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결 대공자 비
잠은 오지 않았다. 그의 정력은 하루 이틀 밤샌다 해서 고갈될 그런 나약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얼굴에서는 피곤함이 짙게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가 아직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은 지금 그가 지니고 느끼고 있는 뒤죽박죽 불편한 감정의 소용돌이 때문이었다.
“운명이란 놈은 장난이 지나치군…….”
어쩔 때는 절대로 붙어 있으려 해도 떨어뜨리고, 꼭 떨어져 있으려 하면 붙여버리니……. 변덕도 이런 변덕이 없었다. 최악의 동반자 칭호는 떼어놓은 당상이었다.
그럼에도 가장 악질적인 농담은 절대로 회피할 수 없는, 갈라서기가 거의 불가능한 인생의 동반자라는 사실이었다. 어떤 이들에게 있어 삶이란 이 얄궂은 반려와 의 끊임없는 부부싸움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최후의 수단은 남아 있다. 그것은 신의 마지막 자비인지도 모른다.
딱 한 가지, 이 동반자와 결별할 수 있는 비장의 수가 있다. 불교에서는 이 이혼방법을 ‘해탈’이라 했고, 도가에서는 ‘득도’라 표현했다. 표현방식은 달라도 둘 다 동일한 이혼서류라는 데는 변함없었다. 지금도 세상에는 많은 수련자들이 이 ‘이혼서류’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직 이 결별장을 손에 넣지 못한 비는 애석하게도 이 운명이라는 인과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운명은 지금 어디까지 복잡해질 수 있는지를 한껏 뽐내기라도 하듯 기세등등하게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망설임, 번뇌, 후회, 고민……. 아직 그런 잔여물들이 내 심저(心)에 남아 있었단 말인가?”
믿을 수 없었다. 그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웃기는 소리. 그런 건 이미 그 옛날, ‘그때’ 모두 버리지 않았던가?”
그날, 인간이기를 포기한 그날 그는 그 모든 것을 추억과 함께 버렸다. 그런데도 아직 그 잔재가 남아 있었던 것일까? 번뇌도… 고민도… 모두 깨끗이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다고 생각했건만.
“그렇다면… 만일 그렇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한번 그 운명을, 그 망설임을, 그 원인을 제거해야만 하는 것인가? 또다시?
대공자 비의 입술 한쪽이 비틀려 올라갔다.
“나보고 다시 한번 그 일을 반복하란 말인가?”
농담도 지나치면 분노를 불러올 수 있다. 아무리 하늘이라 해도 농담에는 정도와 절도가 있는 것이다.
“크흐흐흐..”
창가로 다가간 비가 창살을 통해 달을 올려다보았다.
소나기라도 내렸으면 좋으련만 무심한 밤하늘은 적막함에 파묻힌 채 조용하기만 하다.
비는 자신이 입고 있던 상의를 벗었다. 장삼을 풀자 단단하고 완벽하게 다듬어진 근육이 드러난다. 하나의 예술작품을 보는 듯한 기분마저 느껴지는 그런 몸이다. 그 육체를 이루는 선 하나하나가 그의 단련된 과거의 역사를 상징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한 가지 큰 흠이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왼쪽 늑골 아래에 자리한 연붉은색 검상이었다. 한 뼘 정도 길게 세로로 갈라진 커다란 검흔. 매우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이 흔적은 과거의 추억이 고
통과 함께 사멸한 잔흔이었다.
이 흔적을 얻는 그날 그는 인간임을 포기했다.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되기 위해! 그는 자신의 배에 남겨진 평생 지워지지 않는 죄의 낙인 같은 상처를 조용히 어루만졌다.
조용하고 무심한 눈길이 달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