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라자 2권 – 제3부 : 50명의 꼬마들과 대마법사 펠레일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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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에델린의 말은 우리를 잡아먹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건 진짜 저녁 초대였다.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니고 결국 여행자끼리 야외에서 동석하게 되는 정도의 것이었지만, 에델린은 성심껏 가진 음식을 내놓았고 우리도 가지고 있는 음식을 내어놓아 저녁 자리는 푸짐했다. 에델린이 가진 음식이 라고 이상할 것은 없었다. 아니, 몇 가지는 확실히 이상했다. 내 몸통만한 빵이라든지, 내 허벅지만한 소시지, 100파인트짜리 물통에 4파인트짜리 컵 을 사용하는데다가 웬만한 쇼트 소드에 견줄 만한 나이프를 써서 먹으니 확실히 이상했다.
나는 에델린이 권한 소시지를 안아들고는 식욕이 싹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그 양이 너무 지나치면 입맛 떨어진단 말이 야. 분명히 냄새도 좋았고 맛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건 너무 끔찍스럽게 크다고. 하지만 샌슨은 천국에 와 있는 것이 아니냐는 표정으로 그 소시지를 황홀하게 바라보았다. 어이구, 오거.
모닥불이 탁탁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우리가 있는 비탈에서는 아래의 평지에 있는 칼라일 영지가 잘 보였다. 달빛을 받아 괴괴한 은빛으로 반짝이는데, 이번에는 그 음영이 뚜렷해서 이 상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한 가지, 불빛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만 빼놓고. 이루릴은 수심 어린 표정으로 그것을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계속 구름을 부르고 계셨나요?”
에델린은 지친 표정으로 사과 세 개를 한꺼번에 입 안에 집어넣고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사흘째입니다. 사흘 전 이곳을 지나다가 저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지요. 아니, 눈으로 보기 전에 벌써 게덴의 기운을 느꼈습니다. 어떻게 손을 쓸 도 리가 없어, 그 세력이 강해지지 않도록 매일 구름을 불러 햇빛이 비치지 못하도록 하는 정도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루릴은 한숨을 쉬더니 모닥불에 장작을 던져넣으며 말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없습니다만………….”
나는 샌슨의 우걱거리는 소리에 방해를 받아가며 에델린의 이야기를 들었다.
에델린은 원래 미드 그레이드의 갈색 산맥의 바위산 동굴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녀의 가족(트롤에게는 특별히 부모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 가 그저 가족이다.)들은 인근 마을을 노략질하거나 여행객을 습격하며 살고 있었지만 결국 국왕이 보낸 군대에 의해 멸망당했다.
당시 그녀는 작은 트롤이었으며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 그녀를 붙잡은 병사들은 작은 트롤을 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신기하게 생각하다가, 어 쩌면 마법사가 사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지휘관 몰래 그녀를 잡아왔던 모양이다. 당시로선 그녀는 아직 고등한 지식 단계는 아니었고 모호한 의 식 세계밖에 가지지 못해서 트롤과 병사도 구별하지 못했고 병사들에 의해 물통 속에 가둬졌을 때도 세계의 모습이 바뀌는 것으로 알았을 정도였다. ‘세상이 갑자기 좁아졌다…………….’는 느낌이었다며 에델린은 웃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그녀로선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며 수년이 더 흐른 다음 에야 간신히 이해할 수 있었다.
마법사는 그녀를 사들였던 모양이다. 그가 정확하게 그녀를 어떤 목적에 사용했는지는 에델린으로서는 설명할 수 없다. 괴로운 기억은 없었던 것으 로 보아 마법사는 그녀를 그렇게 나쁘게 대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녀는 바닥에 앉아서는, 까마득히 키가 큰 노인이 중얼거리며 이것저것 만지작거 리는 것을 보며, 주위에 흩어진 종이 조각을 씹거나 뼈다귀 등을 우물거리거나 뭘 집어던지거나 하며 놀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당시에 제일 무서 운 것은 그녀가 다가가면 갑자기 키가 커지며 포효하는 괴물이었다. 훗날 생각해 보면 그것은 고양이였던 것 같다.
하지만 또 그녀의 세계가 바뀌어버렸다. 항상 어두우면서도 따스하고 아늑했던 마법사의 연구실이 어느 순간부터 하얗고 약간 싸늘하게 바뀌었다. 아마도 그 마법사가 그녀를 에델브로이의 신전에 넘겨버린 것 같다. 정확한 이야기는 그녀도 모르며, 신전에서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 는 그 마법사가 그녀에게 무슨 마법을 건 다음 신전에 넘겨주었을 것 같다고 추측한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갑자기 그녀는 인간의 말을 할 수 있게 되 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버지(에델린은 마법사를 그렇게 불렀다. 그 말을 할 때의 에델린의 얼굴에는 짙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적어도 트롤의 표정으로는 최상급의 표정일 거라고 확신 한다.)는 나에게 말을 배우도록 마법을 걸고는 내 정신 세계에 대해서는 신에게 맡긴다는 계획을 가지신 것 같았어요. 마법사 옆에 있어 봐야 원래의 포악한 성격이 드러나는 것을 앞당길 뿐이라고 생각하셨겠지요.”
에델브로이의 신전 사람들은 처음에는 상당히 거리감을 두고 그녀를 대했던 것 같다. 하긴 나라도 무서워서 접근하지 못했겠는걸. 하지만 신전의 프 리스트들은 자신을 잘 절제하며 차차 그녀에게 잘 대해 주었던 것 같다. 에델린이라는 이름도 그곳에서 얻었다. 그것은 에델브로이의 딸이라는 뜻이 다.
말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녀는 에델브로이의 경전을 읽고 그 송가를 부르며 자라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그때까지도 그녀는 어린 아기였고, 말을 하며 정신 세계가 고등해졌을 때부터 주위의 사물을 정확히 인식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 처음 인식한 것이 바로 신전의 모습이었다. 그러니, 어 떻게 보면 에델린은 모태 신앙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자라나면서 주위의 사람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에 대해 신경을 쓰게 되었다. 하지만 에델브로이의 프리스트들은 그녀는 트롤이며 자신들은 인간이라 는 차이점은 정확히 가르쳐 주었으나 그 때문에 그녀가 상처를 입지는 않도록 배려했다. 하이 프리스트는 분명한 어조로 물었다.
“넌 원래 사람을 잡아먹는 몬스터이다. 하지만 입맛은 바뀔 수 있는 것이지. 너 사람이 먹고 싶으냐?”
그녀는 빵과 우유가 더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자라나며 수련사가 되었다. 결국 그녀가 에델브로이의 프리스티스가 되려 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하이 프리스트는 며칠을 고민했다. 수련 사에 대해선 하이 프리스트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지만 프리스티스로 인정하는 것은, 인간이 아닌 트롤을 에델브로이의 프리스티스로 받아들이는 것 은 하이 프리스트마저도 함부로 결정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그는 1세기 이상 없었던 프라임 미팅을 선포했다. 교단의 모든 장로와 원로들이 한곳에 모이는 것이다. 대륙 곳곳의 에델브로이의 신전 장로들이 초 빙되었고 산 속에서 홀로 수행하는 원로들도 수십 년 만에 금기를 깨고 지상에 내려왔다. 몇몇 수련사들은 전설상의 인물인 줄 알았던 원로들이 실제 로 살아서 신전 정문을 들어서는 것을 보며 기겁하기도 했다 한다.
어쨌든 그것은 교단 역사를 통틀어 100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한 회동(會同)이라 며칠 동안 신전은 너무 바빴고, 에델린도 식사 수발을 한다든지 시중을 든다든지 하며 너무 바빠서 자신에 관련된 회의이면서도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래서 회의장에 불려갈 때는 창피스럽게도 음식 국물로 얼룩이 가득한 치마에 손에는 밀가루를 가득 묻힌 채 부들부들 떨면서 들어갔던 모양이다.
회의장 가득히 도열한 위대한 장로들과 원로들은 그 모습을 재미있게 보았다. 그들은 몇 가지를 질문했고 에델린은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대 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보다는 그 모습이 그들로 하여금 도저히 반대의 의사를 표시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결국 그녀는 에델브로이의 프리 스티스가 되었다.
국왕께서도 이 사건에 관심을 두었던 모양이다. 그제야 알게 되었지만, 그 신전이란 다름아닌 에델브로이의 총본산, 대폭풍의 신전 그랜드스톰이었 다. 그랜드스톰은 수도 바이서스 임펠에 소재한 신전 중에서도 꽤 위세 높은 신전이었으며, 적절한 방법으로 왕의 버릇을 고쳐줄 수도 있는 몇 안 되 는 신전 중 하나이다.
국왕께서 직접 내방하지는 않았지만 국왕께서는 ‘에델브로이의 대덕 고승들께서 내린 지혜로운 결정에 만족하겠다, 트롤 에델린이 원한다면 바이서 스의 시민으로 받아들인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으며, 공작과 몇몇 왕족은 직접 내방하여 에델린과 악수를 나누고(그들도 사실 꽤 떨렸으리라.) 갔다. 결국 그녀는 수도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포교 활동을 하거나 봉사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원칙상으로는.
원칙상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수도 시민들은 그녀를 멀리했으며 그녀의 봉사를 되도록 거부하려 했다. 그때는 이미 상당히 지혜로워진 그녀는 그 이 유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괴로워했고, 수없이 기도하며 또 기도했다. 결국 지혜로운 하이 프리스트는 그녀를 쫓아내었다.
“에델린, 인간을 보며 괴로워하지 말고, 세계를 보고 돌아오너라. 너 같은 미인을 홀로 세상에 보내려니 나도 썩 불안하다. 세상엔 미인이라면 프리 스티스의 치맛자락이라도 들춰보고 싶어하는 못된 녀석들이 많거든? 하하하, 어쨌든 세계 전체에 봉사하도록. 세상엔 발에 걸리는 게 진리라 할 만큼 진리가 많이 있으니 돌아올 땐 그중에 하나 훔쳐오너라. 그게 안 된다면, 특산품 과자라도 몇 개 사오든가.”
그래서 그녀는 순례자로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하이 프리스트의 처방은 적절했다. 수도의 시민들은 그래도 그녀에 대해 알고나 있었지만 세상의 다른 사람들은 대경실색했다. 영지나 마을 경비대에게 죽음을 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런 고초를 겪으며 그녀는 사람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가 는, 그들을 이해시키는 방법들을 하나둘 터득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도 진심 어린 그녀의 행동에 오해를 풀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달아나야 했 던 적도 많았다고 한다.
어쨌든 그녀는 근 2년 가까이 미드 그레이드를 떠돌다가, 이제 미드 그레이드를 떠나 웨스트 그레이드로 가볼까 생각했다고 한다. 웨스트 그레이드 쪽은 중부대로의 슬픔 아무르타트 때문에(이 대목에서 내 눈이 번쩍이는 것을 보고 에델린은 놀라는 모양이었다.) 포교 활동이 제대로 실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쪽에 목표를 두고 가고 있던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목적이 있다면, 그녀의 아버지를 찾아보는 것이다. 그녀에게 말을 가르치고 신전에 넣어준 마법사를. 하지만 신전측에서는 그 점에 대해서는 엄격했다. 그녀는 오로지 에델브로이의 딸일 뿐이라며 그 외의 과거는 철저히 감추었다. 그 래서 그녀는 거의 단서를 가지지 못한 채 추적하는 셈이다.
탁탁 소리를 내는 모닥불 옆에서, 앉은 키가 거의 3큐빗은 되는 에델린의 모습이 불길에 아늑하게 보였다. 그녀의 번뜩이는 이빨도, 초록색으로 번 뜩이는 피부도, 노란 눈동자도 나를 불안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마치 수줍은 듯이 두 무릎을 모아쥐고 어깨를 움츠리며 이야기하는 트롤. 무엇이 불 안하겠는가?
“고초가 심하셨겠어요?”
“자신의 삶이 고통스럽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키가 얼마나 되세요?”
“5.5 큐빗이지요.”
“역시, 그 정도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헤에, 마을에 들를 땐 그것도 꽤 불편했겠네요. 문턱에 부딪히는 일이 많았겠어요?”
에델린은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난 에델린에게 꽤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가까이라고 해봐야 다른 사람 보기에 동석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지만, 처 음에는 꽤 멀리 떨어져 있었으니까. 나는 이루릴에게 물어보았다.
“저, 그런데 이루릴은 어떻게 처음부터 아무런 불안 없이 접근할 수 있었죠?”
“불안? 아, 네. 누군가 신성 마법을 쓰고 있었고, 두 분밖에 없었으니, 당연히 이분은 프리스티스일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프리스티
스라면, 그 신께 대적하지 않는 이상 두려워할 이유가 없지요.”
나는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그래도 겉모습은 트롤이잖아. 이루릴은 그런 내 표정은 보지 않고 에델린에게 질문했다.
“에델린께서는 막강한 디바인 파워를 허락받으신 모양이군요. 트롤이면서도 그 정도의 디바인 파워를 획득했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데요.”
“에델브로이의 은총이겠지요. 어릴 때부터 그랜드스톰의 선학들께서 저를 지도해 주셨기 때문에 간신히 신의 지팡이 흉내를 낼 정도는 됩니다.”
“아마도 에델린같이 특별한 존재를 그분의 지팡이로 쓰도록 결정하신 것은, 에델브로이께서 당신에게 많은 것을 바라시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니 그런 높은 수준의 디바인 파워도 부여하신 것이겠지요.”
난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지만 이루릴의 말은 칭찬이었나 보다. 에델린은 꽤 기쁜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칼은 에델린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 영지에 대한 일은…….”
“어떻게든 수단을 강구해 봐야겠지요. 저, 그래서 말인데·
에델린은 몹시 불편하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그녀는 한참 주저하더니 말했다.
“저, 괜찮으시다면 여러분, 저를 좀 도와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어떤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저건 아마도 게덴의 프리스트의 짓이든지, 아니면 게덴의 힘을 간직한 아티팩트의 영향일 것입니다.”
“저희들도 그렇게 추측했지요.”
“예, 어느 경우이든 저 안에 들어가서 그 원인을 파괴해야 됩니다. 프리스트라면 그를 억압해야 될 것이고, 아티팩트라면 파괴해야겠지요. 전 저 안 에 들어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를 상대할 수는 없더군요. 첫날, 저 영지에 들어갔다가 그 여자에게 쫓겨 간신히 도망나왔습니다.”
“그 여자? 아, 검은 옷의 여자 말씀입니까?”
“보셨습니까?”
“예. 우리보고 나가라고 그러던데요?”
“까마귀들과 늑대들을 부르는 여자. 아마도 뱀파이어가 아닐까 하는데요.”
그 커다란 소시지를 다 먹고 물을 마시고 있던 샌슨이 마시던 물을 토했다.
“푸하! 배, 뱀파이어?”
“샌슨! 다 튀었잖아! 이런, 그런데 뱀파이어라고요? 무슨 뱀파이어가 낮에 나와요?”
에델린은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그 노란 눈동자를 껌벅였다.
“저 때문이지요. 햇빛을 가려버렸으니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해를 가리지 않았다면 저 영지에 헬카네스의 기운이 더욱 집중될 것입니다. 게덴의 힘이 더더욱 강화되겠지요.”
“뱀파이어라…………, 으우웃! 그런데, 그것도 게덴 때문인가요?”
나는 진저리를 치며 물어보았다. 에델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뱀파이어는 질병입니다. 그것은 전염병이라 할 수 있는 것이죠. 뱀파이어에게 물린 자는 뱀파이어가 되고……………. 라이칸스롭과 더불어 질병 중의 질 병이라 할 수 있는 것이죠.”
음, 그런가. 하긴 전염병이나 다름없군. 그러나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프리스티스가 뱀파이어를 무서워하죠? 그러니까 양쪽이 바뀐 것 아닌가요?”
에델린은 한숨을 쉬었다.
“저곳은 세이크리드 랜드입니다. 다른 신의 율법이 대단히 약화되는 장소이지요. 저 영지에 들어간 첫날, 그녀가 뱀파이어임을 짐작하고는 몇 번이 나 터닝해 보았지만 모조리 실패했습니다. 한두 번 성공하긴 했지만 그녀를 몇 초 동안 주저하게 만드는 정도였습니다.”
나와 샌슨은 그런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칼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이고 맙소사…………..”
“저, 왜 그러시죠, 칼?”
칼은 고개를 절절 흔들면서 대꾸했다.
“뱀파이어가 프리스티스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니! 여보게, 퍼시발 군, 네드발 군. 에델린께서는 사흘 동안이나 계속 날씨를 바꿀 수 있을 정도의 강 력한 디바인 파워를 지니신 프리스티스 아닌가. 그런데 그런 막강한 프리스티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니!”
그런가? 샌슨과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서로 마주본 다음 새삼 감탄스러운 표정으로 에델린을 바라보았고 에델린은 수줍다는 듯이 시선을 외면했다. 음, 수줍어하는 트롤이라. 보고 있기가 좀 그렇군.
이루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말했다.
“정말 무서워하지 않는군요.”
그녀는 엉덩이를 툭툭 털더니 곧 에스터크의 검집이 달린 벨트를 풀어버렸다. 뭐지? 우리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소드 벨트를 풀
어 에스터크에 둘둘 말더니 그것을 배낭에 꽂아놓았다. 그러고는 왼쪽 허벅지에 묶어둔 망고슈를 꺼내들었다.
“여러분은 잘 보이지 않겠지요. 불 붙은 장작개비를 하나씩 주워드세요. 초음파 때문에 귀가 먹을 지경이군요.”
“초음파?”
“박쥐입니다. 하지만 곤충을 잡아먹는 보통 박쥐는 아니군요.”
모두 긴장하여 일어났다. 우리는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불을 등진 채 섰다. 말들이 걱정되는데. 말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갑자기 앞이 캄캄 해졌다.
“으아아!”
박쥐가 내 얼굴에 달라붙었다. 얼굴이 긁히는 느낌에 소름이 쫙 돋았다. 황급히 그것을 잡아당겼는데 힘이 너무 세었던지 ‘찌직!’ 하는 소리를 내며 그대로 손 안에서 터져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신호로 주위는 ‘찍, 찌직.’ 하는 박쥐 울음소리로 가득찼다.
“우, 우아아!”
“찌이이익! 찍! 찍!”
박쥐가 눈보라처럼 휘날렸다. 마치 검은 종이 조각을 공중에 가득 던져둔 것 같았다. ‘찍! 찍!’ 하는 소리에 귀가 먹을 것 같았다. 아니, 어떻게 이렇 게 갑자기 나타났지? 나는 엉겁결에 바스타드를 뽑아 휘둘렀다. 하지만 바스타드로 날짐승을 잡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샌슨은 불 붙은 장작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바스타드는 아무 소용이 없었지만 불 붙은 장작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불 붙은 박쥐들이 주위를 정신 사납게 날았다. 찍! 찌지직! 불똥이 날아다녀 온몸이 델 것 같다. 그리고 노출된 팔의 피부엔 박쥐들의 날개가 닿았다. 끔찍한 기분이었다.
“눈을 가려! 목을 가려!”
칼은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르며 장작을 휘둘렀다. 나도 재빨리 장작개비를 뽑아들었다. 한 손에 하나씩 들고 그대로 일자무식, 마치 깃발춤을 추듯 이 온몸을 위아래 좌우로 뱅글뱅글 돌렸다.
“다 타버려!”
곧 머리에서 발끝까지 불 붙은 박쥐들이 부딪혀왔다. 통째로 구워지는 느낌이었다. 윽! 할퀴었어, 머리에 달라붙었어! 머리카락 아래의 피부를 긁어 대는 박쥐의 발톱, 나는 미친 듯이 머리를 터느라 장작을 다 집어던지고 말았다. 그리고 장작을 놓치는 순간 박쥐들은 새카맣게 내 몸에 달라붙었다. “이이아아아!”
나는 땅에 누워 굴렀다. 박쥐들이 터져나가는 느낌이 그대로 온몸에 전달되어 왔다. 팔에 화끈한 느낌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난 내가 집어던진 장작 위를 구르고 있었다.
“앗, 뜨거!”
내 팔다리는 박쥐의 조각들과 그을음, 그리고 이끼들이 묻어 뭐라 할 수 없이 역겨운 모습이었다. 이루릴은 박쥐와 일행이 모두 섞여버리니 마법을 쓸 수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하긴 저렇게 날아다니니 가만히 서서 캐스트할 시간도 없다. 그녀는 손에 든 망고슈를 거꾸로 쥐고 온몸을 날리며 박 쥐들을 쳐내렸다. 어둠 속에서 저렇게 정신없이 움직이는 박쥐들을 쳐내리는 것이다. 맙소사, 이루릴은 빗방울도 잡아내겠는걸?
에델린 역시 가만히 서서 캐스트할 방법이 없자 망토를 벗어들더니 그것을 휘둘렀다. 에델린의 거대한 몸에 어울리게 망토는 거의 천막 같은 크기였 다. 박쥐들은 그물에 부딪히는 물고기들처럼 망토에 맞아 휘감겼다. 그때였다.
“그 여자!”
샌슨의 고함소리. 땅에서 뒹굴던 나는 화급히 눈을 떠 바라보았다. 그 여자가 있었다.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지저분한 여자. 낮에 우리를 막아섰던 그 여자다. 그 여자는 우리에게서 약 40큐빗쯤 떨어져 박쥐와 춤추고 있는 우리를 감상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 여자는 두 손을 앞으로 뻗어올렸다.
“캐스트한다!”
나는 목이 터져라 외치며 그리로 달려갔다. 박쥐가 후드득거리며 상체 전체에 부딪혀왔다. 눈을 가리고 뛰려니 도저히 뛸 수가 없었다. 나는 그만 앞 으로 나뒹굴고 말았다. 돌, 돌이다. 나는 쓰러진 채 손에 잡히는 돌을 집어들어 무조건 집어던졌다.
정신없이 집어던진 것이라 돌멩이는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나무에 맞아 굉장한 소리를 내며 나무가 부러졌다. 콰지직! 짜작! 그 소리에 놀란 그 여자는 나무를 바라보다가 그만 캐스트에 실패해 버린 듯했다. 그리고 그때 이루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직 미사일!”
돌아보니 이루릴은 박쥐들이 잠깐 뜸해진 사이에 간신히 캐스트를 끝내는 모습이 보였다. 이윽고 그녀의 주위에는 새하얀 빛의 막대기가 다섯 개 떠 올랐다. 그녀는 손을 앞으로 뻗어 검은 여자를 가리켰다. 그러자 빛의 막대기는 곧장 그 여자에게로 날아들었다.
그러나 박쥐들이 날아들며 검은 여자를 보호했다. 매직 미사일 하나에 서너 마리의 박쥐들이 달라붙어서 몸으로 막아내었고, 결국 모두 소멸시켜 버 렸다. 그 사이에 뱀파이어는 여유 있게 캐스트를 시작했다. 이루릴은 어떻게 저지할 마법을 캐스트하려는 모습이었으나 박쥐들이 그녀를 가만히 두 지 않았다. 이루릴은 사방에서 날아드는 박쥐를 모두 그 작은 망고슈 하나로 쳐내는 무서운 솜씨를 보이고 있었지만 그 때문에 도저히 캐스트할 상황 이 아니었다.
“난 안 보이냐! 기름 젓기!”
나는 바스타드를 8자로 뱅뱅 돌리면서 앞으로 뛰었다. 박쥐들이 마구 맞아 터지면서 핏방울이 얼굴에 튀었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 달릴 수 없잖아! 그 여자는 내가 그렇게 무식하게 달려가자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는 유리 막대기가 들려 있었다.
“라이트닝 볼트!”
“으아아아!”
그 여자 앞에서 갑자기 번갯불이 튀겼다. 그리고 쫙 뻗어온 번개는 내가 마구 휘젓던 바스타드에 정확히 맞았고 나는 바스타드째 뒤로 밀렸다. 칼자 루로부터 전해 오는 번개에 몸이 감전되었다. 눈앞이 하얗게 바뀌었고 온몸의 감각이 없어졌다. 밤하늘이 이렇게 하얗다니. 발뒤축이 통째로 뭉개지 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뒤로 밀려가다가 발에 힘을 주었다. 나야 이미 맞았지만, 뒤의 사람들이 맞게 할 수는 없다! 나는 제자리에 멈춰 선 채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그 번개를 다 맞았다. 내 몸을 밀어붙이는 번개는 마치 100년 동안 계속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작렬하는 번갯불 속의 100 년이 끝나는 순간이 다가왔다.
이건 무슨 마법이지? 갑자기 땅이 일어서더니 내 얼굴을 때리네?
“후치!”
샌슨의 고함소리인가?
“으어어어아! 우아, 후아, 흐카악!”
이런 대답을 해서 미안해. 나는 온몸을 경련시키느라 도대체 대답할 상황이 아니었다. 몸이 진정되지 않고 계속 마구 뒤틀려 떨렸으며 머릿속엔 계 속 불꽃이 튄다. 사방이 하얗게 변했다가 시커멓게 바뀌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런 불꽃 사이사이로 나에게 다가오는 검은 옷의 여자의 모습이 보인 다. 그 여자는 내가 떨어뜨린 바스타드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위로 쓱 들어올려 내 가슴을 겨냥했다.
“꺄아아!”
갑자기 여자의 배에서 화살이 돋아났다. 아니, 화살이 날아가 박힌 것인가? 나는 침을 마구 튀기느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침을 흘리면서 머리를 계속 떠니 그럴 수밖에. 힐끗힐끗 보이는 모습으로는 아무래도 칼이 한 방 쏘아붙인 모양이다. 그리고 그때쯤 내 경련도 조금씩 진정되고 있었다. 그 러나 경련이 진정되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살이 다 익어버린 모양인데?
“으허, 헉! 하아악! 으악!”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도 누울 수가 없다. 땅에 닿는 부분이 너무 아팠다. 나는 덜덜 떨면서도 일어나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땅에 닿는 부분이 적어지니까. 일어나는 동안 땅을 짚은 손바닥이 그대로 찢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간신히 앉고 나자 나는 두 손을 앞에 모아 덜덜 떨었다. 누가 날 보 면 알코올 중독이라고 하겠군. 나는 턱을 덜덜 떨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씨익 웃었다. 하지만 이가 부서져라 부딪혀서 웃는 것도 힘들었다.
나는 앉은 채로 앞에 있는 여자가 배에서 화살을 뽑아내려고 하는 모습을 감상했다. 우습지도 않군. 이런 상황에서 이런 자세로 구경이라. 으헉, 헉. 침은 계속 흘러내려 가슴이 차가웠다.
그 여자는 화살을 뽑아내어 땅에 집어던졌으나 그 사이에 옆구리에 다시 한 방 맞고 말았다. 여자는 화살을 땅에 집어던지는 자세에서 그대로 균형 을 잃으며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나는 앉은 채 그 모습을 아주 잘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은 계속 떨리고 미칠 듯이 아파왔다. 여자는 땅에 쓰러 진채 땅을 박박 긁었다.
“됐다! 박쥐들이 물러간다!”
아, 아하, 저 여자가 쓰러지니까 박쥐들도? 발소리, 쾅쾅거리는 이 엄청난 발소리는 아마 에델린의 것이겠지. 에델린. 트롤 프리스티스면 어때요. 저 여자 명복이나 빌어줍시다. 그리고 내가 죽으면, 당신이 내 명복을 빌어줘도 화내지 않겠어. 아니지. 내가 어떻게 화낼까요. 당신은 신도 흡족해할 경 건한 트롤. 난 신학에는 관심 없는 인간 개구쟁이. 이윽고 내 어깨에 닿는 손.
“괜찮아, 후…….”
“크아아아아아!”
어깨가 찢어지는 느낌. 잡지 마! 제, 제기랄, 나, 날 죽일 셈이야? 명복 어쩌고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곧장 죽이냐? 나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엄마 찌찌.”
“다 큰 녀석이 징그럽게.”
나는 어머니에게 안겨 있었다. 분명 17세의 커다란 덩치 때문에 어머니에게 안길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안겨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유방을 만지작 거리며 칭얼거렸다.
“난 죽을 뻔했어, 엄마. 벼락을 맞았다고.”
“그러니? 그래도 친구와는 사이좋게 지내야지.”
“싫어. 벼락하고는 같이 놀고 싶지 않아.”
그러자 옆에서(?)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나도 그렇게 좋은 신세는 아니다, 아들아.”
돌아보니, 아니, 돌아보지는 않았다. 그냥 보였다. 어쨌든 아버지는 아무르타트의 앞발에 깔린 채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말했 다. 아무르타트는 우리 아버지를 밟은 채 크게 웃으며 외쳤다.
“크하하하! 10만 셀! 10만 셀을 줄 테니 이놈을 데려가라!”
그러자 아버지는 왼손으로 턱을 옮기며 말씀하셨다.
“뭐라고? 천만에. 내 주정뱅이 아들이 겨우 10만 셀에 날 되찾아 갈 것 같은가?”
물론 당연하다. 난 어머니에게 안겨 있다. 잠시 동안은 아버지를 아무르타트에게 맡겨둬도 무방하리라. 아무르타트는 더 크게 웃었다.
“우하하하! 그렇다면 100만 셀! 100만 셀이다!”
귀찮아 죽겠네. 아무르타트는 너무 시끄럽다. 그러고 보니 그 머리에는 제미니의 얼굴이 달려 있다. 흠, 시끄러운 계집애. 항상 날 괴롭히는군. 제미 니는 엉덩이에 착 달라붙고 허벅지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멋진 가죽 바지를 입고 있다. 이루릴인가? 난 이루릴에게 안겨 있다. 나는 이루릴의 유 방을 만지고 있었다. 이루릴은 웃으며 룬어로 된 자장가를 불렀다.
“잘 자라, 잘 자라. 내 귀여운 아가. 처녀가 애를 낳을 때까지.”
룬어를 알아듣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크게 하품을 하며 곯아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엄마의 유방은 기분 좋게 내 볼을 누르고 있다. 마치 바위처럼 단단한 유방………………
“후치?”
“으아아아!”
트롤의 얼굴이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소스라치며 일어났다. 잠시 얼이 빠져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침이었다. 박명의 하늘에 검푸른 빛깔이 서서히 엷어지고 있었다. 높고 굵은 침엽수들의 검은 그림자 사이로 보이는 하늘의 조각들은 제각기 다른 색깔 사그라들어가는 모닥불에서는 붉은 불똥만이 검은 잿더미 사이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칼은 쓰러진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무언가를 마시다가 날 쳐다보았고, 바로 옆에선 샌슨이 그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롱소드를 닦던 손을 멈추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루릴은 약간 떨어진 위치에서 바닥의 이끼들 사이에 있는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실루엣으로 보였다. 아마 기주를 하는 듯했다. 아 이고, 맙소사. 조금 전의 꿈이 떠올라 이루릴을 바라볼 수가 없다. 나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러자 다시 트롤의 얼굴이 보였다. 에델린이었다. 에델 린은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가 누워 있었던 장소는 아무래도 에델린의 무릎 위…………, 설마!
“기분이 괜찮아요?”
에델린의 질문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설마, 설마 난 에델린의 유방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샌슨을 돌아보았고, 그 얼굴을 본 순 간 나는 진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를 외면하면서, 입가에 치미는 웃음을 참으려 애쓰는 저 얼굴. 유피넬에 맹세코! 난 이제 고향에 돌아가면 사회 적으로 매장이다. 트롤에게 안겨 그 찌찌를 만지작거렸다니!
“어, 아, 예. 좋은 아침이죠?”
내 대답에 에델린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고개를 휘휘 돌리며 어떻게든 말을 이으려 애썼다.
“어, 어떻게 된 거죠? 나 벼락을 맞았는데.”
그러고 보니 온몸이 말짱하다. 나는 손바닥을 살펴보고 팔을 살펴보고 얼굴을 만져보았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칼이 대답해 주었다.
“에델린 양이 자넬 치료했네.”
아, 그런가? 성직자의 신성 치료. 칼이 어제 그렇게 설명하고 감탄했지만, 난 솔직히 오늘 아침의 내 상태에 더 감탄했다. 에델린은 정말 엄청난 성 직자인가 봐. 나는 감탄하는 표정으로 에델린을 바라보았다.
“아, 감사합니다. 에델린.”
“천만에요. 후치가 벼락을 막아준 덕분에 우리 모두가 살았는데요. 정말 용감하시군요, 후치. 그 엄청난 벼락에 온몸이 밀리면서도 끝까지 쓰러지지 않았다니. 저기, 저 자취 보이세요?”
에델린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쟁기로 갈아엎은 듯이 풀이 마구 헤쳐지고 땅이 파인 자국이 두 줄로 나 있었다. 그 폭은 대략 내 어깨 넓이 정도. 라 이트닝 볼트에 밀리면서 내 발이 남긴 자국인가? 길이는 약 10큐빗. 세상에, 내가 저렇게 밀렸던가? 내가 돌았나 보다.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죠? 엄청난 고통이었을 텐데 끝까지 다 막아내다니, 정말 놀라워요.”
“원래 번개하고 친하거든요.”
내 대답에 에델린은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무서운 확인의 순간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질문했다.
“저, 에델린. 내가 정신을 잃은 사이에 뭔가 당신에게 실례를…………….”
에델린은 빙긋 웃었다. 삐죽삐죽한 이빨이 멋있군.
“제가 엄마 같았나 보죠?”
“푸헥헤헤헤헤헤!”
샌슨은 포복절도를 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절절 흔들면서 미친 듯이 웃는, 품위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웃음이다. 칼도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나는 땅을 파고 싶었다. 더도 말고 내 몸 하나 완전히 들어갈 정도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