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
– 그리고 비
쏴아아아아아!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일까. 굵은 빗줄기가 미친 듯이 땅을 두드린다. 애절한 곡소리가 듣는 이의 심장을 찢어발기듯, 세찬 빗발이 섧게 천지를 들쑤셔댔다. 마치 하늘이 터뜨려 낸 울음에 땅도 통곡을 하는 것 같았다. 그 거센 울음소리마저 집어삼킬 것처럼 어디선가 절규에 가까운 통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바로 천무학 관의 외진 곳에 자리한 분향소에서였다.
“안 돼요, 상! 날 두고 가면 안 돼요!”
새하얀 상복을 두른 여인이 검은 관을 부여안은 채 절규했다. 아직 앳되어 보이는 여인은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비 오듯 흐르는 눈물 때문에 가려져 버린 눈은 이제 제대로 떠지지조차 않았다.
“진 소저! 진 소저! …제발 진정하시오.”
으스러질 정도로 주먹을 움켜쥔 현운이 괴로움을 참으며 억지로 입을 열었다.
“진령아! 진정해, 제발! 진정해!”
같은 칠봉의 일인이며 동료이자 연인의 누나이기도 한 남궁산산이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며 넋이 나가 있는 진령을 진정시키고자 애썼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령은 불길한 검은 관에 매달려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끝없는 눈물에 붉게 충혈된 눈, 격한 흐느낌으로 호흡을 잃 고 파리해진 얼굴은 당장이라도 혼절을 할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장마철에 무너진 둑처럼 두 눈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크으으으윽!”
조금 떨어진 곳에 줄지어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주작단원들의 모습은 자못 비장했다. 비통함을 참으려는 듯 어떤 이는 입술을 깨물고, 어떤 이는 피가 배어 나 올 듯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두 손을 갈퀴처럼 만들어 자신의 허벅지를 쥐어짜는 이들도 있었다. 다들 무언가를 속으로 집어삼키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곤란하군.”
청흔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마디 했다.
“자네 말이 맞네. 정말 골치 아프게 됐어.”
백무영이 동의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는데…….”
정말 일이 꼬여도 이렇게 단단히 꼬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속에서 그들이 해야만 하는 일은 검시였다. 비통함에 넋을 잃은 채 저 시커먼 관을 부둥켜안 은 여인을 떼어내고, 관을 열어 그곳에 누워 있는 주검을 파헤치는 게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이었다.
하지만 백색 상복을 입은 진령처럼 백색 무복에 백색 띠를 동여맨 주작단이 그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흔쾌히 허가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시신을 확인 하겠다는 소리는 감히 입 밖에도 꺼낼 수 없었다. 그 말을 꺼내기만 해도 그 즉시 자신들을 난도질해 버릴 것처럼 벼르고 있는 매서운 눈매가 솔직히 부담스럽기 짝 이 없었다. 그들의 담이 비록 다른 이들에 비해 크다고는 하나, 이런 애매하고 찝찝하고 얄궂고 지랄맞은 상황에서까지 생명을 담보로 그 견적을 산출해 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청흔 자네, 진 소저를 이길 수 있겠나?”
“왜 하필 난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청흔이 반문했다.
“자네 말고 여기서 누가 감히 진 소저랑 검을 맞댈 수 있겠나?”
“왜 자네도 있잖나, 자네도 같은 구룡칠봉의 한 명인 자네가 왜 애꿎은 날 끌어들이나? 난 자네랑 달라서 여자들한테 약하다네. 그러니 제발 난 빼주게. 게다가 진 소저는 삼 년 전의 그 진 소저가 아니야! 나 역시 상처 없는 승리는 장담할 수 없네. 더군다나 그 옆에 같은 구룡의 유유검 현운이 버티고 있네. 그 친구까지 가세하 면 아무리 나라도 역부족일세. 현운 그 친구, 항상 웃는 얼굴이지만 그 검(劍)도 얼굴처럼 부드러운 건 아니거든.”
“역시… 피를 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단 건가?”
고인을 모욕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들, 주작단의 한결같은 주장이었다. 관규는 물론 국가의 법규 또한 이런 경우 검시를 인정하고 있다고 설득해 보려 했으나 소 용없었다. 그들은 이미 내부적으로 결사적인 저항 의지를 굳힌 것이 분명했다. 특히 창졸간에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진령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관을 건드리기 는커녕 다가오기만 해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제 어찌할 텐가, 문상?”
고민하고 있는 백무영을 향해 청흔이 물었다. 이럴 때 계책을 짜내는 것은 백무영의 몫이었다. 그러나 현재 백무영은 제 몫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하긴 뭘 어떻게 하나?”
그의 어이없어하는 짧은 반문엔 사유의 흔적이 티끌만큼도 담겨 있지 않았다. 아무리 뇌를 닦달해도 뾰족하고 신묘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강행 돌파할 텐가?”
이럴 경우 말로 하는 협상은 별무소용일 것이 뻔했고, 그럴 경우 남은 수단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백무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강행 돌파는 불가능해. 그러잖아도 학관 분위기가 흉흉하고 저들에 대한 동정여론이 들끓고 있는 마당에 고인의 시신을 가지고 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현 명치 못한 처사지. 만일 강행했다가는 악당 자린 따놓은 당상일 테니 말일세.”
“자넨 원래 악당이잖나?”
여태 그걸 모르고 있었다니 참으로 놀랍다는 듯 청흔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고맙네!”
백무영이 그의 농담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받자 청흔은 당황하고 말았다.
“뭐, 뭐가 고맙단 말인가?”
“내 생명을 구해줘서 고맙단 얘길세.”
“아니, 내가 언제 자네 생명을 구했다는 건가? 금시초문이네만?”
“자넨 무사는 자신을 알아주는 자를 위해 죽는다는 말 못 들어봤나?”
“물론 들어봤네.”
아마도 그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사마천의 사기열전 어딘가에서 나온 대목인 것 같았다.
“바로 그걸세. 그 말인즉 자신을 못 알아주는 놈을 위해선 굳이 죽을 필요가 없단 얘기 아니겠나? 자네를 위해 안 죽어도 되니 내가 얼마나 고맙겠나! 목숨, 한 벌 은 번 것 아니겠나?”
“……”
“아니, 자네 왜 그러나? 얼굴이 몹시 떨떠름하고 안색이 좋지 않은데?”
“음… 돌아가세.”
청흔은 그냥 말을 돌리는 걸 포기하고 몸을 돌려 버렸다. 그러자 더 이상 말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청흔은 만족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학관은 발칵 뒤집혔다.
남궁세가의 직계손이자 구룡칠봉의 일인이고, 주작단의 단주이자 천무학관을 이끌어갈 차세대 인재로 촉망받고 있던 뇌전검룡 남궁상이 죽은 것이다. 그 여파는 상상 이상으로 엄청났다.
그는 네 개 단 중 최하위로 취급받던 주작단을 명실상부한 사성수단(四聖獸團)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았을 뿐만 아니라 그 뒤를 이은 몇몇 대회에서 연거푸 우승을 거머쥐며 돌풍을 일으켰다. 어디 그뿐이랴! 아직 학생 신분인 주작단을 이끌고 천룡채와 같은 굵직굵직한 산적 집단을 연달아 토벌해 녹림 칠십이 채의 편성표를 서너 번씩 교체하게 만들었으며, 그에게 도전하는 수많은 적들과 정면으로 당당히 맞서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지난 화산규약지회에서도 그 활약은 대단했다.
어떤 성급한 이는 소림의 빛나는 별, 구정회주 용천명을 쓰러뜨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뇌전검룡 남궁상뿐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학관에 이제 막 들어온 신입뿐 아니라, 그렇게 되지 못한 이들 사이에서 그는 거의 신화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도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중이었다. 어느덧 삼 년 전과는 확 연히 다른 지위에 올라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체감하기에 남궁상은 실존 고수, 즉 비류연처럼 뜬금없고 위화감 느껴지는 고수가 아니라 피부에 착착 휘감기리만치 현실감 넘치는 진짜 고수였다. 때문에 그가 겨우 햇병아리나 잡으러 다니는 ‘삐약이’ 사냥꾼에게 당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모두들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 을 받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충격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고 어디서든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전파하기 위해 굳이 홍보를 할 필요도 없었다. 모두들 자진해서 이 이 야기에 광분했다.
천무학관이 남궁상의 죽음으로 충격의 도가니에 빠져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장홍은 소리 소문 없이 비류연을 방문했다. 지금 밖은 남궁상의 죽음에 광분하느라 비 류연 따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일이 잘된 모양이군.”
다시 한 번 자신을 찾아온 장홍의 얼굴을 보자마자 비류연이 말했다.
“응? 잘됐다고?”
독심술사라도 된 듯 말하는 비류연의 말에 장홍은 의문을 표했다.
“어디서 그런 확신이 나오는 건가? 난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나? 말로 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이 사방 천지에 널려 있는 판국에, 아직도 말처럼 부실한 수단에 의지하려 하다니, 쯧쯧쯧! 그리고 뭣보다도
얼굴에 다 써 있어.”
“다 써 있다고? 내 얼굴이 무슨 낙서장인 줄 아나?”
감정을 숨기고자 특별 훈련을 받은 장홍 같은 이에게 그런 말은 모욕 그 자체였다.
“잘 알고 있다니 다행이네.”
“뭐, 뭐라고!”
비록 지금은 일부러 통제를 늦춰놓고 있긴 했지만 그런 지적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즐거운 경험이 아니었다.
“내 얼굴이 어떤데?”
뭐라고 반박할지 미리 고민하며 장홍이 물었다.
“음… 불장난하다 집 한 채 홀랑 태워먹은 아이 같은 표정이랄까?”
비수처럼 그의 가슴을 후벼 파는 비유에 장홍은 그만 반박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맞는 모양이군. 잘됐네.”
비류연이 한마디 툭 던졌다.
“그게 잘된 건가? 일이 너무 커졌단 말일세. 솔직히 이 정도로 일이 커질 줄은 몰랐어. 난 가볍게 모닥불이나 피우려 했는데 지금은 돌풍 부는 날의 들불처럼 급속 도로 번져 가고 있네. 솔직히 어떻게 이 사태를 수습해야 좋을지 머리가 빠개지려 하네.”
“그러니 잘된 거지. 명성이 올라갔잖아.”
비류연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이게 명성이 올라간건가? 소란스러워진 거겠지! 대소동이란 말일세, 대소동! 학관 전체가 혼란의 도가니라 해도 과언이 아닐세.”
“아무 평도 없는 것보단 차라리 악평이 나아. 어디 계실지 모를 악당에게 우리 의도를 잘 알리려면 소란을 좀 크게 벌일 필요가 있어. 그 소란이 크면 클수록 우리 에겐 유리해. 기왕 불난 거, 크게 나야 멀리서도 잘 보일 거 아냐? 안 그래?”
“그거야 그렇지만… 그 불을 보고 저쪽에서 달려오기 전에 이쪽이 먼저 전소(全燒)될까 봐 걱정일세.”
“그 정도 역량밖에 안 되면 재만 남기는 수밖에.”
“냉정하군, 자네.”
“그걸 이제 알았어? 아저씨도 꽤 둔하네.”
“어흠, 어찌 되었든 궁상 씨에게 미안하게 되었군.”
“그런 특이한 경험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거니까 횡재한 거지. 그러니 미안해할 거 없어.”
비류연의 말에 장홍은 어이가 없었다.
“내가 혹시 잘못 들었나 걱정이 돼서 다시 묻는데… 자네가 말하는 그 특별한 경험이란 것은 혹시 죽는 것을 말함인가?”
“아니!”
비류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죽었다 부활하는 것!”
장홍은 잠시 다리를 휘청했지만 간신히 자세를 바로잡았다.
“용케도 궁상 선배가 그 어려운 부탁을 들어줄 생각을 다 했군 그래. 자네 같은 친구에게 자기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다니 말일세.” 마지막은 비꼬는 말이었다.
“암! 그렇고말고! 그게 다 그동안 쌓아놓은 인덕 덕분 아니겠어?”
만일 남궁상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피를 토하고 그 웅덩이 위에 쓰러져 익사했으리라.
“인덕? 그건 자네의 정신에게 분실된 제일 첫 번째 물건이 아닌가? 언제부터 자네에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이 생긴 겐가?”
“글쎄?”
비류연은 장홍이 보내는 의심스런 눈초리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마침내 장홍은 긴 한숨을 내쉬며 항복했다.
“에휴! 됐네, 됐어.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되네. 뭐, 또 분명 쥐어짜 낼 만한 약점이라도 잡은 거겠지.”
거기까지가 장홍이 추리할 수 있는 한계였다.
“그러고 보니 관은 어찌 되었지?”
비류연의 질문에 장홍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그것 때문에 또 소동이라네. 좀 문제가 생겨서 말이야…….”
“문제? 무슨 문제?”
“어떻게든 시체를 검시해야겠단 사람들이 나타났거든. 무원대 소속 사람들인데 검시는 행정상 꼭 필요한 절차라고 주장하고 있다네. 곤란한 건 그게 사실이라는 것이지. 그들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뿐이거든.”
“그래서?”
“일단 대치 중이라네. 진 소저가 자신의 시체를 넘기 전에는 절대로 넘겨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거든.”
“흠, 그렇다면 꽤 시끄럽겠군.”
과연 진령을 설복시킬 인재가 있을까? 그 대답이 무척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비류연은 여전히 태연자약할 수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 텐가, 류연? 엄청난 일이 되어버렸는데?”
염려스런 어조로 장홍이 물었다.
“잘됐지 뭐. 이 차가운 지하 세계에서도 따끈따끈하게 느껴지는 뜨거운 반응! 기대 이상인걸!”
“그런 태평한 소릴 그리도 태연하게 말할 수 있다니… 젠장, 자네를 볼 때마다 매번 감탄하게 되는군.”
“웃훗훗훗, 많이많이 앙모하도록 하시오.”
비류연이 우쭐하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 뒷수습도 그렇고… 잘 끝날 수나 있을지 의문일세.
“나이 들면 느는 건 주름하고 걱정밖에 없다더니. 걱정 마. 아직도 밖이 조용한 걸 보면 아무 일도 없는 모양이네. 그럼 괜찮겠지.”
사건을 벌인 장본인은 태연자약하기만 했다.
“이보게, 류연, 궁금한 게 하나 있네.”
장홍이 물었다.
“하나 정도라면 뭐. 물어보시죠.”
“그… 시체는 어디다가 유기했나? 그 관은 그러니까…….?
“비었다고?”
“그래, 바로 그걸세! 죽은 자에 대한 모욕이 문제가 아니라 관 안에 모욕당할 그것마저도 없다는 게 더 큰 문제 아닌가!”
그렇다. 지금 진령과 현운이 울고불고하며 지키고 있는 관은 텅 빈 관이었다.
“걱정마! 잘 알고 지내던 곳에 부탁해 놨으니깐.”
“내가 지금 걱정 안 하게 생겼나? 도대체 거기가 어딘가? 나한텐 몰래 알려줄 수도 있잖나?”
“그 질문, 두 번째로 간주해도 되겠죠? 답을 하나만 준비해 둔 터라 이제 비축분이 다 떨어졌는데…….”
명명백백한 거절이었다.
“이보게, 류연! 우리 사이에 자네, 그러긴가?”
장홍의 항의에 비류연이 화들짝 놀라하며 외쳤다.
“이 아저씨가 누가 들으면 큰일날 소릴! 우리 사이가 무슨 사이긴, 아무 사이도 아니지! 남이 들으면 곡해할 소리 하달 마쇼. 누구 혼삿길 망칠 일 있어요? 게다가 아저씬 내 취향이 아니라구!”
비류연이 단호한 목소리로 딱 잘라 말했다.
“그런 섭한 소릴! 우린 끈끈한 우정으로 뭉쳐진 사이 아닌가! 그러지 말고 대답해 주게!”
“어허, 그러니깐 처음 질문할 때 잘했어야지. 그럼 답은 이미 나와 있었을 것을 말야. 질문을 제대로 못하니 답도 제대로 못 얻지. 이 교훈은 덤으로 그냥 줄 테니 공짜로 가져가요.”
그리고는 더 이상 그 일에 관해서 말하기를 그만두었다.
“쳇, 관두지, 관둬!”
비류연의 한번 다물어진 입을 다시 열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오늘은 주머니가 비었으니 이만 물러가겠네. 다음에는 꼭 대답을 들려주게.”
“먼저 주머니를 두둑이 채워오면 생각해 볼게요.”
비류연이 손을 흔들며 배웅하자 멀어져 가던 장홍의 발걸음이 우뚝 멎더니 뒤돌아보며 한마디 한다.
“치사한 녀석!”
그러자 비류연이 생긋 웃으며 화답했다. “과찬의 말씀!”
“괜찮… 소, 진 소저?”
한 손에 흰 손수건을 든 채 걱정스런 표정으로 현운이 물었다.
“엉엉엉! 어떡하죠, 현운? 눈물이 멈추질 않아요.”
벌겋게 퉁퉁 부은 두 눈을 보이며 진령이 하소연했다. 그 처절한 모습에 현운은 움찔하며 무의식적으로 몸을 살짝 뒤로 뺐다.
“쯧쯧, 천하의 아미일봉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몰골이구려. 말벌에 쏘였어도 지금 진 소저의 두 눈덩이만큼은 안 부었을 거요. 도대체 뭘 썼길래 그런 몰 골이 된 거요?”
“이거요!”
그러면서 진령은 오른손에 쥐고 있던, 하루 종일 그녀의 눈물을 닦아내던 손수건을 들추어 보였다. 그 안에는 동그랗게 묶인 쌈지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이게 도대체 뭐요?”
“흑흑…… 고춧가루랑… 훌쩍… 양파 다진 거요. 훌쩍.”
“컥!”
현운의 인상이 팍 찌그러졌다. 그는 감히 그 고통을 상상할 자신이 없었다. 물론 경험하는 것은 더 더욱 사양이었다.
“효과 하나는… 끝내줬겠구려.”
“흑흑, 훌쩍훌쩍… 그래서… 아직도 괴로워요. 훌쩍훌쩍.”
“도대체 그런 잔인하고 끔찍한 방법, 누가 권해준 거요?”
“흑흑… 누구긴 누구겠어요…… 훌쩍훌쩍. 한 사람뿐이지……. 훌쩍!”
현운이 알 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대사형인가 보구려…….”
“훌쩍! 맞아요! 훌쩍.”
억울하다는 듯 진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사형의 말에 곧이곧대로 따른 내가 바보였어요. 훌쩍.”
“하지만 효과 하나는 끝내줬지 않소. 다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많이 힘들었다오. 자, 내 손도 보시오.”
진령 앞에 내밀어진 현운의 손은 손톱자국이 깊게 패어 있었고, 매우 벌겋게 변색되어 있었다.
“참느라 힘들었겠네요. 훌쩍훌쩍!”
“그렇소. 다른 친구들도 어디 한곳쯤은 다 이럴 거요. 입술이든 허벅지든 어느 한곳은 말이오.”
“하지만 나보다 상태 심한 사람 있나요?”
잠시 고민하던 현운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으음… 없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