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96화
동생이 자신 있다는 듯이 말을 해주었지만 소연은 도저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위험하기는 했지만 자신이 나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녀는 수련의 행동을 극구 반대했다.
“아무래도 안되겠어. 네 말마따나 문만 열면 되니까, 내가 할게. 넌 그저 내 뒤에 숨어서 꼼짝 말고 붙어있기나 해.”
소연은 한 손으로 빨래 방망이를 잡고 첫 번째 방을 조심스레 열었다. 고개를 들이밀고 좌우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뒤에서 수련이 물었다.
“있어요?”
소연은 대답 대신 고개를 저으며 목을 빼냈다. 다시 움직인 소연은 두 번째 방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끼이이-이익—
희미한 미소를 띠며 쥐에게 성큼성큼 다가서던 도연은 갑자기 미소를 지우며 문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밖에서 두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쥐가 천천히 문가로 다가갔다. 도연도 그에 맞춰 반원형으로 돌면서 쥐의 앞길을 막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쥐가 침대 쪽으로 뛰었다.
‘아차!’
도연은 다급히 몸을 틀어 쥐를 쫓아갔다. 먼저 움직인 건 쥐였지만 침대와의 거리가 쥐보다 가까웠던 도연은 거리상의 이점으로 쥐보다 먼저 침대 쪽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간발의 차이였으므로 안도할 사이도 없이 목검으로 달려오는 쥐를 향해 휘둘렀다.
부-웅!
자신의 목검이 허공을 휘둘렀다는 것을 감지했을 때 도연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리 없이 때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질 못했으니 놀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쥐는 달려오는 속도를 살려서 자신에게 휘둘러지는 목검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침대를 디딤판으로 삼아서 도연의 얼굴로 방향을 틀었다. 쥐의 움직임이 어찌나 빨랐던지 도연은 번들거리는 한 쌍의 두 붉은 눈만 볼 정도였다. 오른손은 이미 휘둘러진 상태였기 때문에 수습할 여유가 없었다. 도연은 고개를 틀면서 왼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화끈한 통증이 팔목을 파고들었다.
“윽…!”
묵직한 무게에 못 이겨 도연은 뒤로 넘어졌다. 고개를 들어 팔을 보니 쥐의 새하얀 이빨이 반 이상이나 자신의 살 속을 파고드는 것이 보였다. 도연이 팔을 흔들자 살가죽이 찢어지면서 피가 흘러나왔다. 쥐의 이빨이 금세 붉게 물들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소연이 얼굴을 디밀었다. 도연은 그 소리를 들었음에도 문 쪽을 돌아다볼 여력이 없었다. 소연은 누워있는 도연 위에 쥐가 올라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앗? 도연아!”
소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달려왔다. 도연은 머리 위에서 그림자가 일렁이자 소리쳤다.
“비켜!”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소연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이런 상황에서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방금 넘어질 때 목검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목검은 도연은 목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퍽!,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쳤지만 쥐는 잠깐 몸을 움츠렸을 뿐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연속으로 내리치던 도연은 쥐가 떨어지지 않자, 생각을 달리했는지 가슴섶에 손을 집어넣어 어떤 물건을 꺼냈다. 그 물건은 새하얀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소연은 옆에서서 그 물건을 보았다. 짧은 단도였다.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던 도연은 거칠게 웃더니 그대로 옆구리를 찔렀다.
쉬-익!
짧은 파공음이 쥐의 옆구리를 갈랐다.
“찍~~!”
자신의 옆구리 쪽에 섬뜩한 고통이 밀려오자 쥐는 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입을 찢어져라 벌리며 고개를 쳐들었다. 벌어진 이빨에서는 빨간 핏방울이 점점이 떨어져 내렸다. 단도는 도신까지 깊숙이 박혀들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손으로 밀쳐 내려던 도연은 위에서 휘둘러지는 파공음 소리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퍼-억!”
쥐는 찍 소리도 못 하고 도연의 몸 위에서 굴러떨어졌다. 소연이 빨래 방망이를 온 힘을 다하여 휘둘렀음에도 불구하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얼마 나가지 못했다.
소연이 무릎을 꿇고 도연을 일으켜 세웠다.
“도연아, 괜찮니? 이 피 좀 봐…”
도연은 잡아 올려주는 소연의 몸에 기댄 채 일어났다. 자신의 팔을 바라보는 소연의 시선을 느꼈음인지 몸을 약간 돌려 다친 팔이 안 보이게 했다.
“고마워.”
도연은 간단한 답례를 해주고 바닥에서 발을 미미하게 떨고 있는 쥐에게로 다가갔다.
“언니, 잡았어요? 후아… 이놈이에요?”
여지껏 문 뒤에서 숨어있던 수련은 언니가 쥐를 후려치고 도연을 일으켜주자 쫄랑쫄랑 다가와 한몫 끼었다. 소연은 도연이 다치기는 했지만 동생이 무사해서 안도해하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 이게 바로 그놈이야. 어때? 내 말이 맞지? 이 쥐 굉장히 큰놈이지?”
수련은 도연이 쥐의 옆구리에서 단도를 빼내는 것을 보며 언니의 말을 들었다. 쥐는 단도가 몸에서 빠져나가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이내 축 늘어졌다. 도연은 자신의 바지에다 피 묻은 단도를 닦아내고 가슴속으로 집어넣었다. 철컥,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한참 동안 멍하니 도연의 행동을 바라보다가 그 소리에 정신이 든 수련은 언니를 바라보며 놀라워했다.
“언니, 정말 굉장해요! 이렇게 큰 쥐를 잡다니… 저 정말 감격했어요. 언니 정말 대단해요. 이렇게 무섭게 생긴 쥐를 빨래 방망이로 한 방에 날려버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구요. 아마, 어른이라도 이렇게는 못할걸요? 정말 훌륭해요.”
두 손을 꼭 쥐고 자신에게 칭찬을 해대는 동생의 말에 소연은 무안해하며 도연을 힐끗 바라보았다. 자신이 한일은 마지막에 와서 한 대 친 것밖에 없는데 동생이 마치 자신이 쥐를 잡은 양 말해주니 듣기가 민망했기 때문이었다. 소연의 마음을 아는지 도연은 수련의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죽어있는 쥐를 발로 툭툭.. 쳐댔다. 한 번 발로 굴려본 도연은 쥐가 움지이질않자 그제서야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도연은 동생과 같이 말을 나누던 소연에게 다가갔다.
“이제 가봐야겠어.”
소연은 아직도 피가 한두 방울 흘러내리는 도연의 팔을 바라보며 말했다.
“으응… 그런데 그 팔.. 정말 괜찮니?”
도연은 오른손으로 다친 곳을 살며시 눌렀다.
“그래.”
수련이 끼어들었다.
“아.. 그러니까… 도연…. 오빠도 잘했어요.”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수련은 머뭇거리다가 얼굴을 붉히며 겨우 말을 꺼냈다. 도연은 그 말에 뭐라고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대신 간단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자신의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는지 수련은 얼른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수련은 그 순간 자신 쪽으로 슬며시 다가오다가 들켰다는 것을 눈치챈 커다란 동물이 바닥을 박차며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악!”
다다다닥…!
수련의 비명에 고개를 돌린 소연과 도연은 그와 동시에 바닥에서 들리는 소리에 밑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물체가 빠르게 달려왔다. 도연은 발 뒤꿈치에 거센 통증을 느꼈다.
“욱-!”
이를 바로 옆에서 본 소연은 비명을 질렀다.
“꺄-악!”
도연은 쥐의 이빨이 자신의 살을 거침없이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도연은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리며 단도를 꺼내들었다. 잠금쇠가 있어서 칼집이 빠지지 않았다. 도연은 덜덜 떨리는 다친 손을 들어서 잠금쇠를 열어보려고 애썼다. 그 순간에도 쥐의 이빨은 점점 살을 파고들었다.
“으으윽..!”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어린 도연에게는 너무나도 벅찬 고통이었다. 도연은 이를 악물고 잠금쇠를 열어 칼집을 빼냈다. 칼집이 바닥에 떨어지자 쥐의 빨간 눈이 소리 난 곳으로 잠깐 돌아갔다. 그리고 곧이어 위를 바라보았다.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반짝이는 물건을 보았다.
위기감을 느낀 쥐는 도연의 다리에서 떨어졌다.
탁-!
단도가 허무하게 바닥을 내리찍었다.
“제기랄..!”
자신의 일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도연은 욕설을 내뱉으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다리의 부상 때문에 서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도연의 눈은 그 와중에도 재빠르게 쥐를 쫓았다. 그 쥐는 침대 밑으로 피해 있다가 검고 날카로운 두 손으로 입가에 묻어있는 피를 닦아내 핥았다.
“이야야아-!”
두려운 표정으로 어정쩡하게 서있던 소연은 도연이 다쳐서 쓰러지자 쥐를 향해 미친년처럼 빨래 방망이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침대 밑에 숨어있던 쥐는 소연의 행동에 놀랐는지 더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종적(縱的)을 감추어 버렸다. 가쁜 숨을 내쉬며 잠시 동안 침대 밑을 바라보던 소연은 도망갔다는 것을 확인해 본 후에야 안심을 하고 도연에게 다가갔다.
“이걸 어째…”
도연의 발뒤꿈치에서는 피가 흥건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비슷한 크기의 쥐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쥐가 더 강했는지 도연의 팔에는 피가 조금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다리에는 바지의 색깔을 바꿔버릴 정도로 흥건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도연은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다가온 소연을 살짝 밀쳤다. 성한 팔로 바닥을 짚고 일어선 도연은 절뚝거리며 목검을 주웠다. 그 목검에 몸을 의지하며 한 발 한 발 힘겹게 걸어갔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시 주저앉았다.
찌이-이익–
다친 쪽의 바지를 무릎 위까지 찢어낸 도연은 아직도 피가 흐르는 부위에 둘둘 말았다. 그래도 모자랐는지 이번에는 반대쪽의 바지를 찢어서 마저 감았다.
“후우.. 후우…”
고개를 숙이자 바닥에 자신의 피가 보였다. 그 한가운데에 떨어진 땀이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도연은 메마른 미소를 흘렸다. 몸을 일으키자 다리에 강한 고통이 파고들었다. 또다시 소연이 다가와 자신을 일으켜 세웠지만 이번에는 뿌리치지 않았다. 몸을 약간 소연 쪽으로 기대며 걸어가던 도연은 앞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막아서고 있다는 걸 알았다. 도연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던 소연도 그제서야 상대를 보았다.
“수련아, 너..”
수련은 입을 약간 벌리고 흐리멍덩한 눈을 하고 뻣뻣한 나무토막처럼 서 있었다. 그걸 본 도연이 말했다.
“기절했어.”
“뭐? 수련… 앗?”
동생이 기절했다는 말에 깜빡하고 도연을 잊어버렸던 소연은 동생에게 다가가는데 도연이 한쪽으로 급격히 무너지자 얼른 팔소매를 잡고 버티었다. 다친 발에 힘이 들어가자 어금니에 저절로 힘이 가해졌다. 그 모습을 본 소연은 얼른 사과했다.
“도연아.. 미안해.”
도연을 조심스럽게 부축해서 바닥에 앉힌 소연은 재빨리 동생에게 다가갔다.
“수련아.. 얘. 정신 차려봐.”
동생의 양 어깨를 잡고 거세게 흔들자 딱딱히 굳어있던 수련의 목이 점차 풀리면서 위아래로 움직였다. 전에 해봤던 식으로 뺨을 몇 대 때리자 흐릿했던 눈의 초점이 다시 원상태로 천천히 돌아왔다.
“으으..”
“정신이 드니?”
동생이 나지막한 말을 꺼내자 소연은 기뻐했다. 하지만 곧이어 화를 내며 동생에게 말했다.
“넌 왜 그렇게 간이 작아서 이 언니의 속을 애태우게 하니?”
“언니이…”
정신이 들고 언니의 얼굴이 보이자 수련은 조금씩 울먹이기 시작했다. 소연이 그런 수련을 토닥여주며 안아주자 기다렸다는 듯이 봇물이 터지듯 울어댔다.
“잉잉잉.. 언니, 그.. 잉잉.. 그 고양이가… 고양이가 아니었어요. 잉잉.. 커다란 쥐였다구요.. 으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