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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667화


때론 머리가 좋아서 속는다.

“동천… 이 바보! 그동안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흑흑!”

사정화가 울먹이며 동천의 품에 안겼다. 당황한 동천은 그녀를 살며시 보듬어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아가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심려를 끼쳐드린 것 같습니다.”

“흑흑흑!”

감정이 복받치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그녀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동천의 상상은 거기에서 끝이 났다. 사정화가 방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 그게 그러니까, 그간 강녕하셨지요?”

위험한 상상을 하고 있던 와중이어서 그런지 동천이 약간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다행이 사정화는 혼자 들어왔는데 동천도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는 것이 싫었으므로 그게 더 나았다. 물론 맞게 될 확률이 늘어난다는 단점도 있었지만 말이다.

“이리와 앉아.”

“예, 아가씨.”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동천이 탁자에 마주 앉았다. 사정화는 동천의 위아래를 훑어보는 듯하더니 이내 말했다.

“어떻게 된 거지?”

동천은 대답했다.

“저기 그게요. 보고를 들으셨겠지만 기습에 성공한 후 도주자들을 처단하는 조에 배정됐었는데, 한참을 처리하는 와중에 뜻밖에도 안면이 익은 도주자들이 보이지 뭡니까? 그 상대가 바로 제갈연이었는데, 제가 몇 년 전 강호를 주유했을 때 신분을 숨기고 제갈세가에 의탁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좀 안면을 익혔기 때문에 대번에 그녀인지 알 수 있었고, 그녀의 신분상 죽이는 것은 오련과의 전면전이 예상되었기에 차라리 도주를 도와주는 척하며 정보를 빼내오는 편이 훨씬 이득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위험하긴 했지만 제 독단으로 일을 처리했던 거예요. 에에, 또… 주제넘은 행동이었긴 하지만 제가 넘겨준 정보가 도움이 되긴 했었죠?”

확실히 동천이 알려준 정보는 큰 도움이 되었다. 기습조들이 그곳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몰살까지 당하진 않았겠지만 고립이 되는 탓에 사지만 멀쩡할 뿐 잠정적인 포로 신세나 마찬가지가 될 뻔했었기 때문이다.

“그 부분이라면 네 말대로야. 잘했어.”

“정말요? 휴우, 다행이다. 전 또 길을 헤매는 내내 헛고생을 한 게 아닌가 내심 걱정을 했었거든요.”

동천은 이야기를 하면서 잘 풀려나가는 느낌이 들자 진짜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엉뚱한 짓만 벌렸다고 사정화에게 얻어맞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었던 것이다.

‘그럼 그렇지. 이 몸이 하시는 일에 실패가 있을 리 있겠어? 역시, 사람이 성공하려면 운을 타고나야 한다니까? 거기에다 이 몸처럼 실력까지 겸비하고 말이지. 하하하!’

한껏 기가 산 동천이 자기세계에 빠져 있을 때 조용하고 힘있는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거기까지는 다 아는 이야기였어. 그 이후의 이야기를 해봐. 어째서 증발하듯 사라진 후 이제야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말야.”

동천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씨,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괜히 입만 아프게 뭐 하는 짓이라니?’

씩씩거리고 싶은 그였지만 보복이 두려웠던 동천은 “아! 그거요?” 라고 대답한 뒤 잠시 너스레를 떨었다. 그 사이에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그게 그러니까요. 경황 중에 정보를 빼내서 근처에 숨어 있던 조원에게 전달하라고 명을 내렸는데, 아 글쎄! 같이 따라 가야할 것을 그만 평소의 버릇대로 명령만 내리고 말았지 뭡니까? 중요한 정보여서 기쁜 나머지 혼자서는 돌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깜빡했던 겁니다. 헤헤, 아가씨도 잘 아시다시피 제가 방향치잖아요.”

사정화가 차갑게 입을 뗐다.

“그것 때문이야?”

고작 그것 때문에 사람들을 동원하여 정작 해야할 일들을 뒷전으로 미루면서까지 너를 찾게 만들었냐는 물음이자 동천은 그저 억울할 따름이었다. 좋아서 방향치를 타고난 것도 아니고 그에 준하는 정보를 알려주었으니 자신이 이렇게 추궁 받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역시나 사정화 앞에서는 당당해지기가 어려웠다.

“에 또, 그렇게 길을 헤매다가 오련의 다른 소굴인 예곡이 무너진 것을 봤고요.”

“잠깐. 예곡의 오련이 몰살당한 것을 직접 봤다고?”

“예, 죽은 인간들을 본 것은 아니지만 그 흔적은 남아 있던데요? 신기하게도 불에 타고 무너진 건물들의 흔적은 확연한데 적이고 오련인이고 뭐고 사람들만 없더라고요. 핏물도 흥건했고요.”

좀 더 자세한 부분을 물어보고 동천의 대답을 듣고 난 사정화는 날카로워진 눈으로 중얼거렸다.

“오련이 우리측 외에 다른 곳에서도 당했다는 불확실한 정보가 들어오긴 했는데 그게 사실이었단 말이구나. 그런데 동천, 그곳이 예곡인 줄은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긴 이 몸의 미래의 첩이 가르쳐줘서 알았지.’

쓸데없는 생각을 한 그는 서둘러 대답했다.

“아, 그거요? 처음에는 그곳이 어디인지 몰랐는데 그 안에서 꺾이고 짓밟힌 오련기를 보고 오련인 줄 알았어요. 그러다 어쩐지 으스스해서 그곳을 나왔을 때 운 좋게 이명호월을 사로잡았는데 그들에게 길 안내를 시키며 이야기를 나눈 결과 그곳이 예곡인 줄 알 수 있었던 거예요.”

사정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 그들을 사로잡았다는 이야기는 방금 듣고 오는 길이야. 네 본신의 능력으로는 잡기 힘들었을 테고……. 아마도 금면마제와 당가의 장로로 인하여 힘을 소진한 후 도망을 치던 그들을 기습을 해서 잡아들인 모양이로구나. 그 기습이 네 말대로 운 좋게 성공했던 것이고.”

기분이 상하긴 했지만 마치 옆에서 지켜본 듯한 그녀의 추측이었기에 동천은 돗자리 깔고 점쟁이로 전향하는 것은 어떨지 권유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림의 생리라는 것이 다 그렇죠 뭐. 하하하!”

“웃지마.”

“예, 아가씨.”

잠깐 화기애애해지려던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되어지는 가운데 사정화는 동천의 문제를 어떻게 해야할까 고심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봤자 표정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동천은 예민한 감각으로 그녀의 분위기를 읽어낼 수 있었다.

‘혹시나 부당한 처우를 내리거나 이 몸의 몸을 털끝만치라도 건드리기만 해봐. 아주 탁자를 뒤집어 업고! 업고… 음, 그 다음에 어떻게 하지? 그냥 덮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정화 같은 예쁜 딸 낳아서 성격은 소연이나 제갈연 정도만 되면 금상첨화일텐데 말이지.’

결론이 참 이상한 쪽으로 흐르는 사이에 사정화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원래는 너 하나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인력들이 불필요한 수색에 시간을 소진하고, 그로 인하여 일에 지장을 주었는지를 공론화 시켜 일벌백계로 다스리려고 했었어.”

그 말에 동천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공론화를 시킨다면 그녀에게 그냥 맞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기에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집단의 압박을 받는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마교와 같은 무리에서 한번 떨어진 명예는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상당히 좁아지기 때문에 필히 조심해야만 했다. 그녀의 말처럼 이런 중요한 작전수행 중에 하던 일을 멈추고 방향치인 자신을 찾으러 다녀야 했으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그 손실을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의 공훈을 동천이 세웠다는 것이고, 사정화 개인적으로도 동천의 즉흥적인 행동이 괘씸하긴 했으나 그래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네 운이 다 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그에 준하는 공적을 쌓았기에 이번 일은 덮어주기로 할게. 단! 다시 한번 더 충동적인 생각으로 정해진 일정을 어지럽힌다면 그땐 정말로 각오해야 할거야. 알아들었어?”

동천은 내심 살았다는 얼굴로 황급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옛, 아가씨! 저도 깊이 반성하고 있어요. 다시는 이탈하지 않고 무리에 섞여 있을게요!”

“좋아. 이제 이런 이야기는 그만하기로 하고… 뭐라도 먹을래?”

동천은 얘가 웬일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에게 먹을 것을 권하다니! 그는 잠깐 못 본 사이에 얘가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일어났나 싶어 의심까지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이었고 동천은 곧 헤헤거리며 준다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녀가 손뼉을 나직이 치자 밖에서 기다렸다는 듯 시비가 차와 과일. 그리고 과자를 들여왔다. 차는 하나 뿐이었고 동천의 몫은 과일과 과자였던 것이다.

‘확실히 사람은 신분이 높고 봐야해. 이런 곳에서 과자를 먹을 수 있다니 말이지. 우히히!’

한창 맛있게 먹고 있는데 사정화가 차를 몇 모금 마신 후 입을 열었다.

“역천이 떠나기 전에 내게 와서 미욱한 제자이지만 잘 부탁한다고 했었어.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지.”

뜬금없는 이야기였지만 역천의 이야기였기에 동천이 관심을 보였다.

“예? 사부님께서요?”

“그래.”

동천은 자신을 생각하는 사부님의 마음이 와 닿는 것 같자 가슴 한 구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정화는 계속 말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져서 네가 잘못 되었을까봐 역천에게 상당히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 그러던 찰나에 네가 무사히 돌아와 줘서 역천의 부탁을 계속 지켜줄 수 있게 됐다는 것이 다행일 따름이지만 말야.”

차분한 자태로 탁자에 앉아 그를 조용하게 바라보는 사정화의 눈빛을 마주하게 되자 동천은 어느새 그녀의 모습에 취해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쩐지 마음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먹을 것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덕분에 먹을 것은 순식간에 동이 나고야 말았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사정화가 물었다.

“잘 먹네. 맛있게 먹었어?”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먹어서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을 정도였지만 입안에서 감도는 달콤한 맛과 향은 그에게 맛있다고 주장하는 것만 같았다.

“예, 하하!”

“그래, 이제 좀 맞자.”

“그러죠, 뭐… 예?”

그녀는 공적인 사항에서는 죄를 사면해줬지만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용서해준 것이 아니라며 동천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그래도 애는 먹이고 패야겠다는 생각을 해주었으니 그녀의 입장에서는 동천을 배려해준 것이라고 할 수 있었겠지만 동천으로서는 먹은 만큼 오래 버티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게 문제라면 작은 문제라고나 할까?

“악! 으악! 잘못 했슈우!”

그는 오랜만에 시원하게 얻어맞았다.

“으으!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야했을까잉!”

맞은 것 때문에 그 날 어쩔 수 없이 승봉산의 산채에서 머물러야만 했던 동천은 다음날 아침 멀쩡한 얼굴로 돌아다녀서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가 사정화의 처소에서 실려 나올 때만해도 그래도 약소전주인데 저렇게 상놈 패듯이 두드려 패면 반발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들을 내뱉었었기 때문이다.

그들로서는 동천이 지닌 귀의흡수신공의 효능을 몰랐기 때문에 그저 살고자 영약 하나 처먹었다고 추측할 따름이었다. 여하튼,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건 간에 동천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영 언짢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시팔! 어쩐지 먹으라고 권해주더니만!’

그녀는 다 먹고 나면 때리기 위해서 자신을 쳐다봤던 것인데, 그 모습에 혹해서 좋다고 먹어댔으니 어찌 화가 나고 분노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렇게 씩씩거리며 사정화의 처소에 당도한 동천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흠흠! 우와, 향기 좋다. 역시 아가씨랑 같이 먹으면 입이 즐거워진다니까요?”

아부를 시작하며 식탁에 마주 앉은 동천은 그녀가 살짝 안색을 찌푸리자 그 즉시 입을 다물고 그저 열심히 먹었다. 사정화도 묵묵히 먹기 시작한 동천에게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고 말이다.

“그런데 네 의술이 뛰어나기는 뛰어난 모양이구나. 어제 네 가벼운 행동을 약간이라도 줄여보고자 조금 심하게 때렸던 것인데 하루만에 이토록 멀쩡해졌으니.”

‘조금? 그게 조금 심하게 때린 거냐? 그럼 진짜로 때리면 아주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겠다?’

화가 난 동천은 먹던 것을 확 그녀의 면상에 내던지고 싶었다. 그러나 마침 음식을 깨끗이 비웠던 터라 던질 건더기가 없었다. 운 좋은 줄 알라고 생각한 그는 말했다.

“그 정도까지 뛰어난 것은 아니고요, 다 아가씨께서 손속에 사정을 봐주셔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어제 일을 계기로 자중하기로 했으니까 그만 화 푸세요.”

“화 안 났어.”

“아! 그래요? 전 또 오늘 아침 내내 말이 없으셔서 화가 아직 안 풀린 줄 알았거든요. 헤헤, 다행이네요.”

사정화는 웃고 있는 동천에게 말했다.

“동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뜨끔한 동천은 정말 귀신같이 잘도 알아맞힌다고 내심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아하하. 그게요. 그때 주신다고 말씀하셨던 영약이 어떻게 되었나 해서요.”

기왕에 와서 얻어맞기까지 한 김에 받아낼 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동천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어제 골골거리며 운기조식을 하는 와중에 자신의 몸을 생각하다가 영약이 생각났던 것이다.

‘일 없다고 말하기만 해봐. 아주 아가씨고 뭐고 어제 내가 맞은 만큼만 그대로 돌려줄 테니까!’

그의 집념은 집요할 정도로 타올랐는데 뜻밖에도 그 집념을 비웃듯 사정화가 긍정의 빛을 띠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침상 옆의 작은 서랍에서 옥함을 꺼내오는 것이 아닌가! 그런 뒤 그녀는 옥함을 열어 어린아이 주먹 크기의 푸른색 자기 병을 동천에게 건네주었다.

“그 안에 든 것은 구벽환(九壁丸)이야. 다섯 알이니까 세 알은 네 마음대로 사용하고 두 알은 나중을 위해서 간직해 둬. 그것의 효능을 안다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알겠지?”

입이 쫙 벌어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낸 동천은 그녀가 이토록 쉽게 영약을 건네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지 그저 고개만 무의식적으로 흔들어댈 따름이었다. 두 개를 사용하고 두 배가 넘는 분량인 다섯 개를 받았으니 이건 남아도 보통 남는 장사를 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냐고? 알지, 이 몸이 구벽환을 모를까봐? 으흐흐! 땡 잡았다! 파하하하! 아이고 좋아라!’

구벽환은 다른 단환들과는 달리 한 사람 당 아홉 번까지만 효과를 볼 수 있는 영약이었다. 그 중에서 처음 세 번까지는 한 알 당 10년의 내공을 올려주었고, 그 이후부터는 소진된 내공의 회복과 내상에만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구벽환의 재료들이 섞이면서 사람의 몸에 내성이 작용하는 성분이 생겨난 것이라고 추측할 따름이었다.

즉, 이 구벽환은 복용 시 세 번까지는 내공을 올려주었지만 그 이후로는 내공증진의 효과 없이 단순히 내상과 내공소모를 회복시켜주는 효과만 있을 뿐이었고, 그 이후로는 구벽환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아홉 번을 복용하고 나면 점점 내성이 벽처럼 가로막아 백날 복용해봐야 아무런 효과가 없었으니 참으로 재미있는 유래를 지닌 단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요! 내공 증진에는 3번까지만 효과가 있으니까 세 알만 복용하라는 말씀이시잖아요!”

흥분을 억누르며 자기 병을 꼭 쥐고 대답하던 동천은 문득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다섯 개야? 이게 오벽환이야? 줄려만 다 줘야지! 지금 이 몸하고 장난쳐?’

고새 욕심이 고개를 들추자 동천은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 동천의 눈빛을 대충 해석하고 다시 회수할까 망설이던 사정화는 빼앗자니 속 좁은 인간이 되었기에 그만두기로 하였다.

“일전의 일로 본교에 서신을 띄웠더니 구벽환을 보내주어서 나도 섭취하지 않았던 것인지라 내가 복용할 3개와 만일에 대비한 1개는 내 몫으로 남겨두었어. 그러니까 군침 흘리지마.”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한 동천은 재빨리 욕심을 버리고 그녀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것만해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생각도 못한 이런 귀한 선물을 내려주셔서 감사할 따름인데 군침이라뇨? 그럴 리가요. 만약 그랬다면 제가 천벌을 받게요?”

동천이 발뺌하자 사정화가 말없이 창가를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지지 않을까 확인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것을 본 동천은 얘가 그새 농 짓거리도 배우고 참 많이 변하긴 변했구나 싶었다. 여하튼 그녀는 이내 창가에서 시선을 떼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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