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4권 5화 – 두 노인의 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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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14권 5화 – 두 노인의 술판!

두 노인의 술판!

부어라! 마셔라!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갖가지 술병,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는 과거에 안주가 수북이 담겨 있었음이 분명한 접시더미들. 수미산처럼 쌓아올려진 빈 접시의 표면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오색의 양념장들 과 전멸당한 야채 파편들이 젓가락에게 유린당한 그 참혹함의 흔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저 노괴(老)들이 정녕 인간이란 말인가?”

섬서성 화음현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자부하는 매령주루(梅靈酒樓). 그곳의 제반 대소사를 총괄하고 있다는 사실에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주 류업계의 노장(老장 총관은 자신의 두개골에 박힌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저게 인간의 주량이란 말인가?”

며칠 전부터 이 주루는 저 두 노인에게 강제점거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 정상이 아냐!”

저 두 노인은 아무래도 술을 퍼먹다 술독에 빠져 죽는 것이 소원인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런 만행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아직까지 죽지 않 고 있으니 그것이 불가사의할 따름이었다.

며칠 전 느닷없이 쳐들어와 어디 가볍게 시작해볼까!’로 시작된 술자리가 지금 이 시각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그후로 사흘이 훌떡 지나가자 계산과 이문에 밝은 장 총관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저 볼품없어 보이는 두 노인에게 지금까지 자신들이 퍼마시고 처먹은 것들에 대한 계산 능력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까 닥 잘못하면 매령주루의 재정이 거덜 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혹시나 해서 물을 때마다 걱정하지 말고 술 달라는 말만 되풀이하는데 어찌 걱정되지 않을 수 있겠는 가. 그래서 최후의 수단으로 장정들을 동원해볼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한 사람의 방문으로 인해 그 계획은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바로 매령주루의 특급 손님이자 믿을 만한 배경이며 루주의 친구이기도 한 화산십걸(華山 +傑)의 한 명인 화산파 일대제자 능운검객 혁선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인가, 장총관?”

평소와는 무척이나 다른 이질적인 분위기를 감지한 혁선우의 물음에 장 총관은 얼씨구나 하며 자초지종을 모두 털어놓았다. 이 화음현에서 화산십걸의 입김이 통 하지 않은 경우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대답은 기대대로였다.

“뭔가, 겨우 그 정도 일이었나? 걱정 말게나. 본인이 깔끔하게 처리해주겠네!”

물론 장 총관은 그의 장담을 믿었다. 그는 이 화음현 내에서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처리 방법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성큼, 성큼, 성큼!

그 문제의 두 노인이 있는 곳까지 걸어갈 때만 해도 능운검객 혁선우의 발걸음은 기개와 협기가 가득 넘쳐흐르고 있었다.

“노인장, 잠깐 나 좀 봅시다.”

그걸 본 장 총관은 멀리서 쾌재를 부르며 속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두 노인의 시선이 술판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대작을 방해한 자의 얼굴로 향했다.

그런데 이때 상상치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장 총관이 혁선우와 알게 된 지 벌써 십 년은 족히 넘었지만 그가 자신의 눈앞에서 그런 신위를 보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털푸덕!

장총관은 물론 그와 함께 흥미진진한 눈으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던 점소이들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짐과 동시에 입이 떡 벌어졌다.

그 자존심과 긍지 빼면 시체라는 소리를 듣는 저 목 뻣뻣한 혁선우가, 화산의 다음 대를 짊어질 인재라는 화산십걸 중의 일인이자 이십사수매화검법의 달인인 저 혁선우가 그 잘생긴 코가 뭉개지는 게 아닌가 염려될 정도로 몸을 던져 깊게 큰절을 올렸던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그것은 극공경의 자세였다.

그 이후로 몇 마디를 더 나누는 것 같았지만 목소리를 낮추고 있는 것이 아닌 게 분명한데도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마치 중간에 보이지 않는 막이라도 쳐져 있 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마침내 식은땀으로 목욕을 한 뒤 더욱 핼쓱해진 혁선우가 노인들 곁에서 풀려났다.

“도대체 누굽니까, 저분들은?”

그의 과감한(?) 행동을 본 터라 감히 저 노인네라고 칭할 수는 없었다.

“무… 묻지 마시오, 저 두 분의 일에 대해서는!”

그는 마치 지옥에라도 갔다 온 사람처럼 얼굴이 창백하고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대신 모든 정성을 다해 저 두 분을 모시도록 하시오. 감히 함부로 모시기도 힘든 분들이오. 모든 것은 나 혁선우가 책임지겠소. 그 술값은 나 혁선우 앞으로 달아 놓도록 하시오. 그리고 행여나 두 분께 결례를 범하지 않도록 모든 종업원들에게 주의를 주는 것 또한 잊지 마시오.”

“도대체 저분들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되면 더욱더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난 그 질문에 대해 답하도록 허락받지 못했소. 다만 저기 계신 저분들은 나의 신(神)이나 다름없는 분들이오. 그러니 절대 실수가 없도록 유념하시오.”

그러고는 더 이상 이곳에 있기 두렵다는 듯 서둘러 주루를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그후로는 감히 두 노인을 건드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성심성의를 다해 대접하고 있는 중이었다.

혹시나 장 총관이 이 두 노인의 정체를 알아보았다면 놀라서 까무러쳤으리라. 그들은 구대문파 중에서도 드높은 성세를 자랑하는 두 개 대문파의 태산북두와 같은 어른 중 어른이었던 것이다. 특히 이들 중 한 명은 이 화음현 전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화산파의 최고 어른이었다.

두 노인은 바로 며칠 전 천무학관 관도들 앞에 나타났던 매화검선 유환권과 무당파 장문인의 사숙이자 삼절검 청흔의 사부인 현검자였다.

인시초(初) 섬서성 화음현 화평장 정문

쾅!

마른하늘에 천둥이 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화음현에서 꽤나 큰 장원인 ‘화평장’의 문짝이 요란스레 부서져나갔다.

그리고 쓰러진 문을 밟으며 여러 명의 무인들이 뛰쳐나왔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그 선두에 선 자는 타오르는 불꽃처럼 붉은 머리칼을 지닌 험악한 인상의 중 년인이었다고 한다.

“얘들아! 튀어라!”

붉은색의 화신 같은 중년인의 명령에 젊은이들은 마치 질풍처럼 내달렸다.

그들에게 있어 지금 최대의 적은 등뒤를 압박해 들어오는 살기 넘치는 추격자들이 아니라 붙잡고 싶어도 결코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동이 틀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던 것이다.

“며…면목 없습니다, 대공자! 죽여주십시오!”

화평장주 호유광은 땅바닥에 몸을 던진 채 떨고 있었다. 그분이 오신 자리에서 이런 실수를 범하다니……. 그의 이마는 이미 피로 흥건히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대공자 비는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나는 부하들을 아낀다.”

조용한 목소리로 비가 말했다.

“아무리 그것이 큰 실수라 해도 함부로 죽음을 내리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조직에 있어서도 큰 손실이니깐!”

오체투지하고 있던 호유광의 등이 부르르 전율했다.

“그래서 난 누구에게나 두 번의 기회를 준다!”

조용한 목소리로 대공자가 말을 이었다. 그것은 호유광의 생로를 열어주는 말이기도 했다.

“여자를 되찾아와라!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다.”

“예, 맡겨주십시오. 이, 이미 살귀대(鬼隊)를 풀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벗어난 호유광이 필사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대공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여자를 되찾아오기를 바라는 게 좋을 것이다.”

그 말의 이면에 죽음의 그림자가 맴돌고 있음을 호유광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시,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그는 간신히 대답했다.

“개들이 냄새를 맡고 몰려들겠군! 모든 것을 은폐해라. 이곳은 포기한다.”

“존명!”

사내들 간에 발생하는 오랜만의 해후는 술을 부르고, 인과의 법칙에 따라 과음과 폭음의 미덕을 탄생시킨다. 여기에 장유(長有), 세수(世壽), 빈부(貧富) 따위는 아 무런 관계도 없다.

매화검선 유환권과 현검자가 한 주막에서 달이 기울어가는 것도 잊은 채, 밤이 흘러가는 것도 잊은 채 술을 푸고 있었다. 도저히 한 문파의 지엄한 어른들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이들은 요 며칠 동안 검의 도리 대신 술의 도리에 대해 그 극의까지 파고들어 탐구해볼 작정을 했던 모양이다. 인체실험을 통해서 말이다.

도대체 그 시작은 어디메였고, 그 끝은 또 어디메란 말인가?

“그 아이들, 잘 할 수 있을까요?”

천천히 술잔을 기울이며 현검자가 물었다. 몸 안에 넘치는 태청기(太淸氣)가 일정량 이상 되는 주기(酒氣)를 알아서 자동적으로 태워버리기 때문에 아무리 마셔도 취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일월의 운행을 잊고 이 정도까지 마셔대면 취하기 싫어도 취하게 마련이다.

“이번 대회의 실상을 안다면 낙담할 게 분명하겠지?”

질문에 질문으로 답한다.

“아마 어이없어 할 겁니다.”

현검자의 대답에는 고소(苦笑)가 맺혀 있었다. 맞은편에서 대작하고 있던 노도사 유환권도 이를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도 하지. 그들이 상상하고 기대하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것은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일세! 아마 이 노도라 해도 다르지 않았을 걸세. 자네라면 도 사 신분도 잊고 길길이 날뛰었을걸?”

현검자는 부정하지 않았다.

자신이 기대하고 희망했던 것과 다른 현실을 만났을 때 사람들은 당황하게 된다. 그리고 그 틈새에서 불화와 미숙함이 흘러나온다.

결혼과도 비슷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 후 실망하는 것은 연애 때의 열정이 결혼만 하면 무조건 영원히 지속될 거라고 착각하는 데 있다. 하지만 연애랑 결혼은 전혀 다른 문제라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때문에 결혼한 사람들이 자주 결혼에 대해 실망을 하는 것이다.

“근 이십 년 이상 쌓아온 선입견을 버려야만 하는 일입니다. 아마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겁니다. 고민도 어느 때보다 많을 겁니다.”

“극복하길 바라는 수밖에! 그 중 일부는 우리가 잘못 가르친 책임도 있으니깐 말일세. 평생 동안 쌓아놓았던 상식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라고 말하는 것은 잔혹한 일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지요.”

현검자는 답답한지 다시 한번 입안으로 술잔을 털어넣었다. 주향과 함께 속에서 확 불길이 치솟아올랐다.

“그건 그렇고 그분께서 아우까지 불렀을 줄은 몰랐군.”

현검자는 손에서 술잔을 놓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의 생각을 어찌 알겠습니까! 전 그저 따를 뿐이지요.”

도대체 무당파의 최고 어른 중 한 명인 현검자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인물이란 과연 누구일까? 아무래도 유환권은 그 사람을 알고 있는 듯하다.

“아직도 꼬리를 잡지 못했는가?”

유환권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무엇의 꼬리를 일컬음인가?

“워낙 신출귀몰한지라 그 머리카락 한 올 보기가 쉽지 않군요.”

현검자가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무언가 그의 심신을 무겁게 하는 존재가 있는 모양이었다.

“확실한 이야기인가? 그 천겁…”

쾅!

두 사람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와장장창, 쿠당탕탕!

챙챙챙챙!

주루의 창 밖에서 요란스런 소리가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울려퍼졌던 것이다.

“시끄럽다!”

외침과 함께 술병 하나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물론 빈 술병이었다.

남아 있는 술을 헛되이 버리는 지독한 짓을 할 정도로 노도사의 수행(?)이 약하지는 않았다.

파샥!

술병은 한 복면인의 뒤통수에 맞고 요란스런 소리를 내며 깨졌다. 그자는 그대로 얼굴을 지면에 처박았다.

추격말살전문부대 살귀대(鬼隊)의 제 십대를 이끌던 대장 살혼십귀(魂鬼)의 시선이 살짝 그쪽을 향했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는 도주하다가 거리가 가까워 지자 도주를 포기하고 돌아서서 맞서고 있는 침입자 일행을 제거하고 여자를 되찾아오는 게 급선무였다.

방금 전 매령주루를 뒤흔든 굉음은 도주하는 침입자와 추격하는 그들 살귀대가 다시 한번 격돌한 충격의 여파였다. 그리고 아무래도 이번 격돌은 그들의 손해로 끝난 듯했다. 이 한 번의 격돌로 벌써 세 명의 부하가 땅바닥에 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저쪽은 모두가 다 멀쩡히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었다.

“웬 잡것들이 이 어르신 앞을 가로막아? 시간 없어 죽겠는데! 씨이발, 죽고잡냐!”

염도가 분기탱천한 목소리로 상소리를 퍼부었다. 그가 두려운 것은 이런 ‘잡것들이 아니었다. 꽤나 사나운 녀석들이지만 이런 녀석들에게 등을 내주고 도망갈 만 큼의 약골은 이 일행 중에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대가리 수가 두 배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들에게 발목을 붙잡히고 있기엔 그들의 시간이 너무나 촉박했 다.

이 방약무도한 태도에 십귀는 기분이 매우 나빠졌다. 그래서 그는 손가락 세 개를 들었다가 다시 검지 하나를 들어 술병이 날아온 주루의 이층 창문을 가리켰다. 셋이 올라가 처리하라는 신호였다. 뭔가 잔혹한 본보기를 보여줘 기세를 이쪽으로 끌어들일 속셈으로 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쾅쾅쾅!

술병이 날아온 바로 그 이층 창문을 뚫고 요란법석지근하게 날아온 것은 방금 전 사람 잡으러 갔던 자신의 부하 세 명이었다. 그들 셋의 몸은 기묘한 방향으로 사 지가 뒤틀린 채 마치 석상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곧 창문 안쪽에서 노인의 호통이 터져나왔다.

“어른들이 술 마시는데 피 냄새를 풍기다니…, 네놈들은 예의도 없느냐!”

그 목소리는 바로 현검자의 것이었다.

“웬 놈이냐? 정체를 드러내라!”

“어허, 이런 막돼먹은 놈을 봤나. 말이 점점 더 사나워지는구나.”

도사치고는 현검자도 상당히 거친 말투였다. 하지만 그는 규율에 얽매여 자신의 감정을 숨기거나 자제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좀 솔직한 언행으로 표현한다고 하지만 같은 사문의 사람들도 때로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게 바로 현검자의 자유분방한 언행이었다.

“노도는 보통 술 마신 후에 달밤에 체조하기를 즐기지.”

돌아 나오기 귀찮은지 구멍이 뻥 뚫린 벽을 통해 두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빛바랜 자줏빛 도포를 걸친 노도사는 특이하고 조잡하게 생긴 가면을 덮어쓰고 있었고, 그 옆의 빛바랜 낡은 청색 도포를 두르고 있는 노도사는 얼굴에 삿갓을 쓰 고 있었다.

비록 얼굴을 숨기고 있었지만 이 중에 그 정체를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특히나 화산파 출신인 윤준호의 표정은 볼 만한 것이었다.

“우와! 저 사람은 바로 그 유명한 매화가면!”

어디선가 터져나온 감탄성! 그 음성은 감동과 흥분의 도가니탕이었다. 모두들 입을 따악 벌리고 있을 때 실없는 외침으로 그 긴장감을 단숨에 깨뜨려버린 범인은 바로 장홍이었다.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매화가면의 고개가 그를 향해 천천히 돌아가더니 이윽고 엄지손가락을 힘껏 치켜드는 것이 아닌가! 장홍도 화답이라도 하듯 씨익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좋게 보면 기행, 나쁘게 보면 추태라고 할 만한 이 행동을 지켜보는 초립(草笠) 쓴 무당파 노도사의 시선에 왠지 모를 부러움의 빛이 가득했다.

“으음, 나도 가면 하나 만들어 이마에 태극문양이라도 넣을까…….”

이유를 알 수 없는 부러움과 질시가 담긴 혼잣말. 다행히도 현검자의 이 중얼거림을 들은 이는 아무도 없어 무당파에 누가 되지는 않았다.

“흡!”

사람들의 눈이 적(敵) 할 것 없이 크게 떠졌다. 두 노인이 공중에서 밑으로 내려오는데 깃털이라도 떨어지는 것처럼 그 속도가 무척이나 느렸던 것이다. 이 두 노인이 얼마나 상승의 고수인지를 여실히 알려주는 부분이었다.

사뿐히 땅바닥에 안착한 현검자가 스윽 한 번 살귀대들을 훑어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허, 피맛에 중독된 인생들이로구나. 너희들의 손에 들린 칼은 현세에 도움이 되지 못하니 모두 거두도록 하겠다.”

그러고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갈 길이 바쁜 것 같은데 어서 가보시게. 여기는 우리 두 늙은이에게 맡기고!”

염도와 구출대 전원이 포권을 취하며 예의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때 현검자가 다시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참, 그리고 우린 서로 만난 적이 없는 거네!”

잠시 어리둥절하던 염도가 이내 그 숨은 뜻을 알아차리고는 재차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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