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672화
“으아함∼ 쩝!”
동천의 입이 크게 벌려졌다가 다물어졌다. 누가 봐도 하품이었고 그의 눈가는 촉촉히 젖어 들었다.
“에구, 심심한데 뭐 재미있는 일 없나?”
이명호월을 무사히(?) 보내준 지도 보름이 지났다. 금면마제는 그들을 떠나 보낸 지 닷새만에 도착했는데,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부단히도 노력했던지 얼굴과 의복이 꼬질꼬질한 것이 잘 씻지도 못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그를 본 동천이
‘얼레, 도금이 벗겨졌나벼?’
라는 생각까지 다 했었을까. 여하튼 금면마제는 오자마자 이명호월의 행방을 물었고 동천은 주루 이야기만 빼고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당연히 금면마제는 분노했다. 그놈들에게 밀린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리는데, 기껏 복수를 꿈꾸며 돌아왔더니 이놈의 애새끼가 고작(?) 은자 2만냥에 그들을 넘겨주었다는 개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아! 호∼월이도 없고! 박∼심이도 없고! 천마∼동은∼ 개뿔이 드러날 생각도 않고!”
그 이후로 금면마제는 동천에게 한번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동천이라는 인간 자체가 꼴 보기 싫어진 이유도 있었고 애초에 분야가 달랐으니 마주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천도 바라는 일이었다. 유일하게 자신을 견제할 수 있는 인물이 금면마제였으니 자유분방한 동천의 성격상 안 보이는 게 그를 도와주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에이 씨! 요새는 다치는 새끼들도 없고, 이놈들이 단체로 영약이라도 처먹었나? 왜 며칠 전부터 다쳤다고 찾아오는 인간들이 없지?”
박심과 이명호월을 떠나 보내고 실험할 인간들이 없어지자 동천이 눈을 돌린 곳은 환자들이 배치 된 간이 치료소였다. 그곳을 찾아간 동천은 ‘심봤다!’ 를 외쳤고 그 날부터 치료소에는 환자가 뚝 끊겼다.
다름이 아니라, 약소전주가 생체실험에 돌입했다는 소문이 떠돌자 웬만한 부상은 자신들이 알아서 치료를 해가며 참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다친 사내들끼리 서로를 치료해주다가 이상한 감정(?)이 싹트기도 했지만 그 부분은 별로 깊게 파고들 필요가 없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어쨌든, 그렇게 라도 버텨낸 자들은 다행히 약소전주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천이 들이닥쳤을 때 치료를 받는 중이었던 환자들은 불쌍하게도 극한의 지옥을 경험해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에 죽을 인간만 아니었으면 엉뚱한 곳에다 침을 놓거나 째보고 꿰매고, 수술한 부위가 마음에 안 든다며 다시 실밥을 뜯고 재수술에 돌입하고, 간혹 가다 ‘어? 잘못 찢었네? 미안!’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하고……. 아비규환! 지옥재래! 오죽했으면 죽은 시체들이 새벽에 돌아다닌다고 하여 시체들의 새벽이란 소리까지 나돌았겠는가.
그래도 한가지 신기한 점은 죽은 인간들 없이 모두 멀쩡하게 치료소를 나갔다는 것이지만 아무도 그런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일거리가 없다면 이 몸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동천이 치료소를 점거한 이후로 소문을 접한 무사들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모두들 유례가 없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 시작했으며 다치지 않기 위해 죽어라 남은 시간에 무공을 갈고 닦았다.
비록 그 시일이 짧기는 했으나 정신을 바싹 차렸다는 것만으로도 효과는 남달랐다. 실전에서 부상을 당하는 확률이 적어졌고 서로들 친목을 다지며 누가 위험에 처하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전우가 도움을 주자는 일종의 친목계까지 성행하였다.
치료소에 가느니 차라리 다친 곳에서 뼈를 묻겠다는 강박관념이 오죽 심했으면, 상대와 싸우다 검상을 입게 된 교도 하나가 입에 거품을 물며 ‘이 개새끼! 지금 나보고 생체실험을 당해서 죽으란 말이냐?’ 라고 소리치면서 기어코 쫓아가 상대를 주살했을까.
“에에, 어디로 가실까나? 이쪽? 아니면 이쪽?”
잠시 둘러보다가 방향을 정한 동천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어디 쓸만한 인물이 없나 살펴보았지만 어떻게 된 건지 개미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 몸이 잠시 쉬고 계신 사이에 진지를 옮겼나?”
자신을 탓하진 않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걸어가던 그는 어느 순간 눈을 번뜩였다. 어디에선가 단체로 기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누가 들어도 훈련에 임하는 상황이었다.
“독사출동(毒蛇出動)! 염화천소(炎火天消)!”
“움직임이 느리다! 좀더 빠르게 검을 놀리란 말이다! 너! 너 말야, 자식아!”
“옛, 반성하겠습니다! 하아! 하!”
작게 마련된 훈련장이었다. 십 수 명의 사내들이 초식연습에 한창이었고 상급자가 그들의 앞을 거닐며 자세를 교정해주고 있었다. 열심히 노력 중인 그들을 보며 군침을 흘린 동천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색을 하고 훈련장으로 들어갔다.
“하하, 참으로 열심들이구먼!”
순간 모든 이의 움직임이 정지되었고 장내는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그리곤 곧 공황상태가 밀려들었다.
‘컥? 저 소살광의(小殺狂醫)가 어찌 이곳에?’
‘도망쳐야 한다! 난 아직 창창해!’
‘서, 설마 재료가 모자라자 직접 움직였단 말인가? 크윽, 미치겠군!’
누구 하나 말을 내뱉는 이가 없었으나 그들의 생각은 대충 위와 같았다. 치료소로 찾아가는 얼빠진 동료들이 없었으니, 그 옛날 약왕전의 전주 역천(逆天)을 보는 듯하여 소살광의로 불리기 시작한 약소전주가 직접 먹이를 찾으러 기어 나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약소전주님을 뵙습니다. 어쩐 일로 이곳까지 왕림하셨습니까?”
수하들을 가르치던 상급자가 대표로 인사를 올리자 동천이 싱긋 웃고는 입을 열었다.
“어쩐 일이긴, 그저 운동 겸 산책을 하느라 이곳 저곳을 거닐다가 자네들의 힘찬 구령소리를 듣고는 견학 좀 하려고 찾아왔던 게지. 그런데 자네 직위가?”
“혈각의 제 2향주(香主)입니다.”
“음, 그래. 자네 이름이?”
“담현(錟顯)입니다.”
“담현이라. 이름 좋구먼.”
“감사합니다!”
“하하, 감사는 무슨! 그런 의미에서 자네들의 노고를 치하할 겸 조촐한 비무대회를 열고 싶은데 자네의 의견은 어떠한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갑자기 비무대회를 연다고 하자 담현은 적이 당황했다. 인원이 얼마 없어서 말 그대로 진짜 조촐한 비무대회가 될 것 같기는 했지만 약소전주의 의도를 몰랐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던 것이다.
“예? 아니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면…….”
웃는 낯이던 동천의 얼굴이 바로 싸늘하게 변했다.
“왜, 이 몸의 말씀이 개소리처럼 들려서 안 되겠어?”
“아! 아닙니다! 잠시 당황했던 것일 뿐입니다! 진노를 거둬주십시오!”
동천의 얼굴이 순식간에 180도로 변했다.
“오오! 그럼 한다는 소리인가?”
하는 수 없어진 담현은 수하들의 얼굴을 힐끗 돌아보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주었다. 수하들은 담현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지만 내심 ‘쪼다새끼!’ 라는 욕이 튀어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그들은 8조로 나뉜 16명의 대전자를 울며 겨자 먹기로 즉석에서 가렸다. 담현은 보고를 올렸다.
“약소전주님, 일단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네가 개회를 알리면 시작하겠다는 소리이자 흡족해진 동천은 앞으로 나서며 그들에게 짧은 연설을 시작했다.
“갑작스레 개최한 비무대회인 만큼, 모자란 부분이 간혹 눈에 뜨일 것이다. 그러나 대회의 취지가 노력하는 자들의 단합이 아니던가! 그런 부분들은 서로서로 감싸주기로 하고 대회의 개최를 시작하겠다! 상금은 오직 1등에게만 주어질 것이며 이 몸의 사비를 털어 은자 40냥을 지급할 계획이다! 자, 시작하라!”
“와아!”
사람들은 뜻밖의 상금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우승자에게 은자 40냥이라니? 4인 한가족이 아끼고 아껴서 1달을 지낼 수 있는 돈이 은자 1냥이었다. 제대로 먹고살려면 은자 3냥 정도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들이 받는 한달 급료가 은자 3냥이었다. 그저 심심풀이로 대회를 빙자한 난투극을 즐기려는 줄 알았건만 무려 1년 정도의 급료를 우승자에게 지급해주겠다니! 사람들의 눈빛이 확 바뀌는 순간이었다. 오죽 했으면 눈동자가 흔들린 2향주 담현이 자신도 참가하면 안되겠냐고 입을 열 뻔했겠는가.
“1조, 나와라!”
“옛!”
“예!”
건장한 두 사내가 나오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좋게 말할 때 져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곧이어 시작소리가 울려 퍼지자 목검을 든 그들의 신형이 하나의 접점에서 부딪혔다.
빠박! 탁! 파바박!
그런데 난데없이 약소전주가 상황을 종료시켰다.
“자암깐!”
놀란 담현은 반사적으로 물었다.
“헉, 무슨 잘못이라도 있습니까?”
그에게는 다행히도 동천이 고개를 내저었다. 비록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 반대였지만 말이다.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명색이 대회잖아? 대회에 웬 목검? 이게 코찔찔이들 경연대회야? 지금 니들 은자 40냥을 홀랑 처먹겠다는 뜻이야? 그런 거야? 앙?”
진검으로 싸우라는 소리이자 상금을 생각하며 흥분에 들떠있던 사람들이 급격하게 안색을 굳히기 시작했다. 살초를 사용하면 목검이라도 충분히 위험스러웠는데, 거기에다 진검을 사용하라고 하니 이건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담현은 자신에게 그 어떠한 불이익이 닥쳐올지라도 이것만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송구하오나 저들은 잠시 후에 출동을 해야하는 대기조입니다. 목검으로 다치는 것은 어떻게든 되겠지만 진검으로 다친다면 일정에 큰 차질을 빚게 되는 것이니, 부디 넓으신 아량으로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동천은 대답했다.
“은자 60냥!”
“아, 아무리 그 정도로 올리신다고 해도…….”
“은자 80냥! 거기에다 자네도 참가가 가능!”
“존명! 죽을 각오로 대회에 임하겠습니다!”
돈이면 죽은 귀신도 부린다더니, 역시 돈 앞에 굴복 당하고 마는 담현이었다. 그의 수하들도 은자 80냥에 두 눈이 뒤집혔지만 자신들의 상관이 참여한다고 하자 대게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고 몇몇은 그래도 전의를 불태웠다. 담현도 혼자 먹기 좀 그랬던지 자신이 우승하면 한턱 크게 산다고 언질을 주어서 그나마 분위기가 수그러들었다.
“좋아, 시작해!”
진검으로 바뀐 대회가 다시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초반엔 서로의 눈치를 보느라 소극적이었지만 하나 둘 피를 보기 시작하자 누가 마교도들 아니랄까봐 흥분에 휩싸여 실전과 같은 격렬한 칼부림이 일어났다.
그렇게 장장 반 시진을 거쳐 당당하게 우승을 차지한 담현은 예상외로 끈질기게 물고늘어진 부하들 때문에 어깨와 옆구리에 적지 않은 부상을 입었지만 그래도 곧 상금을 탄다는 기쁨에 고통을 느낄 새가 없었다.
“헉헉! 수하들에게 양보를 했어야 했는데 부끄럽게도 제가 우승을 했습니다.”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다가온 2향주를 바라보며 동천은 장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그냥 향주자리에 앉은 것이 아니구먼! 대단했네!”
“감사합니다. 후우, 후.”
동천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닐세. 감사는 내가 더 감사하지. 약왕전의 소전주로서 이렇게 부상당한 사람들을 치료해줄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일세.”
“헉?”
“컥?”
“켁?”
“꽥!”
그제야 약소전주의 사악한 계획을 눈치챈 사람들은 경악에 찬 외마디 비명을 여기저기에서 터트렸다. 마지막에 꽥, 소리를 낸 사내는 제일 부상이 심했던 자였는데 그를 본 다른 사내들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운이 좋아서 피를 보기 전에 패배를 인정한 사람들이었다. 그러자 수하들을 보다 못한 담현이 나서주었다.
“약소전주님. 저들은 약소전주님께서 직접 의술을 베풀어주시지 않아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응? 자네도 꽤 다쳤는걸?”
“서둘러 저들의 치료를 부탁드립니다!”
그의 말 한마디에 부하들의 신망이 멀어지는 가운데, 잘 알겠다고 대답한 동천은 부상자들을 이끌고 자리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상금 문제로 내심 조바심이 난 담현은 하는 수 없이 스리슬쩍 나섰다.
“저어 그런데 상금은…….”
동천은 아! 하고 잠시 까먹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달아 놓게.”
“헉?”
담현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인간의 한계 이상으로 커진 그의 눈동자에서는 ‘당했다!’ 라는 외침이 튀어나올 듯이 보였다. 동천은 그렇거나 말거나 생글거리며 말했다.
“뭘 그리 놀라나? 떼먹는 다는 것도 아니고, 아쉽게도 지금은 돈이 없으니 외상장부에 달아 놓으란 말일세. 하하, 내 언젠가는 꼭 그 돈을 값아 줌세!”
“아니, 그게…….”
동천은 울 듯한 얼굴의 담현을 뒤로하고 부상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빨리 움직여라! 이렇게 움직이면 오늘 내로 다 못 고칠 것 같구나!”
우르르르!
늦으면 내일까지 실험을 한다는 소리로 들렸는지 그들은 언제 다쳤냐는 듯 치료소를 향해 뛰어갔다. 그것을 본 동천은 하하 웃으며 사라졌고, 덩그라니 놓여진 담현은 남은 수하들의 싸늘한 눈초리를 받으며 그렇게 굳어버렸다. 그런 그의 귓가로 얼음보다 차가운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쓰, 쓰불!’
그는 울고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