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옥
– 비류연을 사형(死刑)시켜라!
“…시켜라!”
“…시켜라!”
요란한 함성이 좁은 창문을 비집고 들어와 집무실 전체를 뒤흔들었다.
“사형시켜라! 사형시켜라!”
“사형시켜라! 사형시켜라!”
천무학관주 마진가는 새벽잠을 설쳐야만 했다. 꼭두새벽부터 계속된 저 짓거리들 때문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잠은커녕 평소의 업무도 마비될 지경이었다. “에휴~”
한숨만 길게 뽑아져 나올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암습자가 자신의 머리통에다가 대갈못을 박고 있기라도 한 듯 골이 지끈거렸다.
그는 아직 피로가 덜 풀린 눈으로 업무용 탁자 위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상소를 바라보았다. 일일이 열어볼 필요도 없었다. 이 상소 더미는 밖에 흰 머리띠를 묶 고 목청이 찢어져라 외치는 무리들과 똑같은 한 가지 일을 그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십수 명이 함께 연대 합동 서명한 연서(連書)도 몇 꾸러미씩이나 되었다. 그중 최고 기록은 백이십오 명을 기록한 것이었다.
그중 몇 명이나 이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한 명의 목숨이 관련된 일임에도 아마 대다수는 그저 별생각없이 붓을 놀렸으리라. 가장 경이로운 일 은 이 모든 상소가 어제오늘 단 이틀 만에 올려진 것들이란 사실이었다. 다들 침식을 잊고 상소 쓰기에 매진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저절로 들 정도였다.
‘문파와 가문을 뛰어넘어 저 아이들의 의견이 저토록 단일화되었던 적이 언제 있었던가?”
잠시 기억을 반추해 보던 마진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 이번이 처음이겠지…….’
좀 더 좋은 일로 일치단결하면 얼마나 좋은가. 꼭 이렇게 단결할 필요 없는 일을 가지고 일치단결할 이유는 또 무어란 말인가!
“에휴~”
마진가는 그 당당한 풍채에 어울리지 않는 한숨을 내쉬며 창가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이중으로 잠가두었던 창문을 열어젖혔다. 현재 그가 일하고 있는 집무실은 삼층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밑의 모습이 일목요연하게 잘 들어왔다.
다들 머리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흰 것을 하나씩 싸매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는 ‘살(殺)’이라는 흉포한 글자가 쓰여 있었다.
여기저기 현수막도 보였다. 지난 밤새 제작한 모양인지 급조한 티가 역력했지만 그 안에 적힌 내용만은 명명백백했다.
즉살비류연! 卽비류연 殺!
비류연을 즉각 사형시켜라!
하얀 현수막 위로 누빈 붉은 필치는 누구의 솜씨인지는 모르나 글쓴이의 진심이 깃들어 있어서인지 한 획 한 획 적의와 살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문구만으로는 단조롭다고 생각했는지 그 뒤쪽에 자리한 현수막에는 다른 내용도 적혀 있었다. 피처럼 붉은 글씨가 섬뜩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 다.
즉시 사형 악적 비류연!
그 오른쪽은 다음과 같았다.
연속 살인마 비류연 즉살!
“하루 만에 준비하려면 바빴을 텐데……. 다들 힘낸 모양이구려.”
저들의 행태가 영 못마땅한지 마진가의 말에는 비꼬는 기색이 역력했다.
“실제로 구속된 것은 어제저녁이었으니 사실 반나절밖에 걸리지 않은 겁니다. 그런 것까지 따지고 보면 두 배 이상 더 애썼군요.”
상담 역이자 군사인 은목 손문경이 내용을 정정해 주었다.
“공부와 수련에도 이만큼 신경 써주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네.”
“동감입니다.”
“저 아이들이 정말로 비류연, 그 아이가 그 일을 저질렀다고 여기고 있는 거라 보나?”
손문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는 없지요. 사실 그 비류연이란 청년은 용의자 신분이지 아직 범인으로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아직 수사 중이지요. 이 수사가 끝날 때까지, 그리고 그 수 사의 끝에 범인으로 판명나기 전까지는 그저 한 사람의 용의자일 뿐입니다. 아직 죄인은 아니지요.”
“그런데도 저들은 빨리 사형시키라고 주장하고 있네.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저들은 비류연이란 청년이 유죄든 무죄든 상관치 않을 겁니다.”
“그게 왜 상관이 없어?”
“예, 단지 그 비류연이란 청년이 눈엣가시처럼 거슬릴 뿐이지요. 언제라도 기회가 되면 눈에서 뽑아버리고 싶었는데 때마침 좋은 건수가 생긴 것입니다. 저라도 이런 호기는 아까워서 그냥은 못 지나가겠군요.”
“왜 그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건가?”
“아마 질겨서 그런 것 같습니다. 시도는 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한 모양이지요. 저 밑에 모인 군중들을 보고 뭔가 떠오르는 것은 없습니까?”
손문경의 말에 마진가는 흰 머리띠 무리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잘 보시면 유치한 흰 머리띠 말고도 뭔가 공통된 특징이 보이실 겁니다.”
한참을 살펴보던 마진가의 동작이 딱 멈추었다.
“음?!”
“아시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여자가 하나도 없군.”
“그렇습니다. 저 밑에 급히 몰려든 이들은 모두 남자지요. 게다가 독신(獨身)입니다. 다들 짝이 없는 외기러기 신세지요.”
“그건 몰랐네. 그것참 불쌍하군.”
마진가의 입에서 진심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불쌍하죠. 그러니 저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쉽게 말해 질투라는 건가?”
“저들은 독신남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질투단(妬團)이라 보시면 됩니다. 저 정도면 거의 적이 없겠는걸요?”
“그렇다면 무적이란 말인가?”
“예, 무적(無敵)입니다.”
마진가의 얼굴에 두렵다는 표정이 최초로 떠올랐다.
“저들의 저 분노는 발산되는 방향과 방법이 틀린 것 같네. 젊은 혈기가 무분별함을 가려주는 방패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나?”
“하지만 다수의 여론이 그 비류연이란 관도를 사형시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직 유, 무죄의 여부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무슨 처벌이란 말인가? 오히려 소란죄로 저 밑에 모인 녀석들을 몽땅 처벌하고 싶은 게 솔직한 내 심경일세.”
“그랬다가는 권력의 횡포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하실 겁니다.”
태연한 목소리로 손문경이 대답했다.
“그럼 저건 뭔가? 무지(無知)한 대중의 난동인가?”
저 아래 모인 시끄러운 무리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마진가가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그는 요즘 안 그래도 과중한 업무 때문에 녹초가 될 지경이었다. 높은 사람은 맨날 일을 아랫사람에게 맡기고 논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큰 오산이었다.
“글쎄요. 과연 저게 무지의 소산물일까요? 그 건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만…….”
“저게 어리석음의 소산물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물론 저기 모인 아이들은 작은 선동에도 크게 경도된 무지하고 가엾은 존재들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저 무지한 대중을 움직이는 소수는 분명 자신의 손익 을 계산하고 있을 겁니다. 때문에 저 많은 이들을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겠지요. 그러니 저들을 악의적 계산의 소산물, 혹은 모략의 산물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무지의 소산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뜻인가?”
“그런 뜻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학생 중 일부가 무지의 소산물이 아니라 해도 마진가는 그 사실에 대해 솔직하게 기뻐할 수 없었다. 저들이 무지의 소산물이 아니라 해도 여전히 무지하다는 사실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명목상 그 비류연이란 청년은 이번 화산규약지회의 우승자이네. 그 일로 인해 그 청년은 천무학관에 대한 대표성을 손에 넣은 것이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 든 그건 상관없는 일이지. 그런 사람을 우리 손으로 사형시켜 보게. 그것도 수험생 연속 살인범이란 화려한 꽃관을 씌워놓고서 말일세.”
“천무학관의 위신은 땅바닥 깊숙이 추락하겠지요.”
상상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정말 강호에 길이길이 남을 추문이 되겠지.”
“그리고 천무학관에 대한 백도 제 문파의 지지율도 하락하겠지요. 마천각에선 좋아하겠군요.”
손문경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상담 역이었다. 때문에 다른 모든 이가 진실을 은폐할 때 진실을 말해줄 의무가 있는 사람이었다.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의 눈과 귀 가 막혀 있다면 그것은 큰 문제였다. 때문에 정점에 선 자는 자신의 곁에 진실을 말해줄 사람을 반드시 한 명 이상 데리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조직의 세세한 부분까지 살필 수 없게 된다. 반드시 자기 사람을 조직 계단의 중간중간에 심어놓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조직을 관리할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손문경 역시 그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람 중 하나였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말일세.”
“말씀하십시오, 관주님.”
“저들 중 몇몇이 자신들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수사를 방해할 거라 생각하나?”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손문경은 다시 한 번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 대답이 상관의 미간을 찌푸리게 만든다 해도 전혀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는 상관 기분이나 맞춰주려고 이 자리에 있 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건 재미없는 대답이군.”
“하지만 사실이지요.”
손문경은 상관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데 별다른 재주가 없을 뿐만 아니라 관심도 없는 게 분명했다.
마진가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그런 일을 당한다면 별로 유쾌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여론이 들끓어서야 그냥 조심스레 덮어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진실의 곤란한 점은 대상자의 심정을 절대로 헤아려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진실을 받아들이는 당사자가 유쾌하든 불유쾌하든 진실이 진실임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어떻게든 해결(解決)하여 매듭짓지 않으면 안 돼!”
들끓는 여론이 폭발하기 전에. 그러다가 문득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해결은 푸는 건데 겨우 풀어놓은 걸 다시 매듭지으면 어떻게 되나? 다시 원상 복귀라는 소리인가?”
내뱉고 보니 어쩐지 불길한 말실수였다.
만일 풀어놓은 걸 다시 묶으려고 하는 놈들이 있다면 그냥 간과할 수 없었다. 어떤 방해도 용납되어서는 아니 되었다.
“사태가 수습할 수 없을 지경까지 커지기 전에 수를 내야겠네. 난 항상 자네가 이런 곤란할 때에 든든한 아군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네.” 어떻게든 궁리를 해서 뾰족한 수를 끄집어내 보라는 언외언(言外言)의 압력이었다.
“범인을 잡으면 되겠지요.”
“누가 그걸 몰라서 물었나?”
마진가가 약간 화가 난 목소리로 퉁명스레 대꾸했다.
“혹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거나요.”
“그것도 알고 있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상이 밝혀지기보다 덮여지기를 원한다는 데 문제가 있죠. 다들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기보다 훼방 놓고 싶어 안달일 테니 말입니다. 거참, 어떻게 처신하면 그 젊은 나이에 저렇게 대대적으로 반감을 살 수 있는지 정말 놀랍군요. 어떤 의미에서는 거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그럼 어쩌면 좋겠나?”
“비밀리에 이 일을 맡길 만한 친구가 필요합니다. 남들 모르게 비밀리에 수사할 수 있으면서도 그들의 이익 관계에 결부되어 있지도 않고 비류연이란 청년에 대해 서도 특별한 악감정을 가지지 않고 공정하게 대할 수 있는 그런 인물이면 더욱 좋겠죠.”
마진가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손문경이 방금 제시한 조건에 딱 부합되는 그런 인물이었다.
‘홍(紅)을 불러야겠군.’
요즘 너무 부려먹는다고 투덜거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잠시 앞서기는 했지만, 현재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생산적인 결정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