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95화
소연은 동생이 자꾸만 주인님과 자신을 얽어매려고 하자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아니라고 단호하게 반박하고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동생에게서 주인님 얘기만 나오면 숨이 막히는 게 말조차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서인지 소연의 얼굴은 서서히 붉어졌다.
“아.. 아니야.”
언니가 아니라고 했지만 자기가 보기엔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니면 아닌 거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당황해하는 언니를 몰아쳤다.
“에이..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분명히 뭔가가 있죠?”
소연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수련은 다음 말을 나오기 전에 얼른 그다음 말을 자신이 가로챘다.
“있다! 이거죠? 알았어요. 내가 언니의 쑥스러워하는 마음을 다 이해하니까 이쯤에서 털어놔 봐요. 언니, 동천을 좋아하긴 하는 거예요? 말해봐요. 제가 동천에게는 비밀로 해줄 테니까..”
비밀(秘密) 어쩌구 그러니까 이상한 장면이 떠올라서 소연은 울상을 지었다.
“없다니까… 정말이야.”
“피이..! 거짓말.”
소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수련아.. 없어…”
그러나 수련은 이 기회에 꼭, 알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 것이므로 확실하게 몰아붙이기로 했다.
“거짓말!”
“정말이야…”
“거짓말!!”
소연은 아니라고 하는데 동생이 자꾸만 자신을 다그치자 이젠 당황함 대신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소연이 소리쳤다.
“정말이야!”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서 자신을 윽박지르자 수련은 한순간 쫄아버렸다. 수련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난 후 언니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깜짝이야….”
이젠, 반대로 기세가 오른 소연이 동생을 윽박질렀다.
“내가 아니라면 아닌 거지 왜 자꾸 쓸데없는 말로 나를 당황시키는 거니? 너, 이 언니한테 혼나 볼래? 내가 이 자리에서 못을 박아두겠는데 주인님과 나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그리고 도연이 하고도 아무런 관계도 아니고! 그러니까 다시 한번 이상한 말하면 너 나한테 정말로 혼난다! 알았어?”
양쪽 허리에 두 손을 올리고 무섭게 화를 내는 언니의 모습에 수련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언니가 이렇게 무서운 표정을 지은 적이 없었기에 수련이 놀라는 정도는 다른 때보다 더했다. 속에 맺혀 두었던 말을 다 토해낸 소연은 상쾌한 숨을 내뱉고 원래의 소연으로 되돌아갔다.
“자, 수련아. 가자.”
“그.. 그래요.”
수련은 감히 반박할 생각도 못 하고 그저 조용히 언니를 따라갔다. 소연은 잠깐 화를 내기는 했지만 금세 마음을 풀어서 동생에게 자신은 화가 다 풀렸다는 것을 인지시켜 주었다. 수련도 그것을 느꼈는지 다소 안도하며 언니를 따라갔다. 드디어 문 앞에 도착하자 소연은 조금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수련아. 내가 아까 전에도 말했지만 이 쥐는 굉장히 큰 놈이야. 너는 한 끼 식사밖에 안돼. 그러니까, 이 언니의 뒤를 꼭! 따라와야 해. 알겠니?”
원래 쥐를 무서워했던 수련은 드디어 큰 쥐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오금이 저리는 것을 느꼈다. 아까까지 여유만만했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알았어요. 제가 언니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닐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소연은 마른침을 삼킨 후 앞서 걸어 들어갔다. 그녀는 이층으로 올라가는 대신 주방 쪽으로 먼저 들어갔다. 그러고는 주방 기구들을 하나씩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뭐 하는 거예요?”
마침, 식칼을 들고 있던 소연은 그것을 집은 채로 말했다.
“쥐를 잡을 도구를 찾고 있어.”
수련은 무섭다는 듯이 몸서리쳤다.
“언니.. 그걸로 잡겠다는 거예요?”
칼을 바라보며 눈에 힘을 주던 소연은 곧이어 한숨을 푹.. 쉬더니 눈에 힘을 풀었다.
“에휴… 아무래도 안 되겠다. 수련아. 피 튀기는 장면을 상상하니 속이 뒤집힐 것 같아. 우웁! 다른 걸 찾아보자.”
소연은 칼을 내려놓고, 손으로 입을 가린 후 주방에서 나왔다. 수련이 그 뒤를 따라왔다.
“괜찮아요?”
“으응.. 그래.”
벽을 짚으며 나서던 소연은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진 대빗자루를 보았다. 가서 집어보니 자신이 쓸기에 딱 맞는 크기였다. 원래 큰 빗자루였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어린 수련이었기에 그에 맞춰 작게 잘라 만든 것이었다.
소연은 거꾸로 집어 휘둘러 보았다. 감이 좋았다.
“수련아, 이게 좋겠다. 몽둥이는 준비됐으니까 어서 올라가자.”
언니는 무기가 있는데 자기 혼자 빈손이자 수련은 언니를 불렀다.
“언니, 제 거는요?”
소연은 이층으로 올라가다가 멈추었다.
“네 거?”
“예. 제 거요.”
그러고 보니 제일 안심이 안 되는 동생이 빈손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쪽 눈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긴 소연은 다시 주방으로 갔다. 여러 물건들을 다시 만지작거리던 소연은 제법 길다란 국자 하나를 집었다.
“이거 어떠니?”
수련은 고개를 저었다.
“싫은데요.”
“그래?”
다시 물건들을 골라내던 소연은 두꺼운 빨래 방망이 하나를 집었다. 소연은 동생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또 어떠니?”
수련은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싫어요.”
“흐음.. 어쩐다? 이것 말고는 방어할 만한 게 없는데….”
언니가 들고 있는 빗자루가 마음에 들던 수련은 소연이 들고 있는 빗자루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은근슬쩍 말했다.
“그럼요. 그거하고 바꿔요.”
소연은 동생이 말하는 게 자신이 들고 있는 빗자루를 말하는 건지 확실히 알 수가 없어서 빗자루를 들었다.
“이거?”
수련은 얼른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네, 그거요. 전 그게 마음에 들어요.”
소연은 좀 아쉽기는 하지만 동생이 이 빗자루에 마음을 두고 있는 것 같아서 별말 없이 건네주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건네받은 수련은 좋아하며 빗자루를 만지작거렸다. 소연은 빨래 방망이를 들고 말했다.
“자, 빨리 올라가 봐야지. 가자 수련아.”
“네~에~~!”
둘이 올라가려고 하는 그 순간 이층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쿠-웅!
그 바람에 신이 나서 올라가던 수련과 그저 그런 마음으로 올라가던 소연은 동시에 놀랐다.
“엄마야!”
“뭐.. 뭐지?”
수련은 엄마를 부르며 주저앉았지만 소연은 같이 놀랐음에도 불구하고 수련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윗층에서 일이 벌어져도 단단히 벌어졌다고 생각한 소연은 주저앉아있는 동생의 손을 잡고 일으켜주었다.
“수련아. 빨리 가보자. 도연에게 무슨 일이 있나 봐.”
“알았어요.”
수련은 자신의 얼굴에 솟아난 땀방울들을 닦아내며 일어났다. 동생이 일어나자 소연은 기다렸다는 듯이 앞장서서 달려 올라갔다. 수련은 언니 뒤를 쫓아가기에 바빴다. 뒤따라 달리던 수련은 이층에서 언니가 서있자 자신도 따라 멈추었다.
“언니, 왜 서 있어요?”
소연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소리가 어디에서 난 건지 모르겠어.”
수련은 그게 뭐 대수냐는 듯이 말했다.
“나참.. 언니, 그냥 아무 데나 문 열어보면 알 거 아니에요.”
누가 그걸 모른단 말인가.. 소연도 그러고 싶었지만 무턱대고 문을 열었다간 쥐가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몰랐기 때문에 이렇게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쥐가 얼마나 크고 무서운지 까먹었던 수련은 언니가 망설이는 눈치를 보이자 언니를 제치고 당당히 앞서 걸어갔다.
“비켜봐요. 내가 열어볼게요.”
소연은 동생의 옷자락을 잡았다.
“얘, 안돼..”
수련은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언니에게 안심을 시켜주려고 씩씩하게 말했다.
“걱정 말아요. 도연이라는 사람이 있는 방만 알아내면 얼른 언니 뒤로 숨을 테니까… 언니가 알다시피 저도 쥐는 끔찍히 싫어하니까 안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