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9권 18화 – 나를 위해 죽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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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19권 18화 – 나를 위해 죽어다오!

나를 위해 죽어다오!

-궁상아!

“아니, 왜 풀어줄 수 없다는 건가?”

현재 수사본부가 구성되어 있는 무원대 집무실을 방문한 염도가 성난 목소리로 힐문했다.

“그게… 저…….”

염도는 청흔의 말을 중간에서 끊어버렸다.

“변명 따윈 듣고 싶지 않네. 용의자가 잡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았나. 그러니 감옥에 갇힌 사람은 무죄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나? 그 러니 지금 당장 그를 석방하도록 하게.”

“그건 안 됩니다!”

“왜 안 되나? 그가 범인이라는 증거도 없잖나?”

“범인이라는 증거도 없지만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도 없습니다. 어느 쪽인지 확실시되지 않는 이상 아직 방면할 수 없습니다.”

청흔의 태도는 일개 감옥지기인 현빈과는 달랐다. 그는 더 많은 책임을 등 뒤에 지고 있었고, 그렇기에 보다 공명정대한 행사를 위해 보다 많은 외압에 맞서 버텨 낼 의무가 있었다.

염도는 답답해서 가슴을 두드릴 뻔했다. 알아서 미리미리 구해주겠다는데 싫다면 구명줄을 홱 내치는 구조자가 예뻐 보일 리 만무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습격 사건이 다시 일어났다는 것만 사실이지 아직 그 사건이 그전 사건과 동일범의 소행인지는 확신할 수 없는 시점입니다. 모방범의 소행일 가능성 도 충분히 있으니까요.”

‘저희는 어떻게든 저희들의 생명을 열심히 전력을 다해 단축시키고 싶습니다’라고밖에 들리지 않는 대답이었다.

“모방범? 그런 걸 따라 하는 정신 나간 녀석도 있나?”

살인이었다. 그것도 무고한 자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살인이었다. 누가 봐도 나쁜 일이었다. 그런 일을 저질러 자신한테 무슨 도움이 되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정신 나간 짓인 줄 알면서도 저지르는 게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래선……..

그래서는 부를 만한 말이 하나뿐이 안 남는다.

“예, 미친놈이죠. 괜히 미친놈이겠습니까?”

가장 간단한 가치 판단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심각한 질병이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여러 번도 필요없다. 입장을 딱 한 번만 바꿔봐도 피해자가 겪을 고통과 불쾌감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조차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아마 절대 자신은 그런 경우를 당하지 않는다는 근거없는 맹신이 그런 오판을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죽지 않았습니다.”

청흔의 이 말은 결정적이었다.

“뭐라고?”

염도가 의아한 얼굴로 반문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이다.

“피해자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다만 부상당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지난 사건과의 중대한 두 가지 차이점 중 하나입니다.”

그 두 가지 차이점 때문에 동일범의 소행이라 볼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첫 번째는 그렇다 치고, 그럼 두 번째 차이점은 뭔가?”

그는 잠시 말할까 말하지 말까 고민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니 잘 익은 불고기가 되는 취미는 없었다. 그래서 그냥 말하기로 했다. 그의 피부는 충분히 훌륭했고 더 이상 노릇노릇하게 구울 필요는 없었다. 맛있는 요리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서 꽤 미식가라고 자부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본인 스스로 맛있는 요리 가 될 생각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었다. 자기가 먹어볼 수 없는 요리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번에 습격당한 사람은 수험생이 아니라 황금 완장입니다.”

“여!”

“여!”

“잘 지내나?”

일상생활 중에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간단하고 평범한 인사였지만 이곳 같은 감옥에서는 그다지 어울리는 인사라 할 수 없었다. 특히 그 대상이 수감자일 경우 에는.

“그럭저럭!”

비류연이 짧게 대답했다.

“이야, 아저씨,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일반 관도는 들어오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그동안 만난 사람도 무사부 신분인 염도 한 사람뿐이었다. 빙검은 오지 않았다. 아직 남궁상을 가르치는 것을 그만두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니 버젓이 절차를 밟 아 들어오는 장홍을 바라보는 시선이 평범할 리 없었다.

“아, 힘 좀 썼다네!”

뒤통수를 긁적이며 장홍이 대답했다. 그의 입가에 멋쩍은 웃음이 맺혀 있었다.

“밖은 어때?”

“거의 축제 분위기라네. 자네를 사형장에 보내기 위한 축제 말일세.”

“반응은 좋아?”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비류연이 물었다.

“거의 열광적이라네. 나도 지금까지 저토록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일치단결한 모습은 본 적이 없다네. 정말 장관이야. 수백 명이 잔뜩 몰려나와 한 사람의 목 숨을 끝장내라고 열렬히 주장하는 그 모습은 정말 보기 드문 희대의 구경거리라네.”

인간의 마음이 하나로 모이면 상상 이상, 경험 이상, 역사 이상의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약간만 방향이 빗나가도 자연 재해와 맞먹는 광기(狂氣)의 소용돌이 로 돌변할 수 있었다.

“에헴, 다 내 인덕이지!”

자신을 집어삼키려는 광기의 폭풍에 대한 예보를 듣고도 마치 남 애기하듯 비류연이 말했다.

“인덕 많아 좋겠네. 정말 부러워 미쳐 버리실 지경이구먼!”

친구의 태평스러움에 장홍은 그만 질려 버리고 말았다. 자연 말이 퉁명스러워진다. 요 며칠 사이에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는 탄핵 열풍이 그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 다. 미치려면 좀 더 곱게 미치는 방법이 분명 있을 터다. 굳이 이런 시끄럽고 남에게 폐가 되는 일을 벌여 법석 떨 필요는 없을 듯싶었다.

“다들 연속 살인마가 작두에 썰리는 꼴을 보고 싶은 모양이야.”

조금쯤은 걱정이란 걸 해보는 게 어떠냐는 의미였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건 나도 보고 싶군.”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투로 비류연이 맞장구쳤다.

“그건 그렇고, 그 외에 좀 더 재미있는 일은 없었나?”

“있었네.”

“흠, 들어볼까? 자네의 반응을 보니 왠지 좋은 소식일 것 같은데?”

“내 표정이 어땠는데?”

“모래무침한 벌레를 씹은 듯한 그런 표정이었어.”

“…….”

“무슨 일이 자넬 골탕먹였는지 들어볼까?”

“또 나타났다네.”

장홍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뭐가?”

장홍이 대답했다.

“심야(深夜)의 암살자(暗殺者)!”

“응? 또?”

“그래! 또! 혹시 짐작 가는 곳이라도 있나?”

“쬐끔.”

“그게 진짠가?”

장홍은 귀가 솔깃해졌다.

“물론.”

“자네의 고견을 듣고 싶군.”

“비싸!”

“걱정 말게. 섭섭하겐 하지 않을 테니.”

“좋아, 말해주지! 내가 보기에 이번 일은 어느 댁 도련님의 소행이야. 소위 명가라 불리는 곳의 후계자쯤 되는 신분이겠지.”

“그런 자가 뭐가 아쉬워서 이런 일을 저지른단 말인가?”

“자기 힘을 시험해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난 거지.”

“그래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본인에게는 중요한 일일 수도 있지 않겠어? 내가 보기엔 시시하지만 말이야.”

“그것 말고도 뭔가 노리는 목표가 있을 텐데……. 왜냐하면 지난 나흘 동안의 행보는 무척이나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진행되었다는 느낌을 주거든.” “이건 일종의 예행 연습 같은 거지. 본막을 앞둔. 그만큼 신중하게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거지.”

“그러니 일단 동일 인물은 아니라는 거군.”

“절대로 아니지. 문제는 뭘 노리는가인데…….”

그 목표를 명확하게 특정할 수 없으니 확실한 방법을 택해야겠지.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장홍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는 비류연에게 정말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았다. 비류연 역시 일언반구도 변명하지 않았다. 이 노숙해 보이는, 혹은 실제로 노숙할 수도 있는 친구는 그의 친구가 그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확신을 지니고 있었고, 그 친구 또한 그가 그러리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그것이 진짜 친구라는 것이 아닐까?

“날 풀어줘. 그럼 일주일 안에 해결하겠네.”

매우 간단한 일이라는 듯 비류연이 대답했다.

“일주일? 정말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건 불가능해’라고 외치기 전에 장홍은 그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난 부도어음이 싫어. 그래서 허언도 싫어해. 내가 언제 허언한 적이 있었나?”

“으잉? 그럼 없었나?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장홍은 잠시 충분히 있었을 법한 그 상황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과거의 기억들을 더듬어 나갔다. 그리고 한참 후, 그는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이럴 수가……. 없군. 없어. 난 애석하게도 찾을 수가 없네. 분명히 한두 번은 충분히 있었을 법한데 말이야.”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천무학관 최고의 허풍쟁이로 알려져 있는 비류연이 한 번도 허언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정말 지독히도 역설적이었다. “그만큼 어이없는 일들을 현실화시켰다는 것이겠지…….’

비류연 역시 남들이 들으면 허언이나 허풍이라 느낄 만한 말들을 많이 해왔었다. 다만 그의 다른 점은 그 거짓말 같은 일들을 정말로 실현시켜 버린다는 것이다. 남들이 모두 포기한 일을 성공시켜 버리면 그건 할 수 없는 거라고 포기했던 이들이 그 일이 실현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픈 충동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리고 비류 연이 해온 일은 대부분 그런 일들이었다.

“어때, 내 제안이?”

“일주일이라…….?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장홍은 잠시 그의 제안에 혹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내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라네. 게다가 지금은 여론이 너무나도 안 좋거든. 이런 상태에서 자네를 풀어줬다가는 학관이 모든 비난을 몽땅 다 뒤 집어써야 할 판일세. 아마 학관 측으로서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일이지.”

“소심하긴.”

비류연이 투덜거렸다.

“그런 병아리 새가슴 같은 배포로 무슨 일을 도모할 수 있단 말인가?”

“큰 조직일수록 경직되기 마련이지. 자네가 이해하게.”

“내가 왜?”

자연스레 독설이 튀어나오는 비류연을 장홍이 애써 달래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럼 차선책밖에 없겠군.”

“차선책도 있나?”

“목적지가 하나라고 해서 가는 길도 하나라는 법은 없지. 본인이 못 나간다면 대리할 사람이라도 필요하지 않겠어?”

“그럼 누가 좋겠나? 모용휘?”

장홍은 유능하고 모범적이면서도 비류연의 꾀임에 잘 넘어가지 않을 법한 청년의 이름을 댔다.

“그 친군 곤란해. 정말 표적이거든. 게다가 그쪽은 임기응변도 부족해.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양호해졌지만 아직 사고가 경직되어 있기도 하고.”

“모범적인 건 아니고? 내 귀엔 어째 아직 덜 타락했다고 들리는가?”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경직되어 있는 거지. 아직 좀 더 몰랑몰랑해져야 할 필요가 있어.”

“그럼 윤준호는 어떤가?”

소심하긴 하지만 의외로 많은 가능성을 그 안에 감추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장홍이 댔다.

“그 녀석은 아직 배짱이 부족해. 그리고 이 일을 해결하는 데는 좀 능력이 부족하지. 하지만 입고 있는 옷은 쓸 만하겠어. 미끼 정도는 맡길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 이야.”

본인보다 옷이 더 유능하다는 이야기를 태연히 하는 비류연이었다.

“옷? 그건 또 웬 생뚱맞은 이야긴가?”

의혹이 모락모락 솟아올랐지만 일단 의문은 접어두고 다음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럼 누가 남았나? 자네의 좁은 교우 관계 중에 아직 남은 사람이 있나? 서… 설마 나는 아니겠지?”

“아저씬 그냥 쉬고 있어요.”

비류연이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

“고맙군 그래, 생각해 줘서. 그럼 누가 좋겠나?”

““남궁상!”

“남궁상? 설마 주작단의 궁상 씨 말인가?”

비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 말고 다른 궁상도 있었나?”

없었다.

“궁상 공자라……. 나로서는 예상 밖의 인물이군. 그 사람만 불러오면 뭔가 뾰족한 수가 있는가? 그렇게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였는지는 미처 몰랐군 그래.” 장홍이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비류연을 바라보았다. 그가 기억하기로 이 친구가 황당하기는 해도 허튼짓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뭔가 착각하고 있는 장홍이었다. “불러와 보면 알아.”

“알았네. 잠시 기다리게.”

확실히 장홍은 배경이 든든한 모양이었다. 비류연이 부탁하자마자 그는 즉시 남궁상을 수배해서 그의 앞에 가져다 놓았다. 그 신속함은 비류연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빠르군.”

비류연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는 그런 전문적인 일 처리를 좋아했다. 낭비가 없기 때문이었다. 낭비가 없으면 절약을 할 수 있고 이익을 더 많이 남길 수 있다. 이 (利)와 합치하게 되는 것이다.

“기본이지.”

장홍이 겸양해하며 말했다. 남궁상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었다.

“잠시 자리 좀 비워줄 수 있어?”

비류연이 장홍을 힐끗 보며 말했다. 아직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장홍에게 비밀이었다.

“밀어(密語)는 내가 있는 곳에서 속삭이면 안 될까?”

그렇게 되면 자신의 엿보기 취미가 충족되니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꽤 흥미로운 제안이긴 하지만 기쁘게 사양하겠어.”

“칫!”

정말이지, 이 자리를 떠나기 싫다는 얼굴로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궁금해서 미치겠다는 발걸음으로 장홍이 두 사람의 곁을 떠났다.

한참 후 비류연이 입을 열었다.

“이봐, 아저씨! 엿듣는 것, 좋지 않은 버릇이라구. 몸은 모습을 감추었어도 귀는 아직 여기를 훔쳐 듣고 있네. 그런 걸 진정한 자리 비켜주기라 할 수는 없지 않을 까?”

그러자 돌 벽 저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쳇! 알겠네, 알겠어! 비켜주면 될 것 아닌가! 둘이서 잘 먹고 잘살아보게.”

까딱까딱!

한참을 더 뜸 들인 후에야 비로소 비류연은 옥문 사이로 남궁상을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남궁상은 허약한 옥문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다가갔 다. 그리고는 물었다.

“왜요?”

뻑!

잠시 환한 별빛이 감옥 안으로 쏟아져 들어와 어둠을 밝혔다.

“부… 부르셨습니까, 대사형!”

군기가 바짝 든 목소리로 남궁상이 대답했다. 그래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은 것을 보니 아직 분별은 남아 있는 듯했다. 잠시 궁상의 개념 상실을 걱정했던 비류연은 안심하고 방금 전 누군가의 머리를 가격한 오른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조용히 하지 않으면 더 멀어진 곳에서 여전히 청력을 최대한으로 높이고 있을 장홍에 대한 무례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지금도 차가운 돌 벽에 귀를 짓누 르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있는 장홍을 너무 즐겁게 해주고 싶지 않았다.

“할 일이 있다.”

비류연이 짧게 말했다. 서론 빼고 본론만 말하겠다는 뜻이었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대사형?”

비류연은 절대 잘못 들었다고 말하지 말라는 듯 진지한 목소리로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날 위해 죽어줘야겠다!”

감옥의 창살을 사이에 둔 밀어는 소문만큼 달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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