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710화
덜컹!
관 뚜껑은 의외로 쉽게 떨어졌다. 잠시 떨리는 눈동자를 보인 동천은 무엇인가에 반항을 하려는 듯 기이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정신을 끌어 모았지만 바로 그 순간, 마치 지금의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듯 관 속의 여인에게서 기이한 기운이 흘러나와 동천의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끅? 꺼어억? 컥컥컥!”
심장이 턱 막히고 꼬챙이로 후벼파는 듯한 고통에 가슴을 움켜쥔 동천은 한참을 견디다 못해 찰나간 정신의 끈을 놓쳐버렸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은 상대가 다시금 지배권을 회복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가벼운 심호흡 후 어느새 무표정함을 회복한 그는 지체 없이 여인의 머리 위에 자신의 왼손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여인의 눈이 번쩍 뜨여졌으며, 흰자위 없이 온통 검푸른 색으로 가득 찬 그녀의 눈동자는 잔잔한 호수가 물결치듯 소리 없이 일렁였다. 일견 소름끼치도록 무섭고 섬뜩한 모습이었지만 그것을 인지해야할 동천은 이미 눈이 풀린 상태였고, 풀린 눈과는 대조적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는 그의 얼굴 표정은 절로 기괴한 인상이 되어 여인의 섬뜩함과 호흡을 맞추었다.
우웅-우웅우웅! 우우웅!
바로 그때 기묘한 울림이 여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울림의 파장은 소리가 유형화되듯 그녀의 전신을 부드럽게 감싸기 시작하더니 이내 검푸른 안개가 되어 곧게 뻗은 그녀의 미간을 향해 뭉치듯 빠르게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곳을 동천의 손이 가리고 있자 그 주위를 맴돌 듯 운무가 뭉치기 시작했고, 마치 똬리를 튼 뱀이 수중의 먹이를 감상하듯 혀를 날름거리며 빙글빙글 돌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갑자기 기세를 돌변한 배고픈 포식자는 빠른 속도로 동천의 팔을 타고 올라가 매끄럽게 이어지는 그의 어깨를 지나 미간을 향하여 폭풍처럼 밀려 들어갔다. 그것은 거칠고 파괴적인 힘이었으며 항거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때를 맞춰 그의 허리띠가 한줄기 청명한 기운을 흘려 보냈지만 하단전에서 중단전을 지나 상단전으로 치솟아 오르던 운석의 기운은 파괴적인 흐름에 가로 막혀 물살에 휩쓸리듯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스스스스, 쩍. 쩌적!
동천에게 파고드는 검푸른 운무가 많아질수록 여인의 육체는 점점 노쇠하기 시작하더니 종래에는 말라죽은 고목처럼 피부가 갈라지고 쭈글쭈글해졌다. 그리곤 언제 여인이 누워있었냐는 듯 먼지가 되어 수정관 내에서 흩날렸다. 마침내 여인의 모든 기운이 동천에게로 흘러 들어간 까닭이다.
“끄으으으윽!”
털썩!
갑자기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동천은 괴로운 듯 바닥을 구르기도 하고, 벽에 머리를 부딪혀 보기도 했으며, 자지러지듯 비명을 지르기까지 하면서 고통을 분산시켜 보고자 갖은 애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무 소용이 없는지 눈이 까뒤집어진 동천은 안쓰러울 정도로 몸을 푸들거리며 입가에 허연 거품을 물고 바닥에 쓰러졌다. 동천의 상태는 저러다 죽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각해 보였지만 어느 순간 그의 몸이 붕 떠오르기 시작하더니 허공 중에서 천천히 가부좌를 틀기 시작했다.
콰우우우우!
순간 어둠보다 더 어둡고 암청색보다 진한 검푸른 기운이 동천의 전신에서 터져 나왔다. 석실은 순식간에 또 다른 공간으로 물들기 시작했으며 이 작은 공간에서만큼은 세상이 온통 검푸른색일 따름이었다. 그 중심에서 끊임없이 세상을 물들여가던 그는 주변의 기운들을 움직여 회오리치듯 석실의 내부를 몰아치기 시작했다. 우르릉, 소리와 함께 작은 돌 조각들이 사방으로 튕기며 휘돌았고 그럴수록 내부의 검푸른 기운은 거세져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끝이 없을 것 같았던 폭풍의 기세는 1각을 기점으로 천천히 수그러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조용히 바닥을 향해 내려앉은 그의 눈은 소리 없이 뜨여졌다.
번쩍!
마치 검은 태양이 작렬하듯 이글거리는 어두운 눈동자였다. 또한, 여인에게서 나타났던 검푸른 일렁임과 똑같은 눈동자였다. 출렁이듯 물결치던 동천의 눈동자는 차츰 자리를 잡아가는지, 흡수되듯 눈동자 안으로 빨려 들어가며 본래의 눈빛을 되찾았다.
“호오!”
감회가 서린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들여다 본 그는 주먹을 불끈 쥐어보기도 하고 권이나 장을 내질러 보기도 했으며 가볍게 뜀뛰기 후 내력을 일으켜 보기도 하였다. 그는 곧 감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단해! 대법이 성공하자마자 4할이나 공명이 이루어지다니! 역시, 후대에 귀의신공을 전수한 보람이 있었어! 오호호호호!”
흥분한 그는 광소(狂笑)하듯 여인의 어투로 마음껏 웃어 제켰으며 한동안 그 웃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하지만 그는 허리띠가 나직이 울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 뚝 웃음을 멈추었다.
“네가 방해하리라는 것은 천기를 통하여 이미 살펴본 상태였다. 덕분에 이 몸에 사용되어야 할 내 능력의 2할이 다른 곳에 소모되어 애를 좀 먹었지. 호호, 이렇게 직접 대하고 보니 실로 특이한 존재로구나. 허나, 어차피 나에게 있어 내공이란 필요가 없는 것. 아쉽지만 훗날에 다른 기생자를 찾도록 하여라.”
동천은, 아니 그는 미련 없이 허리띠를 풀러 수정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운석은 미세한 떨림을 계속 이어가는 듯 하다가 잠시 후 조용해졌다. 그는 기분 좋게 미소한 후 다시 가부좌를 틀었다.
“공명이 완전해 질수록 상대의 기억을 더 많이 흡수할 수 있는데, 처음에 너무 많은 기억을 흡수해서 머리가 완전히 뒤죽박죽이구나. 이건 시간이 지나면 차차 나아질 것이니 상관없지만 상단전을 먼저 완전히 뚫어 놓고 내공을 전부 정신력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래야 이 몸을 내 뜻대로 활용할 수 있을 테니까.”
이미 다른 몸으로 2번이나 같은 길을 갔던 그였다. 3번이라고 쉽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의 몸은 확실히 달랐다. 지금의 몸은 그의 심법 중 전반부를 익히고 있는 몸이었던 것이다. 일단 결심을 굳힌 그는 지체 없이 운공에 들어갔으며 귀의흡수신공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가 일으킨 귀의흡수신공은 동천보다 훨씬 능숙하게 사용되고 있었는데, 그의 운용 방법은 역천의 실력까지도 훨씬 웃도는 그 이상의 경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우웅!
“…….”
운공의 삼매경이 빠져버린 사내. 그의 이름은 소비양. 천사(天邪) 소비양(素飛瀁)이었다.
“으응!”
그녀는 꿈을 꾸고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그녀는 아팠고 부모님들은 그녀를 극진하게 보살펴주었다. 하지만 병명도 모른 채 세월이 흐르자 좋다는 약들을 다 써봤던 탓에 약값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외지의 작은 집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죽음을 예감했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순간 괴한들이 들이닥쳐 부모님들 살해하고 자신을 어디론가 끌고 가 버렸다. 비통함. 슬픔. 좌절. 분노. 복수! 그녀는 절대로 정신을 잃을 수 없었다. 정신을 잃는다면 바로 죽음이 찾아오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부모님의 원수를 갚기 전에는 절대로 죽을 수 없었고, 그래서 끝없는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끊임없이 깨어났다. 원수들은 그렇게 깨어날 때마다 당황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더더욱 포기할 수 없는 법. 그녀는 깨어나고 또 깨어났다. 그러던 어느 순간 전혀 생소한 곳에서 그녀는 깨어나게 되었다. 그녀는 착한(?) 소년과 귀여운 소녀와 함께 지내게 되었으며 그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들이 길어져만 갈수록 예전에 느꼈던 분노와 복수가 차츰씩 희석이 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아아, 좋았다. 너무도 좋았다. 그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들이 너무도 즐겁고 행복했다. 그러던 문뜩 그녀는 생각했다.
‘나는 누구지? 내 이름은 뭐였지?’
찌잉―!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다. 그녀는 굳이 알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한번 떠오른 궁금증은 끝이 없는 나락으로 밀려 떨어지듯 오로지 앞을 향해서만 전진했다. 그럴수록 그녀의 머리는 점점 더 아파졌고 그 틈새로 희미하지만 아련한 단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서, 설화……. 은…, 은설화(誾雪花). 아아! 은설화!’
꽈꽈꽈꽝!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것은 머리가 터져 나가고 온 몸이 부서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강력한 폭발이었다.
“꺄아악!”
그녀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두 눈을 부릅떴지만 그것은 충격의 반작용이었을 따름이었고 이미 정신은 놓쳐버린 상황이었다. 그렇게 끝이 난 그녀의 꿈……. 우연인지 몰라도 그녀가 꿈에서 자신의 이름을 생각해낸 순간은 동천이 천사에게 잠식된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슷.
실신한 상태로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쓰러진 그녀의 머리맡에서 작은 파동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검은 인영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동천의 몸을 소유한 천사였다.
“으음! 떨어진 사람들이 더 있었는가?”
그가 천기로 살펴본 부분은 극히 짧은 순간들의 연속일 뿐이어서 아무리 그라 할지라도 본 것 이외의 과거와 미래는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소비양은 강소홍과 화정이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의 몸과 비슷하게 흘러 들어온 것 같은데 무슨 관계인지는 잘 모르겠군.”
원래의 몸이 이들과 척을 진 관계만 아니라면 가능한 살리는 것이 좋았다. 아직은 무슨 관계인지도 모른다는 게 문제이긴 했지만 공명이 완전해 질수록 본 주인의 기억이 뚜렷해지고 성향까지 어느 정도 반영되었기 때문이었다. 천사의 입장에서는 타인이 되는 사람들도 본 주인이 살아 생전 가까웠던 사람이라면 전혀 남 같이 느껴지지 않게 되는 것이니, 즉! 본 주인의 혈육을 대하게 되면 공명이 완전해 질수록 혈육과 같은 끈끈한 유대감을 지니게 되고 사랑하는 사이였다면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부작용 아닌 부작용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기억이 일부분만 살아난 데다 뒤엉킨 부분이 많아서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낯설지 않게 보이는 것을 보니 모르는 사람은 아닌 것 같구나. 마음 같아서는 별로 상관하고 싶지 않지만 훗날에 기억을 완전히 흡수했을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응? 화정이? 동화정?’
섬광처럼 스치는 기억이 눈앞에 쓰러진 여인의 이름을 떠올리게 했다. 더 자세한 정보는 알 수 없었지만 친근한 느낌이 가슴 진하게 밀려오는 것 같았다. 더더욱 그냥 둘 수 없게 된 그는 그녀를 한쪽 어깨에 들쳐 메고 강소홍에게 다가갔다. 그녀 또한 잠시 생각해 본 후 다른 쪽 어깨에 들쳐 메었는데, 강소홍의 경우는 전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느낌이 나쁘지 않았기에 같이 옮겨 놓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스윽, 소리와 함께 보물창고로 움직인 그는 가볍게 신형을 띄워 올라 세 군데의 통로 중 좌측의 통로로 미끄러지듯 걸어갔다. 분명히 걷는 모양이었지만 놀랍게도 그는 한 걸음에 서너 장씩 쭉쭉 앞으로 나아갔으며,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마치 주위가 밀리는 듯한 착시 현상처럼도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그는 금세 막다른 곳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고 이곳은 중앙 통로와는 달리 석문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긍! 드드드드득.
양손으로 밀 수 있게 만든 좌우의 석문들은 실로 몇 백 년만의 작동인지라 뻑뻑하게 밀리며 굉음을 토해냈다. 안으로 들어가 염파(念波)로 횃불의 불을 붙이자 사방이 환해졌다. 겉의 기름들은 이미 다 증발한 후였지만 횃불 속에 주입된 작은 구슬에 기름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깨트리자 속에서부터 활활 타올랐던 것이다. 이는 앞서의 보물창고와 중앙 통로의 밀실의 경우도 그랬지만 이곳과 그곳들에 한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이곳은 소비양이 직접 염파를 보내서 불은 붙인 것이고, 다른 곳들은 미리 염파를 주입해 놨다가 공기가 유입되면 저절로 발동하게끔 만들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염파가 수백 년이 지났음에도 제대로 작동을 했으니 그가 살아 생전에 얼마나 대단한 존재였는지를 새삼스레 느낄 수 있는 단적이 예라고 할까? 여하튼 각설하고, 그는 마치 그녀들과 대화를 하는 듯 혼잣말로 말했다.
“아직은 같이 데려갈 능력이 없구나. 잠시 바깥 상황을 지켜본 후 다시 돌아올 터이니 그때 함께 나가도록 하자.”
말을 마친 뒤 그녀들을 만년온옥(萬年溫玉) 위에 내려놓은 소비양은 석실 안을 주욱 둘러보았다. 원체 꾸미기를 싫어하는 성격 탓에 내부는 밋밋하기 그지없었으나, 그나마 만년온옥이 장인의 손길을 탔는지 머리맡에서 시작된 용과 봉이 얽혀 있는 모습은 부리부리한 눈과 날카로운 부리가 생동감 있게 조화되어 좌로는 용의 동체가 힘차게 뻗어 이어졌고 우로는 봉황의 날개깃털이 길게 이어져 내려오며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냈다. 이 만년온옥은 끊임없이 따듯한 기운을 뿜어내고 내공의 운용을 가볍게 해주며 내공증진의 효과와 더불어 범인이 평생을 같이 하면 무병장수를 할 수 있다고 전해지는 기물인 만큼, 소비양은 추운 동공 안에서 지내게 하는 것보다 이곳에서 지내게 하는 것이 100배는 더 나은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제 가봐야겠구나. 지금이 아니면……, 기회를 놓칠 테니까.”
스스슷.
뜻 모를 중얼거림을 남긴 천사 소비양은 안개가 흩어지듯 홀연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흑흑흑!”
“…….”
“흑흑흑흑!”
꿈틀!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처연한 울음소리가 강소홍의 귓가를 자극시켰다. 정신을 차리며 자신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린 그녀는 일어나려고 힘을 주는 순간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충격에 한껏 몸을 경직시켰다.
“으윽!”
그러자 거짓말처럼 흐느끼던 소리가 뚝 끊겨버렸다. 그녀는 당장의 아픔보다 끊겨버린 울음소리에 더 신경이 쓰였는지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겁먹은 눈망울로 자신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화정이가 보였다.
“화정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그리고 여기는 어디지?”
화정이는 톡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을 왈칵 쏟아낼 것만 같은 모습으로 대꾸했다.
“저, 저를 아세요? 그리고……, 흑! 화, 화정이가 누구죠?”
“뭐어? 너 설마!”
딱딱하게 굳어진 강소홍은 화정이의 달라진 태도와 분위기에서 바로 눈치를 챘는지 심각해진 눈초리로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도 강시를 수하로 거느리면서 많은 지식을 습득했기에 제련이 깨진 강시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가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강시의 제련이 깨어지면 미치거나 그 자리에서 죽거나 실혼인이 되어 버리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러나 아주 가끔 정말로 천운이 따라 제 정신이 돌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본문에서도 강시를 제련하면서 딱 1번만 존재했을 따름이다. 혹시, 이 아이는 미쳐서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것이 아닐까?’
미치는 것도 2가지로 분류가 되었기 때문에 강소홍은 지극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는 제련이 깨지면서부터 미쳐버려 광란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정신인 듯 하다가 돌연 미치기를 반복하는 정신질환성 광기를 보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화정이가 후자에 속한 듯 보였으니 긴장을 멈출 수 없는 그녀로서는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화정아. 장난치는 거지? 넌 화정이잖아. 약소전주님의 강시. 생각 안나?”
강소홍은 대화를 이끌어나가면서도 천천히 신형을 뒤로 물렸다. 온 몸이 빠개질 듯 아파 왔지만 고통은 이성을 앞지르지 못했다. 어차피 뒤쪽이 벽으로 막혀 있어 부질없는 짓이긴 했지만 말이다. 여하튼, 화정이는 전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계속 울먹이기만 했다.
“흑흑! 저, 저는 화정이가 아니에요. 저는 은설화예요. 여, 여기는 어디죠? 아직도 그 자들이 있는 곳인가요? 네? 흑흑흑!”
언뜻 봐서는 횡설수설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그녀의 태도로 봐서는 미쳐 있다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미친 것 치고는 너무도 또렷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혔던 것이다. 그래서 강소홍은 그녀에게 여러 가지 질문들을 해봤고, 자신을 은설화라고 말한 화정이는 차츰 울먹임을 줄여가며 차근차근 상대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다. 아울러 그녀는 대답을 해주는 와중에 자신이 겪었던 상황이 선명하게 떠오르는지 입을 앙 다물며 분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순간 강소홍은 그녀가 정신을 놓쳐버리는 것은 아닐까 긴장했지만 다행히 그녀는 처연한 눈빛을 보이며 한숨을 내쉴 따름이었다.
내심 한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한 강소홍은 갑자기 무언가 빠진 듯한 느낌을 받았고 순간 아차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천! 아, 아니, 약소전주는?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이곳에 있게 된 거죠?”
먼저 깨어난 것이 그녀였으니 물어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기껏해야 조금 일찍 깨어난 그녀가 전후 사정을 알고 있을 턱이 만무할 터. 강소홍은 그녀에게서 전혀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하여, 고개를 내젓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참지 못하고 ‘윽!’ 하는 신음소리를 흘렸지만 부축해주려는 은설화에게 괜찮다고 말한 뒤 심호흡을 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처음에는 온몸이 부서질 것만 같아 운기요상을 해야하는 게 아닐까 싶었으나 다행히도 근육통 이상의 진전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기절한 상황에서 동천과 함께 운기요상을 했으리라고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하리라.
“우선 그를 찾아보기로 해요. 어쩌면 그가 먼저 깨어나 이곳을 찾고 우리를 안전하게 눕혀준 것일 수도 있으니까.”
어느새 눈물을 멈춘 은설화의 얼굴은 아직도 혼란스러움이 내재된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기억에도 없는 강시 생활을 했다는 것도 모자라 한술 더 떠 그 주인님을 만나러 가자는 것이었으니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었다.
“네, 저야 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전적으로 강소홍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납치되기 전의 그녀는 죽는 날만을 바라보며 병상에 누워있기를 십 수년이었던 만큼, 매사에 소극적이었고 세상물정까지도 어두워 그녀 스스로가 강소홍에게 기대고자 했던 것이다.
“좋아요. 내 뒤를 꼭 따라와요.”
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주억거린 강소홍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