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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723화


정해진 운명의 만남 2.

톡! 토옥!

“…….”

톡! 꿈틀! 톡! 토독!

“……으윽!”

차가운 무언가가 이마를 계속 때리자 동천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기절한 상태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전신이 부서질 듯한 고통이 엄습해 오는 바람에 깨어난 것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극통에 시달렸다.

“아윽! 으아아, 동천 죽는다. 아이고, 하늘님. 동천 좀 살려요!”

그래도 주둥이는 살았는지 아프다는 소리는 쉴 새 없이 놀려댔다. 그러다 문득 다른 이들의 생사가 궁금해진 그는 온 몸을 바들바들 떨며 상체를 겨우 일으켰다.

‘으윽? 크으으! 감지력 내에는 없네? 후우, 후!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안 돌아가는 고개를 억지로 돌리며 주위를 훑어 본 그는 순간 깜짝 놀랐다. 희미하지만 빛이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어디까지 흘러갔기에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지? 아참,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지름이 족히 수십 장은 되어 보이는 호숫가의 가장자리에서 깨어난 그는 아직도 무릎까지 적시고 있는 물에서 다리를 빼낸 뒤 힘겹게 일어났다. 그의 몸에서는 절로 우두둑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아이고, 이놈의 몸이 주인을 고생시키기로 작정한 모양이로구나. 에고고고!”

이렇게 힘들게 움직일 바에야 운기요상을 취하는 것이 100배 나은 선택이었지만 그 사이에 화정이와 강소홍의 생사가 위급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동천은 어쩔 수 없이 강행군을 펼쳐야만 했다. 다행히 그녀들은 생각보단 가까운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봐요. 거기 괜찮아요?”

아직 다 다가가지 못한 동천이 물었지만 그녀들은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동천으로서도 딱히 대답을 바라고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녀들 중 누구 하나라도 정신이 들었다면 그가 아프다고 난리를 칠 때 진작에 말을 걸어왔을 테니까.

“화정아. 화정아, 괜찮아?”

때마침, 화정이가 더 가까운 곳에 쓰러져 있어서 그녀의 상태를 살피자 숨을 고르게 쉬는 것이 그다지 문제될 것은 없어 보였다. 다만 급류에 휩쓸리며 물을 어찌나 먹어댔는지 그녀의 배는 임신 8개월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작은 동산만 하게 부풀어 있었다.

“에그, 죽지 않을 정도까지 숨을 참으라고 했더니 딱 그 정도까지만 참고 물을 들이켰나 보네? 하여간 얘는 너무 말을 잘 들어서 탈이란 말야?”

미련할 정도로 너무 충실해서 어쩔 땐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만큼 자신이 보상(?)을 해주고 있었기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자신했다.

어쨌든 화정이의 무사함을 기뻐하며 3장 여 정도를 힘겹게 걸어간 그는 엎어져 기절한 강소홍을 제대로 눕힌 뒤 진맥과 간단하게 몸 상태를 점검했다.

‘음, 얘도 생각보다 가슴이 꽤 크네.’

이상한 진단 결과를 씨부렁거린 그는 그녀가 심한 근육 뭉침 현상과 타박상은 있어도 다행히 부러진 곳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내부는 동천의 상태와 전혀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을 것이 자명했다.

어쨌거나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몰라도 고개를 끄덕인 후 잠시 심호흡을 한 동천은 적절한 혈도의 압박으로 그녀를 앉힌 뒤 손을 마주 잡고 운기요상에 들어갔다.

그는 먼저 자신의 내공을 흘려보낸 뒤 굳게 닫혀있는 그녀의 내공을 부드럽게 어루고 달래며 차츰차츰 주도권을 잡아갔다. 효과가 있었던 듯 그녀의 만독혼원공과 동천의 만독혼원공이 물살을 타듯 엮이기 시작했고 동천은 곧 무아지경에 들어섰다.

슈우우우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그들의 몸에서 검푸른 운무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생성된 운무는 당연하다는 듯 그들의 전신을 남김 없이 둘러싸 버렸지만 동공의 내부 자체가 워낙 어두웠기 때문에 구분을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시점에 다다르자 마침내 동천이 운기를 갈무리한 후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푸후! 어이구,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약해진 몸을 추스르기 위해 소주천으로 다친 근육들을 풀어주고 대주천으로 원기를 회복하여 십이주천 후 마무리를 하자 조금만 움직여도 뼈와 근육이 으스러질 것 같았던 동천은 자신의 몸이 한결 가벼워진 듯한 느낌에 내심 안도했다.

비록, 연주신군의 무공에 대항하느라 심하게 손상된 가슴 쪽은 아직 몇 번의 운기요상을 더 필요로 하고 있었지만 거동하는 데에는 그다지 불편함이 없을 정도였다.

“아, 끈적인다. 우선 몸 좀 씻고 움직여 봐야겠네?”

몸 속에 침투한 나쁜 기운들을 몰아내느라 땀으로 전신을 목욕한 동천은 강소홍 쪽을 잠깐 쳐다본 뒤 입맛을 다셨다.

그녀 또한 땀으로 후줄근하게 젖어 있는 상태여서 생각 같아서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녀의 전신을 물에 담가주거나 씻겨주고 싶었지만 도중에 그녀가 깨어나 일이 꼬이기라도 하는 날이면 변태에다 색마로까지 몰릴 수도 있는지라 그저 참아야만 했던 것이다.

‘쩝……. 내공을 공유할 때 역시나 기분이 엄청나게 좋았는데 그 이상을 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구나. 으음! 어차피 소홍이는 내 여자로 내정이 되어있는 상태니까 그냥 확 덮쳐버릴까?’

마음이 크게 동한 동천은 슬쩍 그녀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는 곧 지가 무슨 대협이라도 되는 양 고개를 45도 각도로 쳐들고 아련한 눈빛으로 뒷짐을 지며 생각했다.

‘아니야. 사람은 모름지기 강제로 일을 벌려서는 안 되는 것이야. 그 실례로 미미년이 그렇게 하기 싫다는 심부름을 시켰을 때 그 당시에 이 몸이 얼마나 이를 갈았던가. 아! 나는 하마터면 욕망에 이끌려 크나큰 실수를 할 뻔했구나!’

뭔가 이상한 비교 후의 결론이었지만 자기가 그렇다는데 그 누가 말리겠는가. 어쨌든 그런 마음가짐으로 차가운 물 속에 들어갔다가 바로 튀어나온 동천은

‘씨발, 더럽게도 차갑네.’

라고 중얼거린 뒤 화정이에게 다가가 그녀를 다시 깨웠다.

“야, 화정아. 야, 일어나 봐. 야! 자냐? 자?”

얼굴을 가볍게 치고 몸을 흔들어 보았지만 그녀는 요지부동이었다. 심통이 난 동천은 그녀의 볼을 세게 잡아당기려고 했지만 순간 연주신군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낸 그녀의 등판에 생각이 미치자 서둘러 그녀의 몸을 돌려 너덜너덜해진 옷 속의 피부를 만져보았다.

다행히 상처들은 씻은 듯이 나아 있었으나 그래도 가만히 집중해 보면 손끝에 가는 실선들이 느껴졌다. 물론 이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테지만 이렇게 살피고 보니 동천은 어쩐지 볼을 잡아당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에이, 봐줬다! 그러고 실컷 자라! 실컷 자!”

괜히 멋쩍어서 목청만 드높인 동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제까지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미뤄 두었지만 천년 만년 이곳에서 살아갈 생각이 아닌 이상 서둘러 빠져나갈 구멍부터 찾아보아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디부터 찾아봐야 하지? 뒤쪽은 호수이고, 앞쪽은 어두워서 잘 모르겠고, 우측도 마찬가지이고……. 에 또, 좌측이 그나마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으니 일단은 저곳부터 확인해 봐야겠지?”

동천이 가보려는 곳은 그저 미세한 균열을 통하여 비춰드는 서너 줄기의 빛 무리 지대였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그것만해도 대단한 것이었으므로 그는 아주 조금씩 익숙해지는 어둠을 뚫고 천천히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톡톡톡. 툭툭.

뭐 좀 안답시고 암석의 여기저기를 두들겨 본 동천은 그것으로 상황을 종료시켰다. 알긴 개뿔이 알겠는가 말이다. 그냥 심심해서 해본 거지.

“으음! 이러면 상당히 골치 아파지는데…….”

엄청난 크기의 동공 안에서 고작 일부를 돌아본 상태인 동천은 마치 다 살펴보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사실 그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회의적으로 생각할 것이 분명한 게,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떨어져 물살을 타고 흘러 들어온 데다가 자연적으로 형성된 동공까지 눈앞에 떡 하니 버티고 있었으니 빠져나가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고 여겨질 법했던 것이다. 허나, 동천의 성격에 아직 둘러볼 곳도 많은데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자, 그럼 어디 한번 쭉 훑어봐 줄까나? 만약 나갈 곳이 없다고 해도 다행히 빛이 들어오니까 정 길이 없으면 몇 년이 걸려서라도 뚫고 나가지 뭐. 흐흐, 아까 감지력으로 물 속에서 노니는 물고기를 확인했으니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됐고. 그렇게 지내다 보면 애도 한둘쯤은 생길 테고. 크크큭!”

맨손으로 파봐야 얼마나 파겠는가 만은 동기가 불손하긴 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리라. 여하튼,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암벽을 따라 지나치며 툭툭 건드리고 다니던 그는 어느 순간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레? 방금 전에 소리가 좀 이상한 것 같았는데?”

같은 툭툭 소리였다. 그러나 기이해질 정도로 신경이 예민해진 동천의 귀에는 미세한 차이가 있는 듯이 들렸다.

툭툭. 퍽퍽! 파앙! 꽝!

조금씩 건드리며 확인하는 작업이 감질났던지 손바닥으로 쌔게 치다가 더 발전시켜 내공을 주입시켰고 나중에는 단강수로 암석을 내리쳤다.

“……어? 분명히 흔들렸지 아마?”

스스로에게 물어봤으니 대답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실제로 대답해주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린 동천은 쉴새 없이 수공을 시전 했다. 순식간에 동공의 내부는 쾅쾅거리는 소음으로 가득 찼다.

쾅쾅쾅쾅! 퍼석! 와르르르!

“콜록콜록! 이게 뭐……. 헉?”

휘날리는 돌가루에 기침을 해대며 짜증을 내려던 동천은 눈앞에 번쩍거리는 것들이 그를 반기자 한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돌처럼 굳었다. 하지만 이내 곧 정신을 차리곤 자신도 모르게 환성을 내질렀다.

“으아아. 시, 심봤다아아아아아! 으하하하!”

그곳에는 금이며 보석이며 갖가지 재화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던 것이다.

“흐미! 드디어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흑흑, 아우씨. 너무 좋다보니까 눈물이 다 나네?”

예전에 황룡세가에서 남씨 아저씨가 그토록 열렬히 구애하던 여인에게 혼인 승낙을 받고는 눈물을 펑펑 쏟은 적이 있었다. 당연히 자세한 내막을 몰랐던 동천이 왜 우냐고 물었더니 그는 너무 기뻐서 운다고 했다.

솔직히 그는 지랄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자신이 직접 겪어보게 되자 그때 속으로 욕했던 자신이 아주 조금은 미안해지는 동천이었다. 정말로 아주 조금.

“으흐흐! 이걸 다 팔면 얼마랴? 푸하하! 이제 나는 부자다! 이 몸은 부자야! 아하하하하!”

어떻게 작동된 것인지는 몰라도 정방형 석실의 좌우에 매달려 있는 횃불들이 벽이 무너지는 동시에 환하게 불타올랐다. 아울러 빛을 흡수한 천장의 야명주들까지 더욱 밝은 빛을 토해냈다. 이런 작용이 아니었다면 동천이 어찌 순간적으로 금은보화들을 확인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동천은 참으로 놀라운 장치였음에도 불구하고 금은보화에 정신이 팔려 당연히 켜지는 것으로 치부하는 중이었다. 그는 보석들을 한 움큼씩 집어들어 허공에 뿌리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정도 열기가 가시자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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