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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694화


“그렇다면 1차나 2차로 가게 될 우리측의 인물들은 어떻게 정해야 하는 것이오?”

아수전의 부전주 조찬이 묻자 혁필상이 소매 속에서 명단이 적힌 종이를 꺼냈다.

“그 문제로 아가씨와 혈각주님. 그리고 소문주님과 며칠 전부터 상의를 했습니다.”

동천은 벌컥 화를 냈다.

‘아니, 소교주 새끼가 뭘 안다고 상의하는데 껴 줘? 이 몸이라면 모를까 저런 놈 껴줘서 뭐가 될 것 같어? 아! 본교가 망하려나, 개나 소나 다 껴 주네.’

그가 화를 내건 말건 표시가 안 났기에 회의는 계속 진행되었다.

“먼저 1차 적으로 출발한 분들로서 혈각주님과 휘하 당주 2명이 뽑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림주님과 휘하 호위녀 2명이, 다음으로 살각의 섬살대 대주 을목평과 휘하 3명이 뒤따르게 됩니다. 또한 소교주님과 흑혈이살, 만독문의 소문주님과 숭 당주님이 참여하시게 되고, 약왕전에서는 약소전주님과 휘하의 동화정이가 참여를 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기관지학에 능하신 두 분을 초빙하였으니 착오가 없길 바랍니다.”

“에?”

누군가 놀라 소리를 치자 모두의 시선이 그 사람에게로 몰렸다.

혁필상은 그 당사자인 동천에게 물었다.

“문제가 있습니까?”

‘당연하지, 이 늙탱아! 그런 건 당사자에게 미리미리 언질을 해줬어야지!’

동천으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암흑마교라는 마도 집단의 성향으로 봤을 때 이건 화를 낼 성질이 아니었다.

애초에 참여를 했으면 그런 일쯤은 대비를 했어야 했고, 소수로 추려지는 자리에 선택이 되었다면 그만큼 상부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증거이니 되려 영광으로 알아야했다.

억지로 끌려왔던 동천의 입장에서는 화가 날만도 했지만 수뇌부의 입장에서는 필요에 의해 선택을 했을 뿐 개인의 의사 따위는 완전히 무시였을 따름이었다.

동천도 그런 기본적인 사항은 잘 알고 있었기에 애써 감정을 추스르고 말했다.

“아, 그게 말입니다. 제가 뽑혀서 놀랍기도 하고, 아무래도 의술을 할 줄 아는 사람이 같이 가는 게 좋은 건 사실이지만 그런 거라면 소진 부전주님께서 가셔야 함이 마땅하기에 저도 모르게 놀람을 표현했던 것 같습니다.”

동천의 이야기가 이해되었던지 혁필상이 낮게 웃으며 설명해주었다.

“허허, 그건 말이지요. 아가씨께서 화정이란 강시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시어 추천을 하시게 되었는데, 강시면 응당 지휘할 사람이 필요하기에 마침 의술에 능한 약소전주님이 주인이 되시는 고로 같이 편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원흉(?)이 사정화라는 이야기이자 순간 동천은 뒷골이 당기는 것을 느꼈다.

‘어이쿠, 내가 자기한테 얼마나 잘해주었는데 이렇게 배신을 때린단 말인가! 아니 막말로 다 죽어 가는 거 살려준 걸로 치면 교주를 시켜줘도 모자랄 판에 감히 사지로 몰아? 으으, 이건 말도 안 돼! 이건 배신이고 배반이야!’

자신의 실력을 인정해서 뽑았다고 해도 봐줄까 말까 인데, 화정이를 우선시하고 자신은 그저 뒤에서 조종만 하는 존재로 치부되자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는 절로 이가 갈렸지만 성질을 내봤자 자신만 손해였으므로 일단 대답부터 하고 보았다.

“아? 그랬군요. 하지만 강시라면 아수전에서 보내는 것이 나을 텐데요?”

“아수전의 강시는 2차로 출발하는 인원에 편성이 되었습니다.”

‘젠장! 어떤 후레자식이 편성을 1차와 2차로 나누자고 한 거야? 잡히면 아주 그냥 확! 모가지를 뽀사트려 버릴라.’

거기까지 생각한 동천은 당장에 벗어날 길이 없자 괜히 말꼬리를 붙잡느니 차라리 이후의 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영광으로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혁필상은 2차로 선별한 사람들을 이어 부르기 시작했다.

“아수전의 부전주님께서는 당주 2명 외 초혼강시 4구를 동반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독전의…….”

혁필상이 그 뒤로 담당기관과 인물들을 죽 나열했지만 관심 밖의 일이었던 동천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당장에 닥친 문제로도 머리가 빠개지겠는데 같이 갈 선발대도 아닌, 2차 후발대의 사람들을 귀담아들어서 무엇하겠는가 말이다.

결국 혼자 끙끙거리는 사이에 회의는 끝났고, 사정화와 측근 몇몇들은 각 파의 대회의에 참여하고자 호위대를 이끌고 회의장을 떠났다.

덕분에 출발 준비를 위해 해산하게 된 동천은 뭐 씹은 표정으로 밖에서 대기 중인 소연의 안내를 받아 막사로 되돌아왔다.

“야, 화정아! 챙길 것도 없겠지만 챙길 거 있으면 후딱 챙기고 날 따라 와!”

오는 내내 씩씩거리기만 해서 영문을 몰랐던 소연은 주인님이 갑자기 화정이를 찾으며 여행이라도 가는 것처럼 준비를 하자 의아해진 눈으로 물어보았다.

“무슨 일 있으세요? 회의에서 떠날 준비를 하래요?”

“에그, 넌 밖에 있으면서도 뭔 일이 터졌는지도 모르냐? 천마동의 입구가 열렸다고, 지금 거기에 들어가는 사람들 중에 이 몸하고 화정이가 뽑혔어. 그래서 이렇게 준비하는 중이고.”

“네에? 지, 진짜로 하시는 말씀이세요?”

동천은 놀라하는 소연의 어투를 따라했다.

“그, 그럼 이 몸이 할 일 없어서 거짓말을 했겠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소연은 그게 당장에 급한 문제는 아니었으므로 거론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은 모습으로 물었다.

“거기에 들어가는 거,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들었는데…….”

멈칫!

허리에 동여맬 정도의 작은 보따리를 싸매던(거의 다 먹을 거다) 동천은 소연의 목소리에 하던 행동을 중단하였다.

안 그래도 가기 싫어하는 인간에게 기름을 끼얹는 대답이었지만 뜻밖에도 동천은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어주었을 따름이었다.

“네 걱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화정이가 같이 가주는 것이니 너무 가슴 졸여하지 말거라.”

“그래도……. 흑!”

눈물을 보이기 싫어 고개를 숙이자 동천이 그녀를 살며시 끌어당겨 안았다.

소연은 사랑하는 주인님의 품에 안겨 기분이 날아갈 듯 했지만 달콤한 순간이 아니라 이러한 상황에서 안겼다는 현실에 마침내 굵은 눈물을 흘렸다.

“하하, 어린애 같이 울긴. 얼굴 들어봐, 우리 예쁜 소연이 눈물 좀 닦아주게.”

부드럽게(?) 미소한 동천은 양손으로 소연의 얼굴을 가볍게 감싸 쥔 뒤 볼을 타고 흐르는 그녀의 눈물을 엄지로 닦아냈다.

촉촉이 젖은 그녀의 눈망울은 사내의 심금을 울릴 듯 애처로와 보였지만 그보다 더 촉촉한 듯 한 입술은 반대로 묘한 감흥을 일으켰다.

입맛을 다신 동천이 은근슬쩍 얼굴을 가까이 대어가자 무엇인가를 감지한 소연이 눈을 감았고 화정이는 그들 사이에 끼여들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물었다.

“둘이 뭐해?”

“어마?”

“윽!”

얼굴을 붉힌 소연이 불에 데인 듯 떨어져나가자 산통 다 깨졌다고 생각한 동천은 화정이를 죽일 듯이 쳐다봤다.

‘에이 씨, 간만에 분위기 잡고 뽀뽀나 해보려고 했더만 이게 그걸 못 참고 훼방을 놓네?’

소연과는 다르게 화정이의 볼을 비틀어서 세게 잡아 뗀 동천은 아프다고 찔끔거리는 그녀에게 챙길 거 다 챙겼으면 따라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화정이가 볼을 비비며 물었다.

“히잉, 아프당……. 근데 동천. 우리 어디 가?”

“그래, 나쁜 놈들 때려부수러 가. 됐냐?”

화정이는 언제 볼을 비볐냐는 듯 손을 내리고 눈을 반짝였다.

“와아! 악당을 처단하러 가는 거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서 은근히 불안해진 동천은 엉뚱한 짓을 하기 전에 미리 단단히 주의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너 이 주인님 명령이 있기 전까진 괜히 나서지마. 그랬다간 꿀밤 100대하고 볼 잡아당기기 1시진이야. 알았어?”

확실히 무서운 위협이자 화정이는 언제 좋아라 했냐는 듯 약간 겁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가만히 있을 게. 가만히 있으면 화정이 안 아픈 거지?”

동천은 씨익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잠시 마저 챙긴 후 밖으로 나서자 전열을 정비하는 듯 긴장감이 몰아치는 전경이 눈에 들어 왔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애병을 점검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고 그들을 지나친 동천은 기어코 따라오겠다는 소연을 데리고 발굴현장으로 경공을 사용해 뛰어갔다.

천마동의 입구는 경비가 삼엄했지만 동천을 알아 본 암흑마교의 무사들이 길을 터 주자 쉽게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오셨습니까.”

“음! 다른 분들은?”

“아가씨께서는 한창 회의 중이시고, 나머지 분들은 아직 이십니다. 아마도 준비에 소홀함이 없도록 신중을 기하시는 듯 보입니다.”

바꿔 말하면 자신은 준비에 소홀해서 일찍 온 것이라는 말이 되자 동천은 사가지가 없는 섬살대주 을목평에게 삐딱한 눈초리를 보냈다.

“말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닐세.”

“예?”

“그냥 그렇게만 알게. 많은 걸 알려고 하면 다치네.”

“아, 예.”

또 지랄을 한다고 생각한 을목평은 괜히 엮이기 싫어서 바로 관심을 끊었다.

더불어 그는 조용히 동천에게서 떨어졌다.

누가 살수 아니랄까봐 그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기분이 더러워진 동천조차 언제 멀어졌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거 인간들 참 안 온다. 다른 문파의 사람들은 상당히 모여 있는데 우리 쪽은 굼벵이들을 삶아 먹었나.”

성질이라도 부리고 싶었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참고 견뎌야 했다.

동천은 정파의 인물들에게 주목받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던 것이다.

“동천, 근데 머리에 그건 왜 쓰고 있어? 그거 써도 보여?”

화정이가 죽립을 지적하자 동천은 대답해주었다.

“화정아. 행여나 건드릴 생각 마라. 꿀밤 1000대다.”

화들짝 놀란 화정이는 만져보려던 손을 냉큼 원위치 시켰다.

“응, 안 건드려. 화정이는 아픈 거 싫어.”

그렇게 죽립의 안전을 확보한 동천은 호연화를 데리고 잠시 장난을 치다가 멀리에서 다가오는 암흑마교의 사람들을 발견하곤 소연에게 연화를 건네주었다.

“이 몸이 올 때까지 우리 연화 잘 돌보고 심심하면 아가씨에게 찾아가서 같이 놀아. 뭐 안 논다고 그러면 말고.”

소연은 다시 눈시울이 붉어지려는 것을 꾹 참고 연화를 받아들었다.

“예, 주인님. 저하고 연화는 걱정 마시고요, 무사히 다녀오세요.”

“에이! 그런 건 걱정하지 말라니까. 그리고 너 쪽팔리게 이런데서 질질 짜면 이 몸이 개망신인 거 알지?”

소연은 행여나 주인님께 누가 될세라 얼른 눈물을 감추었다.

“그럼요, 에헤헤.”

얘 또 무리한다고 생각하는 찰나, 사람들이 도착했다.

이때 제일 눈에 뜨이는 사람들은 냉현과 강소홍이었는데 동천으로서는 강소홍은 그렇다 치고 냉현까지 대회의에 참여하지 않은 상태이자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소교주라면 충분히 참여할 자격이 있을 텐데 언뜻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화를 나눌 정도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닌지라, 동천은 그저 이제 냉현 쪽은 저무는 해인 관계로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추측을 해볼 따름이었다.

‘짜식. 권력에서 밀려나면 원래 그렇게 비참한 거야.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워도 참고……, 아니다. 죽고 싶으면 죽어야지. 가능하면 빨리 좀 죽어서 여러 사람 좀 편하게 해줄래? 너도 태어나서 단 한번쯤은 좋은 일을 하고 죽어야, 지옥에 가서라도 추억으로 간직할 거 아냐. 아 참! 니 형벌이 한 10억 년은 되나? 응? 되냐니까 이 썅늠아?’

동천만 원하는 일방적인 자살 권유에 냉현이 화답했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는가? 뭘 그리 빤히 쳐다보는가?”

동천은 어차피 혼자 생각한 것이었기 때문에 전혀 꿀릴 것 없이 대답해주었다.

“아, 그랬습니까?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그저 우연의 일치로 제가 보는 쪽에 소교주님께서 계셨던 듯 합니다.”

“흐음, 그런가?”

냉현은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았지만 딱히 물고 늘어질 행동과 대답이 아니었으므로 그냥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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