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6권 25화 – 끝나지 않은 종언… 그리고 새로운 시작
끝나지 않은 종언… 그리고 새로운 시작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노인은 모든 것을 탐욕스럽게 집어삼키며 날뛰고 있는 불꽃 앞에 서 있었다. 화마는 일말의 인정도 없이 자신의 힘이 미치는 모든 것을 불태우고 있었다.
일렁이는 불꽃의 그림자가 노인의 새하얀 수염과 머리카락을 노을이 비친 듯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림자가 성깔 있어 보이는 불꽃의 변덕에 따라 이리저리 춤 을 추었다.
덜컹!
쿵!
대문을 떠받치고 있던 두 개의 육중한 기둥에는 불꽃의 뱀 두 마리가 똬리를 튼 채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었다. 지옥의 문처럼 업화가 타오르는 대문 위에 걸려 있던 현판이 돌바닥과 부딪히며 붉은 가루를 흩날렸다. 이미 저 불꽃의 문 너머에 살아 있는 생명은 없었다. 파괴와 살육의 연회장이었던 그곳은 불꽃과 함께 잿더 미로 변해가고 있었다.
노인의 시선이 이곳의 운명을 상징하기라도 하듯 바닥으로 떨어진 현판을 향했다. 한때 이곳이 누렸던 영화를 반영한 듯한 훌륭한 서체와 장식으로 꾸며진 현판이 었지만 지금은 불꽃에 휩싸여 숯검댕이가 되었기에 큰 글자만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반 이상 타버린 현판의 불꽃 속에는 다음과 같은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청룡은장(靑龍銀莊)
노인은 한 손에 종이 쪼가리를 움켜쥔 채 망연자실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한때 ‘절대 노후 보장 연금’이라 불리던 이 종이 쪼가리는 불꽃과 함께 하루아침 에 무용지물 쓰레기가 되었다. 그의 생활 유지비가, 그의 술값이 저 안에서 함께 타오르고 있었다. 가출한 제자 녀석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아 남긴 유일한 ‘유산’이었다. 저것이 몽땅 사라지면 이제 자신은 무엇으로 연명해 가야 한단 말인가? ‘절대’란 말 대신 ‘화재 전소 전’이라고 이름이 바꿔야 할 이 휴지 조각이 아 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것은 확실했다. 그래서 고객의 당연한 권리로 은장 안에 남겨진 금은보화들을 접수하려 했지만 이미 저 뒤의 나쁜 놈들이 빼돌린 후였다. 그 가 도착했을 때는 빼돌려진 금은보화 대신 전각은 불타고 있었고, 백 명 남짓한 인간이 시체를 찔러가며 확인 사실이란 이름의 뒤처리를 하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 기지만 그들은 목격자가 생기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렇기에 노인의 입을 막기 위해 달려들었고, 그들은 지금 노인의 뒤에서 다시는 깨어날 가망이 없는 잠을 자고 있었다. 노인의 음주 생활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친 죄의 대가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지금 이 노인에게 전혀 중요한 문제가 되지 못했다. 살길이 막막해진 것이다. 내일 나올 새로운 미주(酒)를 맛있는 안주와 더불어 먹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크나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다시 그녀석을 찾아봐야 하나…….”
노인은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무작정 찾아가다 보면 못 찾을 것도 없었다. 몇 가지 단서는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대로 굶어 죽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오랜만에 강호 나들이나 한번 할까…….”
백염백발의 노인은 들고 있던 증서를 불꽃 속에 집어던졌다. 그러고는 재가 되어 흩날리는 은장을 뒤로하고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한 발짝 내딛었다. 노인에게는 작은 한 발짝일지 모르지만, 강호에는 크나큰 발자취가 될지도 모를 그런 한 발짝이었다.
<『비뢰도』 17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