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결 독고령
천무봉에 내리는 달빛을 바라보며, 독고령은 아파오는 좌안을 왼손으로 눌렀다.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상처는 어김없이 쑤셔왔다.
“은명…….”
추억은 악몽에 의해 처절하게 짓밟혔다. 그가 사라진 일 년 간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그것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아름다웠던 추억을 안겨준 것도 그, 끔찍한 악몽을 새겨준 것도 그. 둘 모두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역시 그 둘을 동일하게 생각하기란 불가능했다. 현실감이 없 는 것이다.
그녀의 인생이 짜낸 기억의 직물(織物)에는 과거 모서리의 일부가 커다란 오점(汚點)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그것은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었고, 영원히 남아 있을 자국이었다.
시간의 씨실과 인연의 날실이 한데 얽혀 짜여진 과거란 이름의 직물 위에는 두 번 다시 새로운 문양을 새겨넣을 수 없다. 그것은 두 번 다시 재구성되지 않는다. 때 문에 어떤 추악하고 혐오스런 오점도 지울 수 없다.
다만 강력한 환상의 최면이나 시간의 유장한 흐름으로 그것을 외면하거나 망각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조차 불가능하다면 그 얼룩을 끌어안고 평생을 살아갈 수밖 에 없는 것이다.
열정과 사랑과 빛과 환희로 빛나는 오색 수실로 수놓았던 그녀의 인생에서 최고로 아름다웠던 만다라(曼茶羅) 문양은 가장 어두운 칠흑의 먹물에 의해 무참하게 더럽혀지고 말았던 것이다.
독고령의 오른쪽 눈가를 타고 뜨거운 무엇이 흘러내렸다.
외줄기의 눈물. 그녀의 왼쪽 눈은 이제 울지조차 못하는 것이다.
“이제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자기기만이었다. 그것을 망각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만 마주치길 외면하고 지금껏 무시해왔던 것에 불과하다.
두려웠으니까… 고통스러우니까… 그리고 슬프니까…….
그런데 그 남자가 나타났다.
추억과 함께 묶어 단단한 상자에 넣고 자물쇠를 굳게 걸어잠근 후, 그 위에 쇠사슬을 두르고 기억의 저편, 망각의 늪에 던져놓았던, 악몽을 봉인해놓았던 상자의 덮개가 다시 열렸다.
원인은 자명했다.
“대공자 비라 했던가…….’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많이 닮은 것도 아니었다. 그 당시 은명이 지녔던 상당 부분이 지금의 그에게는 누락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비의 모습은 자신에게 무의식중에 그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오늘의 선명한 꿈이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였다. 그것은 무의미하다고 치부하기에는 작지 않은 일이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결과에는 본질이라 해도 좋을 원인이 존재한다. 이를 인과율이라 칭한다. 불교에서는 업으로 표현하기도 하는 듯하다. 원 인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가장 근원적인 제1원인에 대해 파악하는 것까지 가능하다. 다만 그 원인이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너무 복잡무쌍하게 얽혀 있어 파악해내기가 힘들 뿐이다.
인과율, 이를 피해 갈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원인과 결과가 동일하며 나누어질 수 없는 신뿐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대공자 비란 사람과 만난 것도 우연이 아니라 어떤 인과율에 따른 필연인 것일까? “이제 나는 어쩌면 좋은가?”
다시 한번 달을 바라보지만, 밤도 달도 대답해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