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7권 – 학생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그러나 거의 아무도 읽지 않는―천무학관 지정 필독 추천 도서 108종
학생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그러나 거의 아무도 읽지 않는―천무학관 지정 필독 추천 도서 108종
두뇌 총명하고 무공 출중하다고 명실 공히 인정받는 서른 명의 고수가 무려 일 년 동안 머리를 맞대고 뽑아낸 희대의 담론들. 읽으면ᅳ그리고 읽은 다음에 혹시라 도 이해라는 행위가 가능하게 된다면ᅳ피가 되고 살이 된다 일컬어지는 공증받은 명저(名著)들.
강호에 쏟아져 나오는 수백 종의 서책들이 대중없이 모아진 후 이성에 따라 버려지고, 다시 모종의 경제적인 이유에 따라 선택받고, 다시 경쟁 원리에 따라 버려지 길 수차례 반복하며 신중하게 추려지고 필수 독서 목록으로 책정된 지 근 50년이 흘렀지만, 지난 60년 전부터 천무학관 장경각 사서장을 역임하고 있는 ‘서광(書 狂)’ 노사의 증언에 따르면, 이 108종의 책을 몽땅 탐독한 인간은 반백년 역사를 통틀어 기십이 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위에 책정된 서책들이 지금 있는 학생들과 눈높이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만… 아직도 무공이란 게 몸으로만 익히는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한 탓에 책을 멀리하고 정신을 살찌우는 일에 소홀히 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때때로 제 판관필이 살기에 부르르 떨리곤 합니다. 요즘 강호에 유행하고 있는 역병인 책을 읽기만 하면 토하는 독서거식증과 그 병의 존재가 밝혀진 지 이천 년이 경과했음에도 아직까지 그 치유 방법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불치병인 독서수면증에 걸 린 아이들이 하루빨리 치유되길 바랍니다.”
―사서장 서광 노사와의 대담 중에서 발췌.
쭗 십이(十二) 비급무용론
ᅳ일부 발췌
…(전략)….
…자신의 자칭 절세비기가 후세에 사장(死藏)되지 않고 좋은 일에 사용되길 바라며 무슨 음침한 동굴 같은 데나 관관 명소도 되지 못할 황량하고 궁벽진 절벽 한 가운데다가 자신의 무공구결을 새겨놓은 행위는 이런 이유에서 단순한 자기만족과 자연 경관 훼손에 불과하다.
언어의 한계란 명확하고 또 명백하다. 또한 인간은 지극히 주관적인 동물이다. 우리는 어떤 저작물을 읽을 때 사심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사심(師心)은 곧 사심(私 心)이자 사심(邪心)이다.
이런 인식 체계상의 태생적 한계 때문에 정보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한번 이상 체에 걸러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정보의 왜곡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것이 다. 특히나 내공 수련에 대한 요결이 아닌 동작과 관련된 그림은 입체적인 것을 평면 안에 우겨 넣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행위이기에 이해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할뿐 더러, 때때로 방해마저 된다. 이런 이유에서 과거로부터 전해진 비급을 통해 절세(絶世)의 무공(武功)을 익혀보겠다는 안이한 생각은 일확천금(一擺千金)의 꿈만큼 이나 부질없는 환상에 불과할 따름이다.
.(중략)…….
옛말에, 초식이 이二), 스승의 말이 팔(八)이라 했다. 초식은 단지 형태일 뿐 그 안에 담긴 진정한 묘리는 스승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단지 초식 의 형식에 집착하는 것은 나머지 팔 할의 묘리를 놓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서 초식은 비급과 바꿔쓸 수 있는 말이다.
스승이 생사의 간극에서 직접 몸으로 습득한, 다양한 체험적이고, 현장을 제대로 반영하는 묘수(妙手)들이야말로 진정한 비기(秘技)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비급의 용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치매에 대한 일종의 대비책에 불과하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감퇴하게 되며, 그것은 머리를 잘 쓰지 않는 사람일수록 더 빨리 진행된다. 개중에는 종종 자신이 익힌 무공을 까먹는 사람까지도 있다. 그 시간적 한계는 보통 1갑자가 되는 60년이다.
기억의 모래가 세월의 바람에 흐트러지려 할 때 비급(무공서)은 유용한 되새김질 역할을 해준다.
비급에 정리된 내용을 통해 새까맣게 까먹고 있었는지 없었는지, 검로는 어땠는지 백지 상태로 변해 있던 기억의 흔적을 더듬어 다시 원래의 형태를 불러낼 수 있 는 것이다. 그것 이외에 비급이 쓸 만한 점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후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