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6권 8화 – 작열! 검후의 필살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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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16권 8화 – 작열! 검후의 필살오의!

작열! 검후의 필살오의!

장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애초에 진심일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전력을 다해야 하는 경우는 딱 두 가지뿐이었다.

하나는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가정이지만 천겁혈신이 부활했을 경우, 나머지 하나는 검성과 도성이 자기 접시 위의 음식을 허락도 없이 갈취해 갔을 때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검후는 세 번째 경우를 추가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것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고민해야만 하는 처지에 빠져 있었다.

검후는 검을 아래로 조용히 내려 하단의 자세를 잡았다. 그 순간 고요가 감돌았다.

검후가 몰입한 지극한 ‘정(靜)’의 상태는 고요한 망망대해의 아득한 적막함을 연상시키는 힘이 깃들여 있었다.

“허허, 아름답군! 검후는 바다와 더불어 백여 년을 살더니 이제는 바다를 화현하는 현묘한 경지에 이르렀구려!” “동감일세! 아름답군!”

검성의 찬탄에 도성 하후식은 간단 진솔한 평으로 그의 마음을 대변했다.

비류연은 섣불리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신중한 눈으로 검후를 직시하고 있었다.

“왜 그러느냐? 겁이라도 나느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비류연의 신조인지라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그건 아니지만…….”

“그렇다면 왜 출수하지 않느냐? 설마 이 노인네보고 먼저 손을 쓰라는 것은 아니겠지?”

“저처럼 겸손한 사람은 그 정도까지 자만하지는 않죠!”

태연히 내뱉은 비류연의 그 말은 그걸 주워담아야 하는 주위 사람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기막혀 할 말이었다. 다른 사람이 그 말을 사용하는 것은 용납될 수 있어도 비류연에게 그 말, ‘겸손, 겸허’가 사용된다는 것은 언어도단의 사태였다.

하지만 제반 전후 상황을 꿰고 있지 못한 검후로서는 그 배경에 깔린 사정을 알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검후는 칭찬했다.

“기특하구나! 그렇다면 왜 움직이지 않는 것이냐?”

그러자 비류연이 대답했다.

“우리 사부가 그러더군요.”

“응?”

“대적(大寂)’을 경계하라! 크나큰 고요함은 곧 크나큰 태동의 모태니, 극정은 곧 동이라!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에 걸린 화살이 멀리 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흐르는 계곡물처럼 경쾌한 목소리였다.

“저게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요?”

“글쎄…….”

휘몰아치는 윤준호의 궁금증에 비해 장홍의 대답은 형편없을 정도로 궁색했다. 그러나 그것은 비단 이들 둘만의 모습은 아니었다. 다른 여러 사람의 얼굴에도 똑 같은 어색함과 난감함이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천무삼성의 얼굴에만은 짙은 경탄의 빛이 어려 있었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당사자인 검후였다.

“네 나이가 올해 몇이더냐?”

“글쎄요… 스물하나쯤 되지 않았을까요?”

“놀랍구나! 그 어린 나이에 벌써 물극필반(物極必反)의 이치를 꿰고 있다니!”

검후는 솔직히 놀라고 말았다.

“그 나이에 음양의 이치를 거기까지 깨우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 아니고 말고!”

검성 역시 그것은 인정하는 바였다.

“아니면 가르침이 좋았던가!”

도성이 한마디 덧붙였다. 이 두 사람 역시 이 찬탄에 별 이의가 없는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물극필반!!!’

이 네 음절에 모용휘의 귀가 번쩍 뜨였다. 그 역시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검후가 강한 목소리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머리로는 잘 알고 있는데, 얼마나 그것을 실현시켜낼 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머리로만 아는 것과 그것을 몸으로 실천하는 육화의 과정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허(虛)의 리(理)를 실(實)로 변환시키는 존재 형성의 과정이며, 세상을 움직이 는 창조의 원천이었다. 천지 차이라는 진부한 표현으로 그 현격한 차이를 그 밑바닥 깊숙이까지 모두 표현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것이라면 직접 시험해보시면 알려드릴 수 있게 되겠지요. 아무리 말로 가능하다고 말해도 실현할 수 없으면 의미 없는 것이고, 체험해보지 못하면 그 체용體 用)된 허(虛)의 리(理)를 실(實)로서 경험하지 못할 것 아닙니까!”

누가 꼬인 인간 아니랄까봐! 좀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면 어디 덧나는가? 그런데도 그걸 알아들을 수 있는 인간이 있는 모양이었다.

“훌륭하구나, 아주 훌륭해! 설마 너의 실력이 그 정도일 거라고는 솔직히 생각지 않았다. 내 너를 무시했으니, 게다가 상대의 실력을 제대로 파학하지 못했으니 너 와 내 자신에게 사과해야겠구나!”

상대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는 것은 죽음으로 직결될 수도 있는 일, 그렇기에 검후는 자기 자신에게도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고수라 해도 무인인 이상 방심은 금물이었다.

“너는 나의 새로운 오의(義)를 받아볼 용의가 있느냐?”

검후가 제안을 하나 내놓았다.

“새로운 오의요?”

“그래, ‘해상비조천참절(海上飛鳥斬切)’이란 아주 수수한 이름을 지닌 초식이니라.”

검후는 밝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새로운 오의? 그녀가 언제 그런 걸 계발했지? 그리고 지금 와서 그녀가 새로운 초식을 만들 필요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미 그녀의 검은 초식(招式)과 형(形)을 초월한 지 오래일 텐데.”

검성은 잠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서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필요 없는 것을 굳이 고생해서 만들다니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 자네 몰랐나? 그게 다 자네 때문일세!”

“나? 내가 왜?”

백년지기 친구의 아방한 반문에 발끈한 도성이 검성을 향해 핀잔을 주었다.

“지금 와서 발뺌하는 건가?”

“영문이나 알고 비난당했으면 좋겠군.”

그는 정말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해상비조천참절. 그 이름을 듣고도 그녀가 왜 그 기술을 고안해냈는지 정말 모른단 말인가?”

“모르네.”

검성이 똑부러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그의 친구는 관자놀이를 누르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 자네의 ‘강 가르기’ 때문 아닌가. 자네, 우리 둘 앞에서 삼십 년 만에 그 기술을 성공시켜놓고 의기양양했더랬지? 그 기술 이름이 뭐라고 그랬더라? ‘일검단 강’이라고 했던가, ‘참강만리’라 했던가? 상당히 뻥이 심한 이름이었더랬는데.

“이십오 년!”

검성은 귀찮은 걸 무릅쓰고 다시 한 번 정정해주었다. 도성은 그런 모습에 질렸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다시 말을 이었다.

“자네가 그 어이없는, 그리고 상당히 무모한 기술을 성공시켜버리자 경쟁의식이 발동한 그녀가 뭐라고 호언장담했었는지 벌써 잊었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분명…….”

그제야 서서히 잃어버렸던 사실 까먹고 있었을 뿐인 – 기억이 돌아왔다.

“그래! 바다 위를 나는 천 마리의 바닷새를 베어 보이겠다고 했지. 분명 자네가 강을 거짓말처럼 뚝딱 가른 게 심히 마음에 안 들었던 게야. 아마 눈엣가시처럼 보 였는지도 몰라. 암! 이제야 기억이 나나?”

도성이 큼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야 그 일을 기억해낸 검성을 질책했다. 그는 자신이 그때 느꼈던 매우 황당하면서도 아니꼬운,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감탄해 주겠다고 마음먹었던 심정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마 검후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으리라.

“설마… 정말 그 짓을 했단 말인가?”

검성이 믿을 수 없다는 투로 반문했다. 그러나 그것을 듣는 도성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어이가 없는 반응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는 그 말을 할 자격이 없었

다.

“그 짓’이라니? 이 친구 좀 보게, 못쓰겠네그려. 삼십 년 만에 ‘그 짓’을 한 건 어디 사는 누구였는지 벌써 잊어먹었나? 그리고 지금도 체통 없이 바다 벤다고 설치

고 다니는 사람은? 자네도 저 사람이 우리 중에서 최고 고집쟁이라는 사실은 아까 동의하지 않았나?”

물론 그랬긴 했다.

“그럼 설마 진짜로 그 일을 해냈단 말인가? 그런데 왜 아직도 우릴 불러 자랑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그런 것을 기다리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녀의 커다란 현시욕이 작은 인내에 눌렸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아마 최근에 완성한 모양이지. 앗, 시작한 모양이군!”

마침내 짤막한 기합과 함께 검후의 검을 중심으로 하얀 안개처럼 보이는 기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모두 반경 삼십 장 밖으로 물러서!”

도성이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천둥처럼 외쳤다.

“서둘러!”

무척이나 다급한 목소리였다.

“절대 반경 삼십 장 안으로 한 발짝도 들이지 마라! 만일 잘못해 한 발짝만 더 들어가도……..

그는 눈빛을 날카롭게 빛내며 경고했다.

“검권(劍圈)에 말려들어 죽을 수도 있다!”

검권이란 검이 장악하고 있는 일종의 세력권으로, 보통은 이삼 장만 돼도 놀랍다고 감탄하는 경지였다. 그런데 반경 삼십 장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검 기란 소린가?

“삼십 장으로 충분하겠나?”

하지만 검성은 그것도 부족한지 사람들을 더 물릴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아닐세, 사람들도 이렇게 잔뜩 있는 데다 어린애를 상대로 전력을 다하지는 않겠지. 그 정도 분별력은 있을 걸세.”

전력을 다하지 않다니… 전력을 다하지도 않는데 삼십 장이나 물러나야 한단 말인가?

“그 다음부터는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지.”

엄격함이 배어 있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긴장된 장내를 주시했다. 폭발할 듯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중심으로부터 느껴지는 압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보는 것만도 힘겨워하는 사람이 나올 정도였다. 엄청난 압도감이었다.

“정말 무시무시한 검기로군. 나 같은 건 열 명이 달라붙어도 이기지 못하겠어.”

장홍의 순수한 찬탄에 효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오류를 정정해주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단위가 한 자리 모자라네요. 열이 아니라 백이겠죠. 그건 그렇고 정말 귀신처럼 무서운 기로군요. 백 년을 넘게 살면 멀쩡한 사람도 귀신이 되는 건가?”

저것은 인간의 것이라 볼 수 없었다. 귀신 도깨비가 아니고서는 지닐 수 없는 엄청난 검기. 그걸 앞에다 두고 있자니 조용히 잠자고 있던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 다.

‘류연, 자네는 과연 이 기에 대항할 수 있는가? 보기만 해도 전의가 꺾여버리는 이 거대한 힘 앞에서…….?

효룡은 손에 땀을 쥔 채 자신의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동안 상상을 불허하는 많은 일을 해왔지만 이번만은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친구의 걱정을 아는지 모 르는지 비류연은 너무도 태연하게 자신의 뒤통수를 긁적이고 있었다.

“역시 진심이 아니면 안 되는 건가…….”

비류연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놀이는 잠시 접어두어야 할 듯싶었다. 목숨은 항상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이기에.

“아아… 이거이거! 힘들게 일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데…….”

아무래도 땀을 좀 흘려야 할 듯했다. 역시 백 년을 넘게 살아온 괴물이었다. 강호의 전설이 될 만했다.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그 전설이 괴담이 될 것 같았다. 제 대로 하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볼 수도 있었다. 비류연의 눈빛이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분위기가 바뀌었구나?”

딱 꼬집어서 이야기할 수는 없었지만 비류연의 기가 바뀌었다. 이전에는 구름 같기도 하고 표홀한 바람 같기도 한, 마치 허공을 품고 있는 듯 희미하게 느껴지던 분위기가 조금 전을 기점으로 바뀌었다. 굉장히 이질적이면서도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엄습시키는 그런 기운이었다.

“호오? 진짜로 해볼 맘이 든 거냐?”

비류연이 씨익 하고 웃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구나.”

검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순간을 기다렸다!”

장홍은 온몸을 긴장시키며 날카롭게 눈빛을 빛냈다. 땀이 홍건하게 손아귀를 적시고 있었다.

‘류연, 이번에는 아무리 자네라도 본신의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될 걸세!’

장홍은 비류연의 몸에 네 개의 철환이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것을 풀었을 때마다 비류연은 환상과도 같은 놀라운 능력과 기적에 가까 운 신위를 보여주었다. 그를 잘 모르는 이는 그를 그냥 ‘운수대통 격타금’이라고 부르며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지만, 자신과 효룡 그리고 그 외 몇 명만은 그의 참 모습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로서도 그의 몸에서 네 개의 묵룡환이 해제되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음충맞은 녀석!’

너무 숨기는 게 많았다. 어떻게 숨기는 게 자기보다 많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그 정체를 알아내기가 정말이지 고달팠다. 그는 자신의 실체를 드러낸 적이 한 번 도 없었다. 장홍은 직감으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쩌다가 뭔 일을 치렀을 때는 자신이 인식하기도 전이었다. 하지만 이분이 상대라면… 바로 그 검후가 상대라 면… 그녀라면 양파 껍질처럼 층층이 쌓인 녀석의 껍질을 하나씩 하나씩 벗겨줄 것이다. 그는 그리 기대하고 있었다.

장홍의 시선은 비류연의 양 손목과 양 발목을 번갈아가며 바라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곳에 그게 있었다. 냄비의 내용물을 덮고 있는 쇠뚜껑처럼, 신부의 얼굴 을 가리는 면포처럼 성가신 데다 거무틱틱하기까지한 그것, 바로 묵룡환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자네도 그 무식하기 짝이 없는 묵룡환 네 개를 모두 풀지 않을 수 없을 걸세!”

과거, 장홍은 비류연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손목과 발목에 채워져 있는 묵룡환이란 괴이한 물건에 대해. 그때 그는 싱긋 웃기만 할 뿐 명쾌한 대답은 회피했다. 하 지만 그곳에 비밀이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장홍은 자신의 모든 감각을 눈에 집중시켰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절대로! 네녀석의 정체를 밝혀주마!’

자신이 이 년이란 시간을 투자하고도 파악하지 못하는 게 있다는 것은 자존심 문제였다.

“나도 밥값은 한다는 것을 보여주마!”

찰캉찰캉!

마침내 비류연의 양쪽 발목에서 묵룡환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풀려 나갔다.

쿵!

묵직한 소리를 내며 두 개의 철괴가 바닥에 떨어졌다.

“해제했다!”

그러나……. 희열에 들떴던 장홍의 얼굴은 이내 실망으로 물들고 말았다. 그리고 그 실망 위에 떠오른 것은 어이없음이었다.

“왜지? 어째서냐, 비류연?!”

이와 같은 감상은 옆에 있는 효룡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체감하지 못한 거냐? 상대의 강함조차 읽지 못하는 거냐? 너 정도 되는 녀석이 그런 실수를 한단 말이냐?”

장홍은 분노했다.

“이런 젠장! 어째서 네 개 모두 풀지 않는 거지? 어째서? 그렇게까지 자기 자신에 대해 자만하고 있는 건가?”

‘오만인가? 아니면 자신감인가?”

그것은 곧 판가름날 터였다.

“어머, 재미있는 걸 달고 다니는구나!”

검후는 예리한 시선으로 묵룡환을 바라보았다. 대충 용도가 짐작이 가는 물건이었다. 저런 걸 차고도 그런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 자체로 그는 칭찬받을 만했다. 하 지만 자신과 싸우면서도 저런 거추장스러운 것을 달고 있었다니……. 그것은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별로 재미없는 물건이에요. 귀찮기만 하고.”

비류연이 태평스럽게 대답했다.

“그걸로 준비는 모두 끝난 거냐?”

“예, 모두 끝났습니다. 언제든지 오셔도 좋아요.”

“자신감 하나는 정말 탁월하구나. 좋다, 이걸 피하면 검후의 칭호를 주마!”

경악스러움에 사람들의 눈이 접시처럼 크게 떠졌다. 믿을 수 없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이 희대의 제안에 대해 비류연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필요 없어요.”

시시하다는 듯 거절의 뜻을 밝히는 비류연.

“왜? 누구나 원하는 칭호인데?”

의아해하는 검후의 반문.

“전 남자라구요! 애석하게도 여자가 아니랍니다. 그래서 그런 건 필요 없겠네요. 정 누구에게 떠넘기고 싶으면 예린에게나 주세요. 아니면 저기 저 애꾸눈 누님이 라든가?”

“녀석, 입심 한번 좋구나. 하지만 저 아이들은 아직 안 돼. 아직 더 연마하지 않으면 안 되지. 아쉽구나, 네가 여자였다면 내 제자로 삼았을지도 모르는데.

그녀는 정말 그 사실에 대해 아쉬워하고, 더 나아가 안타까워까지 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비류연은 고개를 설래설래 저었다.

“제자 노릇은 이제 그만두기로 했어요. 기왕 할 거면 남을 가르치는 이가 되기로 정했거든요.”

“스승이라… 그 직업은 나도 좀 경험이 있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 직업에는 아무나 종사할 수 없다는 것을 너도 알고 있겠지? 요는 실력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 는 걸 말이야.”

“물론이죠! 그런 기본 원칙을 사실 많은 사람이 수시로 어기고는 있긴 하지만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좀 시험해봐도 되겠구나!”

“천천히! 마음껏!”

전신의 기를 끌어올리며 비류연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검후는 자신이 새로 고안한 검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또 그럴 만한 인간을 만났다는 데에 대해서 무척이나 기뻐하고 있었다. 그 동안 상대가 너무 약해 혹은 상대가 죽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실전에서는 한 번도 써먹어본 적이 없었다.

요즘 애들은 너무 약하다. 온실 속의 화초도 그애들보다는 더 강할 것 같았다. 조금만 힘을 줘도 금방 죽어버리는 것이다.

너무 쉽게 죽어버리면 곤란하다. 그는 충분한 놀이 상대가 되어주지 않으면 안 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 검법의 중점은 실용성보다는 화려함에 있었다. 그것도 보는 사람들을 압도할 만큼의 과시욕으로 만든 것이니 검초에 그 마음이 녹아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다. 사실 검후 정도 되는 고수면 이런 복잡하고 화려무쌍하면서도 지극히 낭비적인 검초 대신 단 일 초 일 식으로 순식간에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상상만으로도 엄청나게 현란한 검법이 된 것은 취향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검초의 치명적인 위험도가 감소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여전히 위 험천만했고, 조금의 방심으로도 상대를 골로 보낼 수 있었다.

한상옥령신검(霜玉靈神劍) 신생(生)오의(義)

해상비조천참절(海上飛鳥千斬切)

한 사람의 오기에서 나온 검법이 지금 현세에 나타나려 하고 있었다. 바다 위를 나는 천 마리의 새를 벤다는 뜻을 지닌 검술. 오의는 천변만화하는 면면부절 만물 생생의 도리 그리고 쾌속함!

검후는 도약했고, 일순간 비류연과의 공간을 좁혔다.

사람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검후의 몸이 순간 여섯 개로 분리된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각자가 각기 다른 검세를 취하고 있었다. 상하동서남북 육방을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새들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다.

여섯 명의 검후에게서 쏟아지는 천 조각의 검기가 일순간 비류연의 몸을 덮쳤다. 삼엄한 검기가 그의 전신을 옥죄었고, 사방 어디에도 그가 도망칠 곳은 존재하지 않아 보였다.

모든 이가 그 놀라운 신공을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오직 나예린만이 두 눈을 질끈 감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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