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0권 13화 – 채무 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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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20권 13화 – 채무 이행

채무 이행

-빚 청산

‘나는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 걸까??

달조차 뜨지 않는 어두운 심야의 밤하늘 아래에서 모용휘는 속으로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애석하게도 이유는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납득이 안 갈 뿐. ‘선불일세.”

그때 비류연은 그렇게 말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모용휘는 내밀어진 친구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외상일세!’

그러자 그의 친구는 절망하며 통곡했다.

‘아아, 이럴 수가! 오호 통재라! 휘, 나의 친구여! 지난날 티없이 맑고 깨끗했던 너는 대체 어디로 가버리고 말았느냐! 한 점 티없이 순순했던 과거의 너를 이리도 타락시킨 이는 대체 누구란 말이냐! 아아! 아아! 예전의 그 귀엽고 순진했던 청년을 난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인가! 이제 우리는 어딜 가서 그를 찾아야 한단 말이냐! 아아,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낯 뜨거울 정도로 과장스런 표현에 모용휘는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누, 누가 귀엽고 순진한 청년이라는 건가?!”

비류연의 손가락이 곧장 모용휘의 심장을 향했다.

“바로 너! 그때의 너였다면 외상 같은 비도덕적이고 불성실스럽기 짝이 없는 언사는 감히 입에 담지 못했을 테지. 그것이 바로 타락의 증거!’

‘남을 함부로 타락시키지 말아주게, 외상 따위로.’

‘외상 따위라니! 이 친구 큰일 낼 친구네! 내 사전에 외상은 없네. 돈이 없다면 할 수 없지… 몸으로 갚는 수밖에!’

‘모, 몸으로…….?

‘그래, 몸으로.’

‘모, 몸으로 어떻게 말인가??

마른침을 삼키며 모용휘가 물었다.

‘흐흐흐, 땀 좀 흘려줘야겠어.’

‘뭐, 뭐라고! 어떻게 그런 걸…….?

순진무구한 청년 모용휘의 얼굴이 몰라볼 정도로 새빨갛게 변했다.

“야야, 너 지금 무슨 망상하냐? 아서라. 일없다. 그런 식의 몸과 땀 말고 다른 식의 몸과 땀 말야. 알겠어??

‘그, 그런가? 휴우~ 난 또……. 그런 거라면야…….’

그때 고개를 끄덕이지만 않았더라도…….

“이렇게 되진 않았겠지!’

모용휘는 나직이 한숨을 쉬며 앞을 바라보았다.

“잠깐!”

막 그의 일 년 선배인 남궁상이 괴한에게 질문을 하나 던지고 있었다.

“잡아가기 전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이시건이 퉁명스런 어조로 대답했다.

“내키면 그 질문에 답해주지. 죽이기 전에 말이야!”

“내키지 않아도 들을 생각이지만… 굳이 그(비류연)를 택한 이유가 뭔가? 그가 너희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이기 때문인가?”

돌아온 것은 뀌다 만 콧방귀였다.

“흥, 위협적인 존재? 우리는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위협받지 않는다. 비류연이란, 그런 웃기지도 않는 모습을 한 녀석의 이름 따윈 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들려오는 몇 가지 소문도 다들 황당하고 괴상한 것들뿐, 운수가 억세게 좋다는 것 이외에는 뭐 하나 제대로 된 얘기가 없었다. 아무도 그 무명지 배(無名之輩)의 실력에 대해 관심조차 가지지 않더군. 다만 미워하고 증오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뭣 하러 그런 별 볼일 없는 놈을 무서워할 필요가 있지?”

그의 비류연에 대한 평가는 가차없었다.

“그럼 왜 굳이 그를 택했나?”

이시건은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그저 지난번 화산지회의 우승자이기만 하면 그 누구라도 전혀 상관없었지. 우린 단지 그 상징적인 명칭이 필요했을 뿐이야. 근데 설마 그렇게 고른 놈이 화산지회에서 ‘얼떨결에 우승한 놈인 줄 어떻게 알았겠나? 사실 그 때문에 고민도 좀 했지. 용천명이라던가 마하령이라던가, 아니면 저쪽에 서 있는 모용세가의 도련님이라던가 좀 더 그럴듯하게 보이는 인간들도 많았거든. 여기 와보니 모두들 그러더군. 그놈, 비류연은 비겁한 놈이라고. 화염 때문에 우 왕좌왕하며 정신없는 틈을 타서 엉겁결에 우승을 차지한 천하의 비겁무쌍한 놈이라고, 다들 입 모아 성토하더군. 상금에 눈이 멀어 그런 비겁한 짓을 서슴없이 저지 르다니 천하에 나쁜 놈이라고 말이야.”

아무래도 관주 집무실 앞마당에서 벌어졌던 궐기대회를 이야기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뭐, 상금도 목적 중 하나였겠지.’

남궁상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였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그는 알았다. 언제나 일석삼조 이상의 극대화된 효율을 노리는 것이 바로 비류연이란 인간이었다.

‘역시 이 녀석은 그 사람의 진면목을 몰라!’

그때 그 광경이 꽤나 웃겼던지 회상하던 이시건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손을 쓰기도 전에 자기들이 먼저 죽이려 하더군. 살다 살다가 그런 꼴을 보긴 또 처음이었지. 별로 여론 조작 같은 걸 할 필요조차 없더군. 꽤 재미 난 구경거리였다. 그런 걸 보고 자중지란(自中之亂)이라고 하나?”

자신 역시 천무학관의 일원이었고 그들 역시 천무학관의 일원이었기에 남궁상은 자신의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그런 걸 적에게 지적당하다니 좀 부끄럽긴 하군. 내 얼굴 좀 빨개지지 않았나? 그 보답으로 충고 하나만 하지!”

“충고? 무슨 충고?”

남궁상이 냉소하며 말했다.

“당신은 아직 몰라, 그의 진짜 무서움을. 몰라도 정말 한참 모르고 있어. 그 무지(無知)가 자신의 목을 죄는지도 모르고 말이지. 안 그런가, 휘?”

모용휘가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좀 무섭죠.”

“이보게, 휘. 그 사람한테 직접적이고도 금전적인 피해를 안겨주고 정말 저 친구가 무사할 거라 생각하나?”

이시건을 사이에 두고 모용휘가 매우 회의적인 투로 대답했다.

“그건 좀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선배님. 저도 빚 한 번 잘못 져서 이 한밤중에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니까요.”

그 마음 왜 이해 못하겠냐는 듯 남궁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네, 이해하고말고. 그래도 자넨 나보다 행복한 줄 알아야 하네. 빚은 갚으면 청산할 수 있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청산이 안 되는 지긋지긋한 인연이란 것 도 있단 말일세.”

남궁상이 푸념하며 말했다. 이미 그들 사이에 끼어 있는 이시건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게 무슨…….”

비류연과 남궁상과의 관계를 자세히 모르는 모용휘는 남궁상의 한탄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아닐세, 그냥 푸념일 뿐이었네. 절.대. 그 사람에겐 말하지 말게.”

남궁상이 다짐시키며 말했다. 너무나 진지하고 왠지 간절한 어조였기에 모용휘는 차마 거절할 수 없어 ‘네’라고 대답했다.

이 광경을 멀뚱히 지켜보고 있던 이시건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허허…..”

태어나서 이렇게 깔끔하게 ‘개무시당한 적은 처음이었다. 어느새 주제와 관심사는 자신에게서 그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비류연이란 인물에게로 옮겨가 있었던 것이다. 어떤 힘이 그 일을 가능케 했는지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는 불쾌했고, 어떻게든 쌓인 화를 풀어야 했다.

“자자, 그럼 이제 잡담은 끝난 것 같으니 이제 그만 죽어주실까?”

양손을 탁탁 털며 이시건이 말했다. 남궁상은 어이가 없었다.

“너무 자신만만한 것 아니오? 이쪽은 둘인데, 과연 그게 가능하기나 하겠소?”

“물론!”

자운(雲) 암풍暗風).

오의(義).

질풍인(風).

흑응비섬(鷹飛閃).

이시건이 매의 손톱처럼 구부린 양손을 가슴 부근에서 교차하자 다시 한 번 보이지 않는 질풍이 몰아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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