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관 수화관(水火關)
‘화’의 관과 ‘수’의 관이 동시에 하나로 묶여 ‘수화관(水火關)’으로 진행된다
진행된다는 사실을 안 것은 당일 아침이었다.
그것은 일방적인 통고에 불과했고, 거기에 대해 어떤 반박을 할 만한 처지는 못 되었다.
그래도 궁금증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닌지라 질문할 사람은 질문하라는 말에 윤준호가 번쩍 손을 들었다. 그로서는 대단한 용기라 할 수 있었다.
“왜 화의 관과 수의 관이 동시에 진행되는 겁니까?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많은 사람 앞에서 질문하는 게 부끄럽기는 했지만 계속해서 무지한 채로 남아 있는 것보다는 그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윤준호였다.
“그 이유가 궁금한가?”
진행을 맡은 율령자가 대답했다. 자신을 소광이라 소개한 그는 오십 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나이에 당당한 풍채를 하고 있었다. 그의 소매에 그려진 다섯 개의 묵선을 보니 그는 이곳 율령자들 중에서도 상당히 지위가 높은 사람인 듯했다. 그래서인지 태도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딱딱했다.
“예!”
윤준호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럼 선택하게!”
“선택하라니요?”
“겉보기에 그럴싸한 이유와 별로 그럴싸하지 않은 이유,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란 말일세!”
그는 당연한 걸 뭣 하러 묻느냐는 그런 표정이었다. 윤준호는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옛! 그럼 우선 그럴싸한 이유부터 듣고 싶습니다!”
“자네 천존지비란 말 들어봤나? 천은 곧 하늘이고 건이며 양이고, 지는 곧 땅이고 곤이며 음이지. 하지만 이건 선천팔괘에서나 그렇고 후천팔괘에서는 보통 ‘이화 (離火)’와 ‘감수(水)’ 둘로 음양을 표현하네. 자네, ‘수화불상사(水不相射)’란 말 들어봤나? ‘대대(對待)’란 말은?”
“들어본 적 없습니다.”
윤준호는 솔직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명색이 기를 다룬다는 무인이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다니… 자네 정말 무인 맞나?”
와하하하하!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평소 그를 깔보던 몇몇 인물에게서였다. 윤준호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새빨갛게 변했다.
“방금 웃은 사람들 손 들어보도록!”
소광의 말에 몇몇 사람이 손을 들었다. 대부분 그를 아는 무시하는 천무학관 사람이었고, 마천각 사람은 소수였다.
“잘 비웃어주었네, 제군! 그럼 이 중에는 내 질문에 대답할 사람이 물론 있겠지?”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침묵이 감돌았다.
“뭐야? 비웃을 자격도 없는 주제에 남을 비웃었단 말인가? 그렇게까지 수치를 모르다니! 좋은 배짱이다.”
이번에는 손을 든 사람들이 새빨개질 차례였다.
“쯧쯧쯧, 동료를 감싸주지는 못할망정 비웃기나 하다니……. 오호통재라! 수치를 모르는 인간이 참여할 만큼 화산지회의 질이 떨어졌단 말인가?” 숙연한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몇몇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와 수치심을 애써 참고 있었다.
“수화불상사’라는 것은 물과 불이 서로 침투하지 않고 의지한다는 뜻이다. 물론 ‘수극화’라 해서 수가 화를 누르기는 하지만, 화가 다시 수를 공격해 들어가지는 않는다. 대신 불이 누르는 것은 금(金)이지. 다시 금은 목을 누르고, 목은 토를 누르며, 토는 다시 수를 누른다. 그리고 또다시 수는 불을 누르며 순환의 고리가 완성 되는 것이다. 상극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도 하나의 순환 안에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을 뿐이지.
게다가 선천팔괘에서의 음양은 ‘건곤(乾坤)’으로 대변되는 데 비해, 현상계라 할 수 있는 후천팔괘에서는 ‘이감’으로 대변되지. ‘이(離)’와 대비되는 자연이 바로 ‘화’고, ‘감(坎)’과 대비되는 자연이 바로 ‘수’다. 수와 화는 현상계의 음양을 상징하고 있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다.
음양이란 떨어져 존재할 수 없는 거다. 음과 양 둘이 함께 붙어 있어야 비로소 음양이지. 서로 마주보며 의지하는 것, 그것을 ‘대대’라 한다. 그런고로 ‘이화’와 ‘감 수’는 불가분의 관계라고도 말할 수 있다. 때문에 한 가지 주제를 놓고 두 가지 모두를 시험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이 경우 기(氣)는 ‘화’를 나타내고 이를 통합하 는 것을 ‘수’로 나타낼 수 있다. ‘양변음합(陽變陰合)’이라 해서 양은 변하는 성질이고, 음은 모여들고 합하는 성질이지. 많은 시냇물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강을 이 루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물 흐르듯 유려한 설명. 마치 준비된 연설문을 읽는 듯 그의 설명에는 막힘이 없었다. 그러나 그 전말을 모두 이해하는 자는 극히 드물었다. “그럼… 그럴싸하지 않은 이유는 뭐죠?”
이번에 물은 사람은 비류연이었다. 그의 본능적 직감에 의하면 아마도 이쪽이 진짜 본심에 가까웠다. 그리고 답이 돌아왔다. 매우 퉁명스럽게.
“그냥 귀찮아서!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치워버리면 편하잖아. 두 번 일 안 해도 되고! 관문도 하나 줄고, 지극히 경제적인 발상이라 생각되지 않나? 너무나 예술적 이라 감격스럽기까지 하군.”
소광은 정말로 찡하게 감동하는 것 같았지만 그 대답은 비류연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만큼 쓰잘머리 없는 허접한 이유였다.
“설마 그것뿐……?”
“에이, 설마…’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이 위풍당당한 풍채의 소유자는 단 한 점 의혹 위에 최후의 일격을 가해 잔류하는 의문의 숨통을 단 숨에 끊어놓았다.
“또 다른 이유가 굳이 필요할까? 그것뿐이다! 그걸로도 충분해!”
확인 사살이었다.
“그럼 본 수화관의 진행 방식에 대해 알려주겠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무시하며 소광은 자기 할 일로 넘어갔다. 더 이상 이 일에 관해 화제 삼고 싶지 않다는 듯이. 그런데 소광이 말해준 수화관의 진행 방식 역시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이었다. 그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선택을 참가자들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우라질! 난 절대 못 해! 아니 안 해!”
“누가 할 소리! 이런 놈들을 어떻게 믿고 내 등을 맡긴단 말이야! 자살 행위나 다를 바 없다고!”
“우리가 할 소리다! 네놈들하고 힘을 합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배째!”
그렇게 말하고는 남자 하나가 바닥에 벌러덩 누워버린다. 이 조뿐만 아니라 이런 현상은 다른 조에도 동시에 나타났다.
예상대로 시끄러웠다. 믿음이 전제되지 않으니 다들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에 반해 몰래 독수를 펼칠 가능성은 충분히 전제됐다. 하지만 이에 대한 율령자의 대처는 가차 없었다. 그의 태도는 한 점 망설임도 없었다.
“그렇다면 패배로 인정해주지. 참가하지 않는 자에게 줄 점수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아!”
싸늘함이 묻어나오는 말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외통수 상황에 놓인 참가자들은 각오를 다져야만 했다. 강요당한 각오였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하지만 개중에는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었다.
“미쳤나? 난 못 해! 이런 녀석들과 함께 이번 관문을 치러야 한다니… 그런 끔찍할 일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단호히 거부하겠네.”
위지천이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는 혐오스러울 정도로 강한 거부감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남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 따위는 이 남자에게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닌 모양이었다. 자기 멋대로 하지 못하면 땡깡을 부리는 응석받이 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조원 모두가 참여하지 않으면 실격이라는 것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효룡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 그를 진정시키려 했다. 아무리 재수 없고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지만 그냥 내버려두면 7조는 실격이었다. 그 사태만은 막아야 했다.
“이건 미친 짓이야. 자네도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어때?”
“그럴 수는 없습니다.”
효룡이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비류연과 오비완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의 언쟁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이런 일에 섣불리 끼어들 경우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비완은 자신의 얼굴에 드러난 불쾌감까지 굳이 감추려 하지는 않았다. 그는 비록 흑도 출신이었지만 굳은 신념을 지닌, 무를 숭상하는 마천각 쪽에서도 타의 모범이 되는 큰형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에게 위지천의 모습이 좋게 보일 리 없었다. 물론 이 관문은 터무니없이 위험해질 수 도 있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다. 자신이라고 이 화수관이 껄끄럽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화산지회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특히 금요관에서 실 격했기 때문에 7조는 한참 뒤쳐져 있었다. 이번에 그 격차를 줄이지 못하면 영원히 줄일 수 없었다.
‘저 효룡이란 청년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군.’
그는 효룡이 위지천에게 결코 좋은 감정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봤다. 그는 위지천의 연차가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선배라 부르지 않았다. 그것은 비류연이란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렇게 설득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 사실을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한편, 그는 효룡을 볼 때마 다 이상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저 청년과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었던가…….’
아무래도 낯선 사람을 보는 것 같지 않았다. 분명히 어딘가에서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이대로 여기서 화산지회를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그런 남자를 좋아할 여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요. 당신도 그 사
실을 잘 알고 있을 텐데요?”
마침내 효룡은 비장의 칼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즉방이었다.
“좋아, 하지!”
이번 설득이 주요했던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네!”
위지천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건 절대 불가합니다!”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답변의 당사자는 비류연이 아니었다. 대신 대답한 사람은 효룡이었다. 그는 지금 분개하고 있었다. 설마 위지천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왜 안 된다는 건가? 지금 자네, 선배의 말을 거역하겠다는 건가?”
“그래도 안 됩니다!”
효룡의 대답은 역시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오히려 당사자인 비류연보다도 더 흥분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유도 제대로 대지 못하면서 무조건 안 된다는 건가? 내가 이 수화관의 시험을 치르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는데? 자네도 ‘내공합격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행동 인지 잘 알고 있을 텐데?”
“그, 그건…….”
그렇다. 이번 수화관의 과제는 모두의 상상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방식은 의외로 간단했다. 용암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불구덩이 위를 건너가거나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았다. 그렇게 만들 수 있었음에도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북쪽의 맨들맨들한 바위 벽 앞으로 그들을 데려갔다. 검은 광택을 띤 그 암벽은 매 우 단단해 보였다.
진행 방법도 의외로 간단했다. 조원 모두가 내공을 합쳐 암벽을 부순다. 가장 크고 깊이 부순 조 순으로 순위가 매겨진다. 한 사람이라도 참가를 거부하면 그 조는 실격이다.
하지만 상당히 간단한 전개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조에서 불만 내지 강한 거부 반응이 터져 나온 것은 ‘내공합격’이란 부분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격체진력 내공합격. 뭐 쉽게 말하면 여러 사람의 힘을 마음까지 모으면 금상첨화 – 모아 통상 수배의 힘을 발휘하는 기의 운용법이었다. 하지만 생각 이상으 로 이 문제는 간단하지 않았다.
기는 하나에서 나왔지만, 그 수련법과 응용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성질을 가진다. 이를 ‘각기기성’이라 한다. 오행은 음양에서 나왔지만 음양과는 다른 성질을 지 니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 번 다른 성질을 지닌 기는 다시 하나로 뭉쳐지기가 쉽지 않다. 잘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양변음합(陽變陰合) 묘합이응(妙合而凝)의 이치, 상생상극의 원리, 그리고 순환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냥 내공만 남의 몸에 불어넣어준다고 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기를 이용한 치료 요상법 쪽은 쉽다. 이 경우에는 오히려 큰 부작용은 없다. 하지만 타인의 기를 받아들여 그것을 다시 자신의 힘으로 변환시켜 방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융해되지 않고 남은 기가 반발하여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치유하는 기의 성질은 부드럽고 느린 데 비해 공격을 위한 기는 강하고 빠르고 위력적이기에 그만큼 제어하기도 더 힘들다.
그 때문에 내공합격술은 같은 사문 내에서도 같은 성질의 무공을 익힌, 자신의 목숨을 걸 수 있을 만큼 신뢰하는 사형제들 사이에서 정도만 행해지는 게 정석이었 다. 그런데 그 내공합격을 생판 처음 보는 놈들이랑, 그것도 서로 으르렁대는 다른 출신 녀석들이랑 함께 하라는 것은 이들이 보기에 그냥 동반 자살하라는 말과 동 일하게 들렸던 것이다.
이 내공합격은 상호 간의 ‘신뢰’ 없이는 절대로 행해질 수 없었고, 행해져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고(死苦)를 향한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행위에 있어 중요한 점 중의 하나가 가장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이 가장 첫 번째 자리에 위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나머지 사람들의 내공을 모아 일 정한 방향으로 방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거의 통로에 불과했다. 그리고 같은 통로라고는 하지만 앞으로 갈수록 더 뛰어난 기량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두 번째 사람과 첫 번째 사람의 어려움의 정도를 논하라 한다면 열 배 정도의 차이는 족히 났다. 그만큼 가장 앞에 선다는 것은 위험을 온몸으로 떠맡는 일이었던 것이다.
자신이 전해받은 내공을 얼마만큼 적은 손실로 방출하는가가 바로 관건이었다. 총 합력도 중요하지만, 쓸 수 없는 기를 그저 전해받기만 하는 것은 낭비일뿐더러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자신의 능력을 초과하는 기를 받는 것은 주화입마는 물론이고 자칫 잘못하면 전신의 혈맥이 터져 죽음으로까지 이를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자리에 위지천은 비류연이 설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거까지는 용납할 수 있는 범위 내였다.
“내공합격술의 위험을 모르는 게 아닐 텐데요? 그중 가장 위험한 자리에 비류연을 추천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예전보다 훨씬 적어졌을 테니깐요. 뭐 그를 무시하고 싶은 사람은 여전히 많을 테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뒤 두 번째 자리에 당신을 배치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 위지천은 비류연 뒤의 자리에 설 사람으로 그 자신을 지목했던 것이다. 저 둘 사이의 내막을 대충이나마 알고 있는 효룡에게 그것은 차마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효룡은 시도 때도 없이 자신들을 그의 떨거지들과 함께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 나 있던 위진천의 명예를 믿느니 지나가는 견공을 믿는 쪽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했다. 이번 건에 한해서 그는 자신의 감을 매우 신뢰했다. 질투에 눈이 뒤집힌 자가 제대로 된 이성을
가지고 판단할 것이라고 그는 믿지 않았다.
확실히 내공합격술을 종용하는 이 수화관의 위험에 비하면 이어달리기나 하는 목요관이나 서로 줄을 묶고 절벽을 기어 올라가는 금요관은 어린애 장난이나 진배 없었다. 이런 관문을 시험 칠 바에야 금요관이나 목요관 같은 종류의 것을 백 번 정도 더 치는 게 훨씬 나았다. 이 시험에 참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대부분의 사람은 기꺼이 이 두 가지를 맞바꿀 용의가 있었다. 이런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시험은 사양이었다.
하지만 시험 주최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원래 그 비정상적이고 난해한 면이 매력적인 것이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범주 안에서 안위(安 慰)하는 범인(凡人)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은 지금의 강호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특별한 재능과 지극히 특별한 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있는 단결력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이 관문의 내용과 구성에 대해 만족할 것이 틀림없었고, 고로 이 관문이 장려되면 장려되었지 폐지될 일은 없었다.
그만큼 위험천만한 일인 것을 알기에 효룡은 어떻게든 사고 발생 가능성을 줄이고 싶었다. 위지천을 비류연 뒤에 세운다는 것은 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였다.
“좋아! 그렇게까지 나온다면 당사자에게 물어보도록 하지. 자네의 겁쟁이 친구에게 말이야.”
위지천이 비류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는 자신의 분노를 일단 진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자네는 자네 뒤에 이 사람이 서는 것이 두려운 모양인데, 정말 그런가? 그렇게 그 사실이 두렵나? 자네가 그렇게까지 겁쟁이였다니 그건 정말 실망이 아닐 수 없 군그래. 그래도 자네를 좀 더 높이 평가하려 했었는데 말이야!”
평소에는 절대 쓰지 않을 호칭들과 말들까지 동원된 명백하고 노골적인 도발이었다.
“설마 저런 졸렬한 도발에 넘어가지는 않겠지??
이런 쪽으로 자기 친구의 머리가 상상 이상으로 비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아는 효룡은 비류연이 절대 이런 위험하고 무모한 도발에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믿었 다. 그래, 바보는 아니니깐…….
“좋아요!”
바보였다.
“그래, 잘 생각했… 뭐, 뭐라고?”
효룡의 고개가 홱 돌아가며 벙찐 눈으로 비류연을 바라보았다.
“진심인가?”
“물론! 저토록 머리 조아리며 사정하는데 안 들어줄 수가 없잖아?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승낙해야지. 난 마음이 넓으니깐.”
아무런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는 목소리로 비류연은 그렇게 대답했다. 머리를 조아린 적도, 사정한 적도 없는 위지천은 복장이 뒤집힐 뻔했다.
“류연, 자네 어쩔 생각인가? 정말 괜찮겠나?”
효룡이 귓속말로 소곤거리며 물었다.
“걱정 마. 별것도 아닌데 뭐.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럴까… 그렇게 믿는 건 자네 하나뿐이 아닐까? 그런 위험한 도발에 응하다니. ……. 이건 다른 것과 달리 진기를 보내는 걸세.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 이라구. 같은 사문의 사형제들에게도 위험천만한 일이야. 알고나 있는 건가?”
“뭐, 안심하고 지켜보기나 해. 설마 이렇게 많은데 저녀석도 이기고 싶을 거 아닌가?”
“사람의 몸을 망치는 방법은 여러 가지야. 과하게 진기를 보내는 것도 그중 하나지. 게다가 자네가 맨 처음 아닌가? 나머지 조원들의 내공이 모두 자네에게 흘러드 는 거라고. 거기에 조금만 수작을 부려도 그는 자네를 엉망으로 만들고자 하는 자신의 목적을 쉽게 달성할 수 있단 말일세.”
효룡의 상황판단은 정확했고, 그 때문에 그의 심려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두고 보면 알겠지.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비류연은 짧게 덧붙였다.
“그는 모든 일에는 책임과 대가가 따른다는 교훈을 얻게 될 걸세. 그리고 때때로 그 대가가 상당히 비싸다는 사실도 말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