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5권 17화 – 녹림왕의 도시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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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15권 17화 – 녹림왕의 도시 나들이

녹림왕의 도시 나들이

화음객잔에는 오늘 손님이 별로 없었다. 어느 정도냐고 묻는다면 파리가

날아다닐 정도로 휑하다고 대답할 지경이었다.

특이한 건 지나가는 행인이 적지 않음에도 손님은 이상할 정도로 뜸하다는 것이다. 사실 같은 식탁을 쓰는 단 두 사람이 현재 이용중인 손님의 전부였다. “이상해…, 정말 이상해……..

화음객잔의 주인 두칠은 이 괴현상에 대해 고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저 두 사람 때문인가??

두칠의 시선이 한쪽 구석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두 사람의 장한을 향했다. 우락부락한 근육, 철근을 꼬아놓은 것 같은 무식한 팔뚝. 그 팔뚝에는 갖가지 도구로 만 들어졌음이 분명한 가지각색의 상처들이 흉측한 모양으로 이리저리 불규칙하게 새겨져 있었다. 더욱이 큼직한 얼굴에 강침처럼 뻣뻣해 찔리지나 않을지 걱정되는 수염에다가 그것도 모자라 여기저기 새겨진 흉측한 얼굴의 상처들까지!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것은 두 사람의 허리춤에 달린, 보기만 해도 전율이 흐르는 무시무시 한 거도였다.

척 보기만 해도 흉악무쌍해 보이는 인물들이었다. 저런 모습으로 할 수 있는 직업은 매우 한정되어 있으며, 그것은 매우 위험하고 사나운 특별한 것임이 분명했 다.

아까전부터 객잔에 웃으며 들어왔던 손님들이 안색을 바꾸고 부리나케 발걸음을 돌리는 것도 모두 저 둘 때문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차마 나가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아무리 더 높은 매상과 더 나은 이익 창출을 위한 상인의 혼이 새빨갛게 불탄다고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시 목숨이기 때문이었다. ‘부디 빨랑빨랑 처먹고 후딱후딱 꺼져주길!’

맘에 안 드는 손님이 올 때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두칠은 조용히 속으로 기원했다.

“이야, 오랜만의 도시라 그런가… 좋구먼! 역시 우리 녹림처사들도 영업실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예비지역탐사 같은 걸 해서 사전정보를 많이 모아놓지 않으면 안 돼. 이제는 녹림처사들도 구태의연한 영업방법을 버리고 새롭게 의식을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암 그렇고말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모경?”

조금 전부터 이곳 객잔의 매상에 심대한 영향을 주고 있던 중년인 중 더 큰 몸집을 지닌 사내가 찰랑거리는 술잔을 호탕하게 들이켜며 평소보다 과장된 몸짓으로 말했다.

녹림처사(綠林處士)란 게 무엇인가?

처사(處士)란 아직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집에 머물러 있는 선비를 가리킨다. 아직 ‘집에 머물러(處]’있는 선비라는 뜻이다. 나쁘게 말하면 무직업자, 백수인 것 이다. 그렇다면 깊은 산속 녹림에 거처하는 무직업자는? 희한하게도 그들에게는 직업이 있었다. 바로 산적이라는 엄연한 직업이! 녹림처사는 산적들이 자신들을 높이 칭하는 은어였다.

그리고 이 우락부락한 호목의 사내야말로 중원에 널리 퍼진 산적들 중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자였다. 그래서 별호도 거창하게 녹림왕(綠林王)이었 다.

녹림칠십이채의 우두머리이자 마랑채의 채주인 녹림왕 임덕성의 말은 조직을 책임지는 수괴(首魁)답게 사업확장 의지에 불타는 진지함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 그 러나 그의 맞은편에 앉아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폭랑삼십육도(暴狼三十六刀)의 대장 폭랑귀도(暴狼鬼刀) 모경은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는 이 변덕스럽고 갑 작스런 이번 암행감찰(?)의 호위역이었다.

“크크큭. 그냥 아들내미가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솔직히 까놓으면 되지 않소, 형님!”

곰처럼 거대한 몸집의 사내 모경이 킥킥대며 웃자 그의 등뒤 허리춤에 매달린, 살벌하게 생긴 늑대머리 장식의 거도가 쩔그렁거렸다. 그 실룩거리는 모습이 마치 자신을 골려먹으려는 듯해서 임덕성은 심히 기분이 나빠졌다.

그런데도 모경은 그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뭐니뭐니해도 그 유명한 화산규약지회 아니오. 강호의 기재들이 서로의 기량을 다툰다는 십 년에 한 번 있는 큰 축제 아니겠소? 산적나부랭이의 아들로 태어나 백도의 대표로 그런 큰 대회에 참가한다니 그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 아닙니까! 개천에 용, 아니 뒷동산에 호랑이 나온 격 아니겠습니까?”

‘나부랭이?”

저놈의 천박한 주둥아리는 어째서 매번 해야 할말과 하지 말아야 할 단어를 가리지 못한단 말인가.

‘기냥 확 저노무 주둥아리를 잡아째고, 다리몽댕이를 분질러버릴까?”

생긴 건 미련퉁이 곰 같은 게 눈치는 여우보다 빠르다. 영업중에는 무척이나 도움이 되는 능력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절대 아니올시다였다. 게다가 세치 혀를 다 루는 분별력은 쥐뿔만큼도 없어 이런 사적인 자리에서는 말도 별로 가리지 않는다.

이 기회에 밥값을 줄이는 것 – 솔직히 그의 의동생은 혼자 10인분은 너끈히 해치우는 괴물이었다 – 도 산채의 재정 안정에 도움이 되는 일이리라. 하지만 그가 자 신의 의제(義弟)임과 동시에 자신의 매부(妹)이자 진성곤 임성진의 의숙부이자 이모부라는 사실이 그의 결단을 훼방놓고 있었다.

때문에 그 모종의 충동은 계획되기만 할 뿐 제대로 실행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일단 저 입을 틀어막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시, 시끄럽다! 오해하지 마!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단지 화산규약지회를 참관하러 오는 각계각파의 고수들의 면모를 확인하고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다. 우리 가 앞으로 나아갈 바를 위해서 말이다. 결코 그놈의 활약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란 말이다.”

임덕성이 전에 없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 화가 났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곡을 찔렸기 때문인지 그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다양한 색조로 변하고 있었다.

“아, 그렇습니까요? 그럼 일단은 그렇다고 해둡지요!”

그러고는 뒤돌아서서 들으라는 듯이…….

“킥킥킥! 만나고 싶으면 만나고 싶다고, 보고 싶다면 보고 싶다고 말하면 될 것을. 아직 화산규약지회가 시작되려면 날짜도 충분히 남았는데도… 몸이 달아올라 부랴부랴 준비해서 나왔으면서.

투둑!

임덕성의 이마에 돋아난 파아란 핏줄이 야생마처럼 사납게 맥동했다. 저건 고의가 분명했다. 그렇게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데 고개 약간만 돌린 것만으 로 가려질 리가 없었다.

역시 ‘식비절감’은 실로 매력적인 안건이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한 임덕성은 다시 한번 그 건에 대해 신중하게 고려해보기로 했다. 그의 전신으로 그 기운이 노골적으로 폭출되었다.

‘흐흐흐…….?’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식비절감을 향한 끝없는 갈망을 감지한 모경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골려먹다가는 정말로 이 주둥이가 남아나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좀 때가 늦은 것 같았다.

“크흐흐흐흐흐…….?”

아무래도 저 귀광이 번뜩이는 호랑이 눈동자가 심상치 않았다.

‘지, 진심인가…….?

아무래도 자신의 의형은 구 할 이상의 확률로 이성을 상실한 것 같았다. 또르륵 하고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저 눈은 매우 위험했다.

“자, 자… 먹던 거나 마저 먹죠, 형님! 이 고기경단 참 별미네요, 얌얌!”

우걱우걱!

그는 접시에 남아 있던 여러가지 음식들을 집어 억지로 입안으로 마구잡이로 넣고는 우걱우걱 씹어댔다. 이 상태에서 제대로 소화가 될 리도 없었지만 그는 변비 의 위험성을 무릅쓰고 계속해서 집어넣었다.

그러나 임덕성은 여전히 당장이라도 육안으로 식별 가능할 것만 같은 살기를 내뿜으며 먹이를 노리는 호랑이처럼 가세를 모으고 있었다.

‘여, 여보…….’

모경이 절망감 속에서 아내의 늠름한(!) 모습을 그릴 바로 그때였다.

“어머, 여기가 좋겠네요! 여기서 좀 쉬었다 가는 게 어떨까요? 맛있는 것도 좀 먹고!”

객잔 문밖에서 요란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꽤 나이가 든 여인의 목소리임에도 그것은 십팔세 소녀의 목소리처럼 생기 넘치고 발랄했다.

“아, 정말 오늘은 너무 많이 걸었던 것 같아요. 나이가 드니깐 이런 긴 여행에는 금방 지쳐버리는군요. 아아, 정말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정말 나이라는 건 먹을 게 못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나이를 속일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숨은 언제 쉬는지 의심될 정도로 쉴새없이 수다를 떨며 일행 하나가 입구에 드리운 발을 젖히며 객잔 안으로 들어왔다.

“음?”

그 귓가에 쟁쟁 울리는 듯한 시끄러움이 격분에 떨던 임덕성의 귀에도 닿았는지 시선이 그 일행 쪽을 향했다. 동시에 모경을 향하던 살기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사, 살았다!’

모경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신의 은인인 시끄러운 아줌마를 주시했다. 일행은 모두 셋이었는데 중년으로 보이는 여인 하나에 키 차이가 상당히 나는 노인이 둘이 었다. 세 사람 모두 하얀 면사가 둥글게 드리워진 챙이 넓은 죽립을 쓰고 있어 얼굴 생김새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힘들었지만 대략 눈썰미만으로 짐작이 가능했다. 중앙에 서 있는 중년여인이 분명 그 수다스런 아줌마인 장본인이 분명했다. 그 옆에 키가 크고 가슴까지 드리운 수염이 탐스럽고 풍채가 좋은 노인은 학의 깃털처 럼 눈부신 백의를 입고 있었고, 키가 작고 약간 통통한 축에 드는 노인은 허름한 청의 무복을 걸치고 있었다.

여인의 허리에는 검으로 보이는 물건이, 푸른 옷을 걸친 노인의 허리에는 도로 보이는 물건이 매달려 있었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둘 다 칼집이 헝겊으로 감싸여 있어 얼마나 값나가는 물건인지는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직업병 때문인지 그런 것이 맨 먼저 보이는 모경이었다. 마지막으로 백의 노인의 허리에는 이렇다 할 만한 병장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한 손에 나뭇가지 하나를 장난처럼 들고 있을 뿐이었다.

‘지팡이인가, 저건??

하지만 지팡이치고는 너무 짧았다.

“상당히 이색적인 일행이로군! 중년여인 하나에 노인 둘이라…….’

그때 주인 두칠이 이 간만의 손님을 향해 달려가 넙죽 절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깊숙이 굽어지는 허리와 싹싹 비벼지는 손바닥에는 이번 손님을 절대 놓치지 않

겠다는 강한 의지가 물씬 풍겨나왔다.

중년여인이 객잔 내부를 한번 쓱 훑어보며 말했다.

“어머, 무척이나 한적한 객잔이네요! 조용한 게 아주 맘에 들어요.”

그러다가 여인의 눈과 두 사람의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면사 때문에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각도로 볼 때 마주친 것이 분명했다.

모경은 감사의 뜻으로 씨익 웃어주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갈 만큼 아주 흉악해 보이는 미소였다.

두칠은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 설마 이 손님들도 다른 손님들처럼……..’

그러나 여인은 도망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인사인 듯했다. 무척이나 우아하고 기품 있는 이 의외의 모습에 모 경과 임덕성도 얼떨결에 고개를 살짝 숙이며 답했다. 그러고는 자신들이 무슨 파렴치한 짓을 했는지 깨닫고 화들짝 놀랐다. 그들은 잠시잠깐이라고는 하지만 순간 적으로 산적으로서의 자아정체성을 망각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상한 아줌마……!’

모경과 임덕성 두 사람은 망설이지 않고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 않고서는 귀신에게 홀리지 않은 이상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음, 저쪽 자리가 좋겠네요. 저쪽으로서 가서 앉도록 할까요?”

그 자리는 임덕성 일행으로부터 식탁이 네 개쯤 떨어진 곳이었다. 노인들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쳤다는 본인의 말과는 다르게 여인은 전신에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정말 시끄러운 아줌마로군! ‘

나잇값도 정말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입 밖에는 내지 않았다. 그의 신경이 그쪽으로 환기된 덕분에 모경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리에 앉은 뒤에도 여인의 수다는 계속되었다. 두 노인은 조용히 듣는 역할이 주였고, 가끔 가다가 짧은 말로 대답할 뿐이었다.

“이상하군…….?”

임덕성이 눈에 이채를 띠며 중얼거렸다.

“뭐가 말입니까?”

고개를 갸우뚱하는 자신의 수괴’를 향해 모경이 질문했다.

“저 여인의 말 말일세! 자넨 이상한 점 못 느끼겠나?”

“확실히 수다스럽긴 하지요. 제 마누라보다도 더 시끄러운 것 같은뎁쇼!”

확 한 대 후려갈겨줄려다가 임덕성은 간신히 참았다.

“확실히 ‘그 애’보다… 아, 아니! 그게 아냐! 저 여인, 아무리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도 목소리나 몸가짐으로 보아 사십대 정도로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데 쓰 고 있는 말은 평대라고. 이상한 느낌 들지 않나?”

“그, 그러고 보니 확실히 그렇군요!”

그제야 모경도 약간 긴장한 눈빛으로 그 일행을 바라보았다. 여인을 제외한 두 사람은 변명할 여지 없는 노인이었다. 아무리 죽립의 챙이 넓고 하얀 면사가 드리워 져 있다 해도 가슴께까지 드리워진 수염은 숨길 수 없는 법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짜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강호의 고인일까요? 인간의 범주를 넘은 초고수들 중에는 반로환동의 경지에 오른 이들도 많다고 하지 않습니까?”

“글쎄… 그렇게 말하기엔 너무 약해 보이는데?”

그렇다. 그도 무공이라면 꽤 익힌 축에 속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마랑채 같은 거대 녹림집단의 우두머리가 될 수도 없었고, 녹림왕이라고도 불리 지 못했을 것이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그 정도 수련한 무인이라면 아무리 약한 무인에게서라도 그 기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읽어낸 기야말로 상대와 나를 비교,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인 것이다.

“…아무리 살펴봐도 무인 특유의 기를 느낄 수가 없어.”

고수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특유의 기세나 기백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허리에 차고 있는 두 개의 도검만 없다면 그냥 일반인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임덕성의 이런 의문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여기 주문이요!”

빈 자리에 앉은 여인이 손을 들어 점소이를 불렀다. 여전히 기운 넘치는 목소리였다. 세 사람 모두 아직 죽립을 벗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 주문이 시작되었다.

“음… 일단 차는 용정차(龍井茶)를 주시고요, 음식은 매콤하고 달콤한 돼지고기 요리인 어향육사(魚香肉絲), 얇게 저민 닭고기에 용정차를 부어 만든 용정봉편 (龍井鳳片), 가지로 만든 야채요리 어향가화(魚香茄花), 누룽지로 만든 과파삼선(鍋巴三鮮), 발사금조(拔絲金棗), 팔과탕(八卦湯)……”

주문이 끝난 것은 그 주문이 시작된 후로 한참이 지나고 나서였다. 처음에는 희색이 만면한 채 주문을 받던 두칠의 얼굴이 점점 파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여인의

입에서 나오는 음식의 양은 열 사람의 장정이 먹어도 족히 남을 정도였다. 부진했던 하루 매상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데 대해서는 기뻐해 마지않았지만 그래도 두칠 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손님, 정말 이것들을 다 드실 생각이십니까?”

그도 업계의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굉장한 갑부들은 음식을 가짓수대로 시켜놓고 한 젓가락씩만 맛보고 버린다는 이야기를! 물론 그의 허름한 객잔에는 그 럼 갑부들이 올 리는 만무했고, 그다지 기대하고 있지도 않았다.

“당연하죠. 세상에 먹지도 않을 음식을 시키는 사람도 다 있나요?”

오히려 이상한 걸 다 묻는다는 듯 중년여인이 반문했다.

“아, 그게… 저… 꼭 없다고는…….”

그런 횡설수설하는 두칠을 보고 청의 노인이 한마디 쏘아주었다.

“이보게, 그 주문한 음식들을 먹고 안 먹고는 우리가 걱정할 일이지 자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네! 자네는 그저 신속하고 맛있게 음식을 만들어 내오는 것만 생각하 면 되네. 주문한 음식의 처분은 여기 계신 여협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니 걱정일랑 붙들어매게나! 그건 그렇고 지금 시장해서 그러는데 빨리 좀 내오면 안 되겠나?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으려 하는군.”

“아… 알겠습니다, 대인! 즉시 대령하겠습니다!”

허리를 깍듯이 숙이며 극공경의 예를 표한 두칠은 행여나 주문이 취소될까 저어하며 부리나케 주방으로 달려갔다.

“형님!”

은근한 목소리로 모경이 임덕성을 불렀다.

“왜?”

심드렁한 목소리로 사내가 대답했다.

“정말 다 먹을 수 있을까요?”

“그, 글쎄… 두고 보면 알겠지.”

곧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음식을 먹는 와중에도 죽립을 벗지 않았다. 다만 면사가 둘러쳐져 있어 그대로는 먹기가 불편했다. 얼굴 양옆에 달린 두 개의 파란 끈을 잡아당기자 얼 굴을 가리고 있던 면사가 삼각형의 공간을 만들며 좌우로 갈라졌다. 무척 온화해 보이는 인상의 사십대 정도 된 미부(婦)의 얼굴이 그 틈새로 살짝 나타났다. 원 래 그런 구조인 모양이었다.

이제 음식을 먹기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게 되자 여인은 조용히 젓가락을 움직이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두 노인도 그에 동참했다.

지켜보던 임덕성과 모경의 눈이 점점 더 휘둥그레지기 시작했다.

여인의 먹는 모습은 매우 우아했다.

허리를 곧게 편 완벽한 착석 자세, 차분하고 조용한 젓가락놀림, 살짝 눈을 감고 차분히 맛과 향을 음미하는 모습. 그 반듯한 식사예절은 어느 곳 하나 나무랄 데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아까 전부터 주방으로부터 쉴새없이 나오는 음식들이 끊임없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만 뺀다면 말이다. 음식이 줄줄이 나오는 동안 그 여인이 젓가 락을 쉰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표정이나 자세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경이적인 식욕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볼 거 못 볼 거 다 보고, 수전은 가끔 겪고 산전은 일상이라 자부하는 임덕성과 모경으로서도 이 인세를 초월한 광경에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저 아줌마의 위는 우주(宇宙)란 말인가!”

임덕성은 무심결에 감탄성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것 외에는 달리 그 모습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도대체 정체가 뭐지?”

인간에게 내재된 식욕과 위장의 한계에 관해서 이들 산적 두 사람은 오늘 안계를 크게 넓혔다 할 수 있었다.

“이보게, 동생!”

임덕성이 자신의 의동생을 불렀다.

“예, 형님!”

모경이 얼른 대답했다.

“만일 자네가 저렇게 많은 음식을 시켰다면 다 먹을 수 있겠나?”

임덕성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모경에게 물었다. 모경에게 잠시 잠깐의 고민시간을 가지게 해주는 질문이었다.

“음, 아무리 저라도 그건 좀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도전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켜만 주신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다 먹어 보이겠습니다, 형님! …시켜주실 건가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자신의 매형을 바라보며 모경은 밀애를 속삭이는 연인의 그것처럼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한때 마랑채의 귀신호랑이라고까지 불렸던 임덕성은 그 부리부리한 호목으로 자신의 처남을 쳐다보며 말했다. “미쳤냐!”

어떠한 타협과 굴종과 아부에도 흔들리지 않을 듯한 단호한 목소리였다.

“역시 그렇겠죠……..”

일말의 기대가 덧없이 무산되는 바람에 풀이 죽어 표정이 시무룩해진 모경을 향해 임덕성은 윗사람으로서 조용한 목소리로 충고했다.

“그런 헛된 꿈보다는 자기 눈앞에 존재하고 있는 현실의 접시부터 신경 쓰는 게 좋지 않겠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임덕성이 접시에 남은 마지막 고기 한 점을 날름 집어갔다. 제지할 틈도 없이 그것은 그의 커다란 아구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아악!”

강호뿐만 아니라 녹림칠십이채 내에서도 공포의 대상인 폭랑귀도 모경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형님! 너무하십니다요! 마지막에 먹으려고 아껴두었던 건데!”

당장 눈물이라도 쏟을 듯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것에 일일이 신경 써서는 산적 일을 제대로 해낼 수가 없다는 사실을 임덕성은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게 어디 있어? 빼앗지 않으면 뺏기는 게 녹림의 법도인 것 모르나? 손 빠른 자가 이기는 거야!”

“그, 그래도…….”

모경이 그냥 보기에도 부담스러운 험상궂은 얼굴을 시시각각 변용하며 시위했지만 임덕성은 애써 못 본 척 외면했다.

한 번 지나간 인생이 다시 올라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번 소화된 음식은 두 번 다시 본래의 형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 돌아온다 해도 그것은 이에 의해 짓밟히고, 위산에 의해 더럽혀진 별개의 물(物)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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