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6권 17화 – 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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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16권 17화 – 암살

암살

-다가오는 그림자-

푸드득!

대공자 비의 팔에서 붉은 날개를 활짝 펼치며 한 마리의 매가 날아올랐다. 비는 무정한 눈으로 자신의 손에 남겨진 조그만 전서를 차분하게 읽었다.

하지만 그의 심기는 불편하기만 했다. 오늘은 정기 보고가 있는 날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갑작스럽게 적뢰가 날아왔다는 것은 화급을 다투는 일이라는 뜻이었다. 순간 날카롭게 뻗은 그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그는 무의식중에 미간을 찌푸렸다.

전서의 내용은 단순히 보아 넘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주군, 무슨 안 좋은 소식이라도…….”

곁에서 시립해 있던 마검익 추명이 그의 심기가 불편함을 간파하고 조용히 물었다. 비는 조용히 서찰을 그에게 넘겼다.

“이, 이것은…….”

조심스럽게 서찰을 받아든 추명의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서찰에는 ‘최우선 긴급’을 나타내는 붉은 인장이 찍혀 있었고,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 있었다.

[특급 긴급 사항]

비상사태 대처 규칙 제2조 1항에 의거한 비정기 전서 송신

구척철심안 안명후의 현재 위치 확인

장소 화산 천무봉 삼성각(三聖閣)

현재 의식불명

정보 누수 흔적 아직 없음

최우선 사항으로 소거(消) 요함

필멸必

“주군, 삼성각이면….”

돌아보지 않은 채 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호랑이 굴에 들어가서 호랑이의 비호를 받고 있는 먹이를 빼앗아오라는 이야기다. 무정!”

“부르셨습니까, 주군!”

길게 늘어져 있던 그림자가 일어서더니 한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마천육걸 잔무일점혈(殘霧ᅳ點血) 무정(無情)이었다. 자신의 동료들에게조차 결코 얼굴을 보 이지 않는 그는,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냉혹한 암살자로 변할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

“해줘야 할 일이 생겼다.”

“명(命)을 받듭니다.”

감정의 조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무정이 대답했다.

얼굴에 붕대를 감은 채 그는 흰색 솜이불을 덮고 침상에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침상 옆에는 환자를 돌보기 위한 것인 듯 물이 담긴 세숫대야와 붕대 그리고 약탕

천무삼성 전용숙소 삼성각(三聖閣).

기가 놓여 있었고, 의원처럼 방 안 가득 탕약 냄새가 은은하게 감돌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이 방 안에 긴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스르륵!

특이한 점을 찾아볼 수 없었던 그림자가 순간 요동치듯 일렁거렸다. 그러고는 언제나 태양을 등지던 이 어둠이 반항이라도 하듯 빛 쪽을 향해 몸을 일으켰다.

빛의 투사에 따라 이러저리 자신을 바꾸기만 하던, 자신의 주체성을 단 한 번도 주장해보지 못했던 그림자는 태양의 광휘를 거스르며 서서히 두께와 모양을 갖추 었다. 이윽고 그것은 완전한 사람의 형체를 갖추고 있었다.

그림자 사내 무정(無情)은 주위를 둘러보며 기척이 없는지 조심스레 탐색했다.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음을 확인한 그는 서서히 몸을 움직였다.

암습이 밤에만 일어난다는 편견은 버려야 한다. 햇살 가득한 나른한 오후, 사람들의 긴장이 가장 풀어지기 쉬운 때였다.

무정은 마치 죽은 듯이 누워 있는 그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그는 어둠과 동색의 복면을 쓰고 있었고, 몸에 달라붙는 야행의를 입고 있었다. 그는 안개처럼 소리 없 이 다가섰다. 공기의 떨림조차 용납하지 않는 것 같은 조용한 그리고 매우 은밀한 움직임이었다. 마침내 무정은 침대의 바로 측면에 멈춰섰다.

상대는 여전히 눈을 뜨려 하지 않았다. 정보대로 여전히 의식불명의 상태인 모양이었다. 그는 조용히 검을 들었다.

“대업의 완성을 위해!”

무정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번에 누워 있는 남자의 목에 검을 찔러넣었다.

푸화화!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나왔다. 이 정도 출혈이면 그 어떤 인간이든 절명하고 만다. 하지만 그는 다시 한 번 확인 사살을 위해 검을 들었다. 그때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흠칫 놀란 그는 얼른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다.

문고리를 잡은 임덕성의 손이 문득 멈췄다.

“응?”

‘피냄새??

그의 후각과 본능을 강하게 자극하는 것이 있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형님?”

두 사람은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든든해진 배를 퉁퉁 치며 막 방으로 들어가려 하던 때였다.

임덕성은 확신했다. 장지문 저편에서 느껴진 그것은 분명한 피 냄새였다. 무수한 실전으로 다져진 본능이 그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지금 이 문 안으로 들어가 는 것은 위험했다. 이 문 저편에 무언가가 그들을 노리고 있었다. 막연한 느낌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이 느낌을 무시하고 장수한 사람은 이 바닥에 없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임덕성은 옆에 있던 모경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오랫동안 그를 보좌해온 가닥이 있는지라 모경은 채주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그 들은 살며시 문고리를 놓고 옆으로 살금살금 돌아갔다.

돌입 방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매우 무식했다. 그는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눈에 빤히 보이는 경로인 창문으로 들어갈 생각도 없었다. “합!”

그는 춘추전국시대의 ‘공성추’(성문을 부수는 병기)처럼 사납게 벽을 부수며 안으로 난입했다. 발 – 발목 – 허리 – 어깨로 이어지는, 회전력이 고스란히 실린 강철 같은 육체가 엄청난 속도로 부딪치자 벽은 산산조각나 부서졌고, 부서진 파편들이 마치 쏘아진 투석기의 돌멩이처럼 매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그 저돌적인 무식함 에 있어서는 의동생인 모경도 지지 않았다.

와장창창창!

그는 천장을 뭉개고 난입했던 것이다.

상당한 수리비가 지출될 듯한 요란한 난입과 함께 방 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등을 맞대고 주위 사방을 경계했다.

모경의 눈에 피로 물든 침상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놈이 감히!”

모경은 어금니를 으드득 갈며 분노에 찬 대갈성을 터트렸다. ‘폭랑귀도’라는 거친 별호에서 알 수 있듯 이 사내는 성정이 화급하였다. 그는 분을 참지 못하고 임덕 성에게서 떨어져 침상으로 달려갔다.

그러는 동안 임덕성은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방 안 전체를 샅샅이 훑었다. 그리고 한순간, 그의 시선이 모경에게서 멀어졌고 허점이 드러났다.

모경의 그림자가 스르륵 움직이며 그곳에서 하나의 인영이 불쑥 솟아났다. 그림자는 가느다란 검을 지체 없이 모경의 심장을 향해 꽂았다.

“아우!”

무정은 경악하여 돌아서는 임덕성을 향해서도 왼손으로 재빨리 암기를 뿌렸다. 그의 오른손으로는 검신을 타고 흘러내린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임덕성은 도를 선풍처럼 회전시키며 도합 열 개의 암기 중 아홉 개를 떨어뜨렸지만 실수로 목 부근에 암기를 한 대 맞고 말았다. 갑작스런 기습과 모경이 검에 찔

린 것을 보고 눈이 뒤집혔던 탓에 도가 무뎌진 것이 원인이었다. 독이라도 묻어 있으면 정말 큰일이었다. 하지만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보통 이렇게 작은 침에서 나오는 독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는 목에서 암기를 빼낼 생각도 않고 태산을 두 동강 낼 기세로 도를 휘둘렀다. 그러자 무정도 주저 없이 쇠꼬챙이 같은 검을 뽑으며 임덕성의 일 초를 피해냈다. 

“너, 넌 이제… 죽었….”

임덕성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이 우락부락한 사내는 어울리지 않게도 말을 떠듬거리고 있었다. 혀가 마비됐는지 말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설마?”

그는 서둘러 목의 침을 뽑아 상대에게 던졌다. 하지만 무정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가볍게 받아 쥐었다.

조금 전 암기에 묻은 독은 생명에 치명적 손상을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혀를 침묵의 밧줄로 칭칭 동여맬 만한 위력은 있었다. 아무래도 ‘무언독(無言毒)’인 듯했 다. 은밀함을 즐기는 어둠 속 족속들이 즐겨 사용하는 독으로, 이름 그대로 목소리를 봉하는 효력을 지닌 독이었다.

그는 다른 곳에 도움을 청할 방도를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물론 입이 멀쩡했다 해도 자존심 강한 이 사내가 그렇게 했을지는 의문이지만.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웅덩이 위에 쓰러져 있던 모경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임덕성의 눈에 잠깐 희망이 빛이 번뜩였다.

“우… 우우… 우… 어… 어어!”

‘살아 있었냐!’는 말이었지만 전혀 발음이 되지 않았다. 효과 하나는 징그럽게 좋은 독인 모양이었다.

임덕성의 눈에 희색이 떠올랐다. 저 보기만 해도 전문가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암살자가 친절하게 검을 비켜 찔러줬을 리는 만무했다. 모경 스스로 살기를 느끼자 마자 – 전문가답게 매우 은밀했겠지만 몸을 틀어 즉사 당첨인 심장과 폐를 관통당하는 치명상만은 피한 듯했다. 조금만 덜 기민했더라도 그의 심장은 단숨에 꼬치 가 됐을 것이다.

“며칠 자리를 비워야 할 듯하네. 그때까지 저 사람을 잘 보살펴주게나!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불온한 움직임이 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는 상황이네. 그때는 자네 두 사람이 저 사람을 책임지고 지켜주길 바라네. 그는 중요한 비밀을 품고 있는 사람이네. 절대 죽게 둬서는 안 되네! 자네 두 사람의 능력을 믿겠네!” “예, 걱정일랑 붙들어매십시오, 검성 어르신! 이 녹림왕 임덕성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명을 봉행하겠습니다.”

“미안하네! 그럼 잘 부탁하네.”

“맡겨주십시오!”

그때 분명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가슴을 탕탕 치며 호언장담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 이건 뭐란 말인가? 천하의 녹림왕 임덕성이 이 무슨 꼴불견이란 말 인가?

“음!”

녹림왕 임덕성은 나직하게 목울대를 울리며 암살자를 바라보았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지만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애초에 도움을 청할 생각 따위는 없었던 것이 다. 멀쩡한 두 손 놔두고 왜 남의 손을 빌린단 말인가? 만일 그런 짓을 했다가는 부끄러워 산에 돌아가지도 못한다. 만일 소문이라도 난다면? 잠시 상상해보던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것은 정말 수치스럽고도 끔찍스런 일이 될 터였다.

‘좋다, 이놈! 내 오늘 몸소 네놈을 다진 고기로 만들어주마!”

거도의 끝이 암습자를 향했다.

태산과 같은 기백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잠시 천무삼성의 위광에 가려 한동안 찍소리 못하고 있었지만, 그의 신분은 녹림칠십이채의 총 채주, 녹림도의 우 두머리, 산의 지배자, 녹림왕 임덕성이었던 것이다. 잡스런 기술만 잔뜩 있는 자객 따위는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의 거도에서 발산되는 무시무시한 도기가 무 정의 몸을 옭아매며 감히 경거망동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합!’

마음속으로 기합을 지르며 그는 무시무시한 거력을 지닌 일도를 냅다 내질렀다.

광풍마랑도법(狂風魔狼刀法)

제삼 초

일격일살(擊殺)

콰콰쾅!

집이 두 동강이 나며 흙먼지가 일었다. 집이 지진이라도 만난 듯 흔들렸고, 기와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하지만 무정은 그 자리에 그대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두 동강 나지도 않았다. 대신 그자 앞에 나타난 새로운 복면인이 검을 비스듬히 누인 채 임덕성의 일격을 받 아냈다. 그자의 방어 앞에 임덕성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누구냐 넌? 감히 나의 일격을 가로막다니!”

범상한 자가 아니었다. 임덕성은 자신의 일도를 이토록 수월하게 받아낼 수 있는 자가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일단 도우미라고 해두죠!”

새로 나타난 복면인. 그는 위지천 앞에 나타났던 바로 그자였다.

임덕성의 광폭한 일격은 무위로 돌아갔지만 그 위력마저 모조리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단지 비껴나간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그 여파는 매우 컸다.

방 안의 기물 중 멀쩡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것은 침상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폭풍 같은 도풍에 휩쓸린 이불이 갈가리 찢겨져 꽃잎처럼 방 안에 흩날렸다.

“이건 안 좋아!’

이 담대한 사내도 이번만큼은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적이 바보이기를 바랐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너무 큰 기대였던 모양이다.

“이런 바보 같은!”

무정의 입에서 무심결에 경호성이 튀어나왔다. 벙어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속았군!”

검을 든 도우미가 말했다.

무정과 도우미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침상 위에 피를 흘리며 누워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정교하게 만 들어진 부분은 얼굴 위뿐이었고, 나머지는 옷 속에다가 이것저것 지푸라기라도 쑤셔넣은 듯한 조잡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었다. 숙련된 전문 암살자라는 작자가 이 정도 단순한 속임수에 넘어갔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흥! 안됐군! 네놈들의 계획은 실패다.”

저들의 당황한 표정에 기분이 좋아진 임덕성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외치고 싶었지만, 독 때문에 아직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마련해놓은 장치인데 설마 진짜로 올 줄이야…….’

모경이 겉보기에는 무식해 보여도 이쪽 방면으로 재주와 꾀가 많았다. 그는 좋은 부하를 두고 있었다.

“그러니 모경 죽지 마라… 너같이 유능한 녀석을 다시 찾기는 힘드니깐…….?

그때 도우미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당신의 몸은 두 개가 아니니깐요. 이봐요 당신! 그는 이 안 어딘가에 반드시 있습니다. 내가 저자를 막을 테니 당신은 어서 그자를 처리하세요!” 무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움직였다.

“그렇겐 안 돼!”

쾅!

임덕성은 일도를 휘둘러 도우미를 견제한 다음 안명후가 있는 곳을 향해 지체 없이 몸을 날렸다.

“쳇, 체면이 말이 아니구만…….’

임덕성은 땀을 뻘뻘 흘리며 한탄했다. 그의 몸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였다. 게다가 벌써부터 숨이 차오르고 있었다.

진짜 안명후가 누워 있던 곳은 화사하게 꾸며진 여인의 방이었다. 원래 검후가 사용하기로 되어 있던 방이었지만, 한동안 안명후가 차지하고 있었다. 이것 역시 간 단하지만 심리의 사각을 찌르는, 시간을 벌기 위한 장치였다.

‘겨우 십 리 정도밖에 뛰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지치다니.

산에서의 십 리는 평지에서의 오십 리와도 맞먹는다. 보통 사람이라면 괴물이라고 했겠지만 그의 신분을 생각할 때 그것은 결코 과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녹림칠 십이채의 총 채주였고, 녹림의 왕이었다. 그는 산중의 제왕이고 지배자였다. 그에게 산은 집이자 일터였고, 앞마당이었다. 그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보통 때라면 십 리든 백 리든 끄덕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좀 달랐다. 등에 진 짐이 문제였다.

‘사람을 업고, 누군가를 지키며 싸운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이야.’

그는 언제나 약탈하고, 습격하고, 공격하는 쪽이었지 지키는 쪽은 아니었다. 지키는 쪽은 항상 그의 반대편에 서서 칼을 겨누는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역 전되어 그가 수호의 역할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졌다.

그가 이 업계에서 본격적으로 영업에 나선 게 열두 살 때였다. 그로부터 사십 년. 지금의 호위 무사 역할이 적성에 맞을 리 없었다. 등에 업힌 존재가 신경을 거슬리 게 했고, 그의 신경을 분산시켰다. 때문에 등에 업힌 존재를 잊고 마구잡이로 싸우다가 낭패를 당할 뻔도 했다.

어딘가에 내려놓고 단숨에 결판을 냈으면 좋으련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너무나 위험했다. 그나마 추격하는 두 놈 중 한 놈에게 상처를

입혀 발을 묶어놨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래도 그의 투지는 전혀 사그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위험과 함께 살아왔고, 피와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누구보다도 용맹했고, 거칠었고, 사나웠다. 그의 이빨과 발톱은 자잘한(?) 상처 속에서 도 전혀 무뎌지지 않았다. 하지만 출혈 때문인지 그의 몸은 피곤으로 계속해서 무거워지고 있었다. 한순간 그는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그의 몸이 중심을 잃고 휘청 거렸다. 작은 실수였지만 뒤를 쫓는 자에게는 단숨에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그자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유능했다.

“끝이다!”

일순간 진기를 방출해 도약한 복면인이 검을 치켜들며 외쳤다.

“죽어라!”

복면인은 절대 임덕성이 자신의 이 일격을 피하지 못하리라 확신했다. 몸이 지나치게 튼튼한 임덕성은 아마 죽지 않을지도 모른다. 칼침을 아흔아홉 개나 몸에 맞 고도 죽지 않은 인간이니 그럴 가능성이 다분했다. 그러나 그가 등에 업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이 일격에 숨이 끊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으 며 검을 내리칠 때 느닷없이 눈앞에 한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성광일시星光一始)

불청객은 들고 있던 곤을 별처럼 흩뿌렸다.

따당땅땅!

복면인은 검을 공세에서 급히 수세로 전화해 자신을 향해 찔러 들어오는 곤을 막아냈다. 안명후에 대한 공격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미처 피하지 못 한 일격이 그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시 중심을 되찾은 임덕성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준 은인에게 사의를 표하려 했다. 그리고 느닷없이 끼어든 청년도 자신이 도와준 사람이 누구인지 얼굴이라도 한번 볼 요량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고맙…….”

“이봐요! 괜찮습…….?

컥!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친 순간, 두 사람 모두 말을 잃어버린 채 멍하니 상대방을 쳐다보았다.

“아, 아들아!”

“아, 아버지!”

곤을 휘둘러 임덕성을 위기에서 구해준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아들 진성곤 임성진이었다. 임덕성이 도망쳐온 곳이 공교롭게도 중토관 시험이 치러지고 있는 장소 였던 것이다.

갑작스럽게 성사된 부자 상봉에 두 사람 모두 말을 잃었다.

“여, 여긴 어떻게.

그때 그의 시선이 아버지의 등 뒤에 칭칭 묶여 있는 사람에게로 향했고, 험상궂게 생긴 아버지의 얼굴과 죽은 듯 정신을 잃고 있는 사내의 얼굴을 번갈아 오가던 임성진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따지듯 물었다.

“그건 또 뭡니까? 이젠 인신매매에까지 손을 뻗치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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