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3권 17화 – 행방을 찾아서…

랜덤 이미지

비뢰도 13권 17화 – 행방을 찾아서…

행방을 찾아서…

자시초(子時初 : 약 2300시경) 섬서성 화음현 개방 서악분타

곤하게 자던중 황급히 깨워졌다.

개방 서악분타주 오개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불시에 들이닥친 방문객들 때문이었다.

강호 곳곳에 그들의 때가 안 묻은 곳이 없고, 냄새가 안 밴 데가 없다고 큰소리치는 개방인만큼 이곳에도 당연히 개방분타가 있었다.

서악분타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곳이 화산파와 그 주변만을 관리하는 분타이기 때문이었다.

분타라 해도 번듯한 건물이 있는 것은 아니고, 풍광 좋은 다리 밑에 나뭇가지들을 얼기설기 엮고 그 위에 거적때기를 덕지덕지 붙여 만든, 바람이 부는 데도 쓰러 지지 않는 게 신기한 그런 조잡한 것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얼기설기 덕지덕지가 옆으로 붙고 앞으로 붙기를 반복해 지금은 꽤나 큰 장소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곳은 누가 뭐래도 구대문파의 하나인 화산파의 구역(?)이기 때문에 분타도 조촐하기 그지없었다. 실제 가지고 있는 힘도 그에 비례해 적었다. 그래도 유지되고 있는 것은 화산과 일종의 연락통로 역할을 하며 정보 교류의 장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권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때문에 다른 분타보다는 위상이 훨씬 낮았 다.

오개는 아주 못마땅한 시선으로 노학을 쏘아보고 있었다. 아직도 잠에서 두들겨 깨워진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그러나 노학의 결은 사실 분타주인 오개보다도 높았기에 불평도 못한다. 노학도 아주아주 쬐끔 미안하기는 했다.

“아마 그들은 사람의 눈을 피하고 싶었을 거야. 그녀만한 눈에 확 띄는 미녀를 옮기는 데 오랜 시간을 소모했을 리가 없어. 왜냐하면 눈에띄·니깐!”

비류연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는 어느새 이 구출대의 우두머리가 되어 있었다. 모두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런 연후에 행동했다. 이 일은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아마 그들은 마차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아!”

“그렇지!”

장홍이 동의했다. 지금까지의 사건추리 중에는 크게 흠잡을 만한 부분이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그들의 가장 큰 적은 시간이었다. 말다툼 따위로 소모할 시간은 없 었다.

“최근 일몰시각은 유시정(酉時正 : 약 1800시경). 그렇다면 표적은 더욱 좁아지지. 이곳에 마차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가 있나?’

비류연이 노학을 쳐다보자 그는 다시 오개를 쳐다보았다. 오개는 순간 당황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그래, 뭐! 살다 보면 모를 수도 있지!”

오개가 말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개방.”

당연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곳에서 저희 거지들의 굶주린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지요.”

물론 있단다. 비류연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정 이후의 마차 경로, 특히 금일 일몰시각 이후에 움직인 마차에 대한 정보를 몽땅 가져와요! 최대한 빠르게!”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고 있었다. 동이 트기 전에 다시 천무봉으로 올라가야 했다. 일조인원점검에 늦었다가는 경을 칠 것이 분명했다. 그날 화산의 그늘 안에 둥지를 틀고 있던 거지란 거지들은 그들이 태어난 이래로 가장 숨가쁜 반 시진을 보내야만 했다.

지시가 내려지자 즉각 새끼거지 한 명이 금일 마차이동에 관한 보고서를 들고 왔다.

보고서라고는 해도 세간에서 말해지는 문자에 의해 기록된 보고서는 아니었다.

새끼거지가 가지고 온 보고서를 윤준호가 어깨 너머로 슬쩍 봤지만 알 수 없는 기호들만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자료의 비취등급(秘取等級)이 높아 기록시 암호사용이 필수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개방에서 문장에 재능이 있다는 것, 혹은 지적(知的)이라는 것은 종이 위에 있는 흰 것과 검은 것의 차이를 구별해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즉 글을 읽을 줄 안다 는 것이다. 이 경지보다 윗등급으로 ‘공자님의 현신’이라고 불리는 등급이 있는데 이들을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쓸 수도 있는 족속들이었다.

개방의 소분타에서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문 인적 자원이었다. 독해 가능이라는 것은 선택받은 자의 특수 능력인 것이다.

그나마 화산 쪽에는 체면상 혹독한 교육을 통해 까막눈을 좀 줄인 형편이지만 전문용어로 오십 보 백 보였다.

때문에 대부분의 정보는 가능한 한 기호로 기록된다. 많은 사람들이 열람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열람될 필요가 없는 정보들은 별개 의 특수한 방법에 의해 따로 기록, 분류된다.

개방 분타주가 되기 위해서는 읽고 쓰기 시험에서 반드시 통과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 시험은 대부분의 거지들이 가장 치를 떨고 학을 떼는 시험이며, 최후의 고비 라고도 불린다. 정보란 문자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지역 정보를 관장하는 중책을 맡고 있는 분타주는 반드시 익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외적으로, 가끔 무골일변도의 통뼈무골 거지들이 힘만 믿고 위로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이들은 대부분 육체노동 담당이 된다.

오개 역시 그 역경과 고난과 시련의 읽고 쓰기 시험을 당당히 통과한 지식인 거지였다.

“금일 본 현 내 마차이동기록은 고급 마차 45대, 중급마차 63대, 하급마차 123대, 상중(重) 수레 89대, 중중(中重) 수레 130대, 하중(下重) 수레 204대로 마차 총 231대, 수레 총 423대입니다.”

오개의 보고에 모두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실로 개방의 정보력은 놀라웠던 것이다.

분타주 오개는 자랑스러움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새벽녘 이동에 관한 정보도 있나요?

“물론입니다. 마차 감시는 일일 열두 시진 상시로 운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야밤의 이동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인원만 있으면 감시하기가 오히려 수월하죠.” 비류연은 그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자정부터 금일 술시초까지 풍매객잔에서 출발한 마차는 모두 몇 대죠?”

비류연이 물었다.

“풍매객잔 말씀입니까?”

“물론 알고 있겠죠?”

“당연합니다.”

그곳은 이곳 거지들의 10대 보고 중 하나였다. 구걸(求乞)의 필수방문지 중 하나인 그곳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 자정부터 오늘 일출까지의 풍매객잔으로부터 이동한 마차나 수레가 있나요?”

자정이라고 말한 것은 한노와 은설란이 풍매객잔에 잠입했을 때가 그쯤이었기 때문이었다.

“으음…, 없습니다! ”

보고서를 항목별로 훑어본 오개가 대답했다.

“다행이군요! 아마 야심한 새벽에 움직이는 마차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니 피한 것이었겠죠. 그럼 일출부터 시작된 이동은? “

해가 뜨자마자 새벽같이 이동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네! 일출 이후부터 보고된 풍매객잔에서 출발한 마차는 25대입니다. 중원표국이 통째로 빌린 탓에 수레의 이동은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그 마차 중에서 외부로 빠져나간 마차가 있는지 알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외부 이동 마차는 항상 감시하고 있지요. 으음, 어디보자…….”

다시 오개의 손이 보고서를 들추었다. 혹시라도 외부로 나간 마차가 있으면 귀찮은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그 속에 은설란이 타고 있었다, 따위의 끔찍한 상상은 하고 싶지도 않았다. 모두들 긴장한 시선으로 오개를 바라보았다.

“으음…,없습니다!”

그제야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아마 피납자를 외부로 내보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군요.”

그렇다면 수색 범위는 이 지역 안으로 축소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일단은 큰 성과였다.

그러나 25대의 마차는 아직도 너무 많았다.

“거기서 기루나 술집으로 향한 마차를 뺀다면?”

오개가 서둘러 보고서를 훑어보고 대답했다.

“에에…, 15대입니다.”

600대가 넘던 마차와 수레가 단 15대로 좁혀졌다. 그러나 여전히 엄두가 안 날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그 중에서 전용 마차가 있나요?”

다시 비류연이 물었다.

“전용 마차라면……?”

“그래! 납치를 주도하는데 마차협회의 마부들이 모는 영업용 마차를 탈 리가 없겠지. 그건 흔적이 너무 많이 남아.”

노학이 호들갑스럽게 외쳤다.

“으음, 총 8대가 있습니다. 그 중 3대가 한 장소로 향했으니 장소로는 6곳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3대가 한 곳에?”

비류연의 눈이 번쩍 떠졌다.

“각 마차가 움직인 곳에 대한 정보도 있나?”

“네, 물론입니다.”

오개의 시선이 다시 보고서를 향했다. 움직인 곳들은 모두 숫자로 표시되어 있었다.

제1번은 분타, 제2번은 화산파, 제3번은 관가, 이런 식의 분류가 되어 있었다. 담당 기록자는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보고서는 기호와 숫자를 병용해서 쓰고 있었 다. 모르는 사람도 유사시에 읽기 가능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 세대의 마차가 움직인 곳은 어딘가?”

“으음…, 엥? “

오개의 눈이 크게 떠졌다.

“무슨 특별한 점이라도 있는 건가?”

염도가 물었다.

“아, 아닙니다. 그냥 좀 의외의 결과라서요.”

“어디인데?’

“에에…, 2번 세 개. 셋 모두 화산파입니다.”

갑자기 모두의 얼굴에 실망이 드리워졌다. 어떤 정신 나간 납치범이라도 피납자를 화산파에 맡겨두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표행을 왔으니 이곳 터줏대감인 화산파에 인사차 들렀겠지요.”

그것이 관례라는 것이었다. 노학의 말을 오개가 이었다.

“셋 모두 풍매객잔에서 제공한 전용마차를 이용했군요.”

더욱더 용의선상에서 멀어져 버린다. 노학이 시선을 돌려 비류연을 쳐다보았다. 이제 어떻게 하느냐고 그 눈은 묻고 있었다.

지금의 이들에게 여섯 곳은 너무 많았다. 한 곳도 벅찰 지경인 것이다.

‘인원을 나눠야 하나?’

모용휘가 초조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비류연에게는 아직 질문이 남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웃고 있었다.

“예린,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말 알고 있어요?”

“예!!

나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해했다.

“아!”

비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오개를 향해 말했다.

“그 여섯 장소 중에 오늘 갑작스럽게 경비가 강화된 장소가 있다면 그걸 알 수 있겠죠?”

“무,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보고서를 찾아봐야 합니다. 사람도 불러모아야 하구요.” 비류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필요해요. 한 식경(밥 한 그릇 정도 먹을 시간 – 약 30분) 안에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렇지 않으면 두 번 다시 밥을 먹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날지 모르니깐 말이야.”

염도가 으스스한 목소리로 거들었다.

“넵!”이라고 외치며 오개가 부리나케 한쪽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고는 한동안 바깥이 꽤나 소란스러운 듯했다.

오개가 다시 돌아온 것은 정확히 그로부터 한 식경이 지난 후였다.

“훌륭한 시간관념이구먼. 자네, 오래 살겠어!

염도가 씨익 웃으며 덕담을 해주었다. 물론 오개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비류연이 물었다.

“조사해 봤나요? ”

“옙! 해봤습니다!”

“결과는 나왔겠죠?”

“옙! 나왔습니다!”

염도의 기세에 위축되었는지 거의 부동자세로 오개는 대답했다.

“딱 한 곳, 그런 곳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이 모두 오개를 향해 일순간 집중되었다.

“그곳의 이름은? ”

“! 화평장(莊)입니다.”

“화평장?”

비류연이 말꼬리를 높이며 물었다.

“예! 마을 외곽에 위치한 꽤나 오래된 장원입니다만…….”

오개가 잠시 뜸을 들였다가 다시 말했다.

“그곳을 향했던 전용마차는 아무래도 화평장의 소유인 것 같습니다. 마차는 그곳에 들어간 이후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흐흠…….”

“이곳에서도 상당히 입지가 오래된 평범한 장원입니다만…….”

그러자 비류연이 대답했다.

“평범한지 아닌지는 가보면 알겠죠!”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