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3권 16화 – 은설란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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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13권 16화 – 은설란은 어디에?

은설란은 어디에?

해시정(亥時正 : 약 2200시경) 섬서성 화음현 화산 천무봉 입구 근처

그 짧은 시간에 신월의 달빛 하나만을 횃불 삼아 그 험한 천무봉을 내려온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기록으로 남긴다 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몇몇 사람은 몇 번인가 발밑의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성대하게 데굴데굴 구르기도 했다. 그러나 겨우 한 시진만에 천무봉의 산중을 돌파하느라 녹초가 되어버린 그들이라 해도 한가롭게 쉴 새는 없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구출대는 곧장 은설란이 납치되었다는 풍매객잔으로 향했다. 아니, 하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선결해야만 하는 문제가 있었다.

“풀어줘요!”

비류연이 명령하자 염도가 들쳐메고 있던 석류하를 내려놓고는 혈도를 풀어주었다.

이런 봉변은 처음 당해 보는 석류하가 싸늘한 눈초리로 그들을 쏘아보며 말했다.

“이게 어찌된 일인지 설명해주실까요?”

냉기가 풀풀 날리는 목소리였다. 거의 짐짝 취급을 당한 그녀였다. 태어나서 이런 참혹한 대접은 처음이리라. 그녀의 분노도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었다. 비류연은 잠시 고민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협박 또는 회유!

협박에는 주먹이 빠르고, 회유에는 설득이 빠르다. 물론 가끔 주먹이 빠른 회유도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적용시킬 만한 방법은 아니었다.

별로 생각할 건덕지도 없었다.

대상이 보통의 사내였다면 협박을 쓸 수도 있었겠지만, 이런 미인에게 그런 난폭한 방법은 쓸 수가 없다. 효과야 물론 뛰어나지만. 사실 생각하기도 전에 결론은 이미 나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비류연의 마음 속에 있던 바늘 눈금이 협박에서 회유로 찰칵 옮겨졌다.

이제 ‘어떻게? ’라는 방법론적인 문제만 남게 된 것이다. 비류연이 시선을 들어 모용휘를 바라보았다.

“이건 쓸 수 있을지도 몰라!’

비류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석 소저! “

모용휘가 정중하게 사과했다. 역시 쌓아놓은 품격, 가닥이 있기 때문이라 그런지 그의 말은 잘 먹혔다.

용모수려, 무공출중, 성적우수, 박학다식, 가문빵빵. 어느 한 군데 빠지는 데가 없는 거의 십전의 완벽함,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반칙 같은 그런 남자였다. 그만큼 그의 말에는 무게가 있었고, 타인을 감화시키는 기도가 있었다.

때문에 비류연도 그 유용성을 참작해 모용휘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분위기 조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제가 듣고 싶은 것은 사과가 아니라 이유예요.”

석류하의 차가운 시선이 좌중들을 향해 꽂혔다.

“그건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도움이요? ”

“예, 저희들은 지금 소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럼, 그럼!

듣고 있던 비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암, 필요하다. 그녀가 입을 굳게 다물어줄 도움이 그들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요즘은 도와줄 사람을 자체적으로 납치하는 게 유행인가 보군요.”

그녀의 혀는 그녀의 검보다 날카로운 듯 보였다.

“그 일은 정말 면목 없게 되었습니다. 돌발상황이라 그런 식의 대처밖에 하지 못했던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모용휘가 끈질기게 말을 이었다.

“소저께서 저희들을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왜 천무학관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 거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나요? 그것도 저를 이런 곤경에 빠트린 사람들을요?

조용하지만 차가운 한기가 풀풀 날리는 그런 말이었다. 물론 그녀가 저토록 냉정하게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녀는 조금 전 거의 보쌈에 가까운 꼴을 당했 던 것이다.

“이것은 저희 천무학관의 일이 아니라 마천각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즉 소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천무학관 사람이 아니라 마천각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그런 무슨 말도 안 되는! 절 희롱하시는 겁니까?”

석류하가 큰소리로 외치며 반박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그 사람은 지금 모처에 감금되어 도움의 손길을 바라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분을 악적의 손아귀 속에서 반드시 구하고 싶습니다.” “누, 누구죠? 그 사람은?”

사뭇 진지한 모용휘의 태도에 석류하의 목소리도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바로 사중화 은설란 소저입니다.”

그 소리에 석류하의 눈이 경악으로 한껏 커졌다.

“설란 언니가 납치되다니요.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죠?

석류하의 반응은 생각 이상으로 격렬했다.

“아시는 분인가요?”

모용휘가 되물었다.

“물론 알고말고요. 그녀는 저와 가장 절친한 사람 중 하나예요. 그녀를 제가 모를 리 없죠. 애당초 함께 흑도사화라고 불리기도 했으니깐요.”

“그렇군요.”

그제야 모용휘는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떻게 란 언니가 이곳에 있는 거죠? “

“자세한 내막은 저희도 잘 모릅니다. 단 한 가지 그분을 수행하던 분께서 생명을 걸고 그분이 납치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하러 왔기에 도우러 달려온 것이죠.” 그러면서 모용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해시말(亥時末 : 약 2300시경) 풍매객잔 심처

“뭐? 없어?”

검은 그림자 하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너는??

질문을 받은 또 하나의 그림자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역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객잔의 수상한 점은?”

비류연이 다시 물었다.

“이곳의 터줏대감 같은 곳이에요. 화산파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윤준호가 자신이 아는 한도 내의 정보를 토해낸다.

“이제 어쩌죠?”

최대한 낮춘 목소리로 남궁상이 물었다.

해시정(正 : 약 2200시경) 풍매객잔 앞

과연 듣던 대로 풍매객잔의 경비는 삼엄했다. 더 정확하게는 풍매객잔에 머물고 있는 중원표국의 표물에 대한 경비였다.

“뭐야, 저 녀석들? 황금덩어리라도 싣고 온 건가? 왜 저렇게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거야?”

염도가 언짢은 얼굴로 투덜거렸다.

병장기를 휴대한 표사들이 두 명씩 조를 이루어 객잔 주위 여기저기에 배치되어 있었다. 화톳불이 여기저기에서 활활 타오르며 어둠을 몰아냈다. 그러나 표차가 있는 곳은 의외로 화톳불이 적었다.

“글쎄요……. 하지만 수상하긴 확실히 수상하군요.”

과유불급!

사람은 때로 적당해질 필요가 있다. 다만 대충과 적당은 다르니 착각하지는 말자.

“뭔가 구린 게 있을 거야.”

너무 지나친 것만으로도 남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뭐 벗겨보면 알겠죠. 일단 잠입해 보죠.”

해시말(亥末 : 약 2300시경) 풍매객잔 심처

은설란의 흔적은 풍매객잔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행히 들키는 불상사는 없었다. 하지만 샅샅이 구석구석 뒤져보아도 그녀의 존재는 발견되지 않았다.

특히나 은설란이 이곳에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객잔 내부에는 경비의 눈길이 그다지 삼엄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질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감시자가 있다. 그러나 확인해 본 바로는 그런 장소가 아무 데도 없었다. 감시자가 없다는 것은 반대로 감시할 대상도 없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의심은 가지만, 심증이 있어도 확증은 없다. 애매한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이런 와중에도 달은 계속해서 천좌를 운행하고 있었다.

“우리가 잘못 안 건 아닌가?

장홍의 얼굴에 초조의 빛이 나타나 있었다.

“혹여 이곳에서 잡혀갔다 해도 꼭 이곳에 가둬두라는 법은 없지. 게다가 내가 알기로 객잔은 잠자기에는 좋아도 피납자를 감금해두기에는 좋은 장소가 아니거든!

과연 그 말 그대로였다. 비류연은 행동을 결정하는 데 있어 망설이지 않았다.

“아마 여기 없을 가능성이 십중팔구야!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으니 최종확인 작업을 거치도록 하지!”

그의 최종확인 작업은 조금 거칠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잡혀온 사내가 울상이 되어 외쳤다. 그 소리가 너무 컸기에 사람들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물론 염도가 기를 이용해 – 그는 이를 통해 빙검뿐만 아니라 자신도 그 기술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뽐내려 했다 – 방음막을 펼쳐놨기에 소리가 새나갈 염려는 없지만 기분 문제라는 게 있는 것이다.

비류연이 재빠르게 사내의 입을 틀어막은 후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조용히 해주세요. 제가 당신의 아가리를 확 잡아 찢어버리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까요! ”

아주 조용하고 부드러운 저음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만큼은 부드럽지(?) 않았다.

한순간 사내의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울부짖음이 뚝 멈췄다. 역시 진심은 상대에게 언제나 전달되는 법이었다.

“좋아요. 착한 아이군요.”

비류연이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묻기 전에 먼저 알려둘 게 있네. 일종의 충고라고 생각해주게! 본인은 성질이 좀 급해서 말이야. 사람이 거짓말하는 꼴을 눈뜨고 못 본다네. 무척이나 거짓부렁을 증오하지. 본인이 미리미리 충고해주는 이유를 알겠는가?”

뺨을 통해 느껴지는 차가운 소도의 한기에 몸서리치며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식은땀에 몸이 절어가고 있었다. 소도를 들고 있는 손의 주인 염도가 은근한 어조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본인은 자네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네. 때문에 앞길 창창한 젊은이의 미래를 요절내는 일 따위는 정말 하고 싶지 않다 그 말일세!”

스윽!

살기를 한껏 두른 차가운 소도의 칼날이 사내의 볼을 살짝 긋고 지나갔다. 뜨거운 피 한줄기가 사내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사내는 너무 두려워 오줌을 지릴 것 만 같았다.

“본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사내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자! 장난 그만 쳐요. 오늘 죽인 사람만 해도 벌써 여섯 명째라구요. 더 이상 죽이는 것도 지겨운 것 같아요. 그냥 눈알을 뽑고, 고막을 파괴하고 혀를 자른 다음, 사지의 근육을 자르는 것으로 용서해 주자구요. 불쌍하잖아요!”

아무렇지도 않게 툭 내뱉은 비류연의 말이 더 무서웠다. 허풍이라는 것을 뻔히 아는 채로 듣고 있던 주위 사람들의 솜털이 쭈뼛쭈뼛 솟을 정도였으니 당사자가 느 낀 공포야 오죽 하겠는가! 사내의 얼굴색이 시커멓게 변했다가 다시 새파랗게 변했다가 또 다시 하얗게 탈색되는 것을 보니 확실히 효과만점이었던 모양이다.

“묻겠다. 어제 이곳에 잡혀온 소저가 어디 갇혀 있는지 알고 있나?”

염도가 질문을 시작했다.

“모릅니다! 저는 정말 모릅니다.”

“미인이라서 금방 기억할 수 있을 텐데?”

염도도 그것은 인정하는 모양이었다.

“잡혀온 소저라니요? 게다가 미인이라니요? 전 정말 금시초문입니다.”

사내는 울먹거리며 외쳤다.

“사실일까요?”

남궁상이 염도를 보며 물었다. 지금 그들의 눈앞에 내동댕이쳐져 있는 사내는 잠자다 변의를 참지 못하고 측간으로 행차했다가 그들에게 붙잡힌 중원표국의 표사 였다. 사내의 눈은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얼굴 팔고 다녀서 좋을 것 없다는 것을 비류연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어찌 알겠나!”

설혹 상대가 거짓을 토해낸다 해도 현재의 그들로서는 알 방법이 없었다.

“거짓을 말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조금 더 손을 봐볼까?

염도의 말에 사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좋은 생각이네요. 일단 눈알 뽑기부터 시작하죠. 혀를 뽑으면 말을 못하니 곤란하잖아요.”

비류연이 생글거리며 거들었다.

‘저거 정말 진심 아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류연의 연기는 실감났다.

“좋은 생각이군!”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한 사내의 이빨이 달달달 떨리며 딱딱 세차게 부딪쳤다.

“이 자의 말이 사실인가요?”

비류연이 나예린을 보며 물었다.

용안(龍)!

나예린에게는 그것이 있었다.

“제, 제발 살려주십시오. 저에게는 토끼 같은 자식 둘과 여우 같은 마누라가 하나 있습니다. 제가 아는 대로 다 불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자비를!’

사내의 목소리는 간절, 또 간절했다.

비류연과 나예린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가로젓는 것이 아닌가!

참이 아닌 거짓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녀의 신묘한 용안을 속일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그다지 많지 않았다.

비류연은 솔직담백하게 분노했다. 염도가 그 분노를 대행했다. 우악스런 손길이 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호오? 감히 어디서 거짓부렁이냐?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뭐 굳이 묏자리를 파는 놈에게 자비를 베풀어줄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어느 부분이 거짓부렁이었는지 순순히 불어보실까? 물론 먼저 네 눈깔이 몇 개인지 시험해 보는 것도 좋겠지!”

그러나 사실 그의 말은 진실이었다. 그는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나불거렸다. 그는 성심성의껏 배반자와 밀고자의 역할에 충실히 임한 것만은 틀림없었다. 다 만 한 가지 빠진 부분이 있을 뿐이었다.

“저, 정말입니다. 전 살고 싶습니다. 살고 싶은 놈이 왜 미쳤다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제가 받은 급료에는 충성료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믿어주십시 오!”

사내가 절규했다. 알 수 없는 이유에 의해 자신의 참됨이 거부당했다. 억울했다. 그러나 비류연은 가차없이 매몰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넌 방금 분명히 거짓을 고했다. 순순히 거짓으로 고한 부분을 아뢰어 보실까?”

“저, 정말입니다. 전 사실만을 말했을 뿐입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사내가 외쳤다.

“거짓말!”

비류연이 단호하게 소리쳤다.

그제야 사내는 이 남자가 자신이 거짓을 고한 것에 대해 어떤 방법으로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도대체 뭐가 거짓이란 말인가? 아는 것도 제 대로 없어 몽땅 그대로 고해 바쳤건만..

설마!

사내는 갑자기 북해의 얼음을 깨고 그 심층부에서 퍼올린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가슴 한구석이 싸늘해졌다.

“어, 어떻게 알았지?’

방금 나불거린 말 중에 딱 하나 거짓을 고한 것이 있었던 것이다. 코앞에 벽처럼 버티고 있는 사내가 내뿜는, 자신의 전신을 옭아매고 있는 농도 짙은 살기는 거짓 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사내는 마침내 체념하고 말았다. “그, 그렇습니다. 사실…, 흑흑흑!

사내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사실 여우 같은 마누라 말고도 기녀 춘월이 사이에 숨겨둔 자식이 한 명 있습니다. 이번 표행에 지원한 이유도……. 흑흑흑! 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 꺼이꺼이! ” 목 놓아 울려는 것을 재빨리 입을 틀어막아 간신히 제지했다. 짭짤한 물이 그의 손까지 느껴졌다.

비류연이 다시 한번 나예린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물론이고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이 느닷없는 추문 섞인 고백에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예린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참이라는 이야기였다.

즉 알아도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고작 몇몇 질 나쁜 이들이 사람 등쳐먹을 때나 유용하게 쓰일 정보였다. “시간 낭비했군.”

비류연이 지나가는 말투로 한마디하자 다들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시시한 참회 시간이 끝났다.

남자는 참회의 눈물을 폭포수처럼 바닥에 떨구었지만, 쓸데없는 데 시간만 낭비한 그들은 무척이나 바빴다.

“이제 어떻게 하죠? “

모용휘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까 전부터 좌불안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은설란의 납치가 항상 차분하고 재미없을 정도로 냉정 침착하던, 동요를 모르는 부동심의 사나이 칠절신검 모용휘를 지금 동요시키는 쾌거를 올리고 있었다.

모용휘는 너울거리는 월광의 장막 속에 감싸여 흐르던 그녀의 눈물을 생각했다.

“그런 것,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지금도 그녀가 어딘가에서 보이지 않는 위협으로부터 두려움에 떨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그의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파왔다. 침착하라고 여러 번 되뇌어 보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반했나?”

비류연의 가벼운 한마디에 모용휘는 펄쩍 뛰었다.

“무, 무슨 소린가? 반하다니? 난 전혀 그런 생각은 한 적이…, 난 그저 인연이 닿은 사이로서 걱정이 되는 것뿐이지……. 그러니깐…, 내가 말하고 싶은 것 은…..”

감정조절이 잘 안 되는지 모용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래도 귀여운 면도 좀 있었군! ‘

이 바른생활 결벽증 환자도 차가운 무쇠와 얼음만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아니었던 것이다.

비류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잘 익은 사과 같은 그런 얼굴로 그렇게 말해 봤자 설득력이 별로 없다고!”

어쨌든 다음 방법을 강구해야 할 때였다.

비류연이 노학을 바라보았다. 이제부터 이 거지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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