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7권 12화 – 파괴 &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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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17권 12화 – 파괴 & 재생

파괴 & 재생

-산과 하늘

황폐해진 대지, 불타는 전각, 대들보가 불타고 무너지고 아름드리 기둥은 검은 재가 되고 혼탁한 하늘에 검은 눈처럼 흩날린다. 그 속에서 모용휘라는 이름을 지닌 나약한 존재 자체가 불타고 있었다.

그것은 땅바닥 위에 놓여 있었다. 그는 떨리는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작다. 그래서 내려다봐야 했다. 언제나 올려봐야 했던 그것을 그는 지금 내려보기를 강 요받고 있었다. 그것은 얼굴이었다. 그가 경애하고 우러러보았던 얼굴, 그에게는 언제나 자상했던 얼굴, 그에게 검의 길을 제시해 주었던 사람, 사랑스런 핏줄, 그리 고 영원하리라 여겼던 최종 목표.

땅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얼굴은 바로 조부 검성 모용정천의 얼굴이었다. 그것을 그는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부의 몸 아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에 놓인 것 은 목뿐이었다. 대지가 붉은 피를 빨아들여 자신의 색인 황색을 선홍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누가 감히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하염없는 눈물이 그의 볼을 적시고 있었다.

‘누가 감히 이런 짓을…….’

모용휘는 끈적끈적한 자신의 왼손을 들어 그 손바닥 안을 내려다보았다. 피처럼 붉은 손이 시야 가득히 들어왔다. 아니, 피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 없는 피. 조금 전 까지만 해도 타인의 몸속을 맴돌고 있던 더운 피다.

“이것은 누구의 피인가?”

모용휘는 다시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검이 있었다. 지금 그의 눈 아래에 있는 사람이 그가 나이 십오 세에 관례를 치르고 성년이 된 것을 기념하며 자신에게 선사 했던 바로 그 검이었다.

너무도 소중하여 소지를 거른 날이 없었기에 언제나 첫눈처럼 눈부셨던 검날이 지금은 찐득찐득한 선혈로 젖어 있었다. 과연 이것은 누구의 피인가?

그 순간 잘려 있던 수급의 눈이 번쩍 뜨였다. 핏발선 안광이 증오로 일렁거린다.

“잊었느냐, 그것이 누구의 피인지!”

포효가 터져 나왔다. 조부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른다.

“아냐, 아냐!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모용휘는 미친 듯이 소리쳤다.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그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외면하고 싶었다. 어디론가 여기가 아닌 곳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하늘에 균열이 가고 땅이 갈라졌다. 이윽고 느껴지는 까마득한 추락감. 그는 허무의 구렁텅이로 굴러 떨어졌다.

세계가 무너졌다.

“할아버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모용휘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몸이 땀으로 목욕한 듯하다.

“시끄럽!”

슈웅!

퍽!

갑자기 베개가 하나 날아와 뒤통수를 가격했다. 평상시 같으면 절대 허용하지 않았을 장난 같은 공격도 완전 무방비 상태에 빠진 지금의 그에게는 잘 먹혀들었다. “시끄러워! 이게 몇 번째냐? 잠 좀 자자!”

비류연이 이불을 덮어쓰며 짜증스럽게 외쳤다. 그날 이후로 야밤에 잠자기에 상당한 애로 사항이 꽃피고 있었다. 즐거울 리가 없었다. 인간에게 있어 먹고 자는 문 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삶이란 걸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미, 미안하네. 또 그 끔찍한 꿈을 꾸었거든……

“요즘 맨날 꾼다는 그 꿈?”

모용휘는 땀에 젖어 있는 창백한 얼굴을 조심스레 끄덕였다.

“쯧쯧, 꿈은 꿈일 뿐이야. 새벽 안개처럼 깨어나면 사라지고 말지. 겨우 꿈 따위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의 수면을 방해해서야 안 될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위로나 동정이란 말이 그의 사전에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왠지 자신의 고민을 깃털보다 더 가볍게 취급하는 신랄한 말을 듣고 있으면 모용휘는 한결 마음의 짐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의 고민을 나눠 가질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그런데… 류연.”

“뭔데?”

여전히 이불을 뒤집어쓴 채 비류연이 대답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나?”

“사랑 고백이라면 사양하겠네.”

비류연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누, 누가 사랑 고백이란 건가? 난 심각하네. 자네도 진지하게 임해줄 수 없겠나?”

“그럴려면 상담비가 필요해!”

“상담비? 그런 것도 받나?”

어안벙벙한 표정으로 모용휘가 반문했다.

“물론. 특히 야간 상담은 추가 요금이 발생하게 되네. 친구 사이라도 예외는 없어.”

“그런 게 언제부터 있었나?”

“방금 전부터! 나의 충고를 들을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게 남의 귀중한 시간을 쓰려면 그 정도 각오는 되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수면 방해비를 면제해 준 것만으로도 자네는 다행으로 여겨야 돼. 알겠어? 그럼 왜 돈을 내야 하나? 설명해 주지. 돈을 지불한다는 것은 자네가 나의 충고에 귀를 기울일 각오가 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자네는 나의 말에 그만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나? 나한테 동정받을 거라면 포기하 는 게 좋아. 그리고 진짜 충고를 원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그만한 각오가 없으면 자네의 몸은 남의 충고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뭔가를 했다는 자기만족을 위한 행동에 불과하니 그런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짓은 아예 시도부터 안 하는 게 좋아. 어차피 듣지도 않는 충고를 기를 짜내어 해주고 싶은 생 각은 없네. 이런 걸 등가교환의 법칙이라고도 하지.”

“그, 그런가? 그렇다면 지불한다면 질문을 들어줄 텐가?”

“내면!”

비류연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어쩔래?”

“내겠네!”

모용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지금 돈을 땅바닥에 뿌리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그만큼 절박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좋아, 그럼 한번 들어볼까? 이런 걸 대출혈 봉사라고 하는 것이지. 잘 알아둬.”

그런 것까지 숙지하기에 세상에는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만한 것들이 너무 많았기에 모용휘는 잊어버리기로 했다. 대신 그가 요즘 품고 있는 궁금증에 대해 질문 했다.

“자네는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뭐라고 생각하나?”

“나의 세계에서 상대를 배제하는 것이지.”

비류연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배제?”

“그래. 함부로 허락도 없이 나의 세계를 침범하려는 녀석은 철저히 응징당해야 한다는 게 나의 신념이야.”

“그럼 세계를 침범당한다는 것은 대저 무엇인가? 자네를 죽이고자 하는 위협을 가리키는 건가?”

“흠, 그것이 꼭 날 살해하고자 하는 의지일 필요는 없지. 이런 경우는 오히려 간단해. 남이 하고자 하는 바를 고스란히 돌려주면 되니까. 남을 죽이려고 한다거나 해코지하려 한다면 자신도 똑같이 당할 각오를 유사시에 항상 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것도 아니면서 자기 당할 때만 인권 찾으면 죽어도 싸지. 그런 놈들 살려 놓을 바에야 착한 사람 한 사람이라도 더 건사하는 게 낫지 않겠어?”

비류연의 말은 신랄하고 냉정하기 짝이 없었다.

“과격한 발언이군.”

항상 전통에 따라 행동하는 모용휘로서는 비류연의 파격적인 사고가 무척이나 불편하게 다가왔다.

“뭐, 꼭 살인 의지뿐만이 아니지. 쓰잘데없는 충고도 마찬가지야. 본인이 될 수 없으면 알 수 없는 일도 있는데 항상 남에게 충고하려 드는 인간이 있지. 좋은 의도 라고 해서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야. 의외의 경우 이런 게 타인의 세계를 진흙 발로 짓밟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 때문에 충고는 항상 신중해야 하 지.”

의외의 부분에서 깐깐한 녀석이었다. 그것이 아마 이 비류연이란 친구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일 것이다.

“……”

“자, 어때? 그런데도 충고해 달라고 할 거야? 미리 경고했다시피 그건 내가 자네의 세계를 침범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해. 그걸 받아들일 용의가 자네에게 있겠 “나?”

“충고에 그렇게 큰 의미가 담겨 있었던가?”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난 쓸데없이 나에게 충고라는 명목으로 간섭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나의 세계가 침범당하기 때문이지.”

비류연의 생각은 확고부동했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았다.

“그래도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때때로 충고가 필요할 때가 있겠지. 하지만 그전에 자신을 정확하게 살펴야 하는 게 아닐까? 자신이 충고가 필요할 때를 아는 것 역시 능력이야. 내가 그것 을 아직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필요한 것을 알 때 충고가 필요한 거지. 나의 규칙을 깨뜨리라고 강요하는 게 충고는 아냐. 그건 침범이지. 그래도 할 용의가 있어? 이 게 마지막 경고야. 어떻게 하겠나?”

“있네.”

썩은 새끼줄에라도 매달리고 싶을 정도로 지금 모용휘의 마음은 절박했다.

그러자 마침내 비류연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자!”

그리고 모용휘는 자신의 눈앞에 내밀어진 하얀 손을 볼 수 있었다. 모용휘가 약간 감동하며 막 그 친구의 손을 마주 잡으려는 순간 그 친구가 말했다.

“선불일세!”

“그러니까 자네는 그 혁씨 할아버지한테서 받은 그 살벌한 요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다 이 말이지?”

“그렇네.”

모용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죽이면 되잖아?”

뭘 그런 걸 가지고 고민하냐는 듯 비류연이 반문했다.

“류연!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나!”

모용휘가 진심으로 화가 나서 소리쳤다. 항상 조용하던 그가 한번 화를 내자 마치 천 개의 칼날이 그의 몸에서 솟구치는 듯한 살벌한 느낌이 들었다.

“알았어, 알았어. 농담이었네, 농담. 뭘 그리 정색해서 화내는가?”

“진지하게 임해주게. 선불도 받았지 않나?”

그 말이 비류연의 상도(商道)를 자극했다.

“음, 알았네. 그럼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게 어떤가?”

“어떻게 말인가?”

“그 요구에는 다른 숨겨진 의도가 감추어져 있다고 말일세.”

“숨겨진 의도?”

비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이 하는 말을 그냥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지. 보통 인간은 자신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거든. 그래서 항상 한 꺼풀 덧씌워진 언어 뒤에 숨고 싶어하지. 그땐 자네에게 너무나 충격적인 말인지라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그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어. 어때, 짐 작가는 거라도 있나?”

비류연이 유도심문했다. 그러나 모용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실 나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요 며칠 동안 계속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네. 덕분에 그런 악몽까지 꾸게 되었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더군. 짐작 가는 게 아무것도 없어. 그래서 사실 답답해.”

“정말 없나? 잘 생각해 봐? 좀 더 사고를 유연하게 해보는 것은 어떨까?”

비류연이 재촉했다.

“역시 모르겠네.”

“끙~”

비류연은 약간 초조감을 느꼈다. 이대로는 곤란했다. 그는 내기에서 이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약속 때문에 어느 일정 수준 이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금 지되어 있었다. 뭔가 직접적이지 않은 우회적인 방법을 생각해 내야만 했다. 한참을 고심하던 비류연이 마침내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손가락을 딱 튕기며 말했다. “그럼 이러는 게 어때? 직접 물어보는 거야.”

“무… 물어보다니? 누구한테 말인가? 혁 노야는 아무것도…….”

“누가 그 할아범한테 물어보라 그랬나? 어차피 그 노인네는 알아도 가르쳐 주지 않을 텐데.”

“그럼 누구한테 물어보란 말인가?”

“누구긴 누구야! 네 녀석 할아버지지.”

비류연의 단언에 모용휘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자네 제정신인가?”

“일단 정상이네. 자네가 불가능이라 결정하지 않는 이상 그건 아직 불가능이 아냐. 자네가 결정할 일이네.”

“터무니없는 소리. 뭐라고 묻는단 말인가? ‘누가 저에게 할아버지를 죽이라고 명했습니다. 전 어떻게 해야 좋습니까’라고 말인가?”

“그거 직설적이라 좋군.”

모용휘가 버럭 화를 냈다.

“그런 질문을 받고 고민하는 손자도 있단 말인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명은 거절하는 게 손자로서의 당연한 자세 아닌가? 그건 패륜일세.”

비류연이 딱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럼 똑똑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자네는 왜 고민하고 있나?”

“그, 그건…….”

말을 얼버무린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니까 고민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 그때 당장 단호하게 거부하지 못했던 것은 뭔가 마음속 깊이 걸리는 게 있었다. 표면만을 보지 말고 그 이면을 보라고 그의 마음이 속삭이고 있었다. 그러 나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자문만으로 나지 않는 답도 있지. 어떤 건 직접 부딪쳐 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야. 자네 할아버지라면 새로운 해석을 내려줄지도 모르지. 어차피 말이란 건 형편없 는 의사 전달 도구라서 말야, 이런 저런 해석이 내려지기 마련이거든. 그게 유일한 수단만 아니었어도 쓰지 않았을걸.”

“말[言]… 인가…….”

“가서 물어봐. 그리고 산인지 하늘인지 확인하고 오라고. 그럼 혹시나 그 말뜻을 알 수도 있을 거야. 오늘 상담은 이걸로 끝이네.”

그리고는 다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그러나 모용휘는 질문을 멈출 수 없었다.

“그, 그럼 자네는 혁 노야가 말한 의미의 이면을 파악하고 있단 말인가?”

비류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상담 시간 끝났어. 그럼 잘 자게.”

비류연이 이불 속에서 건성으로 손을 흔들었다.

“상담은 내일 계속하는 건가?”

“추가 요금 내면.”

그리고는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그리하여 모용휘는 마음이 가벼워지기는커녕 더욱 무거워져서 무엇 때문에 비싼 상담료까지 내며 무모한 시간을 보냈는지 자문하게 되었다. 왜 내가 저 인간의 황 당한 상담을 듣고자 돈까지 냈던가?

“나의 충고를 들을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게.”

다시 비류연의 말이 귓가에 울렸다. 과연 자신이 지불한 돈의 가치를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배수진(背水陣)을 치는 심정으로 그걸 실행해야 하는가? 결국 마지막 에 선택하는 것은 또다시 자기 자신이었다.

“진짜 미친 척하고 한번 해볼까?”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모용휘였다.

“왜 그러느냐, 휘야?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평소 너답지 않구나.”

사랑스런 손자에게 차를 따라주며 검성 모용정천은 자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저…….”

고개를 푹 숙인 채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모용휘는 찻잔을 받아 들었다.

“나는 왜 여기에 이렇게 앉아서 할아버지가 주시는 차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들고 있는 걸까?”

설마 비류연의 말에 최면의 힘이 깃들어 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왜 자신은 그 다음날 그의 말대로 행동하고 있는 것일까?

“…..”

아무리 반복해서 자문해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손자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며 검성이 입을 열었다.

“고민이 있으면 말해 보거라. 할 말이 있는 걸 테지?”

역시 연륜은 속일 수 없는 법. 검성은 모용휘의 마음을 정확히 꼬집어내었다.

“행실이 올바른 자는 말을 할 때도 두려워하는 법이 없지. 항상 지나칠 정도로 규칙 준수에 집착하는 네가 나에게 말을 함에 있어서 망설이고 있다니 무슨 고민인 지 궁금하구나.”

너무나 자상한 말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사실 지금의 고민은 혼자 지고 있기에는 너무 턱없이 무거웠다. 그는 지쳤고 한시라도 빨리 그 짐을 내려놓고 싶었 다. 그러나 함부로 나눌 수 없는 고민이기도 했다. 자상한 말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주문은 없다고 했던가? 마침내 마음의 자물쇠가 열렸다. 동시에 눈물이 쏟 아졌다. 모용휘는 그간에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한 번 말이 터져 나오자 멈추질 않았다.

“푸하하하하하하하!”

손자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검성이 취한 행동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그는 홍소했다. 아주 큰 소리로 기쁘고 즐겁다는 듯이.

옆에서 모용휘가 조부의 이런 갑작스런 행동에 놀라 진정시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참을 웃은 다음에야 검성은 겨우 진정의 기미를 보였다.

“큭큭큭! 단 한 마디로 항상 냉철하던 너의 이성을 흔들고 고민에 또 고민을 거듭하게 하다니……. 참으로 그분다운 숙제로구나.”

“그걸 숙제라 할 수 있을까요?”

“그럼 숙제지. 그것도 아주 어려운 숙제로구나. 허허허!”

검성은 다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모용휘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연속해서 눈앞에서 펼쳐지자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어째서 화를 내지 않으시는 겁니까?”

“응? 이 할애비가 왜 화를 내야 하느냐? 그럴 이유가 전혀 없지 않느냐?”

별 소리 다 들어보겠다는 표정으로 검성이 말했다.

“전 친조부를 죽이라는 명을 단호히 거절하지 못한 못난 손자가 아닙니까? 절연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입장입니다! 가법으로 이 못난 손자를 엄히 다스려 주십시 오!”

모용휘가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절규했다.

“허허, 이 할애비는 내가 왜 너를 벌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넌 나의 사랑스럽고 자랑스런 손자가 아니더냐? 내가 왜 널 벌하겠느냐?”

“하지만 전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습니다!”

“아니다. 넌 가문의 명예를 드높인 것이다. 이 할애비는 어깨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싶구나.”

판결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조아리고 있던 모용휘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그게 무슨……?”

뒷말을 잇기도 전에 나온 검성의 말에 모용휘의 동작이 우뚝 멈추었다.

“검성을 죽여라!”

모용휘의 몸이 움찔했다.

“…그분께서 분명 그리 말씀하셨더냐?”

모용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부정한다 해서 있었던 일이 없어지지는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예, 참으로 송구스럽지만 그렇습니다.”

말을 하면서도 그는 감히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건 참으로 기쁘면서도 슬픈 일이로구나!”

무척이나 자애스런 눈빛으로 할아버지는 손자를 바라보았다.

“예?”

모용휘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반문했다. 슬픈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기쁘다니?

아까 전부터 지금까지 그는 살인 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검성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분께서 너보고 날 죽이라 하셨다면… 후우…….?

별안간 검성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탄식했다.

“허허, 네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이 무림의 최고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무신 그분도 아니고 무신마 그분도 아닌, 이 보잘것없는 늙다리 검객 나부랭이라는 것을 알 아 무척 기쁘다만 너의 발전을 막는 크나큰 장애 또한 나라는 사실이 그것을 슬프게 하는구나.”

앞의 사실에 노인은 진실로 기뻤지만 뒤의 사실은 그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시련은 누구나 한 번쯤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의례와도 같은 것이라는 것을 검성은 알고 있었다.

“소손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같은 말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 때문에 그는 조부의 언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너의 한계는 나라는 사람이란 뜻이다. 네가 나를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이지.”

“그것이 잘못된 일입니까? 할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된 일이란 말입니까? 전 아직 할아버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후우~ 그것이 어찌 잘못이겠느냐. 나는 그 사실이 기쁘다. 다만 나는 끝이 아닌데 너는 무의식 중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를 끝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 슴 아프구나.”

모용휘는 그것을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그것은 그의 자랑이었고 긍지였다.

“할아버님은 저의 평생의 목표입니다!”

모용휘가 외쳤다. 저도 모르게 큰 소리가 튀어나오고 말았다. 어릴 때 처음 무(武)라는 개념을 이해한 이후로 한 번도 그 생각이 변한 적은 없었다. 그의 세계에서 추호의 의심도 없는 진리였다, 그것은.

그러나 모용정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까지는 그래 왔어도 상관없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그럴 수 없다.”

어떠한 거역도 용납하지 않는 단호한 목소리였다.

“앞으로 네가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 나는 모른다. 그분이 무엇을 너에게 맡겼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신할 수 있다.”

꿀꺽.

모용휘는 무의식 중에 마른침을 삼켰다.

“네가 앞으로 가야 할 길, 그 길은 분명 내 앞에 놓여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길, 그 길을 너는 걸어가야만 하느니라. 나를 하나의 단순한 경유지 정도로 여기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을 너는 가야만 하는 것이다.”

조부의 말에는 비통한 슬픔과 기쁨의 희열이 한데 뒤섞여 있었다. 검성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기 위해서 한번 해보아라. 너의 앞길을 막고 있는 이 할애비를 뛰어넘어 보거라.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때를 기다리겠다. 너의 검 아래 눈을 감을 수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연장자로서, 미래를 의탁하는 자로서 너의 앞을 전력을 다해 가로막을 것이다. 그러니 뛰어넘어 볼 테면 뛰어넘어 보 거라. 그러나 그때는 나를 죽인다는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다.”

마치 태산이 가로막고 있는 듯한 위압감이 전신에서 풍겨져 나왔다. 과연 검성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기도였다.

모용휘의 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부르르 떨렸다. 그제야 이 바른생활 청년도 깨달은 바가 있었다. 혁 노야가 무슨 뜻으로 그런 명을 내렸는지 확실히 알 것 같았 다.

여기서 주눅이 들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이 허투루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무릎을 꿇고 있던 모용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별처럼 반짝이는 두 눈을 하고서 검을 쥔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더니 포권한 후 패기만만한 목소리 로 외쳤다.

“소손 휘, 반드시 할아버님을 뛰어넘고야 말겠습니다! 절대 실망시켜 드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허허허허허, 좋은 패기다. 그 정도는 되어야 모용세가의 혈족이라 할 수 있지. 암, 그렇고말고.”

검성은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그럼 한번 시험해 보겠다.”

검성이 놀이라도 가는 듯한 가벼운 어투로 말했다.

“시험 말씀이십니까?”

검성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과연 너의 현재 성취가 어떠한지 말이다. 네가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해 두고 싶구나. 그럼.”

그 다음 순간 검성의 손가락이 모용휘의 미간을 향했다. 그 순간 모용휘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그 손가락 안에 갇혀 버리는 듯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그는 거대한 손가락 위에서 바둥거리고 있는 가련한 한 마리의 벌레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 다음 순간 드높은 푸른 하늘이 그의 앞에 펼쳐졌다.

“무엇을 보았느냐?”

“하늘을 보았습니다.”

흠칫.

모용휘의 몸이 움찔했다. 순간 조부의 얼굴을 스쳐 지나간 그것은 미미한 실망감과 애석함이 분명했다. 찰나만큼 짧았지만 잘못 볼 리 없었다.

왜? 왜? 왜? 의문이 그의 사고 전체를 사로잡았다.

“허허, 역시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단 말인가?”

의미 불명의 한숨이 검성의 입으로부터 새어 나왔다.

“손자의 발목을 죄는 족쇄가 되고 싶지는 않았거늘. 나란 족쇄는 생각보다 무거운 모양이구나. 안타깝다, 안타까워!”

‘아차!’

조부의 탄식에 모용휘는 문득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물에 사로잡힌 새가 되면 어쩌겠다는 건가! 조부가 실망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아직 결심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 분명했다.

그는 말만 앞서는 손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잠깐만요!”

아직 슬픔이 가시지 않은 검성의 눈이 물끄러미 모용휘를 향했다.

“제발 다시 한 번…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검성은 손자의 검고 깊은 눈동자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 검은 바다 안에 의지의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다.

“좋다.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이다. 게다가 두 번째 시험은 더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검성의 손에는 어느새 모용휘의 검이 들려 있었다.

“어, 어느 틈에!”

아무런 기척도 감지하지 못했던 모용휘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검성이 애용 중인 ‘나뭇가지 신검’은 그냥 허리춤에 꽂힌 그대로였다.

이번에는 단순한 손가락이 아니라는 경고였다. 비록 그가 병기의 구애에서 벗어난 경지에 이르렀다고는 하지만 검을 들기 전과 검을 든 후의 기도는 천양지차였 다.

“준비는 되었느냐?”

이번 것은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시련이 될 터였다. 그러나 이미 물러날 곳은 없었고 물러날 생각도 없었다. 여기서 물러나면 그는 할아버지를 실망시키 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의 말을 지키지 못한 거짓말쟁이가 되고 만다. 그런 비참한 인간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긍지를 가지고 살고 싶었다.

“준비되었습니다.”

“오냐! 그럼 가마!”

아무런 기척도 없이 모용정천이 검을 쭉 앞으로 뻗었다. 검성의 손에 들린 이상 그것은 이미 평범한 검이라 부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모용휘는 자신이 두 쪽으로 갈라지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강력한 충격에 전율해야 했다.

발이 의지와 다르게 자꾸만 뒷걸음질치려고 했다. 그것마저도 근육이 굳어져 잘 되지 않았다. 의지를 사용해 버텨보지만 별 무소용이었다. 영혼을 에이는 무시무시한 살기가 그의 존재를 압박하고 있었다.

“이, 이분은 진짜로 날 벨 생각이다!”

저 검끝에 맺혀 넘실대는 농후한 살기는 필살의 의지,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죽는다…….?

두려움과 공포에 정신이 아득해져 가고 있었다.

***

“추가 상담에는 추가 요금이 필요해. 그래도 괜찮겠어?”

새벽잠에서 강제로 깨워진 비류연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 이미 수면 방해 보상비는 착취한 이후였다.

“상관없네.”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그럼 따라오게.”

그가 자신을 데려간 곳은 천무학관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 위였다.

세찬 바람 속에서 눈을 뜨자 확 트인 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가 한 손가락으로 대지의 끝을 가리켰다.

“저기 뭐가 보이나?”

그가 물었다.

“지평선이 보이는군.”

내가 대답했다.

“저 너머를 볼 수 있나?”

“볼 수 없네.”

“그렇다면 저기가 대지의 한계로군. 안 그래?”

자신은 고개를 젓는다.

“그렇지는 않네. 저 뒤에는 다시 새로운 땅이 있네.”

매우 지극히 당연한 이치였다. 세 살 먹은 아이도 그건 알 것이다.

“그런가? 그런데 왜 저기까지밖에 보이지 않는 건가?”

“인간의 시력이 그곳까지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일세.”

“인간의 시력인가, 아니면 자네 자신의 시력인가?”

잠시 당황한다.

“내, 내 자신의 시력일세.”

그러자 그가 다른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저 산의 정상에 올라가면 어떻겠나?”

“그럼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있겠지. 현재는 볼 수 없는 시야의 지평을 넘어서 말일세.”

“이상하군. 저 산에 무슨 영험함이라도 있나? 왜 산 정상에 올라갔는데 시야가 좋아진단 말인가?”

핫! 그러자 깨닫는 것이 있었다. 자신은 고개를 급격하게 틀어 친구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는 왜 그러느냐는 듯한 평온한 얼굴이었다.

“의도하지 않은 것이란 말인가?”

그럴 리가 없었다. 그가 다시 말한다.

“신기하군. 그럼 저 지평선 너머가 보이는 것은 눈이 갑자기 좋아져 그런 건 아니로군?”

“물론 아닐세.”

“그럼 바뀐 것 역시 눈이 아니겠지?”

당연했다.

“…바뀐 것은 눈높이일세.”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한다.

“어차피 인간이 자신을 얽매고 있는 틀이란 그런 거야. 눈높이가 바뀌면 변하고 말지. 더 멀리 보고 싶으면 더 높이 올라가면 돼. 요는 높은 곳이 어딘지, 어떻게 올 라가는지 아는 것이지.”

그리고는 잠시 멈춘다. 자신은 얌전히 기다린다.

“인간의 인식지평 역시 마찬가지야.”

다시 그가 말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나는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가슴속에서 무엇인가가 끊임없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하지만 말이야, 저기가 땅 끝인 줄 아는 자는 산을 찾아 올라가지 않겠지. 끝이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그 너머로 가기 위해, 그 너머를 보기 위해 산을 오르 지.”

그가 다시 묻는다.

“자네의 땅 끝은 어디인가? 자네의 내면에 드리워진 지평선은 어디에 걸쳐져 있는가?”

“그, 그것은…….?”

자신은 그 지평선을 알고 있었다. 도저히 넘을 수 없다고 생각한 최후의 상한선, 금기, 성역, 그것은 바로.

“검성 모용정천 그분이 바로 내가 가고자 하는 끝일세.”

한 점 의심도 없는 마음으로 대답한다.

“뭐, 충분히 짐작 가는 일이지. 게다가 그 할아버지 앞에서는 자네, 완전 무방비 상태거든. 평소에는 지나치게 깔끔 떨던 녀석이 완전히 허점투성이가 된단 말이야. 관람하는 쪽에서야 재미있긴 하지만 말이야.”

“그, 그런 적 없었네.”

“그건 본인 주장이고.”

단 한 마디로 일축해 버린다.

“그런데 자네는 그 지평 너머를 상상한 적이 있나? 그것을 넘어볼 엄두를 내보긴 내보았나?”

“그건.”

그분은 신(神)이었다.

모용세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모용세가의 법도에 따라 생활한 자신은 검성 모용정천의 경지 그 너머의 세계를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그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자 지독한 불경이었던 것이다. 신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그것은 그냥 그랬다. 그래서 다들 그냥 그랬던 그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했다.

“나는 한 번도 그런 불경을 상상한 적이 없네.”

그가 쯧쯧 혀를 찬다. 한심하다는 듯이.

“자네 꼭 맹목적인 종교신자 같구먼. 자네 신이 자네에게 직접 그렇게 말했나? 날 뛰어넘지 말라고.”

“그, 그런 적은 없네! 그분이 그런 말씀을 하실 리가 없지 않은가?”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커진다.

“그건 그분에 대한 모독…….”

갑자기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 그분은 한 번도 그런 말씀을 한 적이 없다. 자신들이 멋대로 그렇게 단정지어 놓은 것이다. 그분의 의사가 어떤 것인지 알려고 하지 않고 드높여 칭송하기 바빴던 것이다.

과연 그런 행위들이 그분이 바라던 바로 그것이었을까? 과연 그분은 그분을 우러르기만 하는 자신들을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셨을까? 가련하고 불쌍하게 여기셨 을까, 아니면 실망하셨을까?

멋대로 그분의 마음을 단정하고 재단하고 결정짓다니? 그것이 오히려 그분에 대한 불경이자 모독이 아니었을까? 확고했던 믿음에 빈틈이 생기자 그 틈새를 놓치 지 않고 그의 말이 들어온다.

“광기 어린 눈으로 ‘믿쑵니다!’를 골백번 외친다고 해서 꼭 신이 좋아하리라는 법은 없지. 그런데 인간은 인간 자신이 그런 허식 가득한 맹목적인 떠받듦을 좋아하 니까 당연히 신도 꼭 자기랑 같을 줄 착각한단 말이야. 그것이야말로 신을 인간의 수준으로 평가 절하하는 가장 지독한 모독 행위가 아닐까?”

“……”

찔리는 게 있는 모용휘로서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가 다시 한 번 손가락으로 대지의 한계를 가리킨다.

“인간은 어떻게 가보지도 않은 저 지평선 너머를 알 수 있는 걸까? 가보지도 못했는데. 직접 경험하지도 못했는데.”

“모르겠네.”

그가 말한다.

“그건 바로 인간의 정신이 만들어내는 장대한 상상력 덕분이지. 추상(抽象), 추리, 유추, 혹은 기타 등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그런 능력의 근원이지. 그 상상력 덕분 에 인간은 자신이 가보지 않은 세계,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인식할 수 있지. 그 너머가 있다는 걸 먼저 알아야 그 너머를 보기 위해 무엇 이 필요한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자네는 이제 저 지평 너머를 상상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나? 인식의 전환을 이룰 각오가 되어 있나? 자네의 지평이 품 고 있던 세계를 파괴할 각오가 되어 있나?”

그의 입에서 언어가 끊임없이 토해진다. 그 말 하나하나가 자신의 정신을 두드린다. 잠에서 깨어나라고 말하는 듯이.

“자네가 자네의 지평 너머를 보기 위해 올라가야 할 산은 어디인가? 그 산의 이름을 자네는 분명히 알고 있을 거야.” 그 말 그대로였다. 자신은 그 산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 거대한 산의 이름은 바로… 바로…….

“자넨 그곳에 오르기를 진심으로 갈망하고 있나?”

용기와 믿음, 그리고 지혜와 인내가 없다면 그 산을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네는 그 산에 오를 각오가 되어 있나? 검성이란 이름을 지닌 그 거대한 산을 말일세!” 번쩍!

아득해졌던 정신에 다시 불이 들어왔다.

***

역시 이분은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분이다. 나는 이분의 손자인 것이 자랑스럽다. 그렇다면…

“이분을 뛰어넘는 것이 내가 표할 수 있는 최고의 경의! 최상의 존경!’

그리하여 자신을 최강으로 이끌어준 것은 검성 모용정천이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모독이나 불경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경의였다.

그러자 어느새 몸의 떨림이 멎어 있었고, 밝아진 두 눈은 검성이 내민 검끝을 직시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높은 산을 자랑스런 눈으로 바라 보았다. 부정만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전 반드시 할아버님을 뛰어넘겠습니다! 반드시!”

검성은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조용히 자신의 손자를 바라보았다.

“정녕 그럴 각오가 되어 있느냐?”

“예, 물론입니다.”

“좋다!”

그제야 검성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검을 거두었다. 그러자 모용휘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만 근 압력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조금 숨을 쉬기가 편해졌다.

다시 검성이 물었다.

“무엇을 보았느냐?”

똑같은 질문. 그러나 대답은 달랐다.

“산을 보았습니다.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천지(天地)의 길목인 태산을.”

검성이 손자의 양쪽 어깨를 힘껏 움켜쥐며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장하다.”

모용휘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검은 어느새 그의 검집에 돌아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할아버님.”

드디어 조금은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청년은 기뻐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아직 길을 걷고 있는 너에게 있어 하늘이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곳이지. 하지만 산이라면 그곳이 아무리 높다 해도 어차피 땅 위의 것, 올라가고자 하면 못 올라 갈 리 없을 것이다. 태산의 꼭대기에서 네가 하늘로 비상하는 때를 이 할애비는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다.”

손자가 한 꺼풀 벗은 게 할아버지는 비할 수 없이 기쁜 모양이었다.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하고 있으마. 나는 너를 믿는다.”

믿는다. 무엇보다 강한 말 중 하나였다. 그 말 속 깊이 자리한 신뢰감의 무게가 그를 짓누르기보다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할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아서 무엇보다 다행이었다.

예전엔 하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태산이었다.

아직 날개를 달지 못해 하늘은 날 수 없어도 산은 자신이 디디고 있는 땅과 아직 연결되어 있었다. 비상(飛上)의 날개는 아직 없지만 그에게는 튼튼한 두 다리가 있 고 그것을 움직일 열정과 의지와 각오가 있다.

산[艮]이란 두 음의 기반 위에 서 있는 하나의 양, 그것은 땅의 곤(坤)과 하늘의 건(乾)을 이어주는 다리.

산이 땅에 연결되어 있는 이상 멈추지 않고 걸어가면 언젠가는 도착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지금 걷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갈 길은 멀었다. 지금은 뛰어야 할 때였다.

그는 이제 겨우 작은 인식의 전환을 하나 이룬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의 우주와 그의 운명은 바뀌었다.

그는 방금 자신의 세계를 재창조한 것이다.

“어떻습니까, 형님?”

모용휘가 인사와 함께 물러간 후 홀로 남자 검성은 조용히 자신의 뒤에 펼쳐져 있는 어둠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 속에서 한 사람이 걸어나왔다. 마치 이제껏 이곳에 존재하지 않다가 느닷없이 나타난 것처럼.

사실 그 사람은 처음부터 이곳에 계속 존재하고 있었다. 모용휘가 검성을 찾아오기 전부터. 그러나 그는 모용휘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였다. 그에게는 그 의 존재가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야 좀 가르쳐 볼 만하겠군.”

그러자 검성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럼요. 누구 손자인데요. 당연히 가르쳐 볼 만한 아이지요.”

검성 자신 역시 그랬던 것이다. 모용휘는 자신이 말년에 얻은 크나큰 기쁨이었다. 저 정도 재능을 연마하여 갈고닦을 수 있다는 것은 가르치는 자로서도 최상의 즐 거움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기에 검성의 목소리에는 긍지와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

“오래 걸리다니요?”

“자네의 손가락 장난에 시간이 얼마나 걸렸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오래 걸렸습니까?”

“두 시진은 족히 된 것 같군. 좀이 쑤셔서 혼났다네.”

혁중 노인은 자신의 어깻죽지 부위를 여기저기 두드리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렇게나요?”

검성 자신은 전혀 인식하지 못한 일이었다.

“다 자네가 집안 간수를 잘못해서 이렇게 시간이 걸린 것 아닌가!”

혁 노야가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대형에게 그런 말씀 듣고 싶지 않습니다. 억울하니까요. 저보다 몇 배나 더 큰 벽이 되고 있는 것은 대형 쪽이지 않습니까? 저 정도니까 두 시진으로 끝났지요. 대 형이라면 아마 하루 종일 걸렸을 겁니다.”

“핏줄은 닮는다더니… 자넨 자네 손자랑 마찬가지로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군. 하지만 이제야 저 녀석도 겨우 자기 자신을 부정할 수 있게 된 것 같군. 자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기 시작한 것이야.”

그동안 모용휘에게 필요했던 것은 철저한 자기 부정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세계는 검성으로 시작해서 모용정천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그에게 검성 모용정천이란 거인이 드리운 그림자는 너무 짙고 너무 광범위했다. 때문에 그는 자기 세계를 부정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 세계가 그림자만의 세계가 아니라 그림자 너머에 태양이 있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지평선을 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아니, 그전에 지평선을 넘는다는 것은 어떤 행위인가? 그것은 끊임없이 자신의 시야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려면 먼저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 과정에는 환멸로서의 부정이 아닌 초월로서의 부정이 필요 했다. 그래야만 인간은 그 다음 지평으로 자신의 인식지평을 확장할 수 있게 된다. 음(陰)의 부정이 아닌 양(陽)의 부정으로 자신의 세계지평을 넓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모용휘에게 그 세계지평은 당연하게도 검성이었다. 물론 검성이라 불리는, 한 명의 검객이 도달할 수 있는 높은 경지는 그동안 그의 성장에 좋은 지평이 되어주었다. 그것은 훌륭한 목표였다. 아마도 모용휘는 그동안 그곳에 닿으면 모든 것이 끝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터였다. 아니면 무의식 중에도 결코 그곳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검성은 그의 세계인 동시에 한계였다.

우상(偶像)은 좋은 점도 있지만 그만큼 부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그래서 그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그의 우상이었던 검성의 존재 그 자체였다.

하지만 무신(武神)의 뜻을 이을 자라면 겨우(!) 검성의 존재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신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을 초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 각오가 없다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길을 모용휘는 지금부터 걸어야만 했다.

자신이 믿지도 않는 곳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자신이 부정한 것이 자신의 내면 세계에 존재하는 일은 없다. 그것이 외부에 있는 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이 다. 때문에 모용휘는 자신의 틀을 깨는 것이 필요했다. 알을 깨지 않으면 새는 태어날 수 없고 태어나지 않으면 날아오를 일도 없다.

“이제 저 아이는 저희들과 대형들이 그랬던 것처럼 끊임없는 질문을 반복해 가며 자신을 키워 나가게 되겠지요? 그것은 지난한 과정일 것입니다.”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일일세.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야.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극기(克己)의 과정이란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그랬지요.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도 작게 한정되어 있지요.”

“알면 됐네.”

인간이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계는 본질상 보다 더 넓은 지평에 대해 개방적이다.

우리는 ‘존재’를 통한 끊임없는 물음 속에서 존재한다.

우리가 아는 모든 것에 있어서 우리는 동시에 자신의 무지(無知)를 인식한다. 모든 지식은 동시에 ‘아는 무지’이며, 바로 이를 통하여 그 무지는 지금까지의 지식 의 한계를 벗어나고 물음의 움직임을 일깨운다. 안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질문한다.

우리는 알면서, 그리고 이해하면서, 뿐만 아니라 그와 마찬가지로 원칙적으로 물으면서 세계 내에 존재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물으면서 우리의 세계를 끊임없이 넘어선다. 우리의 물음을 통하여 끊임없이 우리의 세계는 확장되어 나간다. 인식 속에서 한계 지어졌던 세계의 벽이 무너지고 개방되어진다.

인간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개방적인 세계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존재 속으로, 무한으로 확장되어 간다. 이 확장이 멈추는 일은 결코 없다.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인간은 부단히 자기 자신의 세계지평을 확대해 나간다. 그리하여 그 한계 너머의 한계를 주제화하고 그곳에 다다르기 위해 전력을 투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 해 필요한 것은 전일(全)한 마음. 마음을 하나로 모아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다진 주일무적(主一無適)의 마음이다.

“산의 존재를 알아야 비로소 오를지 말지, 그리고 어떻게 오를지를 결정할 수 있겠지. 산이 있는 줄도 모르는데 어떻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겠나? 저 아이 는 이제 산을 보았네. 그리고 그곳을 올라가기로 결정했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이제 없네.”

“아니요. 있습니다.”

모용정천은 혁중의 말을 부정했다. 혁중은 인정했다.

“그렇군. 자네에게는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군.”

모용정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는 전력을 다해 저 아이의 앞을 가로막을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니까요.”

“그런 자네가 부럽군.”

“저의 후계자는 누가 뭐래도 저 녀석뿐입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검성은 가까스로 참았다. 혁 노인에게는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이 신(神)에게도 아픈 기억은 있었고 상처도 있었던 것이다. 신마(神魔)라 불리지만 그 역시 아직 인간의 굴레를 완전히 벗지는 못하는 피륙으로 만들어진 또 한 명의 인간이었다.

후계자의 상실.

그 상처는 되도록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았다.

“하루빨리 새로운 후계자를 찾기를.

검성은 진심으로 그렇게 기원했다.

“나는…….”

혁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아이를 비롯해 미래라는 가능성을 지닌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전해주고 싶군.”

“무슨 말씀을 말입니까?”

혁중이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소년(少年)이여, 신화(神話)가 되어라!”

너무나 진지한 그 표정에 모용정천은 잠시 침묵했다.

“신화의 장본인이 그런 말씀을 하셔도…….?

“모순되었다고 생각하나?”

검성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이들이 신화를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신화 그 자체가 되려는 기개를 가졌으면 하고 바라네. 더 이상 과거의 신화가 그들이 지닌 가능성의 발목을 잡지 않 았으면 하네. 소년이라면, 젊은이라면 신화 속의 신(神)을 부정하고 스스로 신화가 되려는 기개가 필요하지 않겠나?”

“그건 ‘소년이여, 불신자(不信者)가 되어라’ 아닙니까? 또는 ‘소년이여, 불량(不良)이 되어라’라던가 말입니다.” 혁중이 맞받아쳤다.

“큭큭! ‘소년이여, 신성 모독자가 되어라’일지도 모르지.”

“지금 신이 스스로 자신을 모독하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도 분노 안 하실 자신 있으세요?”

“응? 왜 안 하나? 적극적으로 분노해 줘야지.”

“그게 뭡니까? 말하고 행동이 다르잖습니까?”

“어허, 뭐가 다르다는 건가? 그 정도 분노에 쫄아서야 어찌 다음 신화를 이을 수 있겠나? 그런 분노에도 꿈쩍하지 않는 드높은 기상이 있어야지.”

“억지 같은데요?”

“아니지. 지극히 논리 정연한 이야기일세. 자네가 거대한 벽이 되어 그 아이의 앞을 가로막듯이 나 또한 적극적이고 과감한 분노를 표출함으로써 후배들의 앞을 가로막아야 하지 않겠나? 그것이 바로 진정으로 장대하고 위대한 사랑이라는 것이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나. 검.성. 군(君)?”

검성은 순간 움찔했다.

“음… 뭐, 일단 그렇다고 해두죠. 백 살 넘어서 맞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어흠!”

혁 노인은 짧게 헛기침을 하며 쥐고 있던 주먹을 스르륵 내렸다.

검성이 아련한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저 아이들의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되겠군요.”

다음날 한 장의 방이 학관 곳곳의 공식 게시판에 나붙었다.

***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천무학관과 마천각 사이의 상호 교류 확대를 위한 사절단 후보 명부.

출발일시: 입관 시험이 끝난 뒤 일주일 후.

참가 예정자 명부: 용천명, 마하령, 남궁상, 진령, 일공, 모용휘, 윤준호, 장홍, 나예린…….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음의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비류연(飛流連).

<『비뢰도』 제18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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