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4권 6화 – 한계시간(限界時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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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14권 6화 – 한계시간(限界時間)!

한계시간(限界時間)!

약속시간에 늦는 비류연

야밤에 피어오른 요란스런 불꽃놀이가 주민들의 눈과 귀에 목격되지 않았을 리 만무했다. 그리고 투철한 신고정신을 지닌 주민 하나가 현청으로 달려와 그 사실을 고했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까지 울려퍼졌다고 하니 출동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처지였다. 게다가 그의 역할은 금일의 숙직조장이었다. ‘똥 밟았다!’

꼭 이런 날이 한 번씩 있어 숙직중인 누군가를 무작위로 괴롭히는 것이다.

“강도인가?”

그들도 현 외곽에 자리한 그곳, 화평장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곳 장주랑 이곳 현감하고는 꽤 친분이 있는 사이라 자칫 소홀히 했다가는 나중에 경을 칠 수도 있는 것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화음현 현청 소속 포두 이칠은 동료 상구와 함께 쭉 뻗은 대로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었다. 그 뒤로 부하 12명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숙직실에 서 자던 걸 강제로 깨워서 그런지 얼굴에 불만이 가득하다.

“너희도 그런데 짬밥 찬 난 오죽 귀찮겠냐??

그런 속내를 감추고 그는 열심히 달렸다.

툭!

그때 뭔가 따뜻한 게 그의 볼 위로 떨어졌다.

“뭐, 뭐야?”

서, 설마 새똥?

어느 불면증 걸린 비둘기 새끼라도 머리 위로 날아간 건가? 그렇지 않아도 야간 근무조에 편성되었을 때 소란이 일어 이렇게 생고생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 도 일진이 나쁜 것만 같았다.

무심결에 볼을 닦아내던 이칠이 흠칫했다. 감촉이 틀렸다. 게다가 그것은 그가 익히 잘 아는 어느 것의 감촉이었다.

이칠은 들고 있던 등롱에 손을 가져가 보았다.

역시 그의 생각이 맞았다. 그것은 바로 피였다.

“그런데 이게 어디서 갑자기?”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무공이 빈약한 이칠로서는 전각과 전각의 지붕을 훌쩍훌쩍 뛰어넘으며 그의 머리 위를 비조처럼 날아 지나간 하나의 그림자가 있었음을 꿈에도 알아차릴 수 없었 다.

섬서성 화음현 개방 서악분타

“늦어!”

염도가 안절부절 못하고 소리쳤다. 정말 늦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미 이곳 약속장소에 도착해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이곳에 선착한 지 일각이나 지났음에 도 비류연은 아직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늦어! 늦어! 늦어!”

지금 그들에게 시간은 가장 크고 거대한 적이었다. 이제 곧 동이 터올 시각이다. 과연 제시간에 맞출 수 있을까? 만일 일조점검에 늦는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규 칙을 어긴 무단외출? 좋은 평을 들을 리가 만무한 일이었다. 한계시간까지 이제 한 시진도 채 남지 않은 상태였다.

조심조심하며 독고령은 조용히 나예린의 주위를 돌기만 했다.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둘러쳐진 것처럼 접근이 불가능했다. 이럴 때는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기보다 약간의 거리를 두는 쪽이 더 낫다.

‘무엇 때문에 그리 초조해 하는 거지?”

독고령은 이해할 수 없었다. 터무니없을지 모를 가정 하나를 머리 속에 담고 있었기에 더욱더 그러했다. 하지만 달처럼 나예린의 주위를 맴돌기만 할 뿐 끝내 말을

걸지는 못했다.

평소 쾌활명랑을 자랑으로 삼던 이진설도 불안한 시선으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자신의 우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뒤에는 겨우 정신을 차린 효룡이 마치 그녀를 지키기라도 하듯 조용히 서 있었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는 이가 없었다.

반면 주작단 출신인 남궁상과 진령과 노학, 이 세 사람이 모인 곳은 다른 곳에 비해 무척이나 느긋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어찌 보면 이들 중 염도를 빼고는 비 류연의 숨겨진 이면을 가장 많은 본 사람이 그들이었다. 때문에 이제 그들은 대사형의 가르침에 무척이나 충실했으며, 기회만 오면 그 가르침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애썼다.

그동안 겪은 온갖 경험이 그들에게 이런 여유를 안겨준 것인지도 몰랐다.

“이봐, 대사형이 돌아오는지 안 오는지 내기할까?”

가장 먼저 말을 꺼낸 이는 노학이었다. 그러나 그는 일제히 쏟아지는 눈화살을 온몸으로 받아야만 했다. 모두의 시선에는 비난의 기색이 가득했다. 이유는 간단했 다.

“내기가 안 되잖아!”

남궁상과 진령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노학을 비난하는 까닭은 도덕이나 윤리 같은 안일한(?) 문제가 결코 아니었다. 내기가 될 수 없는 걸 내기로 걸려 했기 때 문이다.

“그런데 혹시나…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정말 그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말일세, 우린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 걸까?”

남궁상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개진해본다. 그러자 의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렇게 되면 아~주 큰일이지~.”

“맞아요, 맞아! 어찌 되었든 대사형은 대사형, 돌아오지 못하면 정말 큰일이라구요.”

진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야! 그렇게 되면 괄시 안 받아도 되고 갈굼 안 받아도 되고.. 정말 큰일이야, 큰일!”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노학의 말에는 왠지 원인모를 생기가 가득 흐르고 있었다.

“만일 대사형의 몸에 무슨 일이라도 ‘안’ 생긴다면…, 크윽! 내 당장 달려가 그놈들의 뼈와 살을 분리한 다음 사십구일 동안 방치해놓겠어! 크윽!” 노학이 격정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이봐, 이봐! 노학, 자네! 말은 걱정, 진정이 가득한데 표정은 웃고 있다고.”

남궁상은 대사형이 없는 지금부터라도 이런 일들을 철저히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험! …내, 내가 그랬나…….”

역시 진심은 쉽게 속일 수 없는 건가? 노학은 깊이 반성했다.

잠시의 침묵.

“…하지만 역시……. 없으면 무척이나 속 편하겠지?”

남궁상의 기도 같은 중얼거림에 누구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바로 그때였다.

“내가 뭘 어쨌다고?”

세 사람의 고개가 뒤로 홱 돌아갔다. 잡아 뽑히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격렬한 동작이었다.

그들의 눈이 일제히 휘둥그레졌다. 언제 다가왔는지 모르지만 그곳에는 그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대사형이 서 있었던 것이다.

씨익!

그들의 가슴을 싸늘하게 식혀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어, 어, 언제부터 거기에…….”

이가 딱딱 부딪칠 정도로 떨리는 목소리로 남궁상이 물었다.

“글쎄요…, 언제부터였을까요?”

방실방실 웃음 짓는 그 모습에 주작단원 세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등골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살해당할지도 몰라..

그것이 바로 그들이 지금 공통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속이고 이렇게 가까이까지 접근했단 말인가?’

석류하는 믿겨지지 않았다. 게다가 사람들이 그 사실에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는 게 더 놀라웠다.

“왜? 실망했어?”

남궁상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 그럴 리가요……. 헤헤헤헤.”

간과 쓸개를 모두 떼어낸 자만이 지을 수 있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거짓말을 할 때는 좀더 표정관리에 힘쓰는 게 좋아!”

비류연이 친절하게 충고해주었다.

남궁상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머릿 속은 이미 긴장과 혼란으로 인해 뒤죽박죽으로 엉켜 있었다.

‘뭐, 뭔가 다른 화제를 찾지 않으면…….몰…살(沒殺)!’

한 집단의 의식을 이 정도까지 비약시킬 수 있는 것만으로도 비류연의 존재감이 얼마나 강대한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생존을 향한 몸부림, 그것은 일단 화제를 돌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남궁상을 비롯한 세 사람은 필사적으로 눈을 굴리며 탈출구를 찾았다.

위험, 위험, 위험!

그들의 본능이 맹렬히 경보를 울리고 있었다. 덩달아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러나 몰살의 광극은 일어나지 않았다. 천만다행으로 주작단 핵심 구성원 세 사람은 한 명의 여인에 의해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었다.

“류연!”

나예린은 자기가 이렇게 큰소리로 외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독고령에게도 이진설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아, 예린! 나 돌아왔어요!”

필사적으로 눈알을 좌우로 굴리던 남궁상에게서 시선을 떼어낸 비류연이 활짝 웃으며 나예린에게 보고했다. 그녀는 어느새 그의 옆에 다가와 있었다.

나예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동작은 아주 우아하고 기품이 돋보였지만 매우 완만하고 느렸다. 동시에 그녀의 두 눈이 비류연의 전신을 훑어보기 시작했 다.

내심을 짐작할 수 없는 표정과 조용히 가라앉은 맑은 눈으로 천천히 비류연의 전신을 훑어보던 그녀의 시선이 돌연 한 곳에서 정지했다. 땅바닥에 떨어진 한 방울 의 액체 때문이었다.

비류연의 팔뚝을 타고 내려와 손바닥을 감싸고돌며 중지를 타고 떨어진 그것은 바로… 피였다.

“피가…….”

“예?”

그녀의 가느다란 목소리는 너무 미약한지라 처음에는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류연! 피가…….”

“아아, 별거 아니에요. 조금 방심했나봐요.”

비류연이 씨익 웃으며 태연스레 말했다. 춘삼월의 훈풍 같은 밝은 어투였지만 그의 머리카락 뒤에 가려진 두 눈동자는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상처인가? 얼마 만인지…….”

조용한 목소리로 뇌까리더니 피가 방울져 흐르는 왼손을 입가에 가져다 댄다. 약간 비릿한 혈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오랜만이군!”

피맛이 미각을 타고 뇌 속으로 전해진다.

“나의 성혈을 외출시킨 대가는 무척이나 비쌀걸!”

조용히 중얼거리는 그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귀찮게 됐네요.”

“……?”

나예린의 눈동자에 의문이 가득 담겼다. 비류연이 조용한 어조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전 교육을 너무 엄격하게 받아서 빚지는 걸 무척이나 싫어하거든요. 남에게 빚 지우는 건 좋아하지만 말이에요. 그런데 오늘은 갚아야 할 빚이 덜컥 생기고 말았 네요. 후후후!”

“역시 묵룡봉인을 해제하는 게 좋았을까…….”

하지만 이미 지나간 버린 과거.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뭐라고요?”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비류연은 말을 얼버무리며 다음을 기약했다.

“멈춰라!”

독특한 울림을 지닌 목소리가 비류연의 입으로부터 새어나왔다.

“저…, 그런다고 멎을 리가…….”

그러나 남궁상은 자신이 내뱉던 말을 도로 주워 담아야 했다. 거짓말처럼 가슴 부위에서 흘러나오던 피가 멈추었던 것이다.

‘이럴 수가! 혈도도 짚지 않고 어떻게?”

분명 상처 주위의 혈도를 짚어 지혈하는 수법은 강호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말 한마디로 피를 멈추게 하는 광경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것을 지켜보던 염도의 눈에도 이채가 번뜩였다.

“말 한마디로 상처를 지혈시키다니. 설마 소문으로만 듣던 심점혈의 수법인가?”

심점혈(心點)이란 말 그대로 마음만으로 자기 몸의 혈도를 자유자재로 점혈하거나 푸는 것을 말한다. 마음으로 육체를 다스리는 단계인 것이다. ‘도대체 속에 꿍쳐두고 있는 게 아직 얼마나 많은 거야?”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염도는 아직 재주가 미천하여 진신진력을 꿰뚫어보지 못하는 자신의 능력이 원망스러웠다.

뎅! 뎅! 뎅! 뎅!

그때 저 멀리서 인시정(寅時正 : 약 0400시경)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아차! 이런!”

순간적인 돌발 상황에 휩쓸려서 가장 중요한 일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일조점검!!”

아직 올라가야 할 산은 까마득히 멀고 높고 험했다. 서둘러야만 했다.

“어떻게 하죠?”

모용휘가 물었다. 이제부터 은설란을 모종의 안전한 장소로 피신시키기에는 돌아갈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더구나 묘시정까지 홍매곡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알 수 없다.

“그녀는 너무 노출되었고, 겪어본 바로 미루어 보면 적들의 저력 또한 무섭습니다. 숨은 저력 역시 방심할 수 없습니다. 이 근처에 저들의 이목을 따돌릴 만한 안전 한 곳이 있을까요?”

게다가 아직 깨어나지도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로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노사님?”

대답을 구하는 간절한 어조로 모용휘가 물었다.

“그런 곳이 딱 한 곳 있긴 있지!”

궁리를 짜내던 염도 대신 대답한 이는 바로 비류연이었다. 그가 미소 짓자 모용휘는 불안해졌다.

“서, 설마? 자네!”

별안간 그의 눈이 크게 떠진다.

“그래! 맞아! 잘은 모르지만 그곳만큼 안전한 곳도 드물걸?”

“그건 미친 짓이야!”

비류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앞 머리카락이 그 와중에 발처럼 흔들린다.

“아니! 가장 현명한 행동이지!”

“서, 설마!”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꽤 머리가 좋군요. 바로 그곳이죠. 그곳이라면 적들도 쉽게 손쓰지 못할걸요?”

확실히 어떤 면에서는 그의 말이 정답이었다. 하지만 아직 ‘어떻게?’라는 의문이 남아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요?”

비류연이 염도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것은…, 지금 그녀를 천무봉으로 데려가자는 이야기?”

“지금 그곳보다 안전하고 합리적인 곳이 있을까요?”

물론 그거야 비류연의 말대로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또 다른 난관을 뛰어넘을 필요가 있었다. 애초에 무슨 수로 그녀의 존재를 다른 사람들에게 납득시킨단 말인가?

간접적인 의사표현. 이것이 바로 그가 사람들 앞에서 염도에게 지시하는 방법이었다. 염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려 비류연을 바라보 았다.

“무슨 방책이라도 있다는 것?”

다른 건 몰라도 그 잔머리만큼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염도였다. 이 정도 일을 벌이는 데 있어 배경으로 깔아놓은 잔머리도 없이 무턱대고 저지르는 유형의 인간이 절대 아니었다.

그의 반문에 비류연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어차피 이판사판! 이미 되돌아갈 길 따위는 없는 것이다. 일단 한번 저 잔머리 대왕을 믿어보는 거야!”

무모한 결정을 중인들의 동의도 없이 무턱대고 해버리는 염도였다. 나중에 일이 잘못되면 무슨 원망을 들으려고 그러는지…….

마침내 염도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좋아! 가자!”

이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 곳이 가장 위험한 곳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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