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80화
사부가 가르쳐주는 일주일 동안은 동천에겐 신나는 날이었다. 그저 예.. 아니면, 모르겠는데요? 라고, 말하면 사부가 다 알아서 가르쳐줬기 때문이었다.
“네가, 읽어 봐서 알겠지만 본문의 신법은 모두 4단계로 분류된다. 1단계 귀영분광(鬼影分光). 2단계 귀영낙화(鬼影落花). 3단계 귀영유수(鬼影流水). 4단계 귀영탈각(鬼影脫却).. 나머지들은 지금, 설명해봐야 모두 소용이 없고, 우선 제일 필요한 1단계부터 자세히 설명해주마. 모든 무공 중에 중요하지 않은 건 없지만 그중에서 신법은 아주 큰, 자리를 차지한다. 싸움에 임할 때나 싸움을 회피할 때, 모두 유용하게 쓰이는 게 바로 신법이라 할 수 있지.. 나중에 신법이 별것 아니라는 놈을 만나면 죽지 않을 정도만 패주고 다리는 못 쓰게 만들어버려라.”
패라는 말에 동천의 재빠른 대답이 들려왔다.
“예! 사부님!”
그런, 제자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 역천은 다시 말을 이었다.
“좋다. 잠시, 말이 새나갔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제1단계인 귀영분광은 귀신의 그림자를 나눈다는 뜻으로 최고조에 다다르면, 모두 완벽한 4개의 분광을 만들어내게 된다. 본문의 신법의 특징 중 하나라면 단계 단계마다, 모두 12성의 성취를 원한다는 것이다. 귀영분광은 기초적인 것으로 다리의 힘을 중시한다. 귀영 신법의 또 하나의 특징은 귀의흡수신공이 운용법의 모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본 신법을 훔쳐 본다 하더라도 흡수신공을 알지 못한다면 수박 겉핥기식이라 할 수 있다. 제자야.. 흡수신공을 몇 성까지 익혔느냐.”
아무런 생각 없이 열심히 듣고 있던 동천은 갑자기 물어본 사부의 질문에 당황해서 잠깐 동안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곧이어 정신을 차리고는 대답해 주었다.
“그거요? 헤헤.. 삼성 정도밖에 안 되는데요..”
대충 그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던 게 들어맞자 역천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요결은 전부 외웠겠지?”
“네.”
“그럼, 여기에서 한 번 귀영분광을 시전해 보아라.”
동천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예? 여기서요?”
제자의 말에 잠시 생각해 본 역천은 자신이 생각해도 좀 좁은 감이 있는 이 방에서 신법을 시전한다는 건 무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호오..? 그렇구나. 밖에 나가서 해보자.”
사부가 하라는데 어쩌겠는가.. 사부와 함께 밖으로 나온 동천이 사부에게 ‘해요?’라는 무언의 표정을 짓자 역천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답변을 받은 동천은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신법을 시전했다.
‘일보에서 시작해서.. 단숨에 상대의 왼쪽과 오른쪽…!’
“어어? 으앗!”
콰당..!
단, 두 동작만 시전하고 세 번째 동작에서 넘어지는 동천을 바라보던 역천은 뭐가 그리도 신나는지 웃어 제꼈다.
“푸헤헤헤! 아주, 잘하는구나!”
사부가 자신이 쓰러지는 모습에 대소를 터뜨리자 당연히 기분이 상하는 동천이었다. 동천은 인상을 있는 대로 구기며 웃고 있는 사부에게 소리쳤다.
“사부님! 제자의 불행을 보셨으면, 같이 슬퍼해야지 반대로 웃으시면 어떡해요!”
제자의 항의에 역천은 오해 말라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아아.. 화내지 말아라. 지금 이 사부가 웃은 것은 네가 잘하고 있어서 웃은 것이니까..”
넘어진 것이 잘한 것이라는 믿기 좀 힘든 말에 동천은 의심스러운 눈길로 역천을 바라보았다. 역천도 그것을 눈치챘는지 얼른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네가 정석(定石)대로 신법을 운용을 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넘어지는 게 당연했단 소리다.”
사부의 말을 듣고 자신이 넘어진 게 자신이 잘못해서 넘어진 게 아니라는 말에 동천은 그제서야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여기에서 부딪힌 또 다른 난관이 있으니..
“사부님.. 그러면 이 귀영분광은 시전할 때마다 넘어져야 하는 건가요? 예?”
넘어지는 신법이 존재할 리가 없었다.
“그거 말이야? 하하. 그건 말이지.. 내공이 없어서 그러는 거란다. 네 혁대를 풀면 그 동작에서는 넘어지지 않을 거다.”
“정말요?”
“제자야.. 이 사부가 언제 거짓말 하는 거 봤냐?”
재삼 확인시켜주는 사부의 말에 동천은 재빠르게 허리띠를 풀렀다. 허리띠를 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온몸으로 상쾌한 기운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내력을 끌어올려 간단하게 일주천시킨 동천은 다시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동천의 신형(身形)이 순간적으로 두 갈래로 뻗쳐 나갔던 것이었다. 그리곤, 곧이어 다시 하나의 인영으로 합쳐졌다.
처음 시도해보는 거라 아직은 어설픈 점이 많이 드러났지만 마냥, 신기한 동천이었다. 동천은 너무나 놀라운 나머지 한 초식이 끝났음에도 멍하니 자신의 발만 쳐다보고 있었다. 곧이어 정신을 차렸다. 동천은 아직도 놀람이 가시지 않는 얼굴로 자신의 다리를 들어 사부에게 보여줬다.
“후아.. 사부님. 이거, 제 다리 맞아요?”
제 다리를 들어 보여줬으니, 당연히 맞을 수밖에 없었다.
“오냐. 흐흐.. 어떠냐? 내공이 있고, 없고의 차이를 알았느냐? 모든 무공의 근원(根源)은 내공이다. 내공의 성취 능력(成就能力)에 따라서 그 인간의 실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거다. 아무리 좋은 초식이 있다고 해도 내공(內功)이 뒷받쳐주지 못하는 초식은 삼류와 다를 바가 없다. 이점, 명심하고 착실하게 내공을 쌓아라.”
“예, 사부님.”
“오늘은 이 정도만 하자. 돌아가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천 번만 반복하고 자라.”
다른 때 같으면 그 엄청난 요구(要求)에 질린 얼굴을 했겠지만 지금은 조금, 흥분한 상태라 동천은 군말 없이 대답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온 동천은 한껏 상기된 얼굴로 도연을 불렀다. 도연이 마당에 서있는 자신에게로 재빠르게 달려오자 기다리고 있던 동천은 별로 화내지 않고 여태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도연에게 들려주었다.
“흐흐흐.. 그런고로, 네가 여기서 내가 1천 번을 다 끝마칠 때까지 지켜봐라. 이번에는 자신 있다. 알았냐?”
말을 다 듣고 난 도연은 군말 없이 그러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수련에 열중하신다니.. 좋은 현상입니다. 횟수는 제가 책임지고 셀 테니 어서 해보십시오.”
“좋아. 좋아.. 너, 보고 놀라지 마라.. 히히!”
신법을 시전하기에 앞서, 잠깐 동안 몸을 흔들며 준비 운동을 하고 난 동천은 한껏 숨을 들이켰다 내쉬고는 기합(氣合) 소리와 함께 신형을 움직였다.
“하나!”
스-팟!
두 개의 분광을 만들어낸 동천은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시점에서 급격히 뒤로 돌아 연속해서 시전했다.
“두-울! 히힛! 어떠냐? 놀랍지 않냐?”
동천의 말처럼 놀란 표정이 역력히 보이던 도연은 회차가 늘어날수록 조금씩 안정감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3백 회가 다가오는 시점에서는 예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갔다. 땀에 흠뻑! 젖은 동천은 힘이 들었는지 고통스러운 얼굴로 물어봤다.
“헉헉.. 야. 몇 회째야…”
“아직, 멀었습니다.”
드디어 동천은 화를 냈다.
“이 새끼야! 그러니까, 몇 회째냐고!”
동천이 팰 듯이 소리쳤지만 도연은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일인 양 말했다. 자신도 자세히 몇 회인지 알 수 없었지만 주인의 성격상 똑 부러지는 말을 해주지 않으면 지랄을 하면서 안 할 것 같기에 도연이 알아서 남은 회차를 정했다.
“앞으로 7백 12회만 더하시면 됩니다. 힘내십시오.”
7백 12회를 더해야 한다는 말에 동천은 나 몰라라 하며,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아아.. 몰라 몰라. 그다음은 내일 하자. 헉헉….”
사실, 방금 전까지 무식하게 단 한숨도 쉬지 않고 신법을 운용했으니 금방 지치는 것은 당연했다. 동천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당연히 쉬어가며 했겠지만, 재빠르게 움직이는 자신의 움직임에 매료되어 정신없이 하다 보니 생겨난 결과였다.
“그럼, 잠시 쉬고 난 다음에 하시지요.”
그 말에 동천은 무슨 개소리냐는 듯이 고개를 들어 도연을 쳐다봤다.
“야! 뭔 소리야. 난, 그만할 건데.. 지랄하지 말고 이제 네 할 일이나 해.”
도연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택도 없다는 얘기였다.
“아닙니다. 아까 듣기로는 전주님께서 오늘 할당량으로 1천 회를 마치라고 들었습니다. 제 할 일은 여기서 주인님이 1천 회를 달성하는 걸 지켜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순간의 기분으로 모든 걸 말해준 자신을 내심 원망했지만 이미 배는 떠나간 순간이었다. 도연을 잠시 노려본 동천은 신경질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씨.. 개놈의 새끼! 너, 인마. 나중에 두고 보자.”
“달게 받겠습니다.”
나중에는 내력이 딸려서 날이 저물 때까지 쉬어가기를 반복하던 동천은 마침내 1천 회를 마치고, 다리를 벌벌.. 떨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동천은 들어가서 무려 한 시진 내내 운기조식을 한 후, 침대에 올라가서 화정이에게 다리 안마를 다음 날 아침까지 계속 시켰다. 원래 조금만 시키고 그만두게 하려 했는데 자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화정이가 자신의 다리를 계속 주무르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동천이 화정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저 깨어보니 자신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는 얘기다.
일어나서 걸어보니 아직도 다리가 뻐근하자 동천은 지체 없이 자리를 잡고 운기조식을 했다. 다리가 상쾌해질 때까지 계속 반복해서 운기조식을 취한 동천은 천천히 눈을 떴다. 눈에는 잠깐 동안 푸르스름한 빛이 일렁이다가 사라졌다.
“후우.. 그래도 좀 낫네. 으그그그!”
뒤늦게 기지개를 켠 동천은 자신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화정에게 다가가서 착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고 돌아섰지만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화정이가 자신의 팔소매를 잡아끈 것이었다.
“응? 야, 왜 그래? 나 바쁘단 말야. 너, 오늘따라 왜 이러는 거야? 놔. 나 밥 먹어야 한다고..”
그제서야 화정은 잡았던 손에 힘을 뺐다. 화정이가 팔소매를 놨는데 왠지 석연찮은 느낌이 든 동천은 그냥 갈 수 없었다. 얘가 왜 안 하던 짓을 하는 건지 몰라서 인상을 찌푸리며 한참을 생각하던 동천은 설마.. 하는 생각에 물어보았다.
“야.. 너, 지금 내가 볼에다 뽀뽀 안 해줬다고, 잡아끈 거냐?”
끄덕.. 끄덕… 화정이가 긍정의 표현을 한 것까진 좋았는데, 문제는 화정이가 물어볼 때면 언제나 고개를 끄덕여줘서 진위(眞僞) 여부를 가릴 수가 없다는데 있었다.
“어휴! 답답해! 야! 너, 언제 말할 거야? 응?”
그저 웃기만 하는 화정의 모습에 버럭! 화를 냈지만 계속, 이러면 자신의 입만 아프기에 곧이어 화를 풀었다. 그러고는 화정의 볼에 뽀뽀해주었다.
쪽..
이윽고, 화정이에게 답례를 받은 동천은 줄을 잡아당겼다.
딸랑.. 딸랑…
방울 소리에 소연은 얼른 달려왔다.
“부르셨어요?”
“밥 가져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