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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706화


정해진 운명의 만남.

쩡! 콰직!

“크흡!”

운석에서 생성된 투명한 막과 충돌한 빛줄기는 폭발이 일어나듯 작은 섬광을 일으키며 그 흔적을 지워갔다. 도저히 피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동천도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지만 아무리 보호막이 버텨주었다 하더라도 그 충격의 여파를 다 흡수할 수는 없었던지 내부가 진탕되어 절로 욕지기가 일어났다. 하지만 그의 충격 못지 않게 정신적으로 혼란을 겪게 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연주신군이 그러했다.

‘이럴 수가! 호, 호신강기라니!’

그는 믿을 수 없었다. 무안신군이 척마신군을 홀로 상대한 녀석이라고 했을 때도 시큰둥하게만 생각했던 그였다. 무안신군의 말마따라 생각지도 못한 비열한 짓을 성공시킨 것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한 그였다. 그런데 호신강기라니? 그것도 저 나이 또래에?

‘허어, 어찌 하늘은 저런 소인배에게 천부적인 무(武)의 재능을 주었단 말인가!’

오해를 해도 단단히 오해를 한 그는 사실 우연치 않게 혈각주와 손속을 겨루는 와중에 상대의 어깨 너머로 척마신군의 품을 뒤지는 동천을 발견하게 되었다. 감히 죽은 자의 유물을 탈취하려 하다니? 비록 그가 척마신군과는 별다른 친분이 없다지만 이것은 그의 성격상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비열한 짓에 속했다. 더군다나 세파에 찌든 마두도 아니고, 아직 사리분별도 제대로 하지 못할 애송이 녀석이 제 잘못도 모른(?) 채 시체를 뒤지고 있었으니 그의 분노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마도라는 곳이 어린 아이를 저렇게 악한으로 물들여 버렸다고 단정했던 것이다. 하여 그는, 척마신군의 복수도 해줄 겸 그의 성명절기 중 하나인 주섬지(珠閃指)를 극성으로 쏘아보냈다. 저렇게 심성이 악한 놈은 애초에 싹을 잘라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그 자신도 흉험한 상황에서 대놓고 동천을 노린 것이 아니라 먼저 혈각주의 명치를 노렸는데, 그가 당하면 가장 좋고 막으면 연속공격으로 승기를 잡으려고 했으며, 피한다면 마지막으로 동천에게 향하게끔 지법을 발사했다. 헌데, 혈각주가 몸을 뒤틀며 가까스로 피한 뒤 어처구니가 없는 사태가 발생하자 그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변수가 예상치를 벗어나도 한참이나 벗어났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이었고 그는 지나온 연륜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퍼뜩 정신을 차렸다.

‘본련의 미래를 위해서는 꼭 죽여야만 하는 놈이다! 저 나이에 저 정도의 화후라면 장차 본련은 물론이거니와 정파에 크나큰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할 터!’

작은(?) 오해로 결심을 굳힌 그는 대노하여 달려드는 혈각주의 공세를 가까스로 막아내며 다시 한번 기회를 노렸다. 다행인지 몰라도 혈각주는 자신이 피한 생각만 했지 누가 그 지법에 당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하는 듯 싸움에 열중했다. 한편, 진탕된 내부를 가까스로 다스린 동천은 뒤늦게 다가온 화정이와 강소홍. 그리고 냉현 일행의 관심을 받게 되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기습을 당해 화를 내고 싶어도 보는 눈들이 많아서 꾹 참아야만 했다.

“무슨 일이죠?”

“동천, 빛나던 거 어디 갔어?”

화정이는 기민한 반응을 보여 동천이 가까스로 막아낸 장면을 보았지만 우연인지 몰라도 다른 이들은 관덕청의 요구로 뒤쪽과 교대를 하고자 그쪽을 바라보고 있던 상황이었다. 기묘한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을 때에는 지법이 터져 빛을 잃어 가는 순간이었기에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암습을 당했습니다만 심각할 정도는 아닙니다.”

“아! 역시 그 빛이 약소전주를 공격했던 무언가 였었군요. 암기였나요?”

쇠끼리의 부딪힌 소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그의 무기로 암기를 막아 불똥이 튄 것이라고 강소홍은 착각한 듯 했다. 하지만 곧 동천이 무기를 뺀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추리가 틀렸음을 인식했다. 그것을 말하려는 찰나 냉현이 말했다.

“암기는 아닌 것 같지만 어디 눈먼 공격이라도 당한 것 같군. 경험의 부족 탓인가? 그런 공격 따위에 당하다니 말일세.”

어둠 사이로 이죽거리는 냉현의 얼굴이 비추어졌다. 꼴도 보기 싫은 약소전주가 낭패를 당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겠는가 말이다.

‘아∼, 저게 또 뒈지려고 깐죽거리네? 그냥 콱! 저 얼굴 고대로 죽여서 염라대왕 앞에서도 저 얼굴로 들이대게 만들까보다. 우이 씨!’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일단 그런 생각을 하자 염라대왕의 분노를 산 그가 지옥의 바다에서 살려달라고 질질 짜는 모습이 상상되었던지 동천은 자신도 모르게 킥킥 웃었다. 차후에 정말로 냉현이 염라대왕의 분노를 사게될지 어쩔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동천은 지금 당장에 냉현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감히! 자네를 위해 잘 되라고 조언을 해준 나에게 비웃음을 흘린 것인가?”

‘소설을 써라 자식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동천은 그가 정말로 자신을 위해 그런 말을 해주었던 거라면 입에 칼을 물고 자결할 용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정말로 그랬던 것이라면 없었던 일로 하겠지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제 자신이 한심하여 자조의 웃음을 지었던 것일 뿐입니다.”

“흥! 오해의 소지를 일으킬 만한 문제는 애초에 조심하도록 하게.”

스스로를 깎아 내리며 자조의 웃음을 지었다고 하는데, 냉현으로서도 달리 더 추궁할 여지가 없었다. 심증은 확실했지만 물증이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었던 그는 심증만을 간직한 채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강소홍이 나섰다.

“오해를 푸셨으니 하는 말인데 어서 자리를 옮기는 게 좋겠어요. 이곳에 있다가는 다시 공격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옳다고 생각한 그들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까 싶어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을 잠자코 지켜 볼 연주신군이 아니었으니, 그는 혈각주에게 밀리는 척 공방전을 펼치다가 자리의 위치를 바꿔 동천 쪽으로 등을 돌리는데 성공하자 중수법으로 혈각주를 물러나게 한 뒤 지체 없이 동천에게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무안신군도 요림주를 밀어낸 뒤 동천에게 뛰어들었는데 아마도 그 둘은 미리 전음을 통해서 이야기를 주고 받은 상태인 듯했다.

“엇?”

“저자들이 소교주님을 노린다!”

“소교주님, 피하십시오!”

우습게도 냉현이 동천의 근처에 있었던 관계로 사람들은 누구나 다 냉현을 공격하는 줄 알았지, 그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동천을 공격한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인지 흑혈이살을 비롯한 암흑마교의 고수들은 냉현의 앞을 득달같이 막아섰고 무안과 연주 두 신군은 옳다구나 동천에게 검기를 쏘아보냈다.

“우왁? 화정아 막아!”

“응! 동천!”

그물처럼 얽히며 공간을 가르기 시작한 빛의 군락은 정면으로 바라보는 동천의 눈을 아리게 만들었지만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팍 꺼지듯 사라져 버렸다. 명령을 받은 화정이가 그의 앞을 버티고 섰던 것이다. 이어 검식을 사용한 그녀는 상대의 공격에 재빨리 맞대응 했지만 미리 준비하고 공격했던 신군들에 비해 피하지도 못하고 무조건 방어만 해야했던 화정이의 입장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났다.

파앙! 퍽! 퍼버벅!

막긴 막되 많은 부분을 놓치고 막아낸 화정이는 밀려든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겠던지 몸이 붕 뜨는가 싶더니 뒤로 거칠게 날아갔다. 그것은 화정이가 자신의 앞에 섰으니 이젠 안심이라고 생각했던 동천에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으헉? 크악!”

콰앙!

화정이와 함께 벽에 부딪힌 동천은 진기를 일으켜 몸을 보호하긴 했지만 둔기에 머리를 맞은 것처럼 한순간 눈앞이 번쩍 하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다시 한번! 이번엔 소교주요!”

“알겠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들의 목표는 당연히 동천이었다. 아울러 연주신군은 피 칠을 하고 물러선 화정이를 일도양단할 기세로 전력을 기울였는데, 자신과 무안신군의 전력투구라면 충분히 눈앞의 강시를 쪼갠 뒤 방심하고 있다가 같이 당한 어린놈까지 처치할 수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화정이와 손속을 겨룬 바 있었던 무안신군은 그와는 좀 다른 입장이었다. 그는 눈앞의 강시를 쪼개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장시간은 움직이지 못하게끔 만들어 놓아야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인 것이었다. 또한, 뒤쪽에서 혈각주와 요림주가 쫓아오는 시간적인 여유로 봤을 때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 공산이 컸으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어딜! 어림없다!”

같은 시각 강소홍은 화정이가 크게 패퇴하자 급히 허리에 차고 있던 채찍을 쥐고 뱀처럼 꿈틀거리며 휘둘렀다. 이제까지는 너무 밀집된 공간 내에서의 혈전이라 자제하고 있었던 것인데, 화정이나 동천의 목숨이 경각에 달한 것 같자 아까 동천을 외면했던 상황과는 달리 바로 근처에 있었으므로 최선을 다하여 도움을 주고자 했던 것이다. 헌데, 그녀는 깜짝 놀라고야 말았으니, 바로 저들이 소교주로 공격 방향을 바꾼다고 소리를 쳤기 때문이었다.

‘나와 소교주는 일직선상에 있다. 이런 난감할 데가!’

그녀의 말인즉, 그녀를 제압하거나 베고 넘어야 소교주를 공격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거기에 엎친대 덮쳐, 그녀는 몰랐지만 뒤늦게 약소전주를 도와주고자 움직이려던 사람들까지도 연주신군의 외침을 듣고는 멈칫한 상황이었다. 방금 전 소교주가 아닌 약소전주를 공격한 사태로 잠시 공황이 일어났었는데, 이제야 소교주를 공격하겠다고 하자 방어를 위해 움직임을 멈춘 것이다.

“흥!”

연주신군은 가소롭기 짝이 없는 어린 계집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화정이를 향한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남들이 보기엔 신속하기 짝이 없는 편법(鞭法)이었지만 그에게는 볼일을 다 마친 후 방어를 하더라도 충분할 정도로 보였기 때문이다.

퍼퍽! 츠츠츠츳! 푸하학!

수만 근의 화약이 터지는 듯한 거대한 힘이 지극한 날카로움을 동반하여 화정이의 전신을 난도질했다. 그러자 등을 돌린 그녀의 몸에 가는 실선이 그어지는가 싶더니 쩌억! 갈라지며 다량의 피가 쏟아져 나왔다. 아무리 그녀일지라도 완숙의 경지에 이른 검기를 맨몸으로 받아내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으악? 웁, 우웩!”

화정이의 몸에 쏟아진 일차적인 충격은 그대로 그녀의 몸을 관통하여 동천에게 가해졌다. 그러나 그 여파로도 모자랐던지 거대한 기운은 동천의 몸 속까지 투과하고자 난도질을 할 기세였다. 앞서의 충격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동천은 무방비에 가까운 상황에서 두 번째 충격을 얻어맞자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어지러웠으며 구토가 일어나 속이 뒤집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그 누구보다 강했던 동천은 자신의 한계 치까지 내공을 끌어 모아 충격이 가해진 가슴 쪽으로 집중시켰다. 그는 자신의 몸 내부에 둑을 쌓고 또 쌓기를 반복했으며 그것을 더욱 견고히 하고자 했다. 허나 아쉽게도 성난 폭풍우처럼 밀려오는 미증유의 거력은 동천이 쌓아놓은 둑들을 아주 가볍게 허물어버린 뒤 유유자적하게 몸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그것은 이제껏 편하게 살아온 동천이 겪어보지 못한 생살을 후비고 찢어발기는 듯한 고통이었다.

‘끄어억! 아이고, 동천 죽네! 누가 좀 살려줘! 으악! 악! 제, 젠장!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이렇게……. 아악! 차라리 편하게 죽여줘! 제발 편하게 죽여달라고 씨팔아!’

나름대로 버텨보고자 노력했으나 그것은 잠깐이었다. 이 고통만 없애준다면 차라리 그냥 죽어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동천에겐 차마 감당 못할 고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던 동천이 저항을 멈추고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찰나, 실로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파아아아아!

익숙한 듯 하지만 전혀 생소하기까지 한 차가운 기운이 그의 가슴을 헤집고 다니는 파괴적인 기운에 파고들더니 서서히 밀어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연히 기회라고 생각한 동천은 처음엔 영문을 몰라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차가운 기운과 함께 파괴적인 기운을 급히 몰아내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자 효과가 있었던지 파괴적인 기운이 서서히 주춤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으으! 조금은 살 것 같네. 그런데 이 다른 기운은 어디에서 들어오는 거지?’

허리띠 쪽은 절대로 아니었기에 파괴적인 기운을 몰아내는데 집중하면서도 자신을 도와주는 또 다른 기운의 출처를 따라가 보기 시작한 동천은 마침내 진실의 문 앞에 서자 이내 화들짝 놀랐다. 그 기운의 출처는 다름 아닌 화정이였기 때문이다. 평소 털끝만 다쳐도 난리를 치는 큰 주인 때문에 완벽하게 막아내야 한다고 생각한 그녀는 두 신군의 공격을 확인한 후 완전히 방어할 자신이 없자 미련 없이 등을 돌리고 동천을 끌어안은 상태였다. 당연히 그녀는 모든 공격을 등뒤로 받아내어 명령을 완수한 셈이 되었지만 현실은 좀처럼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는 찰나에 남은 여파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큰 주인에게까지 몰아쳤던 것이다. 당황한 그녀는 큰 주인이 고통에 몸부림치자 어쩔 줄을 몰라했고 동천은 보지 못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울상 그 자체였다. 연주신군들에게 당한 고통의 몸부림이 아닌, 주인을 눈앞에 두고도 구해주지 못함에 괴로워하는 나약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옛말에 이르기를 뜻이 지극하면 길이 보인다고 했던가? 임기응변이 약했던 화정이가 어떻게 생각해냈는지 자신이 회복하는데 사용해야할 기운들을 동천에게로 아낌없이 쏟아 부어주기 시작했다. 효과는 앞서 동천이 겪었던 것처럼 바로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제야 그녀는 활짝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화정이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던 동천은 그녀가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아, 젠장. 괜히 눈물나오려고 그러네.’

동천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화정이의 행동이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는지를 잘 알 수 있었다. 아무리 강시라 한들 한계 이상의 충격이 전해지면 회복을 위해 몸 안에 내재된 기운을 손상된 곳으로 이동시켜야만 했는데, 그것을 주인인 자신에게 전부 흘려주고 있었으니 죽음을 도외시 한 맹목적인 충성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코끝이 찡해진 동천은 서둘러 파괴적인 기운을 몰아낸 뒤 화정이에게 다시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침투는 막아냈어도 만만치 않게 저항하는 기운에 이를 악물기 시작한 동천은 뜻하지 않게 신경이 분산되기 시작하자 당황하여 서둘러 정신을 한 곳으로 집중시켰다.

‘어? 이게 왜 이러지? 이상하게 정신을 집중할 수 없네? 어어?’

동천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집중해 보고자 했지만 뒷골이 간질간질 하는 것이 당최 온전히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다. 아울러 귀에서까지 왱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그것은 얼핏 사람의 목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동천은 자신이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 울림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그것은 마치 동천의 귀 기울임을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화답했다.

‘회전? 아! 회전!’

“이렇게 멍청할 데가!” 라며, 동천은 자신의 무릎을 탁 쳤다. 물론, 생각으로만 이루어진 움직임이었다. 무턱대고 몰아낼 생각만 하다보니 시야가 좁아져 회전의 묘리를 간과했던 것이다. 동천은 그것을 깨닫는 즉시 둑으로 쌓아두었던 자신의 내공과 화정이의 기운을 합쳐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이동하기 시작했고, 오직 뚫고자 하던 파괴의 기운들은 처음엔 반항하는가 싶더니 이내 견디지 못하고 휩쓸리며 원을 따라 이동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듯 파괴의 기운이 지나가는 자리는 칼로 도려내는 듯한 심한 고통이 찾아왔지만 화정이의 헌신 앞에 일종의 오기가 생긴 그는 그답지 않게 잘 참아내며 그 기운들을 바깥으로 인도했다. 이렇듯 이제까지 설명은 길었지만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던 동천의 위기는 악다구니를 쓴 것이 허무할 정도로 쉽게 끝을 맺었다. 그의 살가죽을 타고 지나간 파괴의 기운이 갈곳이 없자 애꿎은 등뒤의 벽만 때렸던 것이다.

꽈광! 쩌저저적!

단단하고 두꺼운 구조로 되어 있을 것 같았던 벽면이 고통을 호소하듯 굉음을 터트렸다. 아울러 그 벽면은 거센 충격이 몰아치자 거미줄이 완성되듯 움푹 파이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

고요한 침묵 속에 모든 것이 정지된 듯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는 강소홍의 채찍을 맨손으로 잡아낸 연주신군조차 그곳에 시선을 집중했으며 채찍을 봉쇄 당한 강소홍도 화정이 쪽을 바라보았다.

쩌저저저저!

다시금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퍽!’ 하는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 제 성질에 못 이겨 맨주먹으로 벽을 때리는 소리와 아주 흡사한 소리였다. 그리곤 하늘이 무너지듯 금이 간 벽면이 와르르 무너졌다.

“앗? 안 돼!”

무너진 벽 뒤로는 어둠보다 더 검고 거칠기 짝이 없는 공간이 탐욕스럽게 아가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벽의 일부분만 무너지고 말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은 깊이가 어떻게 되는지조차 알 수 없는 구멍이 약소전주와 강시를 집어삼키자 화들짝 놀랐다. 이것은 두 신군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으로서 얼떨떨함에 멀뚱히 서 있기만 하던 연주신군은 강소홍의 안타까운 외침과 함께 채찍을 잡고 있던 손이 팽팽해지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곤 흡자결(吸字訣)을 이용하여 채찍을 잡아당겼다. 이와는 반대로 채찍이 봉쇄된 상태임을 망각하고 구멍 속으로 떨어지는 이들을 구하고자 채찍을 잡아 당겼던 강소홍은 되려 자신이 딸려 나가감에 그제야 잊고 있었던 사실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감히!”

줄다리기 싸움으로는 절대 승리할 수 없다고 생각한 강소홍은 분하지만 무기를 포기하고자 손을 놓았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녀의 손은 손잡이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그것은 마치 아교를 칠해놓은 듯한 끈끈함이었다.

‘아차, 당했구나!’

흡자결에 생각이 미친 그녀는 상대가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고수임을 깨닫고 창백하게 질렸다. 보통, 검과 도 등의 비교적 짧은 무기들에 흡자결을 일으켜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하는 고수들은 종종 있었지만 채찍처럼 긴 무기에까지 흡자결을 적용시킬 수 있는 고수는 상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안되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격장지계를 사용했다.

“비겁하군요!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가지고 놀면 재미있나요? 그렇게……! 아앗?”

연주신군은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더 들어줄 필요가 없다는 듯 팔을 크게 휘저어 그녀의 신형을 붕 띄웠다. 상대해야할 자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는 속전속결이 최상이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는 처치하기도 쉽게 먼저 해치운 녀석들이 외롭지 않도록 그곳을 향해 강소홍을 내던졌는데, 연주신군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는 표정을 떠올렸다. 사실 그는 더 이상 흡자결을 지속시킬 능력이 없었었던 것이다.

“아아아아악!”

어둠의 소용돌이에 빨려들 듯 허공 중에서 한없이 추락하기 시작한 강소홍은 원초적인 두려움에 비명을 내질렀고, 그녀가 어둠의 저 건너편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은 당연히 여기저기에서 안타까운 외침들을 터트렸다.

“안 돼에에! 소홍!”

“이, 이럴 수가! 소문주님!”

기겁을 한 냉현을 비롯하여 숭의겸과 몇몇 만독문도들이 눈에 불을 켜고 신형을 움직이자 어쩔 수 없었던 흑혈이살도 따라 움직였다. 그제야 멈추어졌던 시간이 다시금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노노오옴!”

극도로 분노한 혈각주가 전신이 붉어질 정도로 혈광(血光)을 토해내며 연주신군을 공격해 들어갔다. 그는 어처구니없이 구멍으로 빨려 들어간 강소홍의 죽음이 안타까워 진노한 것이 아니라, 평소에 형제처럼 절친했던 약전주의 제자를 잃은 슬픔에 노여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요림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죽일 놈들! 본녀가 처참히 죽여줄 테다!”

콰우우우우!

거대한 기운이 그들의 전신을 감싸며 두 신군에게로 몰아쳤다. 심각하게 안색을 굳힌 두 신군은 양쪽에서 밀려오는 공격에 결심한 듯 단전의 바로 위에 심어 놓은 물질을 자극하여 퍽 터트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들의 내공이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는데, 이는 평소엔 내공과 섞이지 않지만 자극하여 터트렸을 시 내공과 합쳐지며 일순간 2배 이상의 힘을 격발시킬 수 있는 회천수액(回天水液)이란 물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액 제조의 막대한 비용과 함께 상당히 까다로운 시술. 그리고 극히 소량 밖에 생성되지 않는 수액의 양으로 인하여 오대신군들 중에서도 아직 서열 3위까지 밖에 시술되지 않은 비전의 한 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여타의 단환, 또는 사악한 심법들이 잠력을 끌어올리게 강요한 뒤 폐인이 되다시피 만드는 것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는 것일까? 당연히 있었다. 이 회천수액은 일정 시간이(1각 소요) 지나면 내공이 모두 소진되는 것까진 똑같지만 일단 발동이 걸리면 폐인이 되게끔 만드는 물건들과는 다르게 죽지 않고 몸을 사린 뒤 하루만 요양하게 된다면 별다른 피해 없이 정상 운행이 가능하다는 다소 사기적인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궁지에 몰린 두 신군은 서슴없이 그것을 발동시켰던 것이다.

“푸흐흐흐.”

“좋구려. 우리 한번 거나하게 놀아 봅시다.”

“개새끼들! 죽여! 저 개새끼들을 쳐죽이란 말야! 끄아아아! 감히 그녀를 해치다니! 이건 약속이 틀리잖아! 빠드득, 뼈를 갈아 마실 늙은이 같으니라고! 크아악! 죽여! 죽여버려!”

남들이 보면 실성한 듯이 멍하니 서 있는 그들을 향해 냉현의 광기 어린 고함소리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광분하여 이성마저 잃어버린 냉현은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른 채 맹목적인 복수심에 불타오른 모습이었고, 말려야할 흑혈이살조차 명을 받들어 돌격하는 상황이었기에 그를 말리고자 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곧 그의 악에 받친 고함 소리는 어둠 속으로 스러져야만 했다. 바로 두 신군의 가공할 신위에 압도되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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