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0권 20화 – 소년, 천무학관에 서다

랜덤 이미지

비뢰도 20권 20화 – 소년, 천무학관에 서다

소년, 천무학관에 서다

-신용을 지키면 보답은 언젠가 돌아오게 마련

“음, 은성이 자네도 오랜만일세! 그런데 자네 이마는 또 왜 그런가? 마치 검댕이라도 묻은 것처럼 시커멓군 그래? 무슨 일 있었나?”

막 진소령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마진가의 시선이 유은성의 이마에 가 멈추었다.

“아, 아닙니다, 선생님! 별일 아닙니다.”

유은성이 어떻게든 손으로 어제의 멍 자국을 가려보려 애쓰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난 또 점창제일검이 누구에게 한 방 맞은 줄 알고 깜짝 놀랐지 뭔가.”

“그, 그러시군요…….?”

억지로 쥐어짜낸 자신의 미소가 일그러져 있다는 것을 유은성은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 이 아이들인가?”

인사를 마친 마진가의 시선이 유씨 남매에게로 가서 멈추었다. 아직도 생소한 환경에 적응이 안 됐는지 소년과 소녀는 진소령 곁에 바싹 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았 다. 특히 선아의 경우가 심했는데, 사실 철권 마진가의 우락부락한 고동색 거구는 어린 여자 아이의 눈에는 괴물이나 맹수로 보일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마진가의 키가 워낙 크다 보니 더욱 무섭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여아의 표정이 울상이 되자 마진가는 아차 했다.

“이런이런. 이 할애비가 눈치가 없어서 실수를 한 모양이구나. 위만 쳐다보고 있자니 목이 많이 아팠지?”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마진가가 자신의 몸을 낮추어 어린 남매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이제야 이 할애비도 이야기하기가 편하구나.”

그 미소를 보고 나자 선아도 조금은 안심이 되는 모양인지 표정을 풀었다. 마진가의 자상한 시선이 소년 유경영을 향했다.

“그래, 네가 청룡은장주 유재룡의 장손인 경영이냐?”

“예, 제가 바로 청룡은장을 이어갈 유경영입니다. 아버님께서 이것을 전해 드리라 하셨습니다.”

소년은 떨리는 손으로 품속에서 비단 주머니를 꺼내 두 손 모아 내밀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많은 생명이 교차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마진가는 엄숙한 표정 으로 그것을 받아 들었다.

“한 번도 이것을 열지 않았구나?”

마진가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걸 어떻게…….?”

“매듭의 봉인이 그대로니까 알 수 있지. 일견 간단해 보이지만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알고 있는 봉인이지. 궁금했을 텐데 잘 참았구나.”

“아버님의 유언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전 아직 어리지만 한 사람의 장사꾼입니다. 장사꾼에게 신용은 생명이라고 아버님께선 늘상 말씀하셨죠. 전 그 말씀에 따랐을 뿐입니다.”

떨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던 소년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마진가의 솥뚜껑만 한 손이 어느새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장하구나, 장해! ‘이것’을 지켜주어 고맙구나. 이것은 앞으로 강호의 운명을 가를지도 모를 그런 물건이란다. 절대 악인의 손에 넘어가서는 안 될 그런 소중한 것 이었지. 이것을 지키기 위해, 아니! 너희 아버님은 강호를 지키기 위해 돌아가신 거란다. 그러니 긍지를 가지거라!”

“아버님… 흑흑……!”

유경영은 기어이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너무나 험난한 여정이었다. 몇 번의 생사 고비를 넘었는지 모른다. 하늘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불가 능했으리라.

“강호는 어떻게든 그 희생에 보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무엇을 도와주면 좋겠느냐?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주겠다.”

마진가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열세 살 소년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불타 버린 청룡은장을 다시 재건하고 싶습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눈빛으로 소년이 대답했다.

“가문의 재건이라…… 겨우 열세 살 소년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 같진 않구나. 정말 대견해, 암, 대견하고말고!”

마진가로서는 유경영의 부탁이 무척 뜻밖이었던 모양이다.

“그럼 도와주시는 겁니까?”

소년이 반색하며 물었다.

“물론! 지원해 주고말고. 한데… 아직 넌 어리지 않느냐? 그 큰일은 아직 네 나이로는 감당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조금 더 클 때까지 기다리는 게 어떻겠느

냐?” 소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기다릴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시작해야만 합니다. 제 의지가 약해지기 전에 말입니다. 그리고 전 혼자가 아닙니다. 저희 청룡은장은 여기 계신 중양표 국 장우양 국주님과 합작동맹을 맺기로 이미 합의하였습니다.”

마진가의 시선이 지금까지 계속해서 잊혀져 있던 장우양을 향했다. 그는 이번 사건의 관계자이면서 표물 운송에 대한 건으로 용건이 있었던 것이다.

“그게 정말입니까, 장 국주님?”

황송하다는 표정으로 장우양이 대답했다.

“정말입니다, 마 관주님. 저희 중양표국은 청룡은장의 재건을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을 여기 있는 젊은 유 장주와 이미 약속했습니다!”

장우양의 대답 역시 단호했다.

“그것이 상인들의 일치라면 더 이상 막지 않겠습니다. 장 국주님도 이번 첫 표행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려운 표행을 무사히 마쳐 주셔서 무엇보 다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중도에 그런 커다란 위험이 닥쳤는데도 아무런 희생 없이 표물을 운송해 오시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저도 이번 일을 통해 이제는 중양표국의 호송 실력을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이번 사건의 일도 있고… 이번 사건에 중원표국 금강십이벽의 한 명이 연루된 것을 확인한 이상 우리 천무 학관으로서도 더욱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 중원표국 전체인지 그자 개인의 독단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잠재 위험을 분산한다는 차원에서라도 단 계적 배분이 필요한 시점이지요. 앞으로는 보다 많은 표물 운송을 중양표국을 통해 움직이게 하고 싶군요. 앞으로 더욱 장 국주님을 귀찮게 해야겠습니다그려.” “가, 감사합니다. 그, 그런 귀찮음이라면 언제라도 환영입니다. 앞으로 더욱더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장우양이 감격하며 대답했다. 마진가의 그 말은 분명 거래 확장 의사가 있다는 표시였다. 그것은 곧 매출 신장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였다. 청룡은장과 합작하고 천무학관의 후원까지 얻게 된 중양표국은 날개 달린 호랑이가 자신을 하늘 높이 띄워줄 바람을 만난 것이나 진배없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