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5권 13화 – 선전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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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15권 13화 – 선전포고

선전포고

-등장! 사랑(?)의 경쟁자!

교옥은 이번 임무가 달갑지 않았다.

마천칠걸의 하나이자 흑도사화(黑道四花)의 일인이기도 한 이 혈심란(血心蘭) 교옥이 뭐가 아쉬워서 저런 볼품없고 출신도 모르는 천박한 남자의 뒤를 캐지 않으면 안 되느냔 말이다.

내가 겨우 그 정도의 가치밖에 없단 말인가?

그녀의 자존심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인의 명은 지엄했고, 종의 선택은 유일하다 해도 좋을 만큼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 덜떨어진 풋내기 애송이쯤이야 하루 반나절이면 충분하지!’

감추어진 일신상의 내력뿐만 아니라 조상 삼대에 이르는 시시콜콜한 사실들까지 알아낼 자신이 있었다.

교옥의 무공은 마천각 여관도들 중에서도 발군에 속하는 것이었지만 그녀에게는 그보다 더 무서운 무기가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그녀를 흑도사화의 하나로까지 불리게 만들어준 미모였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사부 천기련妓) 련주 홍화선자(紅花仙) 옥교교에게 그 미모를 가장 효과적이고 치명적인 방법으로 이용 하는 법을 배워 이 날 이 순간까지 익혀왔다.

어떤 남자도 그녀가 짓는 봄날의 훈풍 같은 미소와 버드나무가지처럼 하늘하늘하고 풍만한 몸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미소는 젊은 후기지수들의 마음속 호수를 두드리고 휘젓고 파도치게 만드는 거센 바람이었다. 그 미소와 그 눈빛을 받고도 계속해서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이는 희귀하다해도 좋았다. 그녀는 언제나 큰 힘들이지 않고 수많은 사내들의 마음을 정복해왔다. 최후의 무기는 쓸 필요조차 없었다.

때문에 이번 건도 낙승이라고 미리부터 장담하고 있었다.

하지만 혈심란 교옥이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사실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람을 매료시키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자 가장 어려운 방법이면서도 최고의 방법은 자신이 지닌 순수하고 개성적인 매력의 빛에 상대방을 감화시키는 것이다. 즉, ‘첫눈에 반했다!’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첫눈에 반한 사람들에게는 이유가 필요 없다. 그냥 그저 좋으니깐! 전생의 인연이니 운명이니 뭐니 하는 추상적인 이유를 붙이긴 하지만 사실은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해 상대방에게 끌리게 되는 것이다. 형이상학적 이유는 대체로 논리적 근거를 통해 설명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우 기기 편하고 억지 부리기도 쉽다.

반면 이유를 댈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형이상학적인 것을 설명하는데 형이하학적인 이유를 근거로 드는 것은 언어도단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세상은 무의미한 것. 의미가 부재(不在)하는 이 세상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다. 자신이 무작정 좋다고 결정하면 그것은 세상에서 가 장 좋은 게 되는 것이다(물론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마음이 변함에 따라 함께 변하는 경향이 있지만).

어쨌든 사람이 사람에게 반하는 데는 수천 가지 원인과 수만가지 취향이 존재한다. 하지만 몇 가지 공통된 분모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 중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확실한 공통 기준은 바로 아름다움(美)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취하고, 추한 것을 배척한다. 그 원인에는 여러가 지철학적 이유가 있지만 남녀상열지사를 논하는 여기서는 별 필요 없는 이야기다.

문제는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아름다움을 칭할 것이냐?”라는 건데, 솔직히 그 결정 기준은 사람 수만큼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도 그 기준이 중구난방이 아니라 어느 정도 공통된 부분이 있는 것은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와 조직의 영향을 아주 쉽게, 많이 받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목이 길쭉한 게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관념을 지닌 마을에 사는 사람은 목이 지나치게 긴 여자를 보고도 미인이라고 생각하지만, 목이 짧은 게 미인이라 고 생각하는 관념을 지닌 마을에 사는 사람에게는 그만한 추녀도 없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의 미모란 멀게는 국경, 가깝게는 지역만 벗어나도 쉴새없이 변하는 아주 신뢰하기 힘든 기준이다. 그래도 같은 나라 안에 사는 사람에게는 대충의 보 편적인 미의 기준이 있고, 그것은 강호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속한 세계의 미적 보편기준이란 녀석을 보다 많이 만족시킨 자가 미인이라 불린다. 즉 다수결이 속세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것이다.

다수결로 아름다움을 결정하다니……. 어찌 보면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보다 쉽게, 보다 효과적으로 이 보편적 미적 기준을 만족시키는 여인을 육성하는 게 바로 혈심란 교옥이 속한 단체 천기련이다. 내면이 아닌 외면에만 그 수고를 집중한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그녀는 천기련이 만들어낸 최고 걸작품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흑도사화의 일인으로 뽑히지도 못했으리라.

사람을 첫눈에 반하게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대면이다. 여기서는 얼마나 좋은 환상을 상대방에게 많이 심어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서 그녀는 최고의 눈빛과 미소로 무장하고 그와 만났다.

“어머, 비 공자!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마천각 소속의 교옥이라고 합니다.”

환한 미소와 함께 교옥은 자신이 가진 모든 매력의 빛을 한곳에 집중시켰다.

비류연과 같은 조에 속한 몇몇 사람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 비류연에게 왜 또 저런 미인이! 나예린만으로도 충분히 불가사의하거늘! 그들의 얼굴은 모든 근육을 전력으로 사용해 ‘이건 사기다!’라고 외치고 있었다.

본인도 어리둥절한지 잠시 말을 잊은 채 물끄러미 교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훗, 간단하군!’

너무 감격해서 말이 나오지 않는 건가! 이번 일격은 대성공이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른 판단이었다.

“아! 누구신가 했더니 전에 저에게 예고도 없이 108개의 바늘을 뿌린 그 무례한 아가씨로군요. 그런 분께서 여긴 어쩐 일이시죠?”

‘큭! 무, 무례한이라고!’

이것은 그녀로서도 예상치 못한 사태였다.

‘잊고 있었다!’

비류연과 교옥 사이에는 이미 아주 좋지 않은 첫 만남이 있었던 것이다.

“그걸 잊고 있었다니. 게다가 이 남자…, 어떻게 그때 던진 비침의 수를 알고 있는 거지? 설마?!?

그녀는 금세 자신이 세웠던 가정을 무시했다.

‘에이…,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 그만한 안력이 이 남자에게 가능할 리가 없어!’

사람은 너무나 쉽게 자신의 직감을 무시한다. 그것을 가장 신용해야 함에도!

가장 믿어야 할 것을 가장 먼저 배제하는 대신, 가장 의심하고 신중히 대해야 할 남의 말은 쉽게 믿고 따르고 마는 모순투성이의 행동 역시 인간답다고 하면 지극 히 인간다운 모습이었다.

“어쨌든 이 난관을 헤쳐나가지 않으면.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단은 웃기로 했다.

“아하하하하! 그건 오해에요, 오해!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 그만……. 사고였어요, 사고!”

어떻게든 얼버무리려는 노력은 가상하다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분위기는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이런 얼빠진 모습으로 사내를 매료시킬 수 있을 리 가 없었다.

“흐흠…, 사고라…….”

“네, 사고예요! 사고! 아하하하하!”

“사고라……. 뭐, 그럼 일단 그렇다고 해두죠!”

뭐가 일단이냐, 임마! 하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녀는 가까스로 그 욕망을 억눌렀다. 아무래도 이미 좋지 않은 인상이 머릿속 깊이 박혀 있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나쁜 인상이 박혀 있다고 해도 이토록 간단하게 자신의 미소를 떨쳐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조금쯤은 동요하거나 기뻐해줘도 좋지 않은가! 그래서 교옥은 더욱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 녀석…, 불능??

그녀가 그렇게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때였다.

“이분은 누구시죠, 류연?”

조용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신비한 목소리.

교옥을 향해 쏠려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마치 초설이 내려앉은 듯한 새하얀 백의를 걸치고 학처럼 우아한 자태로 서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빙백봉 나예린!’

교옥은 침음성을 삼켰다.

과연 범상치 않은 미모. 분하지만 여자인 자신이 봐도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아, 예린! 뭐 별거 아니에요. 그냥 저번에 나한테 침 던진 분인데 이번 기회에 사과하러 왔다나봐요.”

‘벼, 별거…….”

그녀로서는 좀처럼 받아볼 수 없는 모욕적인 언사였다. “그게 아니야, 이 바보야!’라고 면상에 대고 외쳐주고 싶었지만 속으로 외치는 것으로 참았다.

“아… 아, 그래요! 그때 일은 아무래도 사과해둬야 할 것 같아서요.”

식은땀을 흘리며 교옥이 말했다.

나예린의 무심한 시선이 교옥을 향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교옥은 마치 그 눈동자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착각을 느꼈다. 그 눈동자의 심원한 빛이 마치 자신의 마음을 샅샅이 파헤치고 있는 것 같았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교옥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바라봤다가는 왠지 큰일이 날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바보가 백도제일미라는 나예린하고 이렇게 친근한 사이였단 말인가?”

단순히 아는 사람 정도가 아니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모종의 감정적 교류가 존재하고 있었다.

‘틀림없어! 이 두 사람! 뭔가 있어!’

그것은 아직 미숙하고 초보적인 교류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전문가인 그녀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이 분야에 비상하게 단련된 그녀의 본능은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몇 가지 미세한 징후들을 통해 그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녀의 세계에서도 ‘빙백봉 나예린’ 하면 남성기피증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그 미모는 단순한 관상용일 뿐이라고 말하는 여자들도 있었지만 그건 질투와 시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 수 있었다. 직접 만나보니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단순한 외면의 미를 뛰어넘어 있었다. 그것은!

질투가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행사에 최대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두 개의 태양은 동시에 뜰 수 없다는 말은 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아름다움이라 해도 약점은 있어!’

그것이 승부점이 될 터였다.

“그, 그럼 다음에 또 뵙죠! 앞으로 자주 보게 될 테니까요!”

“자주?”

비류연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모습에 교옥은 잠시 어이가 없어졌다.

“어머? 모르고 계셨나요?”

“뭘?”

비류연이 질문했음에도 교옥은 나예린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선언하듯 말했다.

“저도 이제부터 같은 7조가 되었거든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그러고는 싱긋 웃는다.

“그랬어?”

비류연이 효룡을 향해 되물었다. 나예린 외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친구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행태를 목격한 교옥은 자신이 완전 무시당하고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그녀의 존재가 참을 수 없이 가볍게 취급된 적은 이제껏 한번도 없었 다. 식어 있던 투지가 맹렬히 불타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 그럼 종종 뵙지요!”

인사를 마친 교옥이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했다. 더 이상 이 자리에 있다가는 억누르고 있던 분노가 폭발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이 이상 인내심력 한계수치 측량 시험을 속행(續行)하다가는 더 이상 자신을 제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성이 폭발하기 직전에 시험을 중단한 그녀의 용단은 칭찬받을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용기 있는 결단에 너무 많은 기력을 소모한 교옥은 더 이상 다른 곳에 신경 쓸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계산 외의 돌발 상황들에 이리저리 휘 말리기만 하다가 아무런 성과도 올리지 못하고 전술상 후퇴를 단행하고 만 것이다.

그건 다 좋은데…….

“그래서… 저 사람 결국 왜 온 거죠?”

비류연의 질문에 나예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자신도 알고 싶을 정도였다.

“…이상한 사람이네요!”

허둥지둥 사라지는 교옥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비류연은 조용히 감상을 피력했다. 그것은 혈심란 교옥이 지금껏 받아온 평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이라 할 만큼 최악 이었다.

나예린도 그에 동의한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는 멀어져 가는 교옥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계속해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챙그랑!

내던져진 옥빛 찻잔이 바닥에 부딪쳐 산산조각 났다.

조금 전 그 찻잔을 집어던진 손은 부르르 떨고 있었다. 얇은 손목,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 그것은 여인의 손이었다.

광택이라도 날 것처럼 윤기가 도는 우윳빛 피부, 흠잡을 데 없이 다듬어진 손가락과 손톱, 이 섬섬옥수가 얼마나 엄중한 관리를 받고 있는지 대변해주었다.

“자신의 미모를 가꾸는 데는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것이 이 손의 주인 혈심란 교옥의 지론이자 천기련의 최우선 문규였다.

“나답지 않은 실수였어!”

석류처럼 붉은 입술을 짓씹으며 교옥이 뇌까렸다.

참담했다. 그리고 수치스러웠다. 일 단계는 보기 좋게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런 방해꾼이 있으리라고는……..

가장 중요한 정보가 누락되어 있었던 것이다.

“설마 그 얼음공주로 소문난 빙백봉 나예린과 그렇게까지 가까운 사이였을 줄은.

단순한 지인의 감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 연인의 감정도 아니었다. 나예린의 성정이 얼음조각상에 가깝다 보니 정확한 감정의 교류 정도를 읽어내지는 못했지 만 평범하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잘난 빙백봉 나예린도 완벽한 것은 아냐! 그녀에게도 약점은 있지!”

이번 일로 인해 비류연을 꼬신다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 나예린을 뛰어넘는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가 되었다. 만일 나예린 본인이 들었다면 그런 걸 자기 멋대로 정 하는 것은 민폐라고 할 게 분명했지만 교옥의 결심은 확고했다. 말려드는 사람은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두고 보자, 비류연! 널 반드시 내 치마폭 아래 무릎 꿇게 만들고 말겠다!”

그 맹세가 성취될지 아닐지는 좀더 두고 봐야 될 일이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니면 여기서 포기?”

왜 뽑는 사람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제비뽑기는 아직 발명되지 않은 것인지에 대해 독고령은 불평을 터뜨리며 대흉(大凶)을 지향하는 자신의 운을 저주했다. 평 소답지 않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애초에 그 조 추첨이 원흉이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자신의 조 편성에 팔불출처럼 기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엄청나게 당황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녀의 신은 여전히 그녀에게 불공평했다.

“이건 부당해! 왜 임의로 조 편성을 바꿀 수는 없단 말이야?”

“이 사람하고만은 절대 같은 조가 되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을 품게 만드는 존재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사람쯤은 있기 마련 아닌가? 그런 사람에 대한 배려 정 도는 운영자 측에서 당연히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이것은 운영자 측의 책임방기에 해당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녀의 주장은 이 대회의 운영을 맡고 있는 율령자들에게 단번에 거절당했다.

“그런 사람하고일수록 더욱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좀더 원활하게 진행시키기 위해 마련된 것이 바로 이 대회입니다. 한 번 정해진 조는 어떤 경우에도 바꿀 수 없습니다. 아니면 이 화산지회를 포기하시겠습니까?”

세상은 과반수 이상의 확률로 자신이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심술쟁이였다. 독고령은 ‘아니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절대로 같은 조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과 별수 없이 한 조가 되자 사람이 으레 그렇듯 독고령 역시 무척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 중에 부딪쳤다.

“전에 본 적이 있는 분이시구려.”

대공자 비가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옆에는 마천칠걸 중 몇 명이 서 있었다. 아무래도 같은 조인 듯했다. 독고령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설마 1조?”

대공자 비의 짧은 질문에 독고령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누군가 이건 꿈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의 표정이 한번 재빠르게 변했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환영합니다. 이번이 두 번째로 보는 것 같군요.”

무기질적인 목소리. 내용에 전혀 신빙성을 심어주지 못하는 어조였다.

“그, 그렇군요.”

“잘해봅시다.”

떨떠름한 표정을 채 지우지 못한 얼굴로 독고령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절대 어떤 제비뽑기에도 끼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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