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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파린 씨는 품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울긋불긋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카드 한 무더기를 꺼내었다. 그는 곧 현란한 손놀림으로 카드를 뒤섞기 시작했다. 리테들 씨도 흥미가 동한 표정을 짓더니 우리들과 합석했다. 암파린 씨는 카드를 꼼꼼하게 섞은 다음 한 무더기로 만들어 테이블에 거꾸로 올려놓았다.
“카드 점이에요? 처음 해보는 건데.”
“그래? 왼손으로 치거라.”
“친다고요?”
네리아가 말했다.
“적당히 덜어서 옆에 내려놓으라는 말이야.”
난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자 암파린 씨는 옆에 내려놓은 무더기 위에 원래 무더기를 올려 놓더니 그대로 놓고는 뭔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암파린 씨는 카드를 들고는 한 장씩 거꾸로 내려놓기 시작했다. 먼저 석 장을 나란히 놓더니 그 다음 두 장을 내려놓았다. 그 다음은 넉 장을 내려놓고는 다시 두 장을 내려놓아 모두 열한 장이 되도록 했다. 한 장 한 장을 내려놓을 때마다 암파린 씨는 알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며 진지한 동작으로 카드를 내 려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장을 좀 떨어진 곳에 따로 내려놓았다.
“자. 이건 엄숙한 작업이오. 한 소년의 미래가 걸린 작업이니까 모두들 함부로 소란을 떨거나 하지는 말아주시오. 자네 이름이 뭐지?”
“후치. 후치 네드발.”
“좋아, 네드발 군. 앞에 세 장은 자네의 과거를 나타내는 거야. 어디 펼쳐 보게. 아, 그런데 말이야. 뒤집는 방향도 중요하거든? 좌우로 뒤집을지 앞뒤로 뒤집을지 잘 생각해서. 물론 왼손으로만 해야 되네.”
난 왼손으로 앞에 놓은 석 장의 카드를 뒤집었다. 한 번은 좌우로, 다른 두 번은 앞뒤로 뒤집어놓으니 테이블 위에는 먼저 우스꽝스럽게 생긴 광대, 황야를 질주하는 전차, 힘센 장사의 그림이 나타났다. 마지막 힘센 장사의 그림은 거꾸로였다.
“광대와 전차, 힘…………. 힘이 역방향이고 세 번째? 이놈 봐라? 여자가 많지?”
“예?”
“으하하하!”
난 얼빠진 표정을 지은 채 마구 웃고 있는 샌슨을 바라보았다. 샌슨은 테이블을 꽝꽝 두드리면서 말했다.
“크핫하! 정말 용하네요.”
네리아 역시 배를 잡고 웃고 있었고 암파린 씨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나이라면 괜찮아. 유혹에 약한 성격에 여자가 많으니 고민이 좀 되겠지만, 자네 팔자는 한 여자가 꽉 붙들고 있으니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어. 그 많은 여자가 다 소용이 없군 그래. 하지만 조심하는 것이 좋겠어. 자넨 만사에 적극적인 성격이지만 단 하나, 여자에게만은 굴복하기 쉬운 운이라구. 정신 바짝 차려야 돼!” 콰당! 기어코 샌슨은 의자째로 넘어가 버렸다. 샌슨은 허우적거리며 일어났지만 거의 실신할 정도로 웃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더뎠다.
“크힉, 크히히히!”
네리아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난 언짢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은 여자에게 굴복하진 않았어요. 그 다음 두 장은 뭔데요?”
“이거 말인가? 이건 자네의 현재를 나타내지. 역시 주의 깊게 뒤집어보게나.”
현재라구? 어디 보자. 난 이번엔 둘 다 좌우로 뒤집어놓았다. 샌슨과 네리아가 웃음을 멈추고 바라보는 가운데 나타난 것은 초승달의 그림이었는데 땅이 위로 간 것 을 보아 거꾸로인 모양이다. 그리고 또 한 장은 역시 거꾸로 된 남자의 그림이었는데 남자는 뭔가 예복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암파린 씨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말했다.
“이거 봐라? 자네, 여행의 목적이 거의 달성되어 가는 순간이군 그래? 그런데 거꾸로 된 하이 프리스트? 자네 여행의 목적을 위해 가장 중요한 자가 지금 자네 곁을 떠나 있군.”
“가장 중요한 자가 없다구요?”
“그래. 게다가 두 번째라…………. 그자를 찾지 못하면 거의 성공에 가까운 자네 여행이 어쩌면 실패로 끝나게 될지도 모른다네. 그자는 자네 여행의 열쇠를 쥐고 있군, 그래.”
어라, 뭔가 섬뜩한 느낌이 드는걸. 어디 보자. 이제 바이서스 임펠까지 돌아왔으니 갈색 산맥으로 안전하게 가기만 하면 내 여행은 거의 끝난 셈이다. 아무르타트에 게 줄 보석은 이미 준비되어 있고…………, 뭐 하나 걱정할 것이 없군. 그런데 가장 중요한 사람이 없다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레니지. 그런데 레니는 지금 2층에서 잘 자고 있잖아. 네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샌슨은 궁금한 얼굴로 말했다.
“암파린 씨. 이 친구의 여행 목적은 제 여행의 목적과 같은데 말이지요. 뭐 일행이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중요한 사람들은 다 함께 있는데요?”
“하하하! 대개 뼈저린 실패란 완전무결한 준비를 갖추었다고 믿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법이야. 분명히 자네들은 지금 가장 중요한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어. 아, 이 미 만났지만 모르고 지나쳐버렸을 수도 있지. 어쨌든 빨리 그자를 찾는 것이 좋을 거야. 현재로선 성공의 가능성이 높은 만큼 실패의 위험도 높아. 한마디로 다른 모 든 조건들이 완수되어 있는데 그자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어.”
“그것 참……. 그럼 그자가 누군지는 알 수 없어요?”
내 질문에 암파린 씨는 세 번째 열의 카드를 가리켰다.
“자네의 미래를 보세나.”
세 번째 열에 있던 네 장의 카드를 뒤집었다. 나타난 것은 아무래도 왕으로 짐작되는 남자, 거꾸로 놓인 두 명의 연인의 그림, 그리고 수레바퀴처럼 생긴 알 수 없는 바퀴 그림과 추악하게 생긴 악마의 모습이었다. 암파린 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카드들을 바라보았고 그러자 네리아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어떻게 나왔어요? 후치는 내 아들이 되는 거예요?”
“악! 네리아, 제발!”
“뭐 어떠니. 그런 좋은 운이 나오지 않는다고는 볼 수 없잖아?”
우리가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운차이는 한숨을 푹 쉬더니 다시 나무 토막을 깎기 시작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점을 친다고 해도 자신만은 나무를 깎고 있 겠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암파린 씨는 턱을 만지작거리더니 말했다.
“일단 자네의 그 중요한 사람은 만날 가능성이 높아. 안심해도 좋겠군.”
“그래요? 다행이군요.”
“그런데 말이야………. 그 사람과 만났을 때 자네의 선택이 중요해지는군.”
“선택이라구요?”
“그래. 그자는 지금 자네에게 찾아오고 있어. 분명히 만나게 될 거야. 그런데 자네의 선택 여하에 따라 그자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오히려 방해를 받을 수도 있 어. 자네의 강력한 행동력과 자넬 괴롭히려는 운이 막상막하를 이루고 있거든. 지금 유피넬과 헬카네스는 지금 자네에게서 손을 뗀 상태야.”
“예? 제가 유피넬과 헬카네스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말씀이세요?”
“아냐, 아냐. 이 친구야. 보통 모든 사람들이 다 유피넬과 헬카네스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구. 그들이 직접 개입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영웅들에게 일어난 사건일 경우에나 그렇단 말이야. 하하하! 이 친구야. 아니 어떻게 유피넬과 헬카네스가 인간사에 마구 끼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아…………. 그런 뜻이에요?”
암파린 씨는 날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자넨 대단히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야. 자네의 현재엔 아직 준비되지 않은 그 조력자가 자네의 미래에선 자네의 옆에 있게 될 것이네. 모든 준비는 완료되겠지. 그리고 그 시점에서 유피넬과 헬카네스도 자네에게선 손을 뗄 거야. 자넨 오로지 자신의 힘과 지혜로만 그 중요한 선택을 수행해야 되겠지.” 암파린의 진지한 말투 때문에 테이블은 순간 조용해졌다. 촛농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그때 암파린 씨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하, 걱정 말게! 자네를 책임진 그 여자의 운이 썩 좋아. 그 여자의 운 덕분에 자네도 운이 필 가능성이 높은걸?”
웃어야 되나…………. 제미니. 네 운이 좋단다. 하하하. 악! 나도 모르게 제미니가 내 팔자를 꽉 붙든 여자라고 생각해 버렸어! 샌슨은 크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임마! 크하하하! 기분 좋겠다? 제미니 덕분에 네 운도 좋다잖아?”
내 어깨를 두드리는 저 샌슨의 손을 더도 말고 딱 10분 동안만 깨물어주고 싶다. 샌슨을 향한 내 모든 사랑을 담아 손뼈가 으스러지도록. 으으으!
네리아는 생긋 웃더니 말했다.
“그럼 나머지 두 장은 뭔데요? 그리고 저기 있는 한 장은?”
“아, 이거 말인가? 잠시 기다려보게. 자, 네드발 군? 나머지 두 장도 펼쳐보세나. 그런데 말이야, 이번엔 두 장 모두가 아니라 딱 한 장만 뒤집을 수 있다구. 알겠어?” “한장만이오? 어느 거요?”
“바로 그걸 선택하게. 둘 중 하나를 자네가 선택한 다음 뒤집어야 되네. 물론 방향도 잘 결정해서.”
허엇 이거 참. 눈 감고 짚어볼까? 에이, 뭐 대단한 것이라고. 겨우 카드 점일 뿐인데. 난 오른쪽 것을 뒤집어놓았다. 테이블 위에 드러난 카드는 탑을 쓰러뜨리는 드 래곤의 카드였다. 드래곤의 공격에 의해 탑은 반쯤 무너지고 있었다. 어라? 무너지는 탑이라니. 난 카드를 흘긋 보았다가 암파린 씨를 쳐다보았다. 암파린 씨는 빙긋 웃더니 말했다.
“탑이잖아? 하하.”
“왜 그러시죠?”
“축하하네. 자네에겐 내 조언이 적절했군.”
“적절했다고요?”
“그래. 이제부터 조언하지. 자넨 두 명의 인간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게 되어 있어. 첫째, 자네의 사랑은 한 여자가 가지고 있어. 요건 어쩔 수 없을 거야. 그 여자 는 자넬 꽉 틀어질 테니 반항할 생각 하지 말고 순순히 받아들이게. (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둘째, 자네가 지금 하고 있는 모험은 한 조력자……………, 어떤 열쇠 보관자 가 책임지고 있지. 그자를 찾는 것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그때 자넨 생각을 잘해야 하네. 셋째, 내 조언은 자네에게 유익할 것일세. 이 패는 내 예언이 얼마나 가치 있 는 것인가를 나타내는 것이야.”
“아, 고맙습니다. 그런데………왜 두 장 중에 하나만 선택하게 하는 거지요?”
“이거? 이건 특별한 사람들만 펴볼 수 있는 패야. 하지만 자네에겐 필요가 없지.”
“그래요? 궁금하네요.”
“하하. 알아서 될 게 있고 알면 안 되는 것이 있는 법일세. 자네에겐 이 패가 허락되지 않았어.”
“그럼, 저기 따로 떼어놓은 패는 뭔가요?”
난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있는 패를 가리켰다. 암파린 씨는 히죽 웃으며 카드들을 쓸어모았다.
“그것도 비밀. 자넨 알면 안 되는 것이지.”
“그것 참…….”
그때 네리아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동전 두 개를 내어놓더니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나도 좀 봐줘요.”
암파린 씨는 씨익 웃더니 두 개의 동전 중 하나만 집어들면서 말했다.
“얼마든지. 그리고 하나는 가져가시오. 미인은 항상 내 약점이란 말이야.”
네리아는 환호를 지르며 동전 하나를 가져갔고 샌슨은 속이 거북하다는 표정을 지은 죄로 네리아에게 꽤나 꼬집혔다. 암파린 씨는 조금 전과 같은 순서로 카드 열한 장을 늘어놓고는 역시 조금 떨어진 곳에 한 장을 놓았다.
네리아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말했다.
“아, 두근거린다. 어디, 첫 번째 것은 내 과거라구요?”
“하하. 펼쳐보시오.”
네리아가 펼쳐든 카드는 거꾸로 된 힘, 수레바퀴, 그리고 위아래가 바뀐 탑이었다. 암파린 씨는 빙긋 웃더니 말했다.
“그 영업 별로 재미없었겠소?”
“예?”
“아가씨가 해온 일은 아가씨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일이야. 직업 바꾸는 것이 좋겠어. 취향에도 안 맞고 적성에도 안 맞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큰 문제는?”
네리아는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암파린 씨도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솜씨가 뒷받침되지 않거든.”
이번엔 나와 샌슨이 배를 붙잡고 웃어대었다. “킬킬킬킬!” 네리아는 입을 딱 벌리고 암파린 씨를 바라보았고 그 얼굴을 보다가 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우헤헤헤헤! 아저씨 정말 잘 맞추네요!”
“뭐야! 야! 후치!”
“오우, 제, 제발…… 크하하! 꼬, 꼬집지 좀 말아요. 으킬킬킬!”
“이……, 씨! 나 그래도 이 바닥에선 꽤 유명하다고요!”
네리아의 앙칼진 대답에도 불구하고 암파린 씨는 유들거리며 말했다.
“아마 아가씨만 그렇게 생각할 거요. 하하하.”
“아저씨 순 엉터리야. 어디, 두 번째 것은 현재라구요?”
네리아는 화난 동작으로 두 번째 열의 카드를 재빨리 뒤집었다. 나타난 것은 뒤집힌 광대와 별이 그려진 카드였다. 별이라…………, 루트에리노 대왕의 여덟 별? 암파린 씨는 내 망상에도 상관없이 말했다.
“흐음. 도와주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좋수다. 그 마음 계속 간직하는 것이 좋겠군.”
“예? 아, 예…… 예?”
네리아는 당황한 듯이 이상한 대답을 해버렸다. 암파린 씨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아마 이 소년과 같이 여행해서 그런지 비슷해. 지금은 그런 대로 만족할 만한 결과이긴 해. 하지만 아가씨 자신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렇지만 좋은 사람 들이 주위에 있군.”
“좋은 사람들…………. 그래요?”
“그래요. 하하.”
네리아는 곰곰이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다가 그녀는 갑자기 해죽 웃더니 세 번째 열을 가리켰다.
“이건 제 미래라구요?”
암파린 씨는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리아는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더니 카드를 조심조심하면서 뒤집었다. 그녀는 완전히 열중하고 있는지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코를 간질이는데도 아무 느낌을 받지 못하는 모양이다. 나타난 카드는 거꾸로 된 하이 프리스트, 거꾸로 된 악마, 그리고 은자처럼 보이는 낡은 옷의 프리스 트와 연인의 모습이었다. 암파린 씨는 손바닥을 딱! 쳤다.
“굉장하군!”
“예? 뭔데요? 좋은 거예요?”
네리아의 다급한 질문에도 불구하고 암파린 씨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계속 카드를 바라보았다. 네리아가 안절부절 못하다가 다시 뭐라고 말하려 할 때 암파린 씨가 말했다.
“그 남자 잡아요!”
“예?”
“그 남자 잡아요. 갈등할 필요 없어. 그 남자는 아가씨 천생연분이야. 쓸데없는 고민을 할 필요는 없어. 그리고 아가씨 자신을 비하할 필요도 없고. 결국 그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아가씨 거야. 그 남자는 이 어린 친구보다 더 심하게 붙잡혀 있는걸?”
“아니…………,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몰라? 골치 아프군. 아직 아가씨는 모르는 모양이군. 상관없지. 암. 미래란 원래 그런 거요. 어느 날 아침 눈을 뜰 때 침대 옆에, 과거 같으면 도저히 생각지도 못할 남자가 누워 있는 것을 보고서도 ‘어서 일어나세요, 여보!’라고 말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야. 어쨌든 아가씨는 확실한 남자가 있어. 그리고 그 남자 절대로 포기하면 안 돼요. 자신이 그 남자에 비해 모자란다거나 ‘나 같은 여자 사랑해 줄 리가 없어…………….’ 하는 생각은 절대로 할 필요 없어. 다시 없는 바보 같은 생각이지.”
암파린 씨의 말을 듣고 있는 네리아의 얼굴에 홍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네리아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고 바로 그때! 오, 젠장. 샌슨이 입을 열어버렸다.
“이봐요. 그 불쌍한 남자가 도대체 누군지는 알 수 없어요?”
샌슨은 아마 오늘 밤새도록 쥐어뜯긴 손등을 아파하며 베개를 눈물로 적시게 될 터이다. 네리아는 마지막 카드 두 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도 선택해야 하죠?”
암파린 씨는 샌슨의 손등에 난 굉장한 상처를 바라보고 있느라 잠시 대답을 못했다. 그래서 네리아는 암파린 씨의 허락도 없이 마지막 카드를 골라 뒤집었다. 목 매 달린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네리아는 카드를 보더니 움찔했다. 목 매달린 남자? 반역을 일으켜서 교수대에 걸린 도둑 길드원들? 암파린 씨는 카드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입맛을 쩝 하고 다셨 다.
“아가씨 패는 희한하군. 이 패가 쓰일 일은 잘 없는데.”
“예?”
암파린 씨는 아무 대답 없이 따로 떼어둔 카드에 손을 가져갔다. 그는 잠시 카드 뒷면을 슬슬 문지르면서 말했다.
“이건 사실 내 카드거든. 엉터리 점술가라면 고객의 운명에 대해 통달한 척하지만 사실 운명을 본다는 것은 그렇게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오. 예언자와 대상 간의 문제지. 나는 단수가 아니지 않소?”
어라? 핸드레이크의 말이잖아? 내가 놀라서 뭐라고 말하려 했을 때 암파린 씨는 조용히 그 ‘자신의 카드’라는 것을 뒤집었다. 나타난 것은 여왕으로 짐작되는 여자의 모습이었는데 뒤집혀 있었다.
암파린 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네리아는 뒤집힌 여왕의 카드를 바라보다가 반쯤 웃으며 말했다.
“어머, 여왕님이네……………?”
그러나 네리아의 밝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암파린 씨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암파린 씨는 손을 모아 손가락을 하나씩 꺾기 시작했다. 우둑, 뚜두둑. 그는 그렇게 크 게 호흡을 하더니 말했다.
“마지막 카드를 뒤집어요.”
“예?”
암파린 씨는 네 번째 열에서 아직 뒤집히지 않은 카드를 가리켰다. 네리아는 당황한 눈으로 그 카드를 바라보더니 손을 내밀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암파린 씨를 바 라보며 말했다.
“왜지요? 후치는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고 했잖아요?”
“아가씨 운이 다른 사람 운과 같을 수 있나! 어서 뒤집어요!”
암파린 씨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지만 강한 힘이 담겨 있었다. 네리아는 불만스러운 눈으로 암파린 씨를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손을 내뻗었다. 마치 뱀이나 벌레 시 체 같은 것에 손을 가져가듯이 흠칫거리면서. 그때였다.
“건드리지 마.”
네리아의 손이 확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한쪽으로 집중되었다. 그곳에는 여전히 나무 토막을 깎고 있는 운차이의 모습이 있었다. 나는 잠시 운차이의 말의 내용보다는 그가 네리아에게 말했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그때 운차이의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마지막 숨겨진 카드는 천기다. 건드리지 마.”
두 번이나! 운차이가 두 번이나 네리아에게 말했다. 물론 운차이는 시선을 나무 토막에 고정시킨 채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태도로 말했지만 저건 분명히 네리아에게 하는 말이다. 네리아는 마치 뜨거운 것에라도 닿은 듯이 손을 가슴 앞에 꼭 모아쥐고는 뒤집힌 카드와 운차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녀의 입이 열렸을 때 난 그녀의 목소리가 마치 숨소리처럼 가늘다는 사실에 놀랐다.
“운차이……, 저건 건드리면 안 되는 거야?”
운차이는 조용히 나무 토막을 테이블에 올려놓더니 손에 든 나이프는 테이블에 집어던졌다. 팍! 하는 소리가 나면서 리테들 씨의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운차이는 상 관하지 않고 암파린 씨를 쳐다보았다.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을 때 나는 두 번째로 놀랐다.
“Sfrumn forghseer. Ne brai can-fabul ren jian pnahe?”
테이블 주위의 시선이 이번엔 다급하게 암파린 씨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암파린 씨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입을 열 때는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리테들 씨 말마따나 세 집 처녀가 애를 낳으면 놀랄 일도 없는 건가?
“Ren………… Savnak.”
“Ahn choudar, sfrumn forghseer. Pnahe un kmaru.”
암파린 씨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대답했다.
“미안합니다. 그럼, 좋은 밤 되시길.”
암파린 씨는 곧 다급한 동작으로 일어났다. 우리들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황급히 일어나서 나무 궤짝을 다시 둘러메었다. 그가 테이블 위의 카드들 을 쓸어모으려 할 때였다.
“건드리지 말아요!”
탁! 암파린 씨의 손은 다른 손에 의해 허공에서 붙잡혔다. 암파린 씨의 손을 붙잡고 있는 것은 네리아였다. 네리아는 그의 손목을 꽉 감아쥔 채 운차이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입술은 웃고 있었다.
“이것 봐. 나도 좀 알고 싶어. 그리고 당신, 돈을 내었으니 끝까지 해야지요. 안 그래요?”
네리아는 암파린 씨에게 붙임성 있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하지만 암파린 씨는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아가씨. 이건 내 실수였소. 사과하겠소. 이 패는 저 소년과 마찬가지로 볼 필요가 없는 패라구요.”
“난 신경 쓰지 않아요. 그러니 이유는 말해 주고 가야지요.”
“이유? 그런 거 없어요. 아무 쓸모가 없는 거라구!”
네리아는 고양이 같은 눈으로 암파린 씨를 쏘아보았고 그는 네리아의 그런 눈을 바라보다가 흠칫했다. 하지만 그가 뭔가 수단을 강구하기도 전에 네리아의 손이 먼 저 움직여버렸다. 네리아는 남아 있는 손으로 재빨리 마지막 카드를 뒤집었다.
“어머? 이게 뭐야?”
테이블 위에 드러난 것은 마법사였다.
누가 보더라도 마법사라고 짐작할 수 있는 모습의 남자였다. 남자는 무시무시한 시선을 약간 기울인 채 눈으로 손에 든 지팡이를 부러져라 꽉 틀어쥐고 있었다. 네리 아는 재미있다는 얼굴로 말했다.
“마법사네? 에비! 꼭 리치몬드 같네. 이건 무슨 뜻…………?”
네리아의 말꼬리가 흐려졌다. 왜 저러는 거지? 난 네리아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파랗게 질려버린 암파린 씨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암파린 씨는 더듬더듬 말했다. “아, 좋은 패요.”
“좋아요?”
설마? 저런 얼굴로 말했다간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해도 꼭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으로 알아듣겠는걸? 그러나 암파린 씨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말 했다.
“암, 좋아요. 정말 좋군. 이 패는 원래 그 이상은 말해 줄 수가 없는 패요.”
그렇게 말하면서 암파린 씨는 재빨리 손을 잡아뺐다. 네리아는 무의식 중에 그의 손을 놓치고는 다시 그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암파린 씨는 재빠른 동작으로 카드를 쓸어 모았다. 그러더니 곧장 카드들을 외투 주머니에 쑤셔박으며 몸을 돌렸다. 어라? 가는 거야?
그러나 암파린 씨는 멀리 가지 못했다. 어느새 샌슨이 롱소드를 뽑아든 채 그의 앞을 막아서 있었기 때문이다. 샌슨은 씨익 웃으며 롱소드를 왼손 손바닥에 탁탁 부 딪히며 말했다.
“뭐가 그리 급해서 그러시지? 이 여관에서 잘 생각이 아니었소?”
암파린 씨는 파랗게 질려버렸다.
“왜, 왜 이러는 거요?”
“어, 샌슨. 왜 칼을 뽑아들고 그러는 거야?”
샌슨은 내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시선을 암파린 씨에게 고정시키고 말했다.
“설명은 해주시고 가셔야지.”
“저, 저 패는 원래 그 이상 설명해선 안 되는 패요!”
샌슨은 우아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인간도 저런 우아한 동작이 되긴 되네?
“아니아니. 난 엉터리 카드 점 따위 관심 없어요. 하지만 내 귀로 똑똑히 들었단 말이야. 자이펀어를 말하는 점쟁이라………… 수상한 일이지. 점쟁이라면, 그거 직업도 좋지.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고 아무 곳에나 얼굴을 내밀어도 의심받지 않을 좋은 직업이야. 게다가 점을 치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헛소문을 말하기에도 좋은 직 업이고. 이건 내 생각이긴 하지만 요즘 이 도시엔 사막에서나 불 만한 바람이 너무 많이 불고 있다는 느낌이 든단 말이야. 헛소문도 너무 많고, 당신 생각은 어떻소? 미래를 보신다는 타로메슈 암파린 선생.”
와라락! 난 어느새 의자를 박차고 바스타드를 뽑아든 자세였다. 네리아는 어디선가 대거를 뽑아들고는 리테들 씨의 앞을 가렸다.
“주인 아저씨. 내 뒤에 꼭 숨어 있어요!”
리테들 씨는 과연 노련한 여관 주인답게 날렵한 동작으로 네리아의 등 뒤에 숨어버렸다. 암파린은 퍼렇게 질린 얼굴로 우리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의 손이 천천 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거 보시오, 여러…….”
“섣불리 움직이지 마! 그냥 베어버릴지도 몰라!”
샌슨의 고함소리에 임파린 씨의 손이 허공에서 멈춰버렸다. 그는 후들거리는 무릎으로 간신히 서 있었는데 저게 만일 연극이라면 정말 자이펀의 간첩 교육은 굉장한 것이리라. 난 일단은 경계하면서 말했다.
“조금 전 샌슨이 말한 것이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요? 오직 입술만 움직여서 우리를 납득시켜 봐요. 다른 건 절대 움직이면 안 돼!”
그러나 암파린 씨는 바로 그 입술을 움직일 수 없는 모양이다. 그의 입술은 몇 번이나 움직이려는 듯이 꿈틀거렸지만 도무지 제대로 된 말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 때 운차이가 말했다.
“칼 치우고 보내줘.”
“뭐야?”
운차이는 별 관심도 없는 태도로 싸늘하게 말했다.
“저 남자가 간첩이라면 내가 먼저 알아차렸을 거야. 보통 떠돌이 점쟁이일 뿐이야. 자이펀어를 할 줄 알고 카드 해석도 자이펀식으로 하는 걸로 봐선 자이펀에 들렀
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자이펀인은 아니야. 어투가 전혀 틀린걸.”
어투? 어투라. 하긴 운차이가 말하는 것과는 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자이펀어이긴 하지만 차라리 바이서스의 억양이 강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혹시 개개인의 어투 문제가 아닐까? 샌슨은 절대로 암파린 씨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말했다.
“확실해?”
운차이는 비스듬한 시선으로 샌슨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확실하다고 말하면 믿을 것인가?”
“믿겠어.”
샌슨의 대답은 내 생각보다는, 그리고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되는데, 운차이의 생각보다도 더 빠르게 나왔다. 아주 쉽게 믿겠다는 이야기를 하네? 운차이도 원래 간 첩이었는데 말이야. 운차이는 나직하게 말했다.
“확실해.”
샌슨은 천천히 검을 회수했다. 암파린 씨는 땅바닥에 주저앉고 싶은 얼굴로 샌슨을 바라보다가 샌슨의 롱소드가 검집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면서 탁! 하는 소리가 날 때 곧장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 암파린 씨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정문 쪽으로 달려나가버렸고, 그가 돌풍처럼 사라질 때 밀어젖힌 문짝이 강력하게 되퉁겨서는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콰당!
“어, 이런……. 사과도 못했는데.”
샌슨은 거칠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리아는 히죽 웃더니 샌슨을 손가락질하면서 나에게 말했다.
“저 친구 원래 저런 거지? 원래 아무 말이나 잘 믿지?”
“좀 그런 편이지요.”
“바보가 원래 그래.”
“뭐야앗!”
네리아는 샌슨에게 혀를 날름거린 다음 넘어진 의자를 바로 세워 앉으며 타로메슈 암파린 선생이 떨어뜨리고 간 모자를 주워올렸다.
“이 날씨에 그 머리로 돌아다니려면 추울 텐데.”
네리아는 그 모자를 테이블 위에 던져두고는 운차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운차이는 어느새 나무 토막을 다시 깎고 있었고 네리아는 그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 다.
네리아는 꽤 오랫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운차이를 바라보았으며 그러자 운차이는 돌연 고함을 빽 질렀다.
“후치! 이 여자 왜 이러는 건지 좀 물어봐!”
“그 마지막 카드는 왜 보면 안 돼?”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있거든 올라가 베개에 머리 박고 자라고 전해 줘!”
“그 마지막 카드는 왜 보면 안 돼?”
“이…… 잇!”
“그 마지막 카드는 왜 보면 안 돼?”
운차이는 더 이상 고함을 지르지는 않고 그저 화난 동작으로 나무 토막을 깎아댔다. 나뭇조각이 사방으로 거세게 튀어오르기 시작했지만 네리아 역시 고집스러운 얼 굴을 두 손으로 괸 채 운차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와 샌슨은 서로를 쳐다보고는 어깨를 으쓱한 다음 2층으로 올라가버렸다. 2층으로 올라가는 우리들의 등 뒤 로 다시 네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마지막 카드는 왜 보면 안 돼?”
눈을 떴을 때는 한밤중이었다. 오래간만에 편한 침대에서 잠을 자게 되니 아침까지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희한하게도 잠이 깨버렸다. 침대가 너무 편한 것도 문 제군.
침대 위에 오도카니 앉은 채 내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본다.
눈을 떠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꼭 생각해 봐야 된다는 것도 참 웃기는 일이다. 자신의 집을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런 고민 같은 것은 전혀 이해를 못하겠 지. 하지만 매일같이 새로운 잠자리에서 잠들고 낯선 곳에서 눈뜨는 사람은 꿈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올 때마다 그것을 곰곰이 생각해 봐야 되는 법이지. 그 리고 요즘의 내가 그러하다. 잠에서 깨면 즉시 생각을 해본다. 내가 어디에 있지?
바이서스 임펠의 유니콘인 2층 침실.
이 다음은 깨어난 이유를 생각해 보는 순서다. 그거? 그야 오래간만에 마신 맥주 때문에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신호가 저 아래쪽에서 전해져 왔기 때문이지. 헤헤헤. 화장실에 들러 몸을 가볍게 하고 오자 샌슨이 이를 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다시 침대로 들어가기 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돌렸을 때는 바이서 스 임펠에서만 볼 수 있는 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을 통해 가로등의 빛이 새어들어오는 것이다. 붉은 기운들이 안개처럼 퍼져나가 어둠을 희석시키고 거기 엔…………. 비가 오네?
창문으로 다가간다.
차라라락. 대로에 그려지는 둥근 파문들. 지붕들 위쪽으로 튀어오르며 그려지는 희미한 하얀 물방울의 안개. 긴 어둠 속의 여행에 반쯤 졸고 있다가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붉은 범위 내로 흘러들어온 빗방울들은 화들짝 놀라면서 몸을 비튼다. 그 순간의 반짝임은 아쉬울 정도다. 가로등 아래에 무수한 빗방울들이 무도회를 열고 있다. 무도회의 주된 테마는 중력과의 대화. 하하하하.
아름답군. 어라? 그런데 운차이는 어디 있는 거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램프를 켜들었다. 램프 불빛이 켜지자 샌슨은 몸을 뒤척거렸고 그래서 한 손으로 불빛을 가리면서 밖으로 나왔다. 계단을 내려오니 홀에서 새 어나오는 불그스름한 빛이 보인다. 홀 안에 들어서자 셔츠 바람으로 손을 덜덜 떨면서 나무를 깎고 있는 운차이의 모습이 보였다. 이 추운 밤에 왜 저렇게 입고 있는 것이지? 그런데 그 옆을 보자 난 그의 겉옷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의 겉옷은 테이블 위에 엎드려 잠들어 있는 네리아의 등 위에 덮여 있었다.
네리아는 잠이 든 채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말하고 있었다.
“음냐, 쩝. 마지막 카드………… 안 돼?”
아이고 맙소사. 그녀의 얼굴 옆에는 빈 잔이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꽤나 마신 모양이군. 운차이는 가증스럽다는 듯이 잠든 네리아를 바라보며 진저리를 치더니 그 제야 홀로 내려온 날 발견했다. 그는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일어났냐.”
“아아아아함. 왜 아직까지 안 자는 거예요?”
“어떤 여자가 내 옷을 가져가선 일어나지도 않잖냐!”
운차이는 울화가 터진다는 듯이 말했다. 난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가져간 거예요?”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걸? 역시 내 생각대로였다. 운차이는 코를 벌름거리며 말했다.
“그럼 이런 데서 쓰러져 자고 있으니 옷을 내놓으라고 외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잖아.”
“깨워서 방에 보내면 되잖아요.”
“어떻게 깨우라구?”
그야 몸을 흔들거나 귀에 대고 말을………… 할 수는 없으니 어떻게 깨우지? 난 고개를 가로젓고는 네리아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운차이에게 잘 보라는 듯이 손을 쫙 펼쳐보이고는 네리아의 등을 찰싹찰싹 두드렸다.
“아우우움……, 씨이. 졸려…… 밥 안 먹어.”
“밥이 아니라 올라가 침대에서 자라는 거예요.”
“침대? 올라가?”
네리아는 고개를 들어올렸지만 아직도 사태를 인식하지 못한 것인지 멍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테이블 위로 엉금엉금 올라가서는 그 위에 몸을 웅크 리고 누웠다. 그러곤 운차이의 겉옷을 마치 시트라도 되는 양 어깨 위로 끌어올렸다.
“아니 그게 아니고! 맙소사, 네리아!”
운차이는 싸늘하게 말했다.
“나 같으면 들어서 침대에 던져버리고 오겠어.”
엑셀핸드에게 한 것처럼? 난 잠시 찌푸린 눈으로 운차이를 바라보다가 다시 한번 네리아를 흔들어 깨웠다.
“아이, 씨이이…………. 그러지 마.”
“그러지 않는 게 아니라 어서 일어나 방으로 올라가서 자요!”
네리아는 이제 테이블 위에 앉아서는 주위를 둘러본다. 푸석푸석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던 네리아는 자신이 앉아 있는데도 주위가 이상스레 낮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두 손으로 내 어깨를 붙잡았다. 난 영문도 모른 채 네리아가 시키는 대로 뒤로 돌아 네리아에게 등을 보이게 되었다.
“업어라.”
맙소사…………… 등으로 네리아가 덮쳐오는 것이 느껴진다. 네리아는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 내게 업혔고 그래서 난 허리를 앞으로 숙여 네리아가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녀를 업고 나서 난 운차이를 쳐다보았고 운차이는 하얀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뭐가 우스우셔?
나는 별말도 하지 않은 채 2층으로 올라갔다. 하루종일 마차 위에서 뒹굴어놓고선 뭐가 피곤하다고 맥주 몇 잔에……………… 아, 뭐 마차 여행 자체가 힘든 것이기도 하지 만. 축 늘어진 네리아를 몇 번씩이나 추슬러올리면서 간신히 네리아의 방 앞에 도달한 다음 문을 연다.
“어머! 후치…..니?”
방 안에 누워 있던 레니가 날 보고선 기겁을 한다. 아차. 노크부터 했어야지. 난 고개를 흘긋 돌려서 업고 있는 네리아를 가리켰고 레니는 테이블 위의 초를 켜려고 했다.
“아냐. 초는 켜지 마. 눕히고 나갈 거야.”
레니가 바라보는 가운데 네리아는, 마치 내 딸이나 된 듯이 눕혀주는 대로, 덮어주는 대로 얌전히 잠들었다. 레니에게 인사하고 문을 닫고 나오면서 나는 키득 웃었 다. 제미니. 우리도 나중에 딸을 낳으면 네리아 같은 딸을 낳는 것이 어떨…………, 으와랏차차! 데굴데굴, 쿠당탕탕! 아흑! 엉덩이야.
“…………아직 계단 내려오는 것이 미숙하군.”
운차이의 싸늘한 비평 속에 난 몸을 일으켰다. 음. 계단 내려오는 법을 좀 연습해야 할 모양이군. 쳇. 이건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 벌이야. 엉덩이도 쑤시고 다리도 아파서 난 일단 침실로 돌아가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위에서 갑자기 우렁찬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뭐냐!”
고함을 지른 것은 갑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채 롱소드 하나만 달랑 들고 나타난 샌슨이었다. 샌슨은 후다닥 계단을 내려오던 잠이 덜 깬 얼굴로 우리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는 곧 황급히 입술 앞에 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말했다.
“쉬잇! 방금 뭔가 수상한 소리가 들렸다. 침입자가 있는 모양이야. 모두들 무기를 잡아!”
으으으. 난 그를 무시해 버리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난 태평하게 의자에 앉으면서 운차이에게 질문했다.
“아하암. 지금이 몇 시쯤 된 거지요?”
“자정은 지났다.”
“여기 계속 있었어요? 칼과 길시언, 제레인트는 아직 안 돌아왔어요?”
“안 돌아왔다. 그들을 기다리겠다고 했더니 주인장도 들어가버리더군.”
“아, 그래요. 음…………. 비가 오니까 임펠리아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올 수도 있겠네요.”
“그렇겠지.”
샌슨은 당황한 얼굴이 되어, 그러나 아직까지도 경계 자세를 흩트리지 않은 채 주위를 쏘아보았다. 사실을 말해 줘야겠군.
“그건 내가 낸 소리야.”
“이이잇!”
샌슨은 내 정수리를 쥐어박음으로써 자신의 수면이 방해받은 데 대한 복수를 완수했다. 그러곤 롱소드를 테이블 위에 집어던지며 의자에 앉았다.
“칼과 다른 사람들이 아직 안 왔다고? 좀 기다려봐야 하겠군.”
운차이가 깎고 있는 나무 토막은 이제 어느 정도 모양을 잡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어떤 웅크린 동물처럼 보이기도 하고 웅크린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떤 것이 될지는 모르지만 나무 조각이기 때문에 복잡한 동작을 취하지 않고 웅크린 모습으로 표현할 모양이다. 저게 무슨 동물, 혹은 사람일까?
“그 마지막 카드의 의미가 뭐지요?”
운차이는 나이프를 멈추더니 날 흘긋 바라보았다. 샌슨은 팔짱을 끼더니 운차이를 바라보았고, 나도 역시 그를 따라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친절한 마음으로 설명해 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설명해 줘요. 만일 친절한 마음으로 말할 범위를 넘어가는 굉장한 비밀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좋고.”
운차이는 나무를 계속 깎으면서 말했다. 이제 세부 조각이라 그런지 나이프의 움직임은 작고 세밀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 카드 자체는 어느 나라에 가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점복술사 자신을 위한 카드를 따로 떼어놓는 그 방식은 자이펀식이지. 아까 그 떠돌이는 아마 떠돌아 다니다가 자이펀에도 굴러들어간 모양이다. 하지만 토박이는 아니야. 말투가 낯설더군.”
“흐음.”
“정확하게 자이펀식으로 하려면 마법사나 여왕 등은 빠지고 다른 카드가 들어가야 하지만 의미는 대충 통하지. 그리고 카드는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고. 사실 카드 따위, 아무 종이에 글자만 적어 사용해도 상관은 없어. 예지력은 카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점복술사에게서 나오는 것이니까.”
샌슨은 빙그레 웃더니 말했다.
“그래? 그런데 운차이 너도 옛날에 그 영업을 했나?”
“유목생활을 했었지. 사막의 밤은 지루하다. 그래서 옛 이야기와 그런 점은 지루한 사막의 밤을 보내는 데 좋은 오락물이지.”
“아하.”
“어쨌든 처음 것이 과거의 걸어온 석 장, 그 다음은 현재의 두 장, 그리고 나머지가 다가올 미래의 넉 장인 것은 이미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왜 똑같이 석 장씩 하지 않는 거지요?”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쓸데없이 복잡한 의미가 있다. 과거의 석 장은 잊혀진 것, 기억하는 것, 잊혀지지도 기억하지도 않은 것을 나타낸다. 현재의 두 장은 한 사람의 겉과 속을 나타낸다. 미래의 넉 장은 원하는 일, 원하지 않는 일, 원하지 않지만 해야 할 일, 원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을 나타낼 거야, 아마.”
“아하? 마지막 두 장은?”
“예언이라는 행위가 그 인생에 끼쳐진 영향을 판단하는 것이다. 선택된 카드는 그 예언이 쓸모 있는 것인지, 쓸모없는 것인지, 혹은 예언 때문에 크게 바뀌게 될 것 인지 등을 나타낸다. 그 카드의 의미는 상당히 복잡해.”
“내 경우엔 쓸모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죠?”
“그래. 아니, 그것보다는 나쁠 것은 없다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낫겠지.”
“그런데 네리아는?”
“잘 모르겠지만…………, 자신의 패를 뒤집은 걸로 봐선 예언이라는 행위를 통해 커다란 영향이 발생한 것일 거야. 엉터리 점복술사는 그 점을 간과해서 마치 예언이라는 것이 아무런 영향도 없이 인생에서 따로 떨어져 관찰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사실 예언은 인생에 있어 커다란 사건이다. 미래를 아는 것이니 그 렇게 큰 사건도 드물지. 따라서 그 영향도 고찰해야 해. 그리고 마지막 카드는 그런 것을 나타내고.”
샌슨은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큰 영향을 주는 걸 못 보게 하는 거야?”
“그 영향이 어디로 갈 것인지가 문제다.”
“뭐?”
운차이는 테이블 위의 나무 부스러기를 모아 벽난로에 집어던지고는 다시 말했다.
“간악한 녀석. 그 점복술사의 패는 여왕이었지. 자이펀식이라면 여왕이 아니라……………, 어흠. 어쨌든 보통의 경우 여왕은 애정 어린 선물, 관용, 가정의 평화 등 좋은 의 미의 패지. 하지만 거꾸로였어. 게다가 점복술사 자신의 패였지. 그럴 경우에는 비정한 선택,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나타낸다. 왕의 결정은 그래도 돌이킬 여지가 있 지만, 여왕의 결정은 영원히 안 바뀐다고 하지.”
“헤에?”
“여자는 남자보다 더 다정한 만큼 더 비정할 수도 있는 법이지.”
운차이는 웃지도 않는 딱딱한 얼굴로 저 말을 했다. 허, 그것 참.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운차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니까 그거 웃기네. 운차이는 침착한 얼굴로 말
했다.
“그런 것이 나왔다면, 예언은 포기해야 돼. 그 행위의 위험성이 너무 커. 점복술사는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을 덜어주고 희망을 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돼. 그 런데 그 고약한 녀석은 예언의 부작용을 자신이 덮어쓰는 것이 무서워 네리아에게 패를 뒤집게 하려 했지. 예언의 부작용은 원래 점복술사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인데 도.”
“부작용이라구? 뭐, 뭔데? 심각한 거야?”
“그런 게 있어. 설명이 너무 길지만.”
“흐음. 그럼 그 마지막의 마법사는 어떤 의미였지요? 네리아가 뒤집은 것 말이에요.”
운차이는 잠시 나무 토막을 깎는 일을 계속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난 고개를 돌려 창가를 때리는 빗방울의 모습을 보았다. 타닥, 탁, 탁. 빗소리에 섞여 운차이의 말 이 들려왔다.
“마법사는 원래 새로운 경험, 기회, 행운 등을 나타내지. 적어도 똑바로 된 마법사는 말이야.”
“그런데요? 아까 그 카드도 거꾸로가 아니었잖아요?”
“그렇지만 그 경우에는….. 그 예언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는 의미야. 마법사는 유피넬과 헬카네스의 저울눈을 속이는 자이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구요?”
“아니, 잘못되었다는 정도면 차라리 낫지. 그저 예언이 틀렸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마법사가 개입하게 된 이상 미래가 제멋대로 가버리게 될 거야. 도저히 있을 수도 없는 일이, 어떻게 이런 일이 내 인생에서 일어나는가 싶은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지. 예언이라는 그 행위 때문에 말이야.”
“예?”
난 입을 딱 벌린 채 운차이를 바라보았지만 운차이는 내게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그래서 그 암파린이란 녀석은 시퍼렇게 질려버린 거지. 그 영향은 그 녀석에게도 가게 될 것이거든. 예언은 점복술사와 당사자 모두에게 영향을 주게 되어 있어. 절 대로 일방적일 수가 없지.”
“야, 자, 잠깐만. 그럼 그거 지독하게 나쁜 일만 생긴다는 말이야?”
샌슨의 당혹한 목소리에도 운차이는 별 표정없이 대답했다.
“아니. 굳이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지. 도대체 어떻게 이런 행운이 있을 수가 있는가 싶은 행운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의미니까. 어쨌든 점복술사의 관점으로 본다 면 그것은 쓸데없이 예언을 해서 골치 아픈 사태가 되어버린 셈이지.”
“그래요? 그럼 행운일지 불운일지 알 수 없는 거예요?”
운차이는 피곤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래. 마법사란 사람들이 원래 그렇지. 그 작자들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도 알 수 없는 터인데도 주위에 커다란 영향을 줘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 지. 하지만, 후치.”
“예?”
“그따위 점복술 그렇게 믿을 건 없어. 그저 의미가 그렇다는 거지. 믿지 않는 자에겐 아무 소용이 없는 거야. 나에겐 나름대로 다른 종류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런 엉터리 방식을 보고 화를 내었지만, 그걸 믿기 때문에 화를 낸 것은 아니다.”
“아……, 예. 고향의 것이기 때문에?”
“뭐, 그렇다고 볼 수도 있고.”
운차이는 말꼬리를 흐렸다. 난 잠자코 기다렸으며 잠시 후 운차이는 차분한 음성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미래가 완전한 선물이 되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른 커다란 선물을 받았다. 죽을 수 있는 것,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 불멸의 운명을 가진 신은 우리를 부러워할지도 모르지.”
어라? 이건 언젠가 칼이 한 말과 비슷한데? 운차이는 내 놀란 얼굴을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핸드레이크의 말일 거야, 아마.”
“그래요?”
빗방울은 더욱 거세어지고 있다.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요란하다. 타당, 타당, 타당. 샌슨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핸드레이크의 이야기는 자이펀에서도 유명한 모양이지요?”
“그래. 뭐라고 해도 가장 강력한 상대와 싸워 이긴 자니까.”
“드래곤 로드?”
“응.”
운차이는 점점 세밀해지는 작업에 신경을 쓰느라 불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그의 작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금 물러났다. 맥주통이 어디 있더라? 아, 저기 있군.
“맥주 줘요? 샌슨은?”
“아니. 안 자고 술 마실 거냐?”
“난 줘.”
“칼과 다른 사람들 올 때까지 기다려보려고.”
“그래?”
벌컥. 말하기가 무섭게 문이 열렸다. 궁성에 갔던 사람들인가?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암파린 씨였다. 그는 들어서자마자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는 굳어버 렸다. 샌슨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다시 오셨소? 잘되었군요. 아까는 사과도 못했는데.”
“어……, 아까 모자를 두고 가서 말이오.”
암파린 씨의 몸은 비에 젖어 후줄근해진 모습이었고 특히 그 머리는 번들거리고 있었다. 난 주위를 둘러보다가 벽의 옷걸이에 걸려 있는 그의 모자를 발견했다. 내가 모자를 들어내어 그에게 다가가자 암파린 씨는 불쑥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때 샌슨이 내 손에서 모자를 집어가면서 말했다.
“이거 보세요. 여관비도 없잖아요? 아까 오해한 것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오늘 하루 숙박비 계산해 주고 싶은데. 여기서 주무시고 가시지요?”
암파린 씨는 놀란 얼굴로 샌슨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래요? 정말입니까?”
보나마나 온갖 여관과 여인숙을 돌아다녔겠지, 뭐. 샌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함을 질러 리테들 씨를 불렀다. 잠시 후 리테들 씨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하품을 하면 서 나타났다.
“이분에게 방 하나 내어주세요. 우리가 사과의 의미로 숙박비를 대신 치를 테니까…………. 아까 보석으로 충분하겠지요?”
“아함. 그래요? 물론 충분하지요. 여봐요. 따라오시오. 저녁 식사 들겠소?”
암파린 씨는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자 리테들 씨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와요. 방에 가서 짐 풀어놓고 내려와 식사를 하시도록 하죠. 하지만 시간이 시간이라 제대로 된 식사는 안 되겠소.”
“아, 뭐라도 상관 없소. 끼니 때우면 되니까. 어, 친절한 전사분, 고맙소.”
“뭘, 천만에요. 그리고 난 샌슨 퍼시발입니다.”
암파린 씨는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뭐라고 더 말하려 했지만 그때 그의 시선이 운차이와 마주쳐버렸다. 암파린 씨는 황급히 외면하더니 리테들 씨를 따라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