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탁(拔擢)
-뽑혀 버리다
세간에 의하면 사람들은 보통 다른 이의 도덕성이나 인격을 끊임없이 의심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끝없는 의심병도 본래 선천적인 것은 아니다. 저 옛날에 맹(孟) 모씨도, 인간은 원래 사단(四端)이라는 선한 본성을 타고났다고 설파하지 않았던가. 다 아는 얘기를 노파심에 되짚어보자면,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측은지심(側隱 之心), 선(善)을 좋아하고 악(惡)을 미워하는 수오지심(差惡之心), 현재는 거의 말살된 것 같지만 어쨌든 남에게 먼저 양보하는 사양지심(辭讓之心), 그리고 옳고 그 름을 판단하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천무학관 입관 필기 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내용이지만, 달달 외워봤자 별 가치는 없다. 여느 이론들처럼 실천하기 전에는 세상에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이론마저 인간을 너무 과대평가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인간 다수가 발전을 망각하고 사는 판이니 그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은 크게 없으리라. 이처럼 인간의 발목이 잡혀 있는 이유 중 하나로는 ‘의심병’이 꼽히는데, 의심(疑心)은 회의(懷疑)를 불러일으키고 회의는 한계(限界)를 만든다는 것이다. 비류연도 이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룡룡, 인간은 누구를 가장 의심하는지 알아?”
비류연의 뜬금없는 질문에 효룡은 읽고 있던 천무학관 추천도서 일백팔 종ᅳ혹자에겐 아무도 보지 않는 백팔 가지 책으로 불리고 있는―중 하나인 ‘비급무용론 (秘級無用論)’을 덮고서 비류연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의 친구ᅳ의심스럽긴 하지만—가 발랄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부모, 형제, 아내, 친구, 애인, 자식, 아니면 불륜 상대. 하나만 골라봐.”
친절하게 보기까지 들어주며 선택지를 좁혀줬지만 효룡은 넘어가지 않았다. 평소 인생의 해답이 사지선다 중에 있을 리 없잖아라고 외치는 저 인간이, 보기 안에 해답을 넣는 친절한 짓을 저지를 리 없다는 확신이 그에게는 있었다. 확실한 의심은 이미 의심이 아닌 확신인 것이다.
“글쎄, 잘 모르겠군. 자신의 적(敵)인가?”
“뿌(不)~!”
비류연이 말했다.
“아니, 오히려 적은 믿지. 그는 확실히 자신한테 나쁜 짓을 할 테니까. 얼마나 깔끔하고 믿음직스러워. 안 그래?”
“그… 그런가?”
효룡은 묘하게 설득력있는 말에 잠시 경도되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새삼 고민할 여지도 없다는 듯 딱 부러지는 대답에 그는 친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눈동자가 보이는 건 아니지만 사람에겐 분위기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한참을 바라본 다음에야 효룡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자네, 진심이군.”
아마, 아니, 분명 그가 말한 깔끔함이란 손쓸 때 주저할 필요 없이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하고 철저하게 응징해 버리면 끝나지 않냐는 뜻일 것이다. 역시 자신 같은 보통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사고 구조였다.
“적이 아니라면… 그럼 설마 애인(愛人)이란 건가?”
연애란 천지개벽 이래로 항상 많은 골칫거리를 낳아온 원흉이었다. 그러자 오히려 비류연이 반문했다.
“응? 룡룡, 자네 요즘 그 아가씨랑 무슨 일 있나?”
묻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효룡은 후회했지만 언제나 그런 것처럼 때늦은 후회였다.
“무, 무슨 일은. 아무런 문제도 없네.”
효룡은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그 말을 부정했다.
“기대 이상으로 당황한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군. 문제가 뭔데?”
정곡이었다.
“그, 그게… 독고 소저가 행방불명된 이후 계속 울적해하고 있다네. 나야 어쩔 줄 모른 채 위로 하나 제대로 못해서 속수무책이고.”
원래 남자란 동물은 대체로 여자의 눈물 앞에 무력해지는 법이다.
“음… 그 맘, 이해해.”
웬일로 순순히 납득하는 비류연의 모습에 효룡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나 그도 그럴 것이, 사실 그 문제로 상심한 사람은 이진설 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예린과 독 고령의 인연은 이진설과 독고령의 인연보다 훨씬 깊고 강하고 오래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연인도 아니야.”
“그럼 누군가? 더 이상 뜸 들이지 말고 말해보게. 밥 다 타겠네.”
효룡이 백기를 들었다. 비류연은 손가락으로 가슴의 심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바로 나[我]야!”
“응? 자네라고? 오호라, 과연! 자네라면 납득이 가는군. 다른 누구도 아닌 자네니까 말일세. 무림공적이란 칭호도 자네에게는 격이 떨어지지. 인류의 적쯤은 되어 야 격이 맞는달까. 음음, 세상 누구보다 자네를 의심하라니, 그것 참 현명한 조언일세.”
효룡은 수긍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도 꼭 그렇게 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러자 비류연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무슨 헛소릴 하는 건가? 인류의 적이 무슨 맛인지 시식 한번 해볼 텐가?”
“아니, 그건 사양하겠네. 식중독에 걸릴 것 같거든.”
건강한 식생활은 장수의 지름길임을 항상 명심하고 있는 효룡이 손사래를 치며 극구 사양했다.
“나 비류연이 아니라 자기 자신[自我]이란 말이야.”
정말이지, 말[言]로 뜻[意]을 전하는 것은 지난(至難)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기 자신?”
“그래, 자기 자신!”
통계적으로 봤을 때 의심의 탑 맨 꼭대기에 존재하는 것은 놀랍게도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한다. 인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가장 믿지 못한다는 것이 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미 너무 익숙해서 놀라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못 믿는 이는, 남도 자기 같겠거니 하고 의심할 확률이 크다. 어쩌면 애초에 교육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일부에서는 음모설도 제기되고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비하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교육이 은밀하고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이유는 우민을 대량으로 생산하 여 자신들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려는 이들에게 훨씬 득이 된다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놈들은 귀찮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소문에 의하면 뭐, 저 서쪽 먼 지방에서는 인간은 원래 죄 많은 동물이라는 교육이 아예 기본 전제이며 어떠한 도전도 용납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은 죄를 짓지 않아도 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에… 헥헥, 좀 쉬고, 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겁나게 큰 죄를 하나 지었는데 그게 피 속에 각인되어 내려온 다는 것이다. 좀 야비한 점은 그 죄는 무슨 수를 써도 씻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대죄가 무엇이었는가 하면 일종의 과일 서리였다고 한다.
어쨌든 그 이후 인간은 자기를 혐오하고 비하하는 게 훌륭한 자세라고 배워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가장 의심한다. 남에게 못되게, 잔인 하게 굴 수 있는 것도 애초에 원죄가 있으니ᅳ고통 좀 받으면 어떻고 안 받으면 어떠하리오ᅳ어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자기가 존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일은 인간에게 있어서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일단 자기 비하가 버릇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자기한테 좋은 일이 일어나도 믿지 못한다. 일단 자기한테 그런 좋은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고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를 칭찬해 주기보다는 먼저 의심해 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 말을 해야 할 필요성이 꼭 있었나? 지금 갑작스레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뭔가?”
“그냥!”
비류연의 대답은 싱거웠다.
“못 믿겠군.”
효룡이 응수했다.
“방금 내 얘기 못 들었나? 의심병은 좋지 않아. 자신의 영혼을 좀먹는다구.”
“난 자네와 삼 년을 함께 지낸 나 자신의 시비지심을 믿네.”
“호오, 지금 시비(是非) 거는 건가?”
“시비라니? 가당치도 않네. 난 단지 나 자신의 분별력에 신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것뿐이라네.”
그곳에 있는 것은 이미 확신이다.
“쯧, 세상 많이 삭막해졌구먼. 자넨 너무 빨리 배워.”
“그게 아니라…….”
효룡은 항의하려다가 말을 끊었다. 그의 귓가에 어떤 소리가 잡혔던 것이다.
“십오, 아니, 이십 장 밖인가?”
거리는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족음(足音)은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그 운율이 일정치 않고 불안정한 것으로 보아 그 다리의 주인이 매우 다급해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것 봐. 곧 좋은 표본이 도착하겠군.”
비류연이 싱글거리며 말했다.
이 두 사람 정도 되면 수십 장 밖에서 들리는 발소리만으로도 인물을 특정(特定)할 수 있었다.
“흠, 그럼 방문을 열어놓을까?”
“그러는 게 좋겠지. 저렇게 급하게 뛰어오는 걸 보니 아직도 그 버릇을 못 고친 모양이야.”
효룡이 백기를 들었다. 비류연은 손가락으로 가슴의 심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바로 나[我]야!”
“응? 자네라고? 오호라, 과연! 자네라면 납득이 가는군. 다른 누구도 아닌 자네니까 말일세. 무림공적이란 칭호도 자네에게는 격이 떨어지지. 인류의 적쯤은 되어 야 격이 맞는달까. 음음, 세상 누구보다 자네를 의심하라니, 그것 참 현명한 조언일세.”
효룡은 수긍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도 꼭 그렇게 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러자 비류연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무슨 헛소릴 하는 건가? 인류의 적이 무슨 맛인지 시식 한번 해볼 텐가?”
“아니, 그건 사양하겠네. 식중독에 걸릴 것 같거든.”
건강한 식생활은 장수의 지름길임을 항상 명심하고 있는 효룡이 손사래를 치며 극구 사양했다.
“나 비류연이 아니라 자기 자신[自我]이란 말이야.”
정말이지, 말[言]로 뜻[意]을 전하는 것은 지난(至難)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기 자신?”
“그래, 자기 자신!”
통계적으로 봤을 때 의심의 탑 맨 꼭대기에 존재하는 것은 놀랍게도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한다. 인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가장 믿지 못한다는 것이 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미 너무 익숙해서 놀라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못 믿는 이는, 남도 자기 같겠거니 하고 의심할 확률이 크다. 어쩌면 애초에 교육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일부에서는 음모설도 제기되고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비하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교육이 은밀하고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이유는 우민을 대량으로 생산하 여 자신들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려는 이들에게 훨씬 득이 된다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놈들은 귀찮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소문에 의하면 뭐, 저 서쪽 먼 지방에서는 인간은 원래 죄 많은 동물이라는 교육이 아예 기본 전제이며 어떠한 도전도 용납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은 죄를 짓지 않아도 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에… 헥헥, 좀 쉬고, 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겁나게 큰 죄를 하나 지었는데 그게 피 속에 각인되어 내려온 다는 것이다. 좀 야비한 점은 그 죄는 무슨 수를 써도 씻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대죄가 무엇이었는가 하면 일종의 과일 서리였다고 한다.
어쨌든 그 이후 인간은 자기를 혐오하고 비하하는 게 훌륭한 자세라고 배워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가장 의심한다. 남에게 못되게, 잔인 하게 굴 수 있는 것도 애초에 원죄가 있으니ᅳ고통 좀 받으면 어떻고 안 받으면 어떠하리오ᅳ어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자기가 존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일은 인간에게 있어서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일단 자기 비하가 버릇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자기한테 좋은 일이 일어나도 믿지 못한다. 일단 자기한테 그런 좋은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고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를 칭찬해 주기보다는 먼저 의심해 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 말을 해야 할 필요성이 꼭 있었나? 지금 갑작스레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뭔가?”
“그냥!”
비류연의 대답은 싱거웠다.
“못 믿겠군.”
효룡이 응수했다.
“방금 내 얘기 못 들었나? 의심병은 좋지 않아. 자신의 영혼을 좀먹는다구.”
“난 자네와 삼 년을 함께 지낸 나 자신의 시비지심을 믿네.”
“호오, 지금 시비(是非) 거는 건가?”
“시비라니? 가당치도 않네. 난 단지 나 자신의 분별력에 신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것뿐이라네.”
그곳에 있는 것은 이미 확신이다.
“쯧, 세상 많이 삭막해졌구먼. 자넨 너무 빨리 배워.”
“그게 아니라…….”
효룡은 항의하려다가 말을 끊었다. 그의 귓가에 어떤 소리가 잡혔던 것이다.
“십오, 아니, 이십 장 밖인가?”
거리는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족음(足音)은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그 운율이 일정치 않고 불안정한 것으로 보아 그 다리의 주인이 매우 다급해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것 봐. 곧 좋은 표본이 도착하겠군.”
비류연이 싱글거리며 말했다.
이 두 사람 정도 되면 수십 장 밖에서 들리는 발소리만으로도 인물을 특정(特定)할 수 있었다.
“흠, 그럼 방문을 열어놓을까?”
“그러는 게 좋겠지. 저렇게 급하게 뛰어오는 걸 보니 아직도 그 버릇을 못 고친 모양이야.”
“사람의 언행(行)은 현재를 반영하는 거울이지. 그 정도는 안 봐도 뻔하다구. 그렇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일이었어? 그 일이?”
“그, 그럼요! 그걸 말이라고 해요? 무, 무려 무림 전체의 대축제라 할 수 있는 천무학관 입학 시험 ‘승천무제’의 시험관으로 발탁된 거라구요! 다른 누구도 아닌 제, 제가 말입니다! 이, 이런 영광이!”
너무나 감격스러운 나머지 자동적으로 눈에서 짠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나오려 했다. 그 모습에 비류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퉁명스레 말했다.
“그게 뭐 대순가? 어차피 막노동이잖아. 노사들은 모두 편하게 자리에 앉아 있고 뺑이는 우리 학생들이 까는 거지. 어차피 단순 막노동이야. ‘인간 잣대’인 거지. 햇병아리들의 가치를 재기 위한.”
“마, 막노동이라니요? 그, 그런 폭언을!”
누가 들을까 겁났는지 윤준호는 다급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어 번 둘러본 후 애원했다.
“다, 다시는 그런 말씀 삼가해 주세요! 모두가 영광으로 생각하는 일이라구요!”
“뭐? 다시 한 번 똑똑히 말해달라고?”
그런 충고에 이 남자가 얌전히 귀를 기울일 거라고 생각했다면 윤준호는 아직 이 비류연이라는 사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잠잘 때도 잊혀지지 않게 꿈에서도 들을 수 있도록 귀에 인이 박히게 해주겠다는 듯 한 손으로 그의 오른쪽 귀를 잡아당긴 후 그곳에다가 입을 가져다 댔다. 귓가에 스치는 입 김에 윤준호가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비류연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는 외쳤다.
“막노동이야, 막노동! 의심할 여지 없는 막노동. 것도 개중에 가장 최악이자 악질인 무보수 막노동. 영광은 개뿔. 그냥 싸게 부려먹을 수 있으니깐 쓰는 거지. 게다 가 시험관이라고 해봤자 부시험관이잖아. 일명 몸빵. 무사부들 뒤치다꺼리 신세밖에 안 된다구. 노친네들이 몸 움직이기 귀찮으니까 영광 운운하며 젊은 애들을 뽑 아서 쓰는 거지. 어차피 무공(功)이란 건 이론보다는 몸으로 직접 시현할 수 있는 체용(體用) 능력이 더 중요하니까 말이야.”
그걸로 부족하다 싶었는지 한마디 더 덧붙인다.
“우린 단순한 도구라구. 감별사가 아닌.”
그리고는 최종 공격을 가했다.
“그러니 혼자 감격의 도가니탕에 빠져 펄펄 끓는 건 좋은데 거기에 애꿎은 타자를 끌어들이지는 말아줘. 피곤하니까. 알아들었어?”
“아아, 알았어요. 그러니 이 귀 좀 그만 놔줘요. 아파요, 류연!”
“좋아!”
그제야 고무줄처럼 잔뜩 늘여 잡고 있던 윤준호의 귀를 놓아주었다. 귀의 탄성이 얼마나 되는지 시험해 본 것이 아프긴 아팠는지 윤준호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 다.
“그렇게나 이 일이 마음에 안 들어요? 이 일을 영광으로 생각하지 않는 건 류연뿐이잖아요?”
“내가 왜 남이 정한 가치에 항상 동의할 필요가 있는 거지? 그 논리야말로 이해할 수가 없군. 난 남의 도구가 되는 건 질색이야.”
“저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해해 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어. 내 가치관이지 네 가치관은 아니니까. 다만 남이 만든 내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입히려 하지 말란 말 “이야.”
풀 죽어 있는 윤준호를 보며 비류연이 다시 말했다. 여전히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말투였다.
“게다가 여기 시험은 너무 형식적이야. 그런 틀에 박힌 정형화된 방식으로 과연 제대로 된 인간을 뽑을 수나 있을지 의문인데 말이야.”
“승천무제의 진행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건가요?”
“당연히 있고말고. 시험이란 건 현재보다는 미래를 봐야 하는 것 아냐?”
“그거야 물론 그렇지만…….”
“그럼 현재의 방식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파악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가능하지 않을까요?”
“가능하면 가능한 거구 가능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거지 가능하지 않을까요 같은 애매한 대답은 해서 뭐 해? 자기 의견을 명확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구. 자기 의견은 뒀다가 어디다 쓰려고. 나중에 집 안에 장식이라도 해둘 셈이야?”
“죄, 죄송합니다.”
얼른 사과하는 윤준호의 모습에 비류연이 더욱 화가 나서 고함쳤다.
“그러니까 왜 사과하냐니깐! 무의미한 사과 따위 하지도 마! 안 하느니만 못하니까! 엉겁결에 하는 사과 따위는 단순한 반사 작용에 불과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 는지 자각하지 못하는데 진심이 담겨 있을 리 없잖아? 그런 쭉정이 같은 사과 따위 받아봤자 기분만 나쁠 뿐이야. 불쾌하다고!”
안 그래도 그는 지금 충분히 기분이 나빴다.
“무엇보다 가장 기분 나쁜 건 나도 여기 뽑혀 있다는 거야! 내 의사는 깡그리 무시된 채 말야!”
“하지만 이미 뽑혔는데…..”
차마 이런 일을 걷어차다니, 말도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미 뽑혔으니 포기하라는 거야?”
비류연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 그게…….”
그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윤준호는 움찔하고 말았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비류연의 목소리에 실려 있던 감정이 한 꺼풀씩 벗겨져 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왜 본인이 동의하지 않은 일에 순순히 납득해야 하냐고. 어떤 해명도 듣지 못한 채 말이야. 저쪽은 지위가 높아서? 내가 그냥 학생이라서? 학관에서 시키면 학생은 무조건 따라야 하는 거야? 이곳 천무학관이라는 곳은 그렇게 비자율적이고 비자발적이고 비창조적인 곳이었나?”
“……”
윤준호는 비류연의 싸늘한 반응에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해했다. 비류연의 반응은 그의 상상과 너무 동떨어져 있었던 것이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었 던 것이다. 아직 이 소심쟁이는 좀 더 자기 자신을 단련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았다.
“계속 남이 하라는 대로만 따라 하면 절대 진보할 수 없어! 영원히 제자리걸음하고 싶지 않으면 스스로 걸어야만 한다구!”
뭐, 윤준호 혼자만을 탓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알지만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적선지가(積善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고, 적불선지가(積不善之家)엔 필유여앙(必有餘狹)이라 했다! 선을 쌓은 집에 반드시 경사가 남고 불선을 쌓은 집에 반드시 재앙이 남는다는 이야기다. 어떤 현상이든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없는 법. 여러 가지 환경적, 교육적, 심리적 요인들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낸 결과이 긴 하지만 마지막에 책임지는 것은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다. 좀 억울한 때도 있겠지만 세상은 냉정하다.
비류연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걸음걸이였다.
“어, 어디 가세요?”
윤준호가 허둥대며 물었다.
“거절하러!”
비류연이 짧게 대답했다.
“뻐,
“벌써요?”
아무리 행동력이 좋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 빠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날 생각만 하다가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 생각과 행동 사이의 거리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는 게 내 지론이야. 자신의 신념은 지키라고 있는 거지 어기라고 있는 게 아니잖아?”
비류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쾅’ 문을 닫았다.
“효룡, 정말 가는 걸까요? 거절하러?”
윤준호의 질문에 효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저 인간이 어떤 인간인데 한번 내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겠어?”
“역시 그렇겠죠?”
“좀 곤란해지겠군.”
“그렇… 겠죠?”
윤준호도 동의했다. 저런 상태인 비류연은 아무도 말릴 수 없다. 발걸음(이라 쓰고 ‘폭주’라고 읽는다)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방관하며 모르쇠로 일관하며 딴청을 피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럴 때는 평소 연습해 둔 휘파람이 도움이 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곤란해지는 당사자가 자신들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에서 윤준호와 효룡은 비류연의 친구라는 무거운 현실의 압박 속에서 약간의 위안과 안식을 얻을 수 있었다. 비겁자라 불러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비류연은 생각과 행동 사이의 틈을 쓸데없이 늘어뜨릴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그건 너무 비경제적이었다. 그래서 그는 즉시 천무학관주 마진가를 찾아갔다. 마진 가는 바쁜 와중에도 그와의 면담을 허락해 주었다. 그가 일단은 공식적으로 금번 화산지회의ᅳ비록 그 끝이 불명예스럽긴 했지만ᅳ우승자였기 때문이었다. 바쁜 와중이라 일 대 일 면담은 불가능했지만 비류연은 상관하지 않았다. 남의 시선이 있든 말든 그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왜 거절하겠다는 건가, 비류연 군?”
비류연의 용건을 들은 마진가는 잠시 두통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가 간신히 진정하고는 되물었다.
“이 일은 천무학관의 관도로서 매우 영예로운 일일세. 자네 말고는 아무도 그 일을 거절한 사람이 없네. 올해는 물론이고 지난 백 년의 역사를 통틀어도 그러하 “네.”
다른 사람은 다 잠자코 하는데 왜 쓸데없이 의문을 가지냐는 그런 투였다. 마치 비류연이 이 일을 거절하는 것은 크나큰 불경이라고 역설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 다(그리고 그것은 아무래도 다수결적으로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비류연 자신이 이 생각에 전혀 동의하지 못한다는 것이었고, 앞으로도 전혀 해
줄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의 세계에서 그것이 가치를 획득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뿐입니다.”
당신이 영예롭다고 주장해도 내가 그걸 별로 영광스럽지도 명예스럽지도 않다고 생각하면 아무 의미도 없다는 뜻이었다. 내가 좋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남도 그것 을 같이 좋아하라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나한테 유리하다고 해서 남한테도 유리하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어째서 사람들은 다들 똑같은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 것일까? 비류연은 그것이 내심 못마땅했고 때로는 엄청 답답하기도 했다.
“그것 말고 또 다른 이유가 있나?”
마진가가 물었다.
“난 남의 도구가 되는 것도 함부로 남의 시험을 받는 것도 취미가 아니라서요.”
“도구라니? 무슨 말인가? 그건 너무 지나친 생각일세.”
“과연 그럴까요?”
“무, 물론일세.”
연신 헛기침을 하며 마진가가 대답했다. 속으로 켕기는 게 있기는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 말고 또 다른 이유도 있나?”
화제를 돌리기 위해 마진가가 다시 질문했다.
“그냥 의미없는 답을 구하는 게 싫어서요. 아니, 그냥 수집하는 거라고 해야겠네요.”
“뭐가 의미없는 답이라는 건가? 앞으로 무림에 득이 될 인재를 뽑는 일일세. 어찌 그걸 무의미한 답이라 치부할 수 있겠나?”
“내가 던진 질문이 아니니까요.”
“대답이 너무 짧군. 이해를 못하겠네. 좀 길게 해보면 어떻겠나? 자네 속에 결론이 나와 있다고 해서 상대가 그것을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지루할까 봐서요. 그리고 귀찮기도 하고.”
“가끔 지루할 수도 있지. 세상이 맨날 즐거울 수야 없지 않겠나? 하지만 걱정 말게. 지루하면 적당할 때 눈 붙였다가 끝날 때쯤 눈을 뜰 테니. 하지만 내가 자네 말 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면 지루할 틈이 없지 않겠나?”
“하지만 본인이 무슨 흥미를 가질지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달려 있죠. 누군가에게 ‘너는 뭔가를 반드시 그것에 대해 흥미를 느껴야 돼!’라고 강요할 수는 없잖 아요? 성공 확률도 희박하고, 영양가도 없고. 별로 하고 싶지도 않아요. 돈도 안 되고.”
“그것도 그렇군. 자네 말도 일리가 있네.”
“다만 유혹할 수 있을 뿐인데, 아까운 시간 그런 데 쓰고 싶진 않네요. 귀찮기도 하고. 무의미하기도 하고.”
“그래도 난 방금 조금 흥미를 느낀 것 같네. 이제 자네 말을 들을 준비가 됐으니 해보게나. 난 여기서 지루함과 싸워볼 테니. 그러니 자네에게 있어 질문이란 뭔 “가?”
재미없을 텐데라고 운을 띄우며 비류연이 입을 열었다.
“질문은 자신이 세상에 참여하는 과정이죠. 질문을 던지기 전에 답이 나오지는 않으니까요. 자신이 무언가를 보고 싶다면 그에 걸맞은 질문을 던져야 하죠. 입관 시험인 승천무제의 진행 방식 역시 일종의 질문이죠.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인간을 뽑기 위한.”
“물론일세!”
개나 소나 다 뽑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이 원하는 답을 내줄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한 것이다. 거기에 그들은 가능성을 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거기죠. 난 그 질문에 별로 동의하지 않거든요.”
“그 말인즉슨, 지금 현재의 방법으로는 제대로 된 인재를 뽑을 수 없다는 건가?”
“뭐, 뽑힐지도 모르죠. 변수야 셀 수 없이 많으니까요. 나처럼 숨겨진 보석 같은 사람도 어쩌다 보니 뽑혔잖아요? 그런 면에서 천무학관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 죠.”
역시 얼굴에 철판을 깐 탓인지 저런 자화자찬을 하면서도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이 인간의 경우는 뽑혔다기보다 강제로 뽑히게 했다는 것이 더 정 확할 것이다.
“어험! 거기에 대해 굳이 논쟁하지 않겠네.”
마진가가 점잖게 말했다.
“뭐, 결론만 간단히 말하면 비효율적이라는 거죠. 아주아주아주! 매우매우매우!”
비류연은 기탄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일부러 주눅들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말할 것까지야…….”
“나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 질문에 대한 답 역시 무의미하다는 거죠. 무의미한 답을 구해봤자 나 자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이미 예전에 무의미해진 것을 말이죠. 그것도 공짜로!”
“…….”
이러쿵저러쿵 말은 많았지만 결론적으로 역시 쓸데없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그것도 공짜로. 그러나 그래서는 이쪽도 곤란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참여하겠나?”
마진가가 물었다.
비류연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어렸다. 자신이 원하는 질문을 유도하는 것은 매우 난이도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질문을 상대가 하기만 하 면 자신의 원하는 답을 내는 일은 굉장히 수월해진다. 비류연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도 무색할 만큼 매우 뜬금없는 것이었다.
“장자(莊) ‘제물론(齊物論)’에 보면 이런 말이 있죠.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사실 원이라는 것은 무한성의 상징이고 네모나다는 것은 유한성의 상징이다. 그러니 문자 그대로라기보다는 하늘은 무한하고 땅은 유한하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런 형이상학적 논의는 비류연이 구하고자 하는 답의 입장에서 볼 때 그저 곁가지나 방해물에 불과했다. 지금 그가 구하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세속적이고 형이하 학적이며 물질적인 어떤 것이었기 때문이다.
“저도 옛 성인의 발자취를 본받아 하늘과 땅을 사랑하죠.”
다른 노사들이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이해력이 빠진 말만으로는 대화가 안 되는 것이 다시 한 번 증명된 이 시점에서 마진가 한 사람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어느 정도를 원하나?”
“천장지구(地久)라 했지요.”
천장지구(天長地久).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말로 직역하면 하늘은 길고 땅은 오래되다는 말인데 쉽게 말해 하늘과 땅 모두 매우 징하게 영원(永遠) 한 놈들이라는 의미였다. 사람들이 흔히 쓰는 장구(長久)하다란 표현은 여기서 천지를 뺄셈한 것이다.
“알았네. 그렇게 조치하도록 하지. 그럼 거래는 성립된 건가?”
“물론입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용건이 끝났으니 더 볼일이 없다는 듯 비류연은 살짝 목례를 하고 몸을 돌려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한참 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봐도 여전히 이해가 불가능한 사태에 직면한 노사들이 체면 불구하고 물었다.
“그런데… 저… 관주님?”
“예, 말씀하십시오.”
“저… 방금 오간 문답은 무슨 뜻이었습니까?”
“예? 모르셨습니까?”
오히려 반문한 쪽은 마진가 쪽이었다.
“예, 잘 모르겠는데요?”
마진가의 입장에서는 그런 간단한 걸 모른다는 게 이상했지만 저쪽에서는 그걸 아는 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천원지방,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한마디로 그는 하늘과 땅의 형상이 담긴 ‘어떤 것’을 원한다는 것이죠. 이런 것 말입니다.”
그러면서 철권 마진가는 검지와 엄지의 끝을 동그랗게 이어 붙이며 고대로부터 내려온 매우 의미심장한 상징적인 수결을 지었다. 그 적나라한 형상에 그제야 노사 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아하, 그렇군요? 그럼 천장지구란…….”
마진가는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사람들을 믿고 일을 하는 자기 자신이 불쌍해서였다.
‘그 정도는 스스로 아셔야지요.’
‘휴’ 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마진가가 말했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란 말이지요.”
“아아!”
그제야 다들 이해가 간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이번에 규칙이 새로 바뀌었다는 것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기존의 방식으로 치러지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새로 바뀐 규칙을 알려줬으면 하려고 했겠습니까? 한다 해도 더 많은 조건을 내걸었겠지요.”
“확실히 그건 그렇습니다.”
“그래서 입관 희망자들에게만 알려주고 입관 시험관을 맡은 다른 아이들에게는 아직 알려주지 않은 것이구요. 게다가…….”
“게다가?”
“깜짝 놀라야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미리 다 알려주면 재미가 없지요. 다들 어떻게 반응할지 기대되는군요.”
“허허, 그런 깊은 뜻이…….”
감탄했다는 듯 노사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늙으면 언제나 심심한 법이고 이런 지루함을 타파하는 묘안은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 아이들은 과연 눈치채고 있을까요? 이미 시험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비류연이 나간 문을 바라보며 마진가가 조용히 뇌까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