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8권 9화 – 검과 사랑에 빠진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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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18권 9화 – 검과 사랑에 빠진 소녀

검과 사랑에 빠진 소녀

ᅳ비천(飛天)이란 이름의 검

“유란아, 오늘따라 백무후(白武后)께서 심기가 많이 불편하신가 봐.”

“그렇네. 한낮에 이런 적은 좀처럼 없었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온 산을 진동시키는 우렁찬 포효 소리에 잠시 몸을 떠는 동기 채연의 말에 유란은 짐을 꾸리다 말고 소리가 울리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미파 제자뿐만 아니라, 이곳 아미산의 그림자가 미치는 모든 곳의 사람들은 저 소리를 알고 있었다.

“산중의 일을 우리 같은 범인들이 어떻게 알겠니. 홧김에 우리들을 물어가지나 않도록 비는 수밖에. 지금 출발이니?”

“응.”

“진 사숙님과 동행한다니 정말 부럽다. 그런데 진 사숙님은?”

“볼일이 있으시다고 먼저 마을에 내려가셨어. 나도 출발하기 전에 한곳에 들르려고.”

“어딜?”

“철화장!”

“넌 정말 검을 좋아하는구나.”

“난 검을 사랑해! 그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니깐. 그럼 나중에 다시 만나자. 그땐 내가 선배겠네?”

“그건 붙은 다음에나 말씀하시지.”

“기대해. 그럼 다녀올게.”

“잘 다녀와!”

유란은 검이 너무도 좋았다. 맨날 투박한 목검만을 가지고 수련하다가 열 살 때 처음으로 진검을 수여받아 검집에서 검을 뽑았을 그때 보았던 찬란하고 눈부시고 요염한 검광에 어린 소녀는 그만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말았다. 그녀는 하루도 쉬지 않고 자신의 검을 닦았다. 동기 중에서 언제나 그녀의 기름이 가장 빨리 없 어졌다. 좀 적당히 작작 닦으라는 말까지 들었을 정도였다. 검소지용 기름 역시 사문의 비품이었고 소비품이라 해도 그다지 싼값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사문의 살림꾼이라 할 수 있는 혜정 사숙의 그런 불평 불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날이면 날마다 검을 닦고 닦고 또 닦았다. 모루와 망치 사이에 번쩍이는 불꽃 속에 서 엄청난 압력으로 압축된 쇠의 단단함이 그녀는 너무나 좋았다. 그 칼날에 흐르는 푸르스름한 싸늘한 한기가 좋았다. 그것은 그녀의 첫사랑이었고, 열아홉이 다 된 지금에도 아직 그 사랑은 식지 않고 있었다.

사부를 존경하는 이유도 검과 관련이 있었다. 그녀의 사부는 한 자루의 잘 벼려진 명검과 같은 사람이었다. 아니, 명검만으로는 부족하다. 보검, 아니, 신검이라 해 야 마땅하리라. 살아 있으면서도 검과 동화될 수 있다니… 상상만으로도 알 수 없는 뜨거운 욕망에 사로잡혀 환희의 바다 속으로 침몰할 것 같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검법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것이 검을 그저 장식품으로 놔두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검을 쓸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자신의 신체의 일부처럼 부릴 수 있다는 데 그녀는 무한한 쾌감을 느꼈다. 검과 하나가 되는 길. 자신도 언젠가 반드시 그런 경지에 오르고 말리라고 결심하곤 했다. 이 정도면 분명 중증이었다. 여자답지 않다 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그것이 자신이 택한 길이었으니깐.

그녀의 사부도 통념적이고 인습에 절어 있는 그런 부류의 여성이 아니었다. 타인의 도움 없이도―남자는 물론 여자까지 포함해서ᅳ흔들림없이 혼자 우뚝 설 수 있는 강한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남성 일변도였던 천하오검수 중 한자리를 여인의 몸으로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미 손에 잡히지 않는 전설이 되어버 린, 그래서 생존해 있음에도 그다지 피부로 실감되지 않는 검후보다 젊은 추종자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함부로 제자를 뽑지 않았다. 그런 신중함을 뚫고 자신이 제자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그녀는 희열을 느꼈다. 그런 사람 밑에서 배울 수 있다니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존경하는 사부님과 함께 천무학관 으로 떠나기 전 그녀는 드디어 오랫동안 벼르고 별러왔던 것을 손에 넣기로 결심했다.

***

검날에 서린 서늘한 아름다움[]은 고래로부터 수많은 검객들을 유혹해 왔다. 좋은 검을 구하기 위한 참을 수 없는 소비 욕구에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수의 검객 들이 스러져갔던가. 검은 검객의 생명이었다. 검이 부러지는 순간 검객의 생명 역시 사라진다. 때문에 검은 검객의 또 하나의 생명이었고, 단단하고 예리한 검은 언 제나 장수를 위한 보증 수표가 되어주었다.

때문에 검에 대한 강호인들의 집착은 범인의 상상력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다. 검에 생명을 건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단 한 자루의 검을 사기 위해 전 재산을 턴 검객의 이야기는 이곳 무림에서는 그리 드문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만한 가치가 검에 있다고 그들은 판단한 것이다.

물론 어장이나 막사 같은 전설의 신검을 얻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으나 그런 호사가의 입담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는 보통은 책 속에서나 일어나는 법 이었으니, 그런 검을 구하려 평생을 소비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행동이 아니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검장으로부터 검을 샀다.

하나의 검을 손에 넣으면 더 좋은 검을 손에 넣고 싶어진다. 사람의 욕심이란 건 끝이 없다는 것을 소녀는 다섯 번째 검을 사면서 처음으로 깨달았다. 한 소년 검장 의 소문을 들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진짜 소년인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십대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런데도 회음현의 가장 유명한 제련소인 ‘철화장’의 최연소 검장이 되었다고 한다. 그곳은 아미파와도 정기적으로 거래를 트고 있는 곳이라 그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 자신의 이름[名]을 새긴 검 을 만들 수 있는 ‘장인’은 몇 되지 않았다.

사숙 중 한 분이 그 검을 손에 넣고서는 격찬해 마지않았다는 이야기가 동문들 사이에서 들려왔다. 밤에 잘 때도 끼고 잔다고 했다. 검날을 꺼내보며 실실 실성한 듯한 웃음을 때때로 흘리기도 한다는 괴이쩍은 소문까지 돌았다. 검광에 홀렸다고 다들 수군거렸다. 그런 이야기가 들리면 들릴수록 그녀는 그 검이 더욱 갖고 싶었 다.

‘검광에 홀리는 것은 아직 미숙하기 때문이야. 나라면 훨씬 더 능숙하게 그 검을 다룰 수 있을 텐데.’

그때부터 그녀는 그 검이 가지고 싶었다. 그러나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애써도 도무지 구할 수가 없었다. 그곳의 정식 도장이 아닌 모양이었는지, 그가 만드는 검은 무척 희소했다. 그때는 그녀의 능력 밖에 있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돈도 부족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집에서 보내주는 돈을 꼬박꼬박 모았 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었다. 드디어 그 검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철화장의 검장 우두머리이자 장주는 월산(月山)이란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벼린 검은 달도 가른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런 만큼 그가 제련한 검은 눈이 돌아갈 만 큼 비쌌다. 그러나 언제나 물건이 없었다. 그리고 당분간도 없을 것이다. 앞으로 몇 번째인지 기억도 못할 만큼 예약이 밀려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 예약 순서를 두고 유혈 사태까지 일어나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강호에서는 검 제련소가 돈을 많이 벌었다. 그리고 많은 사업이 그렇듯 이것 역시 입지 조건이 중요했다. 이런 검 제련소는 거대 문파에 가까이 가면 가까 이 갈수록 더 많은 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검 제작을 자체적으로 하는 문파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제대로 된 검 하나를 제련하기 위해서는 수십 단계의 공정이 존 재하고, 그 공정을 모두 섭렵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의 수업이 필요했다. 때문에 무공 하나도 다 익히기 힘든데 검까지 자체 제작하는 것은 매우 지난한 일이었다. 특히 일급품 이상의 검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욱더 그러했다. 자체 공방을 가지고 있는 무림 집단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아마 암기와 독으로 유명한 사천당가 정도일 것이다. 그것도 기밀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암기술과 독술을 익히는 사람과 제조하는 사람들이 나누어져 있었다. 일종의 분업이었 다.

그래서 거대 문파들도 가까운 검 제련소와 계약을 맺고 정기적으로 검을 공급받고, 수리를 맡긴다. 생각보다 검은 섬세한 물건이라 자주 날이 나가는 관계로 지속 적인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검장이 쇠를 때리고 형태를 잡고 검날도 세우고… 몽땅 다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물론 검장도 그 일(검날을 연마하는 것)을 할 수 있지만, 보다 전문적으로 그 일을 전담하는 사람에게 맡기는 편이 현명했다. 날의 예리함이 다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수십 가지의 각종 숫돌을 사용해 검을 간다. 그리고 최고의 예리함을 검의 형태에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비로소 한 자루의 검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강호에서는 ‘연마사(硏磨師)’라 불렀다. 그런 면에서 철화장이 들어선 장소의 입지는 최고라 할 수 있었고, 철화장은 그에 걸맞는 실력을 겸비하고 있었 다.

“왜 못 파신다는 거죠?”

유란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아니, 그게…….?”

곤란한 듯 말끝을 흐리는 사람은 이곳 철화장의 총관 송해였다.

“돈은 얼마든지 들어도 좋아요. 어떻게든 전 꼭 그 검이 필요해요!”

“거참, 어디서 그 소문을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저희 철화장에는 그 이상으로 우수한 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포기하시고 다른 검을 한번 물색해 보시는 것 이 어떠신지요?”

“아뇨, 전 어떻게 해서든 그 검을 꼭 구하고 싶어요. 검명 ‘비천(飛天)’, 한 천재 검장이 겨우 십여 자루만 만들어 세상에 내보였다는 희대의 명검, 그 검장의 정체 는 아직까지도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고 하더군요. 개중에는 그 검장이 소년이라는 이야기까지 나돌고 있죠. 전 그 이야기가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지만요.”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지만…….?

송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당연했다. 아무리 물건이 좋아도 미성년자가 만들었다 그러면 가격은 대폭락, 그전에 과연 사갈 사람이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나이를 맹신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런 오랜 경험이 불수불가결한 작업에서 경륜이란 매우 중요하고 또 신뢰할 수 있는 척도 중 하나 였다. 문제는 가끔씩 예외 상황이 발생할 땐데 그때는 차라리 정체를 숨기는 편이 더 나았다.

“설마 제게 그 검을 지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겠죠?”

어느 대장간이나 일정 수준 이상의 검은 아무리 돈을 많이 낸다 해도 함부로 내다 팔지 않는다. 그 정도 수준의 검에게는 그에 걸맞는 진정한 주인들이 있다 믿기 때문이었다.

““저희가 어찌 감희 저희의 최대 고객이라 할 수 있는 아미파의 고명하신 유란 소저께 그런 무례를 범할 수 있겠습니까? 소저께서 검을 보는 눈이 범상치 않다는 것 은 이미 업계에 파다하게 알려진 사실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유 소저, 이것만큼은 저희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없는 것을 팔 수야 없잖습니까?”

총관 송해가 두 손 모아가며 사정했다.

“제발 다른 걸 고르십시오. 다른 훌륭한 검도 많이 있습니다. 저희 철화장을 믿고 구입해 주십시오. 아미파의 제자이시니 가격을 정가에서 이 할 할인도 해드리고, 십이 개월간 무이자로 할부도 해드리겠습니다. 거기다 일 년, 아니, 파격적인 조건으로 이 년간 무상 관리도 해드리겠습니다.”

“관심없습니다. 전 그 검을 가지고 싶어요. 그래서 그동안 다른 검들을 사고 싶었는데도 꾹 참고 있었는걸요!”

“왜 그렇게까지 그 검을 원하시는 겁니까?”

저 정도 집착은 귀동냥만으로는 불가능했다. 여인이 대답했다.

“제가 목표로 하고, 존경하는 인물이 그 검을 한 자루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

“그 검이 제 검을 몇 자루나 베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숨겨놓은 게 하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듣기로는 검장들은 맨 처음 만든 검을 하늘에 제사 지내고 바 친다던데요?”

“그… 그것만은…….”

“역시 있었군요! 그 검을 제게 파세요. 값이 매겨지면 못 파는 물건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왜 그 검을 팔 수 없죠? 제가 여기 온 것은 사실 그 검을 팔려고 내놓았다 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말씀 드리기는 무척 곤란하지만 그 검은 이미 예약이 되어 있습니다.”

유란의 눈이 번쩍 떠졌다. 역시 팔 속셈이었던 것이다. 다만 그 거래 상대가 자신이 아니었을 뿐이다.

“대금을 완불했나요?”

“아, 아닙니다. 아직 계약금만 걸려 있을 뿐입니다. 고객 분께서 나중에 값을 치른다고 하셨지요.”

“누가 예약했나요? 알려주시면 제가 그 당사자랑 직접 담판을 짓겠습니다.”

“그건… 좀 곤란합니다. 고객의 정보를 함부로 발설할 수는…….”

“저한테도 말인가요?”

이미 오랜 안면이 있는 두 사람이었다.

“음, 할 수 없군요. 점창파의 유운비 소협입니다.”

“이름은 들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 검을 그 남자에게 넘겨주지는 않을 거예요. 반드시 제 손에 넣겠어요. 그 남자 언제 오기로 되어 있죠?”

“오늘 미시 말(오후 3시)경에 오기로 예약되어 있습니다. 지금이 오시 정각이니 한 시진 남았군요.”

“좋아요. 지금은 예정대로 사부님을 뵈러 가야 되니 그때 반드시 다시 오겠어요. 그러니 제가 올 때까지 절대로 그 검을 파시면 안 돼요. 아시겠어요?” “알겠습니다, 유 소저. 소저가 올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지요.”

***

하얀 수염이 탐스러운 노인의 입으로 막 넘어가려던 술잔이 노인의 입가에서 우뚝 멈추었다. 벽 저편에서 들려온 한 소란 때문이었다.

“허, 거참. 기운이 넘치는 처자로군. 패기가 넘치네그려. 삼중의 벽을 뚫고 여기까지 그 목소리가 울려 퍼지니 말일세. 아무리 모루와 망치가 내는 천둥소리에 익숙 한 대장장이라 해도 귀가 아프겠는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술잔에 찰랑하던 술이 노인의 입 안으로 넘어갔다.

“허허허, 좀 왈가닥이긴 합니다만, 검을 향한 마음은 그 누구보다 순수합지요. 하지만 그 목소리만큼은 여기 있는 모두가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래서 별명이 ‘침백 련(沈百鍊)’, 백련의 망치질도 침묵케 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요. 뭐, 저희들끼리의 이야기입니다만. 더 번듯하고 어엿한 별호도 있습니다.”

술상 건너편에 마주 앉아 있던 이곳 철화장의 주인인 노인 월산이 웃으며 말했다. 그의 피부는 평생을 불꽃과 싸운 전사답게 구릿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그의 투박 한 손 여기저기에는 망치질로 인한 굵은 굳은살과 자잘한 화상 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이름이라… 노부랑은 인연이 없는 것이네만, 저 처자의 특성을 가감없이 표현해 주는 좋은 이름인 듯하이.”

“모두들 그리 생각합니다, 노야.”

월산이 공손히 대답했다.

“그건 그렇고 자네는 그 못된 녀석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나?”

노인이 물었다. 오랜만에 이곳을 찾은 이유는 바로 그 일 때문이었다.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그 녀석이 말도 없이 사라진 덕분에 저희 가게 매상도 많이 떨어졌습죠. 그 녀석이 만든 물건은 모두 만듬새가 좋고 튼튼해서 인기가 좋아 찾는 사람이 많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일언반구(言句)도 없이 사라지는 바람에 난리도 이만저만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주문은 폭주하지, 만들 사람은 자리에 없지. 저 처자의 경우만 놓고 봐도 알 수 있듯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더 더욱 찾아야 할 게 아닌가? 돈줄인데?”

월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돈줄이죠. 돈줄이고말고요. 그래서 조금 조사는 해보았습니다. 저도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그랬더니 의심 가는 곳이 하나 나오더군요.”

“그곳에 그 못된 녀석이 있나?”

“아뇨, 하지만 거길 가면 그 녀석의 행방을 찾을 단서를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흰 수염의 노인이 월산의 눈과 얼굴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노인의 입이 천천히 떨어졌다.

“…자네의 말은 한 치의 틀림도 없는 진실이군. 자네의 입은 자네의 마음을 정직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 같네.”

“물론 사실입니다. 제가 어찌 감히 노야께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어차피 통하지도 않지 않습니까? 제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다는 것을 보장드립니다. 게다가 그 녀석이 돌아오는 게 저희들로서는 수배의 이익, 적극적으로 협력하지는 못할망정 방해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월산은 어느새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훔치며 대답했다.

“난 남의 말보다는 내 눈을 더 믿기 때문이네. 그런데 그곳의 이름이 뭐라고?”

“네, 중양표국이라고… 요즘 이 근방에서 한창 잘나가는 표국입니다. 꽤 재정이 건실하다고 들었습니다.”

“흠, 중양표국이라… 일단 그곳에 한번 가봐야겠군. 실마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뭔가 나오겠지.”

“부탁드립니다, 노야! 비류연, 그 녀석을 반드시 잡아서 데려오시기 바랍니다, 노야!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네. 걱정 말고 기다리게. 얼마 걸리지 않을 게야.”

그러면서도 차려놓은 술상은 모두 비우려는 의도에선지, 노인은 갈 듯하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상 위의 모든 것이 깨끗하게 비 워진 한참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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