 해드렸을 뿐, 그 이상의 권한은 없습니다.”

뜻밖이 인물이 거론되자 동천이 눈을 크게 떴다.

“금면마제님이 오셨단 말인가? 그분은 본교에 계시는 것으로 아는데?”

사내가 대답했다.

“엊그제 임시지단에 도착하셔서 잠시 휴식을 취하신 후에 방금 전 이곳의 책임자로 오셨습니다.”

사정화가 머물고 있는 산채가 임시지단이었는데, 사내의 말을 종합해보자면 오자마자 출동을 한다는 소리였다. 당연히 동천은 어처구니가 없었고 말이다.

‘이노무 영감탱이가 실적에 눈이 멀었나. 아니, 적어도 뭔 짓을 하려면 사람은 만나보고 해야하는 거 아냐?’

일면식도 없이 싸우러 간다는 것을 보면 자잘한 것을 따지기 싫어하는 화통한 성격이거나 대의명분에 얽매이지 않는 무덤덤한 인간일 것이 분명했다.

동천은 예전에 딱 한 번. 그것도 교주의 생일에 축하해주러(먹을 거 먹으러) 갔다가 얼핏보았던 적이 있었는데, 차갑고 마른 편에 속한 얼굴이 금색에 가깝자 신기한 마음에 사부에게 누구냐고 물어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아마도 그때의 인상으로 유추해보건대 화통한 쪽은 분명히 아니리라.

“그으래? 음,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안내하게.”

“예, 소전주님!”

사내의 안내를 받게 된 동천은 형식적인 관문들을 거쳐 안 쪽으로 들어가자 무리를 이루고 있는 교도들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곧 몸가짐을 바로 한 뒤 천천히 그들의 군집을 감상하며 비껴 걸어갔다.

잠시 후 제일 앞쪽에 도착한 동천은 최하 대주급의 인물들을 비롯하여 유난히 반짝이는 한 노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셨습니까.”

“조금 늦으셨군요.”

“어서 오십시오.”

동천이 도착하자 그들이 먼저 알아서 인사를 올렸다. 동천은 그 즉시 답례를 해주었다.

“하하, 사정이 있어 그렇게 되었네.”

웃는 낯으로 대답을 해준 동천은 뒤이어 금면마제에게 다가가 이번에는 그가 먼저 인사를 올렸다. 왜냐하면 금면마제는 10장로인 상관봉(上官鋒)의 친동생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약왕전의 소전주라지만 결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느닷없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왔습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금면마제는 예전에 보았던 인상 그대로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는 다소 거친 음성으로 대답해주었다.

“원래는 이곳이 아니라 청운계곡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아가씨께서 특별히 부탁을 하시어 오게 된 것이네.”

‘참나, 부탁이 아니라 명령을 내렸겠지. 정화가 누군데 얼굴에 색칠이나 하고 다니는 실없는 영감에게 부탁을 했겠어?’

별것 아닌 거 가지고 비꼬긴 했는데 막상 곱씹어 보니까 웃음이 나왔다. 참을 수 없었던 동천은 안 그런 척 웃으며 말을 건넸다.

“아, 그러셨군요? 하하! 그런데 무슨 급박한 일이 벌어졌기에 오시자마자 이렇듯 대규모의 인원을 움직이려고 하시는 겁니까? 또한 저는 환자들을 맡기로 했을 뿐 같이 움직일 이유가 없을 텐데요?”

그러자 금면마제가 무슨 헛소리냐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정화 아가씨께서 자네는 무조건 동참해야 한다고 하셨거늘, 이제와 그 무슨 소심한 발뺌이란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동천이 기겁을 했다.

‘컥? 그년이 알고 보니 뒷공작을 펼쳤구나!’

멀쩡히 앉아서 사지(死地)에 떨어질 수 없었던 동천은 급히 정신을 차리고 반박에 들어갔다.

“하지만 말씀처럼 아가씨의 개인적인 명령이실 뿐입니다. 제가 소심한 발뺌을 했다는 말씀은 심히 모욕적이군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얼굴을 굳힌 금면마제 상관이약(上官利若)은 말했다.

“그렇군! 본좌는 자네가 응당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말을 간추렸던 것인데, 그것이 아니라면 내 빠진 부분을 보강해서 다시 말해주겠네. 아가씨께서 말씀하시길, 자네와는 이미 대화가 끝난 상태이니 어디를 가더라도 빠트리지 말고 꼭 동참을 시키라고 명하셨네. 이제 되었는가?”

안 되었다.

‘내가 정화 걔 싸가지 없는 것은 알았지만 이건 정말 너무하네? 아니, 사지에 떠다민 것도 모자라서 이젠 편히 쉬는 것도 봐줄 수 없다 이건가?’

지금 동천은 이곳에 있는 내내 편히 쉴 수 있는 안락함을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언가 말이 안 되는 것이 동천의 말대로 이곳이 사지라면 편히 쉴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종합하자면 아무리 사지에 왔다고 해도 자신은 편히 쉬어야 하는 존재인데 사정화가 그것을 그냥 봐두지 않는다는 불평이었던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하하, 이곳의 일이 너무도 바빠서 미처 깊게 생각해 보지도 않고 말을 꺼낸 것 같습니다.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의외로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인정한 동천은 흐름이라는 것이 있었기에 공연히 불편한 관계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모두들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상관에게 계속 불만을 터트려 봤자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득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금면마제는 상대가 끝까지 우기거나 심한 모욕감을 느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호탕하게 나오는 지라 그도 더 이상 물고 넘어질 생각을 버렸다.

“알겠네. 그렇다면 그리 알고 자네는 잠시 옆으로 가있게.”

“예, 금면마제님.”

그렇게 동천을 뒤로 물리고 전방에 모인 교도들을 묵묵히 바라본 금면마제는 잠시 후 무거운 분위기를 밀어내며 목청을 높였다.

“들어라! 그 동안 본교의 정예들은 무지한 정파의 무리들에게 상대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관대한 마음으로 그자들의 행동에 간단히 경고를 취해주었을 따름인데! 이 후안무치한 것들이 감히 본교의 정예들을 급습하였으니 이 어찌 우습고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더냐! 그래서 본좌는 결심하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지금부터 우리는 오련의 일각을 무너트리기 위하여 출동한다!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결심이 섰는가?”

어차피 예상은 하고 있었던 것이고 본성이 피를 즐겨하는 마교도들인지라 그들의 가슴은 뜨겁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제히 목청껏 소리 높였다.

“암흑마교(暗黑魔敎) 천하창세(天下昌世)! 천하무적(天下無敵) 무림제패(武林制覇)!”

가만히 듣다가 깜짝 놀란 동천은 내심 씨부럴 놈들을 연발하며 무언가에 휩쓸린 듯한 눈앞의 교도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대단한 자신감에 불타 올라 있었는데, 그 눈빛들을 보자니 벌써 적들의 가슴에 검을 찔러 넣고 있는 듯 보였다.

그것을 본 동천은 문득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아! 이래서 종교가 무서운 것이로구나.’

암흑마교가 교(敎)의 이름을 내걸고 있는 이상 교주를 중심으로 한 교리(敎理)는 분명히 존재했다. 교도들은 하루에 한번씩 간략한 약식교리를 외웠고,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장문(長文)의 교리를 정독하는 것을 기본철칙으로 삼았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생활이었고 이제는 교리의 뜻을 받드는 것이 생활의 일부, 혹은 전부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문제는 이 교리라는 것이 초반에는 암흑마교의 교도라는 것에 자긍심을 갖도록 만들다가 후반에 가서는 교주의 우상숭배화가 진행된다는 점이었다.

교주는 신이었고 창조주였고 그들의 영원한 어버이였으니 교주의 말 한마디면 웃으면서 불 속에 뛰어들 수도 있는 인간들이 대량으로 양산되었던 것이다.

결국, 이 문제로 인하여 마교는 정파의 영원한 숙적이 되었고 마교 또한 내부의 고인 물을 걸러내기 위하여 정파라는 목적의식을 교도들에게 부여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옛말이 있었지만 되려 마교는 그 지나침으로 먹고사는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교가 괜히 마교가 아니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었고 말이다.

“좋다, 형제들이여! 지금부터 편제를 나누겠다! 중앙의 1조는 나 금면마제를 비롯한 아수전이 맡고, 좌우로 각각 2조와 3조는 혈각과 동당(東堂)이 맡는다! 그리고 후미의 4조는 살각이 맡아 흩어지는 적들을 말끔히 척살한다! 모두 준비는 되었는가?”

“예! 준비되었습니다!”

“좋다! 출발이다!”

“와아아아!”

과묵한 인상을 풍겼던 금면마제였지만 제법 사람들을 통솔할 줄 알았던지 상황에 따라서는 열변을 토하는 유연성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때 동천은 교도들의 열기가 뜨거워지면 뜨거워질수록 어쩐지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뭐지? 이거 혹시 예지력인가?’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예지력이라고 하기에는 딱히 좋은 것도,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닌 느낌이었다. 예지력이다 아니다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으니 쉽게 단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잘은 몰라도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는 기분은 확실한데…….’

그러고 보니, 사람들이 곧 죽어날 것이 자명한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었다.

잠시 그렇게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리던 동천은 옆에서 누군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재빨리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왜냐하면 상대가 다름 아닌 금면마제였기 때문이다.

“에에,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금면마제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마도 동천이 아닌 일반 무사였다면 벌써 목이 꺾여도 꺾였으리라.

“흐음!”

묵직한 금면마제 상관이약의 침음성에 동천은 재빨리 변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라 듣지를 못했습니다.”

상관이약은 동천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못마땅한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이고 해서 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다. 그는 이례적으로 같은 말을 반복해서 이야기 해주었다.

“자네는 이제부터 본진으로 되돌아올 때까지 본좌와 함께 움직여야만 하네. 따로 행동하고자 한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그때는 안전을 책임질 수 없으니 그렇게 알고 움직이게.”

동천은 상대가 별것도 아닌 일에 더럽게 생색을 내자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곧 기왕이면 자신을 보필(?)할 늙은이였으니 되도록 좋은 인상을 남겨주자고 생각했다. 좋고 나쁨의 차이가 성실과 비성실로 나뉘기 때문에 서로의 관계가 원만해지면 그만큼 금면마제도 자신에게 신경을 쓰는 비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예, 알겠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응? …알겠네.”

금면마제는 갑자기 변한 듯한 동천의 태도에 일순간 거부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놈도 사람인지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이라고 착각했다.

그때 동천의 생각은 이랬다.

‘기왕지사 함께 하게 되었으니 이놈의 늙은이나 실컷 부려먹어야겠다. 으흐흐!’

금면마제를 부려먹을 상황이 많아질수록 동천이 위험에 노출되는 순간 또한 많아진다는 뜻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두 다리를 믿었다. 여차하면 튀고 난 후에 자신을 지켜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만 해주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지금부터 인원을 나눈다!”

동당주 쌍혈겸(雙血鎌) 괴월(傀月)이 순서 상으로 금면마제의 밑인지라 뒤처리는 그가 나서서 처리했다. 같은 당주급이더라도 외곽8당의 당주들이 더 높았고 그들 중에서도 동서남북의 당주들이 약간이나마 지위가 높은 편이었다.

여하튼, 잠시 후 백여 명의 인물들 중 1조가 40명. 좌우로 2, 3조가 각각 20명씩. 그리고 후미의 4조가 15명. 이렇게 총 95명의 대규모 인원이 순식간에 편성되었다.

“모든 준비가 끝난 상태입니다!”

동당주의 보고에 금면마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제부터 각 조의 임시조장들은 20여장의 간격으로 떨어져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도록.”

“존명!”

드디어 명령이 내려졌고 그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헌데 동천은 1조에 묻혀 달려가는 와중에 무언가 이상하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을 보았던지 아수전의 3당주 포석이 슬쩍 말을 건네 왔다.

“무슨 고민이라도 계신 겁니까?”

동천은 재수 없게 하고많은 인간들 중에 곱상하게 생긴 3당주가 물어오자 이걸 대꾸해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다. 유치한 고민이었지만 동천 나름대로는 꽤 심각한 고민이었다. 그러나 그는 곧 결정을 내렸다.

“그게 말일세. 지금은 낮이지 않은가?”

포석은 약소전주의 의도를 대충 깨달았지만 짐짓 모르는 척 대답해주었다.

“물론입니다. 헌데, 낮인 것은 왜…….”

동천은 곁눈질로 금면마제를 힐끔 바라본 뒤에 포석에게 말했다.

“대게 이런 기습은 밤에만 이루어지는 것인데 굳이 대낮을 택한 이유를 모르겠기에 그러는 것일세.”

역시 그 문제를 묻는 것이자 포석은 웃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하하, 그러고 보니 뒤늦게 오신 뒤에 다시 거론된 적이 없었군요. 지금으로부터 대략 반 시진 전, 혼천부의 보고에 따르면 현재 대치 중인 오련의 무리들 중 다수가 자리를 비운 상태라고 합니다. 물론 그 빈자리를 채우려고 다른 곳에서 지원이 오는 중이라지만 무엇이 그리도 급했던지 시간의 공백이 생기는 바람에 우리가 먼저 도착하게 된다면 각개격파도 가능하기 때문에 이렇게 서둘러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제야 동천은 금면마제가 도착하자마자 이 대낮에 공격을 떠난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그의 표정은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

자신을 얼마나 무시했으면 이런 중요한 정보도 생략한 채 그저 짐짝처럼 데리고 다닐 생각을 했단 말인가.

‘으득! 감히 이 몸을 물로 봤겠다?’

분노가 극에 달하면 오히려 차분해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사실이 너무도 기분 나쁜 동천이었다.

사정화의 경우는 자신이 충성을 맹세한 상대나 마찬가지여서 무시를 당해도 그저 형식적인 짜증일 따름이었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무시를 당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뜻밖이라는 얼굴로 물었다.

“응? 그런 정보가 도착했었단 말인가? 그런데 나는 왜 지금에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

“하하, 그럴 수밖에요. 방금 전에 말씀을 드렸듯이 반 시진 전에야 급전으로 정보가 도착을 했는지라 내부점검과 최소한의 방어인원을 추려내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는 약소전주님의 안전에도 만전을 기해야 했기에 남게 될 무사들을 가늠해봐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와중에 때맞춰 오신 금면마제님께서 약소전주님의 동참도 결정을 내리게 되었던 것이고 말입니다. 그리고 죄송한 말씀이지만, 약소전주님께는 최후에 연락을 드릴 예정이었습니다.”

포석의 대답은 조금만 생각하면 동천을 무시할 생각이 전혀 없었음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낙석고개를 지키는 수뇌부들의 행동은 지당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이곳에 도착한 동천은 일선에서 빠지겠다는 선포를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뒤에 그는 말로만 중환자들을 치료하겠다고 나서며 실제로는 박심의 생체실험(?)에 열을 올리는 등 오도가도 못하는 중상자들을 심각한 불안감에 떨게 했다.

헌데, 당하는 것은 박심인데 어째서 관계없는 중환자들이 불안에 떨었던 것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은 매일마다 막사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듣고는 저러다가 박심이 죽기라도 하면 다음 차례가 바로 자신이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오죽 했으면 배를 봉합했던 환자가 다 나았다고 거짓말을 하며 의원들 앞에서 검무를 추었다가 그만 실밥이 터져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중이겠는가.

각설하고, 이렇듯 치료소 내에서만 지내겠다는 의사를 밝힌 동천이었으니 그들로서는 일의 경중(輕重)을 따져서 나중에 결과를 알려주려고 했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대충 진의를 파악한 동천이 물었다.

“모든 결정이 내려진 후 내게 알리려고 했던 것인데 뜻밖에도 금면마제님께서 도착하여 지휘권을 넘겨받고 본 소전주를 불렀던 것이로군.”

포석은 말이 통하는 약소전주에게 기꺼운 마음이 되어 대답해주었다.

“바로 그렇습니다.”

3당주의 이야기를 종합해보자면 그래도 이놈들은 알려주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금면마제는 동천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간략한 설명을 끝마친 상태였기에 약소전주라는 인물이 뒤늦게 오건 말건 또 다시 설명을 해 줄 만큼 비중을 두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 뒷골이 당기는 것을 느낀 동천은 나직이 심호흡을 한 뒤에 말했다.

“그랬던 것이로군. 알려주어서 고맙네. 허면, 오련의 소굴은 얼마나 멀리에 있지?”

3당주 포석은 진작에 매일 아침 회의에 참석이라도 했다면 알고 있었을 것이 아니냐는 눈빛을 했다. 방금 전까지 잘 나갔던 포석은 그 눈빛 한번으로 동천에게 찍혔다는 사실도 모른 채 더 이상의 지체 없이 대답해주었다.

“현재의 속도라면 2각 후에는 도착을 하리라고 봅니다. 그들은 산세가 낮은 곳에서 자리를 잡았는데, 어쩔 수 없는 것이 외부의 무림인들도 포용해야만 했기에 비좁은 터를 선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음, 2각이라…….”

원래는 그 뒤에 하고픈 말이 있었지만 속으로 다른 생각들을 하느라 본의 아니게 말꼬리를 늘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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