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711화
운명은 거스를 수 없는 법이다.
“어떻게 되었는가.”
“연합세력의 2차 후발대가 이곳까지 오려면 아직 시간적인 여유가 있습니다.”
복면을 한 사내들 중 1명이 상관에게 보고를 마쳤다. 고개를 끄덕인 상관은 다소 긴장한 대원들에게 휴식을 취하라고 명령한 뒤 말했다.
“간혹, 정파의 인물들도 섞여서 올 것이다. 가능한 살 길을 열어주도록.”
그러자 다들 당연하다는 말들로 대꾸를 해주었다. 비록 자신들의 소속 문파를 위해서 함정을 팠다지만 같은 정파로서 상대를 공격할 수 없었고, 훗날 마도를 억누르려면 꼭 필요한 동지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살 길을 마련해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쪽으로 오는 자들은 대충 어떻게 구성이 되었다고 하던가.”
상관이 이어서 물어보자 바로 옆에서 휴식을 취하던 복면인이 대답했다. 그가 바로 상부의 명령을 주고 받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1차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각자 문파들의 고유 표식을 읽고 선발대가 갔던 통로로 움직였으나 암흑마교와 무림맹이 선발대와는 다르게 반대쪽 통로로 움직이는 바람에 우리가 맡게 될 자들은 당문과 남해군도. 그리고 암흑마교와 무림맹의 고수들입니다.”
“으음! 1차는 그래도 쉽게 걸러냈는데 2차는 암흑마교가 섞여 있어 쉽지가 않겠군.”
당문과 남해군도는 정파도 아니고 마파도 아닌 중립적인 성격이 강했지만 만약에 정사대전이라도 일어난다면 그래도 정파에 합류할 문파들이 분명했다. 하여, 비교적 쉽게 걸러낸 그들은 반대편 통로로 쫓기듯 내몰린 상황이었고 그들을 뱉어낸 통로는 굳게 닫혀버린 지 오래였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에 그들이 맡게 될 후발대에 암흑마교가 섞여있다는 것으로서 솎아내는 데 많은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중이었다. 암흑마교가 마도의 무리라서 정파들과는 따로 행동하려고 하겠지만 운이 나쁘면 같이 행동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난 상관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이것 참. 서로들 제 잘났다고 독불장군처럼 움직이기를 바래야겠군.”
분위기가 가라앉는다고 생각했는지 수하 중 한 명이 좋은 쪽으로 이야기를 했다.
“무림맹과 암흑마교는 극과 극이니 틀림없이 따로따로 움직이려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상관은 대답했다.
“그 부분은 나도 예측한 바이다. 문제는 당문과 남해군도가 암흑마교와 딱히 으르렁거리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이야. 그들의 사이를 떼어놓는 것이 우선과제인데 잘 하면 우리 조에서…….”
최초로 사망자가 나올 것 같다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조원들의 사기를 생각했는지 그는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다들 눈치가 빨라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것 같았다. 머쓱해진 상관은 화제를 돌리고자 했고, 그 순간 멀리에서 사람이 걷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저벅저벅.
“응? 누가 또 오기로 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척. 처척!
상관이 의문을 채 끝내기도 전에 재빨리 일어선 복면인들은 제각각 무기에 손을 가져다 댔다. 적이 관문을 통과했다는 보고도 듣지 못한 상황이어서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들은 정예였고 또 그만큼의 실력자들이었다. 그들은 너무 긴장하여 몸이 뻣뻣해지지 않을 정도로만 근육을 수축시키며 의문의 상대를 기다렸다.
“거기 누구이시오.”
내력을 북돋아 중저음의 목소리로 묻자 걸음 소리가 잠깐 멈추었다. 그러나 곧 상대는 다시금 움직였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일정한 보폭이었다.
저벅저벅.
“으음, 더 이상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면 무력을 감행하겠소!”
효과가 있었는지 마침내 상대편에서 응답이 들려왔다.
“본좌는 너희들의 적이 아니다. 다만 사람을 찾고 있을 뿐이다.”
앳된 목소리였다. 또한 사내임이 분명한데 듣기에 거북한 여인의 말투까지 섞여 있었다. 헌데, 스스로를 본좌라니? 복면인들과 상관인 사내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곳까지 은밀히 스며들었다는 점과 전대의 고수일지도 모른다는 추측 때문에 그들은 함부로 나서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허면, 신분을 밝혀주시지요.”
그로서는 침착한 대응이고 당연한 절차였지만 상대로서는 곤란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는지 잠시 침묵을 고수했다. 그는 언제 다가왔는지도 모르게 그들의 앞에 다가와 그 모습을 드러내며 물었다.
“혹시, 나를 아느냐?”
“소년?”
“농담이 재밌구나. 그런 것말고 이 몸의 신분을 알겠느냐는 것이다.”
농담일 리가 없었다. 그는 단순히 상대가 소년이자 놀람을 표한 것이었고 상대는 그것을 잘못 이해했을 따름이니까. 그때 복면인들 중 하나가 상관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제가 누구인지 압니다. 암흑마교의 약왕전 소전주입니다.”
순간 복면인의 상관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무엇이?”
그는 곧 약왕전의 소전주. 즉, 현재 동천의 몸을 지배 중인 천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놈! 어떻게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냐!”
소비양은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린 녀석이 말이 거칠구나.”
“허어! 성격이 악랄하다고 하던데,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과히 틀린 말은 아니로구나! 16조는 들으라! 저 사악한 녀석을 당장에 쳐죽여라!”
“존명!”
16조의 인원은 20명에 달했다. 그들 모두는 힘차게 대답했지만 실상 속으로는 ‘전부 나설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들을 했다. 약소전주란 자의 평소 실력도 모르는 상황에서 너무 얕잡아본 것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동료 개개인의 실력을 믿었기에 5명이 한 조를 이루어 약소전주라 여기고 있는 상대를 압박해 들어갔다. 그러나 상대는 동천이 아니라 천사 소비양이었다.
피식.
복면인들은 상대가 얇게 비웃음을 날린다고 생각한 순간 미끄러지듯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약왕전의 절기를 떠올리곤 당황하지 않고 계속 거리를 좁혀들었다. 마침내 목표물에 근접한 그들은 공격을 퍼부었다.
쉬식! 스가각! 스걱!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울리고 피륙이 갈라지는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윽?”
“커허헉?”
“아악!”
공격한 대상은 하나인데 신음소리는 정확히 다섯 번이나 울려 퍼졌다. 믿을 수 없게도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공격했던 것이다.
‘뭐, 뭐지?’
경악할만한 장면에 두 눈을 부릅뜬 복면인들의 상관은 수하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벌인 짓거리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자기들끼리 서로를 베다니? 그것도 적을 눈앞에 두고 지나친 뒤 서로들 공격해 죽다니 말이다. 그는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싶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이제 좀 이해를 했느냐? 너희들은 본좌의 상대가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자아, 본좌도 너희가 공격하지만 않는다면 해칠 생각이 없으니 묻는 말에나 답하거라.”
“사, 사술이다! 모두 쳐라!”
악(惡)과 타협할 수 없었던 그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의 불안을 이겨내고자 서둘러 공격 명령을 내렸다. 애초의 목적이 이곳에 들어온 마도인들의 전멸이었기 때문에 그의 공격 명령은 지극히 타당한 것이기도 하였다. 그는 제일 앞장서 사술을 부리는 어린놈의 목을 땄으며 그래도 죽지 않고 허공에 떠올라 다시 달라붙는 머리를 재차 베어냈다.
“죽어라! 죽어! 으하하, 내가 그런 사술 따위에 겁먹고 꼬리를 말 줄 알았더냐? 천만에! 죽어! 죽어엇!”
이상하게도 그는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끊임없이 힘과 용기가 치솟아 올랐다. 그는 광기에 물든 눈으로 전신에 피칠갑을 한 채 죽여도 죽여도 되살아나는 상대를 베어내고 또 베어냈다. 천사 소비양은 멀찍이 서서 자신의 수하들을 베어 넘기는 복면인을 보며 나직이 혀를 찼다.
“세상에 다시 나오자마자 살인을 하게 되니 기분이 썩 좋지 않구나. 아, 사람은 어찌 이리도 어리석은가.”
문득, 그 범주 안에 자신도 속한다고 생각하니 절로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기어코 자신의 수하들을 전부 베어 넘기고 어깨를 들썩이는 복면인에게 허공을 격한 채 손을 내밀었다. 순간 무기를 떨어트린 복면인은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고는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흘렸다. 소비양은 내밀었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컥? 끄르르륵.”
복면인은 입에서 피를 게워내며 나무토막처럼 쓰러졌다. 미약하게 한숨을 내쉰 소비양은 소모된 정신력을 가늠해 보았다.
‘아직 능력이 모자라 죽은 이의 혼백을 조종할 정도는 못 되는구나. 공명은 4할 이거늘, 흡수한 본신의 능력은 3할에 불과하니…….’
원래 그는 동천의 전 내공을 정신력으로 바꾸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부를 살펴본 뒤 난감함을 금치 못했다. 현재 그의 몸에는 2개의 내공이 존재하고 있는데, 섣불리 균형을 깼다가는 두 내공을 다스리지 못해서 자신의 정신력과 충동할 가능성이 상당히 컸기 때문이었다. 물론 마음만 먹는다면 시간을 두고 천천히 두 내공을 다스려도(정신력으로 흡수해도) 되었지만 천기로 바라본 짧은 토막들 중에서 두 번이나 나타난 사람을 이곳에서 찾아야 했기 때문에 그럴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차선책을 택하여 잠재된 내공만을 뽑아 상단전에 안착시켰다. 동천의 몸 속에 잠재되어 있던 항광의 내공과 여러 가지 영약들의 기운이 하나도 남김 없이 정신력으로 전환된 것이다.
‘공명율이 낮아 고급 기술을 다수 사용할 수 없으니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소모된 정신력의 회복도 더디고. 가능한 더 이상의 분란 없이 서둘러 그자를 찾아봐야겠구나.’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아직 그의 능력은 고수들의 눈을 완벽하게 피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는 얼마 가지 않아 또 다른 매복자들을 만났고, 그들은 소비양 혼자이자 앞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숨는 것보다는 드러내는 쪽을 택했다.
“멈추어라!”
나름대로 기척을 죽이면서 이동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나빠 눈살을 찌푸린 소비양은 곤란하다는 어투로 중얼거렸다.
“으음, 대충 이 정도 거리마다 매복해 있는 것인가?”
그가 여성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하자 매복자들은 모두 복면 속에서 인상을 구겼다. 그러나 제일 선두에 서서 그에게 멈추라고 소리친 사내는 그다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 듯 묻는 말에 답해주었다.
“그렇다. 우리 뒤로 3군데의 매복이 더 마련되어 있다.”
“조장님!”
뒤에 서 있던 복면인들 중 하나가 질책 어린 목소리로 제지하고자 했으나 소비양이나 조장이란 사내나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런가? 그렇다면 다른 곳에 귀를 기울일 필요 없이 본좌가 묻는 말에나 답해다오.”
“그러지.”
“아니? 이 무슨 해괴 망측한 소리십니까!”
다시 그 복면인이 소리치고 나섰으나 소비양은 조장이란 자와 시선을 마주하며 질문에 들어갔다.
“사람을 찾고 있다. 나이는 100세 이하. 겉으로 보기엔 60대로 보일 것이다. 옷은 남루한 회색이고 평범한 인상에 눈매가 약간 가늘다. 허리는 곧게 펴져 있으며 키는 6척에 다다른다. 또한, 검을 쓰고 마른 체구에 잘 손질된 턱수염이 명치까지 내려오도록 기르고 있지. 음, 지금 당장에 떠오르는 것은 그것들 밖에 없구나. 혹시, 그가 누구이며 현재 어디에 있는지를 아느냐?”
조장은 대답했다.
“일단 의심이 가는 자가 몇몇이 있긴 한데, 노인에다 턱수염이 명치까지 내려온다고?”
“그렇다. 확실하다.”
채앵!
어느새 검을 빼든 수하는 갑자기 돌변한 자신의 상관에게 다가가 검을 들이댔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장님, 대놓고 적과 내통을 하시려는 겁니까?”
조장은 여전히 시선을 소비양에게 고정한 채 마치 남 이야기를 하듯 태연하게 말했다.
“적인지 아닌지 자네가 어떻게 아는가. 그리고 어느 앞이라고 함부로 검을 빼드는가.”
“아니. 그, 그건…….”
이들은 우리가 아니면 무조건 적이라는 철저한 교육을 받은 자들이었기에 아무리 상관일지라도 배신의 기미가 보이면 주저 없이 무기를 빼들 수 있는 자들이었다. 헌데, 뜻밖에도 상관이 태연스럽게 대응하자 수하는 주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듣고 보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 소비양이 그에게 말했다.
“본좌는 적이 아니니 너는 그만 들어가 있거라.”
순간 사내는 묘한 울림이 머릿속을 파고든다고 생각했다. 그 즉시 심각한 거부감이 밀려왔지만 그것은 찰나일 따름이었고 이내 당연하다는 듯 수긍하게 되었다.
“음, 그랬구나. 알겠다.”
그가 원래의 자리로 물러나자 동료들이 의혹에 찬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허나 그는 말없이 조장과 소년을 바라보았다. 하는 수 없어진 동료들은 사태의 추이를 계속 지켜보기로 암묵적인 동의를 내렸다. 그러는 사이 조장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백의무검의 일행으로 보이는데, 확신은 할 수 없으나 그런 자가 이쪽 통로로 오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가? 허면, 다음 갈림길에서 비밀통로를 이용해야겠구나. 구조를 다시 바꿔놓지만 않았다면.”
조용히 생각하며 중얼거린 소비양은 이곳의 구조를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이야기했다. 사실 운명에 이끌린 그가 말년에 이곳을 찾았을 때 한바탕 내부를 휘저은 전적이 있었기에 새로 조작한 부분만 아니라면 거의 모든 구조를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이곳이 천마동인 것은 알았으나 직접적인 연관이 없자 쉽게 물러나 준 것이었다. 그 후, 천기를 읽고 최후를 예감한 그는 조용히 이곳을 다시 찾았다. 그리곤 사람들의 눈을 피해 3번째 공명자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곳이 워낙에 은밀한 곳이어서 준비는 쉽게 진행될 수 있었고, 그 어느 누구도 천마동 내에 천사가 똬리를 틀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결과는 이미 드러났듯이 대 만족이었고 말이다. 여하튼, 그는 이만 가보겠다고 말하며 그들의 옆을 유유히 지나쳐 갔다. 복면인들은 상대를 이대로 보내줘야 하는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을 했지만 그들의 조장이 적이 아님을 재차 강조하며 보내주라고 하자 하는 수 없이 길을 터주었다. 그들은 몰랐지만 소비양이 약간의 정신력을 개방하자 의식하지도 못한 채 조장의 의견에 동조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천사 소비양은 나타났을 때처럼 소리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