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의 명령
“마천칠걸이 주군을 뵙습니다.”
마천칠걸, 그들이 대공자에 대해 표하는 예는 평범한 예가 아니었다. 오체를 복지하고 이마를 바닥에 대는 고두례가 평범한 예일 리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군신지간에나 존재하는 그런 법도였다.
그럼에도 그들의 눈에는 수치심이나 비굴함이 아닌, 앞에 자리한 존재에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무래도 조금 전 밖에서 취했던 포권지례는 남의 이목 을 생각한 행동인 듯했다.
“일어나라!”
그가 명령하자 그제야 그들은 일제히 일어났다. 대공자가 그들의 얼굴을 한차례 둘러보더니 말했다.
“잘 참았다.”
비류연에 대한 일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일곱 명의 공격이 제대로 먹힌 것 없이 모두 무위로 돌아갔는데도 그는 화내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믿고 있던 이들 일곱 의 패배나 다름없는 모멸스러운 일이었음에도 그는 짜증내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 물론 징벌을 가할 생각도 없었다.
이미 어찌 된 연유인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주군의 허락 없이 봉인을 푸는 것은 저희들에게 허가되어 있지 않습니다.”
강철처럼 탄탄한 체구의 사내, 마천칠걸의 필두인 마검익 추명이 기복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놀라운 일이었다. 이들은 아직 자신들의 진 재절학을 내보이지 않은 것이다. 자신들은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답에 만족했는지 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너희들의 진정한 힘을 드러낼 때가 아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곧 그때가 온다.”
그는 확고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는 그때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일곱 명이 일제히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준비는?”
대공자가 느닷없이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바로 나왔다.
“모든 것이 순조롭습니다.”
이걸 칠련창 종리추가 대답했다.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수고했다!”
대공자가 치하했다.
“과찬이십니다.”
“시작은?”
“모레부터입니다.”
즉각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예정대로로군!”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그를 흡족하게 했다. 계획 진행 도중 몇 번의 불상사가 있어 계속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주위의 이목을 조심하도록!”
“명심하겠습니다.”
칠걸이 동시에 대답했다.
“교옥!”
대공자가 한 명을 호명했다.
“예, 주군! 하명하세요.”
일곱 명 중 유일한 홍일점인 다홍색 비단옷의 여인이 다소곳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백화가 만개한 듯한 화려한 비단옷, 가녀린 어깨선이 강조되도록 틀어올린 윤 기 흐르는 검은 머리, 터질 듯 풍만한 도발적인 몸매, 그리고 조용히 내리깔린 사내의 혼을 사로잡는 마성이 깃들어 있는 촉촉하게 젖은 사슴 같은 눈동자. 정(靜)과 동(動), 모든 곳에서 사내를 치마폭 아래 사로잡을 만한 관능적인 기운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때문에 그녀에게는 혈심란이라는 별호 이외에도 매혼매향(賣魂買香: 영혼을 팔아야만 비로소 그 향기를 살 수 있다)이라는 무시무시한 별칭까지 따로 붙어 있었다.
“비류연이라는 사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주군의 앞을 가로막은 그 무뢰배를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혈심란 교옥, 절대적인 복종심이 배어 있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사내의 가슴을 두방망이질치게 하는 묘한 색기 역시 어려 있었다. 짧은 울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는 사내의 심금을 울리는 애틋함과 사내에게 정복감을 만끽하게 해주는 그런 마력이 동시에 혼재되어 있었다. 저런 목소리를 자연스럽게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철저히 계산된 모종의 가혹한 훈련을 거쳐야만 비로소 저런 애틋한 목소리로 노래하듯 말하는 게 가능한 것이다(이미 그녀는 그런 것을 의식적으로 행하는 단계를 넘어서 있었다. 그래야만 의식중에든 무의식중에든 필요에 의해 사내들을 유혹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천기련에서 지금까지 배워온 방식이었다. 나예린 과 달리 그녀는 인위적으로 육성된 마성(魔聲),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그를 사로잡아라!”
대공자는 아주 간단한 문장으로 명령했다.
무엇을 사용해 그 일을 행해야 하는지는 굳이 말해줄 필요도 들을 필요도 없었다. 사내를 상대함에 있어 그녀의 육체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다.
대공자 비 또한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는 푹신푹신하고 야들야들한 정신상태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만일 그런 안이하고 무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면 이 자리에 올라오지도 못했으리라.
“그 정도까지 신경 써야 하는 인물입니까?”
교옥이 진심으로 놀라 되물었다. 그의 주인에게 이렇게까지 신경 쓰이게 한 인물은 그녀가 알기로는 그 볼품없는 청년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놀란 것은 그녀뿐만 이 아니었다. 대공자가 보인 의외의 태도에 마천칠걸 역시 모두들 경악해마지 않았던 것이다.
“너에게 본인이 그런 판단까지 위탁해야 하는가?”
대공자의 조용한 반문은 대번에 그녀의 얼굴을 창백하게 만들었다.
“소녀가 주제넘었습니다! 부디 무례를 용서해주세요.”
그녀의 교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맹목적인 충성과 복종 뒤에 숨겨진 공포의 그림자였다.
“아무리 힘을 봉인했다고는 하지만 그대들 일곱의 칠변연환공격을 모두 피해낸 자다. 그런데도 그대들은 그를 무시하는가?”
“단지 미꾸라지처럼 날렵했을 뿐입니다.”
삼걸이 외쳤다. 그러자 대공자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난 그대들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추상같은 말이었다.
“돌발적인 변수가 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요소는 사전에 미리 제거해야만 한다. 교옥!”
“예, 주군!”
“너에게 맡긴다. 그자를 인도해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유혹해 타락의 늪으로 인도하는 것이야말로 그녀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교육받은 목표이자 사명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이번 상대는 별 로 내키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녀가 상대해오던 자들과 달리 너무…….
“불만인가?”
조용한 반문. 그러나 차가운 냉기가 그녀의 등골을 울리며 지나간다. 순간적으로 내부를 돌던 피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듯 창백해지는 안색,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다.
“아닙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거역? 거부? 그것은 그녀의 뇌리 속에는 들어 있지 않은 말이었다. 그것은 오직 가장 참혹한 죽음하고만 연관지을 수 있는 금단의 단어였다.
범해서는 안 되는 금기!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이 그녀의 볼을 타고 바닥으로 톡톡 떨어졌다.
“그의 영혼을 사로잡아 그 안에 든 모든 것을 알아내라.”
혈심란 교옥에게는 그의 명령에 대한 거부권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육체와 정신, 양쪽 모두를 관장하고 있는 진정한 주인인 것이다. 그녀의 사명은 절대 적인 복종뿐.
“신명을 바쳐서!”
그것이 그녀에게 허락된 유일무이한 대답이었다.
“새로운 재생을 위해!”
대공자가 한마디 선창하자 모두들 그 말을 복창했다.
“새로운 재생을 위해!”
그것이 마치 기도나 주문이라도 되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