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99화
소연은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수련은 파리한 안색으로 소연을 반겨주었다. 방금 전까지 침대 위에 누워있었는지 이불이 어지러이 흐트러져 있었다. 소연은 동생의 얼굴을 보고 걱정스레 물어보았다.
“너, 괜찮은 거니? 이제 다 생각나?”
수련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려 세 번의 기절 끝에 완전한 기억을 되찾은 것이었다. 소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휘유~~..! 그래. 정말 다행이다.”
수련은 웃는 언니를 보고 있다가 말했다.
“그런데, 저 병문안 온 거예요? 헤헤.. 뭐 병문안이라고 할 정도로 어떻게 된 건 아니지만.”
그제서야 자신의 임무를 떠올린 소연은 혓바닥을 약간 내밀며 자신의 머리를 콩콩! 때렸다.
“나두 참.. 내가 뭐하러 왔냐면, 주인님께서 그 쥐가 진짜로 큰놈인지 보고 싶으시다고 그러셔서 가지러 온 거야. 그 쥐 아직도 저 위에 있지?”
수련은 천정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예. 누가 건드리지만 않았으면 거기 그대로 있을 거예요. 올라가 보세요.”
수련은 언니에게 대답하면서도 자신이 같이 올라가겠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 소연은 아무 말 않고 알았다고 말한 뒤 이층으로 올라갔다. 쥐가 있던 그 문 앞에도 무사가 서 있었다. 이번에는 두 사람이 아닌 한 사람만이 서있다는 것만이 다를 뿐이었다.
“왜 이곳에 다시 왔니?”
문은 열려 있었는데 그 사내의 말에 안에서 또 다른 사내가 누구인지 궁금했는지 고개를 내밀었다. 한 사람만 있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역시나 두 명이 있었던 것이었다. 고개를 내민 사내가 말했다.
“너로구나.”
소연은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소전주님의 심부름으로 왔는데요. 그 쥐 어디에 있나요?”
고개를 내밀었던 사내는 고개를 다시 안으로 집어넣으며 문 앞의 사내에게 말했다.
“자네가 데려다주게.”
“예, 형님. 자 따라오너라.”
“어? 여기에 없나요?”
사내는 소연을 지나쳐가며 대답했다.
“계속 놓아둘 이유가 없지 않으냐. 바깥에 놓아두었으니 내가 안내해 주마. 따라와라.”
소연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말없이 사내를 따라갔다. 일층으로 내려온 사내는 주방을 지나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그곳을 나오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내 둘이 불을 피워놓고 고기를 굽고 있는 것이 보였다. 소연을 안내한 사내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삐쩍 마른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이보게. 그 쥐 어디에 있는가.”
마른 사내는 그 물음에 눈을 감고 코를 벌름거렸다.
“이 고기 냄새가 끝내주지 않는가?”
사내와 소연은 마른 사내의 말에 꼬챙이에 꿰어져 돌아가며 익혀지고 있는 고기를 바라보았다. 기름이 좔좔 흐르는 게 군침이 저절로 돌 정도였다. 사내가 말했다.
“그렇군.. 그보다. 그 쥐 어디에 있는가.”
마른 사내는 히죽! 웃으며 손을 들어 불에 익고 있는 고기를 가리켰다. 사내와 소연은 설마..? 하는 눈초리로 고기와 마른 사내를 번갈아 보았다. 마른 사내는 둘의 시선을 받으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아니길 바라며 소연이 물었다.
“저… 저게, 그 쥐…… 인가요?”
마른 사내의 옆에서 같이 쥐고기를 익히고 있던 뱀눈의 사내가 나뭇가지로 장작들을 쑤시고 들춰내며 말했다.
“그래. 흐흐.. 어떠냐. 맛있게 생기지 않았냐? 어때 너도 먹어보련? 껍질만 벗기면 이 쥐도 평범한 고기가 되는 거니까 먹어도 무관하단다.”
뱀눈의 사내는 군침이 도는지 소연에게 시선을 거두고 기름이 흘러넘치는 쥐고기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소연은 그 순간 머리가 어지럽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그녀가 쓰러지려는 것을 같이 온 사내가 붙들어주었다.
<아아.. 이를 어쩌지? 주인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면 난 무지하게 혼이 날 텐데…>
“괜찮니?”
자신을 붙들어준 사내가 묻자 소연은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소연은 불안한 눈초리로 사내에게 말했다.
“큰일 났어요.. 주인님께서 그 쥐를 보고 싶다고 가져오라 하셨는데.. 저렇게 구워버렸으니, 이제… 이제 어떡하죠? 이 사실을 주인님께서 아시면 저뿐만이 아니라 아저씨들도 무사하지 못하실 거예요.”
“음…”
소연의 말을 듣고 사내가 나지막이 침음을 했다. 소연의 말과 사내의 행동을 보고 뱀눈의 사내는 의아한 생각에 소연과 같이 온 사내에게 물어보았다.
“왜 그러냐?”
안색이 굳어진 사내는 불에 타고 있는 쥐고기를 빤히 바라보다가 눈을 감고 말했다.
“이 아이의 주인은 약왕전의 소전주라네..”
“억?”
“뭐라고?”
이제 거의 다 익어가는 쥐고기를 언제 먹나.. 하고 있던 두 사내들은 놀라서 자기들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른 사내는 부르르 떨다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쥐고기가 꽂혀있는 꼬챙이를 들어 올리고 발로 휘저어 불을 꺼뜨렸다. 마른 사내는 어색하게 웃으며 쥐고기를 소연에게 들이댔다.
“하하.. 하. 이걸 그냥, 갖다 드리면 안 될까…?”
옆에서 뱀눈의 사내가 시커먼 물체를 들고 맞장구쳤다.
“그래! 이거하고 같이 갖다 드려. 그러면 괜찮을 거야.”
쥐고기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질린 표정으로 뒤로 물러서던 소연은 뱀눈 사내가 들고 있는 물체를 보았다. 뱀눈 사내도 그것을 눈치챘는지 얼른 자신이 들고 있는 물체를 두 손으로 맞잡고 활짝! 펴 보여주었다. 양옆으로 늘어진 물체는 쥐의 가죽이었다. 쥐의 대가리가 건들거리며 위아래로 흔들리고 있었다.
소연은 고개를 강하게 옆으로 도리질하며 소리쳤다.
“몰라요! 아저씨들이 알아서 하세요! 힝… 이제 나 어떻게 해.”
소연이 울며 뒷문으로 달려가자 두 사내는 당황해하더니 얼른 뒤쫓아 소연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의 실력으로 소연을 한순간에 따라잡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뱀눈의 사내는 소연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물러서자 처량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내는 애원조로 말했다.
“얘야. 나 좀 살려주라. 응? 가서 잘 말씀드려. 저 쥐고기하고 이 가죽을 같이 가져가 잘 말씀드리면 어느 정도 봐줄게 아니냐. 난 처자식이 있는 몸이란다. 며칠이면 내 아내가 두 번째 아이를 낳게 될 텐데 내가 변을 당한다면 내 아내와 자식들이 얼마나 슬퍼하겠느냐. 제발 부탁이다.”
뱀눈의 사내는 노총각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이 위기를 모면해보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알 리가 없는 소연은 그가 불쌍한 마음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소연이 대답을 안 해주자 이번에는 마른 사내까지 합류를 했다.
“나는 집에 늙으신 노모가 계시단다. 이제 돌아가실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나 먼저 죽으면 이 얼마나 불효란 말이냐…. 어무이-!”
이 사내 역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옛날에 병에 걸린 부모님을 내버려두고 집에서 뛰쳐나온 전형적인 불효자였다. 울면서 어무이라는 말이 주효했는지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소연은 눈물을 철철 흘리며 두 사람의 손을 양손으로 하나씩 꼬옥.. 쥐어주었다. 그녀는 흘러내리는 콧물을 집어삼키며 말했다.
“흑흑.. 훌쩍! 걱정 말아요. 제가 다 알아서 주인님께 보고를 할게요. 물론, 아저씨들의 말은 절대로 안 하고요.”
그 둘은 그제서야 살았다는 듯 얼굴을 활짝 펴며 좋아했다.
“고.. 고맙다. 내가 이 은혜는 꼭! 잊지 않으마.”
“넌, 정말 착한 애구나. 아마 어머니도 네 말을 들으면 착한 아이라고 고마워하실 게야.”
두 사람의 입에 발린 소리에 소연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몸을 배배 꼬았다. 그녀는 잡고 있던 손을 풀고 말했다.
“그러시지 마시고 그것들 따로 잘 싸서 밖에 있는 마차까지 가져다주세요. 그러면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알아서 해준다는데 마다할 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재빨리 몸을 움직여 쥐고기에 알맞은 종이를 마련해 싸버리고 그 고기를 다시 상자에 집어넣었다. 가죽은 또 다른 작은 상자에 넣었다. 마른 사내가 모두 집어넣자 소연을 보고 물었다.
“이만하면 됐니?”
소연은 무거운 마음을 애써 떨쳐내며 대답했다.
“예. 어서 마차에 실어주세요.”
“그래. 그러자꾸나.”
그 둘은 허벌나게 뛰어서 마차 안에 다소곳이 내려놓았다. 잠시 후에 소연이 뒤따라오자 뱀눈의 사내가 소연에게 은근슬쩍 말했다.
“잘 부탁한다.”
소연은 중요한 사명을 맡은 양 굳은 결심을 보였다.
“예, 알았어요.”
마차 안에 들어간 소연은 창문에 고개를 내밀어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들도 따라 흔들어주었다. 마차가 저 언덕 너머로 사라지자 마른 사내가 옆에 있는 사내에게 말했다.
“괜찮겠지?”
뱀눈의 사내는 음흉맞은 미소를 지었다.
“킥킥.. 그럼, 저 머리 나쁜 계집애는 아마 모두 자기 잘못이라고 말하며 뒤집어쓸 걸? 그러면 우린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 되는 거지. 하하하!”
“아무튼 다행이야! 푸하하!”
두 사내는 한참 동안 웃다가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