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4권 7화 –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두 가지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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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14권 7화 –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두 가지 재앙!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두 가지 재앙!

“헉헉헉헉!”

“헥헥헥헥!”

“굼벵이 삶아 먹었냐? 뛰~어!”

염도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사람들을 재촉했다.

미녀를 구출하기 위해 자신의 안위도 돌보지 않고 나선 열세 명의 구출대원.

그들은 지금 유한한 시간과 무진장 높은 산맥이라는 두 상대와 씨름해야 했다.

애석하게도 낙안봉은 화산 오봉 중 가장 높은 봉우리였다. 괜히 기러기가 날다가 지쳐 추락사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야밤에 격렬했던 격전으로 인해 피로 가 누적될 대로 누적되어 있었다.

하지만 쉴 시간은 없다. 다리를 뻗고 주저앉는다는 행위가 얼마나 큰 호강인지 뼈저리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달려!”

비류연의 외침에 그들은 다시 공력을 돋우어 경공을 발휘하면서 낙안봉을 향해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초저녁 차가운 냉기가 그들을 감쌀 때까지 정말 쉬지 않고 달렸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폐부는 터질 듯 부풀어올랐지만 쉬고 있을 여가는 없었다. 대지는 점점 더 팍팍하고 황량해져갔다. 생명의 숨결이 점점 더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는 것 같았다. 회광반조 전의 환자들처럼.

한노의 말을 듣고 은설란을 구출하기 위해 달려간 길에 벌써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이제 곧 묘시말. 기상 후 아침 조례와 함께 인원점검이 있는 시간이다.

“헉헉헉헉!”

그들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두 녹초가 되어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하루 온종일 걸어도 도착하기 힘든 아득한 높이의 산을 겨우 한 시진 만에 전력으 로 주파했으니 아무리 내외공이 탄탄하다 해도 어찌 지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내공이 약한 몇몇 은 눈앞까지 핑핑 도는 모양이었다.

“빨리 서둘러!”

곧 일조점검이 시작된다. 그 시간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연무장에 나가봐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잠깐 기다리시게!”

흠칫!

일행의 고개가 일제히 한쪽으로 홱 돌아갔다.

‘이런!’

몇몇 사람들의 안색이 눈에 띄게 창백하게 변했다. 특히 소심하기로 정평 난 윤준호의 얼굴은 거의 사색에 가까웠다.

눈에 확 띄는 반흑 반백의 장포!

그곳에 서 있는 사람은 바로 삼인의 율령자였다.

그리고 또 하나…….

비류연의 시선이 그 이질적인 존재에게 가서 멈추었다. 그 얼굴에 왠지 득의만면한 미소가 서려 있는 게 비류연의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위지천…….?’

저 ‘뺀질이’가 왜 저곳에 있는 걸까?

‘설마 어제 저녁의 그 쥐새끼??

부스럭!

순간 비류연의 귀가 쫑긋했다.

“무슨 일이오?”

피가 칠갑된 몸으로 한노가 물었다. 한창 은설란을 구출하러 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이 피로 칠갑한 노인은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구출하러 가야 한다고 재촉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쥐새끼인 모양이네요.”

그러고는 그 부분에 대한 신경을 꺼버렸던 것이다.

“나답지 않은 실수를 했군…….’

다음부터는 좀더 방역 대책에 철저해야겠다고 그는 다짐했다.

상황은 명백했다. 그들의 행사를 저 독사 같은 뺀질이 위지천이 위에다 꼬지른 것이다. 같은 천무학관 관도임에도 말이다. 그러면서 얼굴까지 나타내다니 배짱 한 번 좋군! 그 배짱의 대가가 어떤 것인지 알려주지 않으면 나중에 잠자리가 편치 않으리란 예감이 비류연을 사로잡았다.

장내에 한껏 당겨진 시위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 위에 살짝 내려앉은 어색한 침묵. 어느 누구도 이 상황에서는 쉽게 말을 꺼낼 수가 없다.

“그 여인은 누군가?”

가장 선두에 선 백발의 율령자가 추궁하듯 물었다. 백발이 성성한 걸로 미루어보아 세수가 녹록치 않을 것임에도 허리가 대나무처럼 꼿꼿하고 두 눈에는 정광이 가득했다.

묵선(墨) 오본(五本)!

오른쪽 소매에 둘러진 다섯 개의 검은 줄무늬로 미루어보아 이 삼인 중 가장 직위가 높은 사람인 모양이었다. 그의 뒤를 수행하듯 서 있는 사람의 묵선은 각각 삼 본(三本)이었다.

“…….”

다들 대답이 궁하다. 뭐라고 대답하면 좋단 말인가?

침묵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점점 더 심장이 거칠게 날뛰고, 질식할 듯 가슴이 갑갑해진다.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한단 말인가? 모든 것을 사실대로 이실직고해야 한단 말인가? 저 여인을 그들이 보쌈해오지 않은 이상, 규칙을 어기고 홍매곡을 벗어난 것 이외에 잘못은 없다.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들이 심각한 갈등과 번뇌로 인해 정신적인 몸부림을 치고 있을 바로 그때였다.

“조난자입니다!”

어디선가 흘러나온 느긋하고 당당한 목소리.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비류연이었다.

‘그, 그런 억지스런 주장을……!”

그걸 누가 믿겠어? 라고 모두들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모용휘가 앞으로 나오더니 비류연 왼편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 평소 성정이 올곧고, 결벽증이라고 할 정도로 거짓을 싫어하기로 유명한 청년이었다.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 ‘바른생활 청년’이라 불리는 그의 입이 조심스레 열렸다.

“조난자입니다.”

비류연이 말했을 때와는 달리 그가 말하자 갑자기 설득력을 가지기 시작했다. 정말 눈앞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이 미녀가 산중에서 조난을 당한 더없이 가엾은 여 인으로 사람들의 눈에 비쳐졌던 것이다.

“쳇, 사람 차별하는 건가!”

옆에서 그런 분위기의 반전을 지켜보던 비류연이 조용히 불평을 터뜨렸다.

모용휘의 평판은 젊은 나이임에도 정사 전 강호에 걸쳐 소문이 자자했다. 천년의 풍상을 겪어온 바위 같은 바른생활 정신은 그의 결벽증과 더불어 꽤나 유명한 것 이었다.

그러자 또 한 사람이 비류연의 오른편에 와 섰다. 놀랍게도 나예린이었다.

그녀는 발걸음을 내딛는 데 있어서 전혀 소리를 내지 않았다. 마치 자색 구름 위를 거니는 선녀처럼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에는 우아함과 신비로움이 넘쳐흘렀다. 나예린이 움직이자 중인들의 시선이 모두 그녀를 향해 쏠렸다. 그것은 항거할 수 없는 매력이었다. 위지천의 두 눈에서 질투와 선망과 욕망의 불꽃이 번뜩였다. 무한(無限)의 이공간으로 이어져 있는 듯한 밤하늘을 닮은 신비한 눈동자가 사람들의 심령을 꿰뚫었다.

두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좌중들의 심장이 크게 한 번 뛰었다.

은은히 밝아오는 아침햇살이 칠흑의 머리채 위에 내려앉아 황금빛 화관을 그녀의 머리 위에 씌워주고 있었다. 정적이 사방에 내려앉았다.

그녀의 입술이 조용하게 열렸다.

“조난자입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사람의 영혼을 한순간에 휘어잡는 측량할 수 없는 깊이를 지닌 신비스런 울림. 맑은 음악 같은 그녀의 목소리가 한줄기 청량한 빗줄기처럼 생 생하게 다가온다. 홍옥 같은 입술에서 흘러나온 그 말들에는 언령(言靈)이라도 깃든 듯 신령한 힘이 느껴졌다.

그녀가 말이라면 달을 보고 네모나다고 해도, 백조를 보고 검다고 해도, 까마귀를 보고 희다고 해도 덜컥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수십 명의 사람들을 창졸간에 사로잡는 놀라운 힘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들 한결같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 저 여인은 불쌍한 조난자야! 그러니깐 인간의 도리상 보살펴주어야 해. 저렇게 아름다운 아가씨가 이런 외진 산속에서 봉변을 당하다니 얼마나 불쌍한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 돼!’

묵선 오본의 율령자 ‘위강’도 그렇게 믿게 되었다.

남궁상과 진령, 염도 또한 가세해서 한결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모았다.

“그렇습니다. 조난자입니다. 설마 이런 가여운 조난자를 이대로 방치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일치단결된 거대한 여론이 형성되자 이에 반박하기조차 곤란할 정도였다.

이제 삼인의 율령자들도 고민에 빠졌는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뭔가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일까??

비류연 일행은 그들로부터 시선을 떼고 싶어도 뗄 수가 없었다. 곧 의논이 끝났다.

“실례하오, 소저! 소저께서는 분명 이번 마천각 참가자 중 한 명이자 진홍의 검희라는 별호를 지닌 석류하 소저가 맞지요?”

무척이나 정중한 목소리로 위강이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석류하 역시 정중하게 포권지례를 취하며 화답했다.

율령자위강이 노린 것은 애초부터 이 현장에 끼어 있던 홍검희 석류하였다. 그녀는 물론이요, 이를 지켜보던 다른 모든 이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율령자들 은 자신들이 여기 온 지 아직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그녀의 신분을 소상히 아는 게 당연하다는 태도였던 것이다.

“석 소저, 하나만 묻겠습니다. 이분들 중에서 유일하게 소속이 다른 분이니 소저께서 동의한다면 이분들의 말 또한 모두 사실이겠지요. 정말 쓰러져 있는 이 여자 분이 조난자인가요?”

위강의 질문에 비류연 일행들은 아연 긴장했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들과 앙숙이자 경쟁자인 마천각 출신의 여인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이번 행로에 끼게 된 것도 반 강제나 다름없었다. 일종 의 피해자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여기서 모든 것을 밝힌다면 지금까지의 적공(積功)이 말짱 도루묵이 될 가능성이 컸다.

그녀의 굳게 닫힌 입술을 바라보는 좌중들의 시선에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그녀의 복잡미묘하게 변화무쌍한 눈빛으로 미루어보아 적잖게 고민하고 있음이 분 명했다.

안절부절 달싹달싹거리던 그녀의 붉은 입술이 마침내 열렸다.

“…네! 조난자입니다. 제가 옆에서 지켜봤으니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녀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다들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아직 고비를 완전히 넘은 것은 아니었다. 생각 이상으로 삼인의 율령자들은 집요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더 생기는군요?”

“뭐죠?”

아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이토록 헐거워서야! 비류연은 하늘을 향해 통탄했다.

“별거 아닙니다. 이 소저분께서는 어떤 조난을 당한 건가요? 어떻게 이분이 이 높은 천무봉 정상까지 와서 조난을 당할 수 있었던 걸까요? 전 그저 그 부분이 아직 까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이 부분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아직 납득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이 조난자를 어디서 구했냐는 뭐 그런 질문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별거 아님을 운운하다니…….

‘이런! 거기까지는 아직 생각지 못했는데…….’

염도는 낭패한 심정이 되었다.

그때 비류연이 서슴없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녀는 큰 재앙을 당했습니다!”

“재앙이요?”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위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것도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두 가지 재앙 중 하나에 당한 불쌍한 피해자입니다.”

비장한 목소리였다.

“겉으로는 그다지 큰 피해가 없는 것 같습니다만?”

“사물에는 모두 이면이 있지요. 겉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그렇군요. 확실히 성급한 결론은 금물이지요.”

이번 말에는 위강도 납득이 가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이 당한 재앙은 무엇입니까?”

비류연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호환(虎患)이죠!”

“호오~화안?”

좌중들의 인상이 단숨에 구겨졌지만 비류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깐 그 호환과 마마 중에 그 호환을 말하는 것입니까?”

다시 비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좌중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거창하기만 하고 신빙성 없는 데다 현실성 떨어지는 이야기를 믿어줄 리가 만무했다. 증거를 보여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율령자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어흠, 호환이라니…….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로군요. 제가 이곳에서 벌써 오십 년 이상을 살아왔지만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군요.” 예리한 그들의 반문에는 의혹의 그림자가 잔뜩 드리워져 있었다. 그게 당연한 반응이라고 모두들 생각했다.

다된 밥에 재를 뿌려도 유만부득이지! 비류연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혹시 증거를 제시할 수 있습니까?”

마침내 나와서는 안 될 그 말이 위강의 입에서 나오고 말았다.

“이제 모두 끝장이야! 파멸이야! 종말이야!’

좌중들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속으로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미친놈! 넌 이제 끝장이야!’

스스로 무덤을 판 비류연의 행동을 지켜본 위지천이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비류연의 대답은 모든 이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물론이죠!”

비류연의 이 시원시원한 대답에 좌중들의 눈이 왕방울처럼 부릅떠졌다. 그들의 눈은 모두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어떻게!’

“노사님!”

비류연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조용히 누군가를 불렀다. 누구를 부르는 걸까?

“여기 있네!”

느닷없이 풀숲을 헤치고 나타난 사람, 그는 바로 빙검이었다. 중인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악관절이 빠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설 정도였다. 그들의 눈은 이미 보름 달이라도 들어갈 정도로 휘둥그레져 있었다.

“얼음땡이, 자네…….”

‘어떻게 이곳에 있는 건가?’라는 염도의 뒷말은 비류연의 쾌속한 팔꿈치 치기로 인해 계속 이어질 수 없었다.

좌중들의 놀람은 비단 빙검 때문만이 아니었다. 지금 그 빙검이 어깨 위에 메고 있는 ‘어떤 것’,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그것은 너무 부피가 커서 땅에 질질 끌리고 있었다. 그래도 별로 힘들어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빙검의 내공 화후가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다.

빙검의 어깨 위에서 뭇 좌중들을 경악 속에 빠뜨린 그것은 바로 거대한 ‘범’이었다. 그것도 그 거대한 앞발은 곰조차도 일격에 거꾸러뜨릴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대 호’였다.

“수고하셨어요.”

비류연이 웃으며 치하했다.

“별거 아니네!”

대답은 그러했지만 만일 누군가가 그 앞에 서서 정말 별거 아니죠!’라고 말했다가는 검하고혼이 되기 딱 좋을 것이다. 밤새 야산을 헤매며 저런 ‘대호’를 잡아오 는 게 별거일 리가 없기 때문이다. 빙검의 전신은 야밤 산행 때문인지 이곳저것이 너덜너덜한 게 꼴이 말이 아니었다. 평소의 차가우리만큼 단정한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이럴 수가…….”

황당하고 경악스럽기는 율령자들이든 비류연을 제외한 11명―덤인 석류하까지 하면 12명—의 구출대든 마찬가지였다. 어떤 경로로 해서, 무슨 조화로 인해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염도가 기억하기로는 이런 요상하기 짝이 없는 언어도단적 상황이 일어나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몇몇이 그의 생각에 동조했는지 시선을 옮겨 비류연을 노려봤다.

“어떻게??

털썩!

빙검은 삼인의 율령자 앞에 보란 듯이 대호를 던져놓으며 지난 밤에 있었던 일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우리가 내려간 사이에 해줄 일이 한 가지 있어요.”

“요청?”

“혹시나 필요해질지 모를 게 있거든요!”

“무엇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그것을 얻기 위한 과정이나 수고 따위는 전혀 알 바 아니라는 듯한 태도였다. “호랑이!”

이틀 후.

화음현 내 위치한 한 장원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큰 불이 나 가옥 전체가 소실되는 사고가 발생. 다행히 바람이 잔잔해 불이 옆 건물들로 옮겨붙지는 않았지만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 인부 수백이 동원되어 열두 시진 동안 화마(火魔)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하고서야 익일 새벽에 겨우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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