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0권 11화 – 범죄를 촉탁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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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20권 11화 – 범죄를 촉탁하는 밤

범죄를 촉탁하는 밤

ᅳ팔할의 확률

냠냠쩝쩝.

“그 녀석은? 출발했어?”

감옥 철창을 사이에 두고 연신 입을 오물거리던 비류연이 물었다.

“방금 배웅하고 오는 길이네.”

장홍이 얼굴을 숨기기 위해 뒤집어썼던 검은 피풍의를 벗으며 대답했다.

“좋아! 그럼 이제 결과만 기다리면 되겠군.”

두 손을 마주 비비며 비류연이 웃었다.

“자넨 정말 오늘이라고 확신하나?”

여전히 미심쩍다는 어조로 장홍이 물었다.

“쯧쯧,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의심만 많아진다더니. 아직도 미심쩍은 거유?”

딱하다는 투로 한마디 쏘아준다.

“누, 누가 아저씨라는 건가! 난 자네들과 엄연히 동갑인 이십대 청춘이란 말일세, 이십대 청춘!”

장홍이 발끈해서 외쳤다. 그러자 비류연이 안됐다는 듯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쯧쯧, 아무리 발악해도 시간의 화살은 막을 수 없는 법. 이제 그만 포기해요. 그리고 내가 지금 ‘아저씨’라고 했나? 그냥 나이가 들었다고 했지. 안 그래요? 홍 아. 저.씨! 찔리는 건 있어갖고. 쯧쯧!”

“뭐, 뭐라고! 자네 말 다 했나?”

분함을 이기지 못한 장홍의 인상이 대번에 험악해졌다. 하지만 비류연의 태도는 여전히 태연자약하기만 했다.

“말은 다 했지만 진실은 영원하죠. 원래 진실은 엄격한 법. 그걸 받아들이는 것 또한 용기. 젊어지고 싶다면 먼저 늙었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되는 거 아닌가? 자 기 자신을 외면한 채 무슨 발전을 할 수 있겠어요? 안 그래요, 호옹~ 아.저.씨?”

그치기는커녕 청산유수같이 이어지는 비류연의 달변 공세에 장홍은 앓는 소리를 냈다.

“끄응, 내가 자네랑 입씨름을 하다니 미쳤지, 미쳤어! 본전도 못 뽑을 것을. 그 얘긴 그만 하고 본론으로 돌아가세.”

“그럼 믿는 겝니까?”

“그래, 믿지, 믿어. 그런데 믿는다 해도 정말 그 친구 혼자서 되겠나?”

“괜찮아, 궁상이도 있으니깐.”

걱정 말라는 투로 비류연이 대답했다.

“자넨 분명 오래 살 걸세!”

그의 태평함에 질린 장홍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전혀 걱정이 안 되나? 아님 나도 모르는 새 이미 이중 삼중의 안배를 다 마쳐 놓은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심장이 강철로 됐다 해도 저리도 느긋할 수가 있 겠는가!”

“준비된 자만이 다가올 미래를 느긋하게 기다릴 수는 없는 법. 그편이 정신 건강에도 훨씬 좋다구요.”

열심히 젓가락을 놀리며 비류연이 여유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그렇기야 하겠지. 근데 자네 지금 먹고 있는 게 뭔가?”

연신 부지런히 젓가락을 놀리는 비류연을 보며 장홍이 물었다. 그가 여기 왔을 때부터 그의 손에 계속 들려 있던 것이었다. 검은 칠기로 만든 찬합이었는데, 밥과 여러 가지 반찬들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 반찬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장홍 자신의 눈썰미로도 판별할 수 없었다. 그가 요리에 문외한이어서가 아니라 형체를 파악 하기가 불분명했던 까닭이다.

“아, 이거. 사식.”

“사식? 혹시 그 안에 독 들어 있는 것 아닌가?”

심각한 표정으로 장홍이 물었다.

“왜? 아무 일도 없는데?”

“그렇지 않고서야 누가 자네에게 손수 만든 사식을 넣어준단 말인가? 분명 독이 들어 있을 걸세. 암, 그렇고말고.”

거의 확신에 찬 어조로 장홍이 말했다.

“걱정도 팔자요. 나한테도 그럴 만한 사람이 있다구. 그건 그렇고 이 야채볶음 말이야, 재료의 절단면은 가히 신의 경지라 할 만한데, 화력 조절에 실패한 것 같아. 냠냠얌냠!”

“자네 잘도 그런 걸 맛있게 먹을 수 있군 그래.”

“응, 그야 이 도시락엔 사랑이 담겨 있으니까 그렇지. 사랑하는 님이 만든 건데 당연히 맛있게 먹어야 하지 않겠어?”

“사랑하는 님? 그게 대체 누군데?”

상식인을 자처하는 장홍으로서는 그런 불가사의한 존재가 이 강호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나한테 그런 사람이야 딱 한 사람뿐이지.”

뻔한 걸 왜 묻느냐는 투로 비류연이 반문했다.

“서, 설마… 그럴 리가…….”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 봐도 상상이 가지 않았다.

“바로 그 설마 맞아. 냠냠.”

입을 오물거리며 비류연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러면서 또 한입 집어넣는다.

“마, 말도 안 돼! 설마 그 나예린 소저가? 거짓부렁 치지 말게.”

장홍의 두 눈이 경악으로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허풍에도 정도가 있는 법, 무절제한 허풍은 어떤 설득력도 지니지 못한다는 게 그의 평소 지론이었다.

“거짓말은 무슨, 엄연한 사실인데. 때론 현실이 상상을 능가한다는 사실도 몰라요? 허구보다 더 허구처럼 보이는 현실도 있는 법이라구. 예린이 굳이 타인의 빈약 하고 볼품없는 상상력에 맞춰 행동할 필요는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자넨 그 귀한 걸 먹으면서 잘도 그런 소릴 지껄일 수 있었군 그래. 그게 설마 나 소저가 만든 음식이었다니……. 예린 소저가 만든 음식이라면 그 안에 독이 들어 있다 공표해도 행복하게 먹을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는 걸 모르나? 황제도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 그 말일세.”

이 사실이 알려지면 또다시 비류연은 만인의 공적이 되리라. 안 봐도 눈에 훤했다. 자기들의 우상을 변화시키지 마라. 정확하게는 오염시키지 마라, 라고 말할 게 뻔했다. 그런 여신 따위 보고 싶지 않으니까. 그들에게 그녀는 잡을 수 없는 달이면 족했다.

달은 결코 땅에 내려와서는 안 되었다.

***

어둠에 몸의 대부분을 갉아 먹힌 달은 이제 반쪽짜리 지륜輪 같은 엷은 빛의 찌꺼기만 남긴 채 하늘의 중앙에서 지평선 바로 위까지 끌어내려져 있었다. 별은 밤바다의 칠흑 같은 수면 아래에 빠져 익사한 지 오래였다. 자신의 행위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뒤가 켕기는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묘한 안도감을 가져다 준다. 철저한 익명성이 보장되는 덕분에 자신의 행동에 대해 눈을 돌리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범죄를 촉탁하는 듯한 그런 밤이었다. 습격하 기 좋은 날이었고, 습격받기 좋은 날이기도 했다. 순간적인 오싹함에 몸을 부르르 떨며 남궁상은 조용히 뜰 위에 내려섰다. 밤의 한기 때문은 분명 아니었다.

“대사형이 또 무슨 얼토당토않은 괴(怪)생각이라도 하나?”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마음과 생각은 행동을 일으키기 위한 동력원이라는 게 대사형 비류연의 지론이었다. 거기까진 좋다. 아주 좋다. 아무 이상 없다. 훌륭하기까지 하다. 근데 문제는 그의 경우 그게 좀 정도가 심했다. 생각과 행동 사이의 간격이 너무 없다 보니 때때로 거의 허무맹랑한 망상까지도 현실화되어 버리는 경향이 종종 있었던 것이다.

현실화된 망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물론 그들 주작단이었다. 그중에서도 자신이었다. 자신이 지금 이곳에서 이러고 있는 것도 그것과 전혀 무관하지 않았다. 평범 하게 살고 싶었지만, 매일매일 비상식을 현실 속에 토해내는 대사형 비류연 곁에서는 허망한 꿈에 불과했다. 하루빨리 이 지긋지긋한 악연이 끝나기를 속으로 빌지 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기도만으로 안 되는 게 있는 것이다.

“기도? 웃기시네. 빌기만 하면 하늘에서 뭔가 뚝 떨어질 거라 생각하는 거냐, 지금? 신이 무슨 만능심부름꾼이라도 되는 줄 아냐? 신의 수준을 깔봐도 정도껏이지. 그게 오히려 신에 대한 모독이란 걸 왜 몰라? 아무 행동도 안 하면서 뭔가를 바라는 것만큼 뻔뻔한 일도 드물지. 암, 드물고말고. 가장 큰 기도가 뭔 줄 알아? 그건 바로 행동이야! 기도를 왜 하는 줄 아냐?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한 의지를 다지기 위해서 하는 거라구.”

그런 대사형을 상대하려면 기도만으로는 약발이 안 먹힐 게 분명했다. 차라리 그보다는 자기 자신을 단련해서 대사형을 이길 만한 실력을 쌓는 쪽이 훨씬 현실감 있었다.

“진짜 나타나긴 나타나는 걸까? 이거 괜히 헛수고만 하는 거 아냐?”

바로 그 대사형이 예상하기로는 오늘쯤이었다. 사실 예상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공손절휘는 바보라도 능히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단순 반복적 규칙성을 가지고 일을 벌여왔던 것이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오히려 남궁상으로서는 덕을 볼 수 있었다.

“하루도 거르지 마! 바로 미끼를 잡은 다음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대비해 발빠른 자들이라면 분명 바로 그 다음날 곧바로 다시 습격해 올 거야. 팔 할 정도의 확 률이지. 하지만 그놈들이 조금 눈치가 없고 굼뜨다는 가정하에서 하루나 이틀 정도 유예를 둘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

“만일 안 나타나면 어떡하죠?”

“그럼 할 수 없지. 또 습격하는 수밖에.”

습격이란 말을 너무도 가볍게 입에 담는 비류연을 찌푸린 눈으로 바라보며 남궁상이 반문했다.

“또요?”

“그래. 아무 녀석이나 만만한 녀석 하나를 잡아서 처리하도록 해. 단, 하루도 거르지 마. 그 다음날 저녁에도 반드시 나타날 거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게 중요해. 적 이 나를 신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말이야. 알아듣겠냐?”

“꼭 그래야만 합니까…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에게…….

“사건이 이렇게까지 크게 벌어졌는데도 여태껏 대비 안 한 녀석들이 잘못이지. 불행이 자기 한 사람만 비켜갈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게 아니란 걸 보여주는 수밖 에!”

“그런…….”

남궁상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무사안일한 태연함의 극치에 질려 버리고 말았다. 한두 번 겪은 게 아닌데도 아직 적응이 잘되지 않았다. “순찰 도는 녀석들한테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남궁상은 자신이 죽기 전에 남긴 비류연의 마지막 경고가 떠오른다. 그렇다! 자신은 죽었다, 공식적으로! 자신이 죽은 후에 벌어질 광경을 한 명의 관조자로서 바 라본다는 것은 묘한 기분이었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고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그날이 오면 그때도 이런 분위기, 이런 모습일까? 이런 걸 미리 예행연습이라도 하 듯 훔쳐볼 수 있는 것은 과연 행일까, 불행일까? 결코 같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는 과거의 제약을 받게 마련이기에 수십 년의 미래가 과거가 되어 만들 그때의 모습 은 결코 지금과 같을 수 없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 우울해졌다. 이미 자신은 비류연이란 이 인간을 대사형 삼은 그 업보로 인해 범죄자로 낙인찍혀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섬뜩하기 짝이 없는 예감이 엄습했던 것이다. 과연 앞으로의 자신은 그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자신의 의지가 약하기 때문인 것을 감히 누구 를 탓할 수 있겠는가.

“제발 오늘 나타나라…….’

남궁상은 속으로 조용히 그렇게 비는 수밖에 없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대사형의 말대로 바란다는 것이 단순히 골방에 처박혀 기도만 하 는 게 아니라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라면 자신도 할 만큼은 했다. 이미 죽기까지 했으니까. 더 이상 죽 은 채로 남아 있는 것은 사양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공손가의 젊은 친구랑도 하루빨리 헤어지고 싶었다.

‘령아…….?

갑자기 진령이 미칠 듯이 보고 싶었다.

‘그래, 하늘에 소원 비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언제 돌아올지 모를 번호표 받은 채 하릴없이 기다리는 것보다 직접 해결하는 게 더 빨라!’

그 모든 사람들 민원을 몽땅 해결해 주려면 하늘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게 분명했다. 남궁상은 초상비(草上飛)의 신법을 전개하여 소리없이 중양표국의 한쪽 담 그림자 밑으로 접근했다. 풀만 밟으며 그 반동으로 움직였기에 어떤 잡음도 울리지 않았다. 밤 보초는 조금 전 이곳을 지나간 터라 한참은 오지 않을 터였다.

‘좋아!’

남궁상은 안심하고 담을 넘을 준비를 했다. 경계가 잠시 게을러졌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라고 했던가? 그를 불러 세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사내대장부라면 모름지기 대도(大道行)을 해야 하거늘 어찌 도둑괭이처럼 살금살금 움직이는가?”

등 뒤에서 느닷없이 들려온 여인의 준엄한 꾸짖음에 남궁상은 화들짝 놀라 몸을 홱 돌렸다. 어느새 나타났는지 성장을 모두 갖춰 입은 진소령이 팔짱을 낀 채 엄한 눈초리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리에 검까지 매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준비를 다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제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벌써 이로써 두 번짼가?”

어제는 들어오려다가, 오늘은 나가려다 딱 걸리고 만 남궁상은 은신잠행(隱身潛行)에 대한 자신의 미숙함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백하자면 소위 강호에서 야행(夜行)이라 불리는 은신잠행술에 대한 그의 성적은 다른 여타 과목에 비해 그다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예의 그 습격자를 잡으러 가나?”

“네… 그렇습니다.”

감히 거짓을 고할 수 없기에 남궁상은 사실대로 고했다. 설령 반대한다 해도 자신의 의지를 꺾을 생각은 없었다. 가야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기에 충분히 주 의를 기울이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나도 함께 가겠다.”

갑작스레 진소령이 선언했다. 거부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그녀는 단숨에 핵심에 접근했다.

“예? 하, 하지만…….”

그건 정말 뜻밖의 반응이었다. 갑작스레 닥친 의외의 사태는 단숨에 남궁상의 사태 처리 능력을 넘어서고 말았다. 그것은 그의 예상 범주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열외의 일이었던 것이다. 고작 말이나 더듬는 게 전부였다. 거절하자, 아니, 반드시 거절해야 한다. 남궁상은 그렇게 결심했다. 진소령이 이 일에 끼어들 이유가 없 었다.

“불가(不可)합니다. 저희들만 가게 해주십시오.”

“왜 안 되지? 이유를 들어볼까?”

조용하고 침착한 응대였지만, 만일 설득력없다면 무시하겠다는 뜻이 듬뿍 담겨 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남궁상이 간절한 목소리를 담아 외쳤다.

“당신께 폐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진소령은 감동하지 않았다, 전혀!

“전혀 설득력이 없군. 그게 나에게 폐가 되는지 안 되는지 자네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나? 그런 판단은 전적으로 나의 의지에 달려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 내가 잘못 알아온 건가?”

별 희한한 소릴 다 들어보겠다는 투로 진소령이 반문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무엇을 택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고자 하는 진소령의 주체적 지향에 타인에 불과 한 남궁상이 감놔라 배놔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그건… 사회 통념적으로…..

변명 시작부터 말문이 막혔다.

“만일 내가 그 사회적 통념을 거부한다면?”

진소령이 반문했다.

“…자신의 의지에 따르셔야겠지요.”

비류연과 오랜 시간 엮인 덕분에 남궁상은 포기해야 할 때와 포기하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는 법을 익혔다. 이건 확실히 전자였다. 만근거력도 그녀의 굳은 의지 를 뒤흔들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럼 결정난 건가?”

사실 남의 의지에 자기가 함부로 개입해서 왈가왈부하는 것도 주제넘는 짓이었다.

“예, 그렇습니다.”

남궁상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그러나 남궁상의 수난은 아직 여기가 끝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잠깐! 진 소저께서 가신다면 나도 간다.”

그것은 매우 당연하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투로 말하며 나타난 이는 점창제일검 유은성이었다.

‘저 아저씬 또 왜?”

남궁상은 속으로 비명을 두 번 질렀다. 지끈거리는 골을 쥐어 싸매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런 호사를 누릴 여유는 주어져 있지 않았다.

“왜 대답이 없나? 설마 불만인 건가?”

강경한 어조로 유은성이 재차 물었다. 거부를 용납하지 않는 패기 가득한 목소리. 그에게 있어 남궁상이나 공손절휘가 어찌 되든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이 남자의 관심사는 오로지 진소령뿐이었다.

“그, 그건…….”

바야흐로 남궁상의 사태 처리 능력은 마비 상태에 이르렀다. 진소령 한 사람도 감당하기 힘든데 거기에 거의 동급이라 할 수 있는 유은성까지 따라붙겠다니. 이 일 은 은밀 기동이 생명인데 이래서는 식구가 너무 많아지고 말았다.

“뭔가, 그 거무죽죽한 얼굴은? 설마 자네.

날카로운 어조로 유은성이 추궁하자 남궁상은 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아무런 불만도 없습니다.”

“에라, 될 대로 되라! 난 모르겠다.’

당시 남궁상의 마음에서 울려 퍼지던 공허한 메아리였다.

“두 분께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군요.”

풀죽은 목소리로 남궁상이 말했다.

“신경 쓸 필요 없다. 이것은 너의 선택이 아닌 나의 선택이니 말이다. 아직 자네를 그 아이의 배필로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만일 자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 아이는 분명 슬퍼하겠지? 그 아이가 슬퍼하는 얼굴은 아직 보고 싶지 않구나. 게다가…….”

“게다가 만일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누구랑 싸워야 하느냐? 싸울 상대가 없어지고 말지 않겠느냐?”

“가, 감사합니다, 고모님!”

코허리가 시큰해진 남궁상이 감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진소령이 정색하며 말했다.

“잠깐! 아직 그 호칭으로 날 부르지 마라. 그 호칭으로 나를 부르기 위해서는 약속된 승부에서 날 이겨야 한다. 알겠느냐?”

그녀는 맺고 끊는 게 확실한 여인이었다.

“알겠습니다, 진 여협!”

남궁상이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얼렁뚱땅 넘어가려던 경솔한 자신을 책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가도록 할까요, 유대협?”

“그러지요.”

“그전에 우선…….”

진소령이 잠시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뭣 하고 있는 게냐? 어서 나오지 않고?”

엄격한 한마디에 삼 장쯤 떨어진 객사 구석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보이지 않는데도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히 느껴졌다.

“빨리 나오너라. 뭘 그리 꾸물거리느냐? 내가 직접 끌어내야겠느냐?”

그제야 두 사람이 어두운 그림자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유란과 유운비였다. 두 사람은 모두 켕기는 게 있는지 뻘쭘한 얼굴이었다. 움직이는 품새 또한 감옥에 끌려가는 죄수의 걸음걸이를 보는 듯 위태롭고 엉거주춤했다. 옆에 있던 유은성이 그 모습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거기서 야심한 밤에 남녀 둘이서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냐?”

“무, 무슨 짓이라뇨. 저흰 그저…….”

어떻게 들으면 매우 야해질 수 있는 그런 질문에 두 사람 모두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따라오고 싶었던 것이다. 한몫 끼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두 사람 다 아직 반편이 검객들을 데리고 갈 만큼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너희들에게는 아직 무리다. 두 사람은 여기 남아 있도록 해라!”

진소령이 단호한 어조로 딱 잘라 말했다. 고개를 떨군 채 무릎을 꿇고 있던 유란과 유운비의 고개가 번쩍 치켜들렸다.

“어째서요? 저희도 데려가 주세요, 사부님.”

유란이 애원했다. 유운비도 거들었다.

“부탁입니다. 저희도 데려가 주십시오!”

진소령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약간 엄하면서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당연한 이야기를 꼭 다시 한 번 내 입에서 듣고 싶으냐? 그렇게 나를 무능한 사부로 만들고 싶은 게냐? 날 더 이상 무능한 사부로 만들지 말아주려무나.” “그, 그건…….?

유란의 고개가 아래로 떨구어졌다. 너무 뻔한 이유 하나 제대로 유추해 내지 못하는 무능무지한 제자를 길러냈다는 오명을 갖지 않게 해달라는 뜻임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너희들은 약하다!’

그녀라고 해서 어찌 그 질문에 포함된 이면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겠는가. 다만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는 법이다.

“진 소저의 말씀대로다. 이 일은 너희들이 함부로 끼어들기엔 너무 위험천만하다. 너희들이 왜 이곳에 왔는지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너희들은 살인 사건의 범 인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무학관에 입관하기 위해 왔음을.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에 뛰어들기 전에 먼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거라!”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말았다. 당연했다.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심지어 죽을 수도 있었다. 장난치러 가는 게 아니었다. 지금 그들이 가야 할 곳은 자칫 잘못하면 철과 철이 부딪치는 불꽃 아래에서 생명이 교차할 수 있는 실전의 장이었다.

“더 이상 이견은 없는 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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