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부활제
-부활의 대가
웅성웅성웅성.
남궁상이 한 발짝 한 발짝 발을 내디딜 때마다 마치 바다가 갈라지듯 인파가 좌우로 흩어졌다. 모두들 흠칫흠칫 뒷걸음질치는 모습을 보며 남궁상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내 팔자야.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이건.
생각보다 주변 반응이 상당히 심했다. 저런 얼굴들을 맞대고 어떻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할까? 남궁상은 자신이 없었다. 그 시선과 일그러진 표정들에 무슨 말이 담겨 있는지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끼아아아악!”
여기까지 오면서 벌써 수십 번은 더 들었던 비명. 앞으로 얼마나 더 들어야 끝날지 알 수 없는 비명이 또 한 번 그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누구냐, 넌?”
알면서 뭣 하러 묻는단 말인가. 눈은 장식으로 달린 게 아니지 않는가.
“네, 네가 왜 여기에…….”
못 올 곳에 온 사람 취급하지 말란 말이다.
“설마 내가 잘못 본 건가?”
그렇게 눈 부비적거리지 마. 제대로 본 거니까.
“그럼 나도 잘못 본 게 맞는 거지?”
아니라니까 그러네.
“이런 환한 대낮에 도대체 왜?”
아, 글쎄 귀신 아니래두 그러네. 이렇게 핏기가 불그스름하게 도는 싱싱한 귀신 본 적 있나?
“저 창백한 얼굴 좀 봐! 분명 원한을 품고 죽어서 그럴 거예요. 복수하러 온 거라구요. 맞아요, 틀림없어요.”
“하지만 그럼 옆에 있는 저 준수한 청년은 뭐죠?”
“애인인가?”
“어머, 꺅! 그런!”
쑥덕쑥덕쑥덕! 쑤근쑤근쑤근!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남궁상의 얼굴은 점점 더 시뻘겋게 변했고, 주먹도 덩달아 부르르 떨렸다.
“이것들이 뚫린 입이라고 잘도!’
이럴 땐 자신의 귀에 개폐장치가 없는 게 한스러운 따름이었다.
기뻐 날뛰어야 할 부활의 첫날.
남궁상의 마음은 기쁨 대신 창피함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다들 강시나 유령을 목격한 것 같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니 마음이 편할 리 만무했다. “다들 시선이 이상하네요?”
함께 동행한 공손절휘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
힘없는 말투로 남궁상이 대꾸했다. 이제는 제대로 대꾸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귀신이라도 보는 듯하잖아요?”
빠직!
남궁상의 머릿속에서 인내심이라는 이름의 실낱같은 끈이 ‘뚝’ 하고 끊어졌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해, 아앙?”
화를 참지 못한 남궁상이 공손절휘의 볼을 좌우로 주욱 잡아당겼다.
“엉? 엉? 엉?”
이놈 때문에 죽지만 않았어도, 이런 따가운 시선은 안 받아도 됐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잔뜩 괴롭혀 주지 않으면 성이 안 찰 것 같았다.
“으갸갸, 죄, 죄소한니안…..”
볼이 좌우로 주욱 늘어난 상태에서 공손절휘가 필사적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아직 모자랐다.
“죄송하다면 다야? 다냐고! 이미 배는 나루터 떠났어! 이젠 돌아오지 않는다고! 과거의 끔찍한 실수가 사과 한마디로 만회되는 줄 알아? 엉? 세상 만만하게 보지 말란 말이야, 이 애송이 도련님아!”
주욱주욱! 쭈우우우욱!
면발 뽑는 숙수의 그것과도 같은 남궁상의 손놀림에 공손절휘의 뺨이 찹쌀떡처럼 이리저리 늘어났다.
“그 손, 멈추라!”
저건 또 뭐지? 남궁상의 고개가 자연스레 돌아갔다.
“저자는 분명 무당파의…….”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현운과 같은 배분의 무당파 제자로, 그러니까 이름이…….
“이 사악한 잡것아! 어서 그 더러운 손 치우지 못할까? 당장 그러지 않는다면 이 현수님이 태상노군의 이름을 걸고 널 용서치 않겠다!”
빠직! 빠직! 빠직!
오른손에 든 엽전검과 왼손에 들린 방울, 부적 등등. 나름대로 제령 준비랍시고 해온 모양이었다.
딸랑딸랑딸랑딸랑!
현수가 왼손에 든 제마령을 사납게 휘둘렀다.
“훠어어이! 잡귀야 물럿거라! 훠어어어이! 잡귀야 물럿거라! 주문 이하 생략!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
빠지지직!
“잡귀라니? 지금 누구보고!”
공손절휘의 눈앞에서 남궁상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귀신처럼 핏발을 세우고 갑작스레 눈앞에 나타난 남궁상을 보고는 기겁한 현수가 외쳤다.
“헉, 잡귀가 사술을!”
남궁상의 주먹에서 푸른 힘줄이 꿈틀거리며 요동쳤다.
“누가 잡귀냐! 저 하늘의 별이 되어라!”
뻑!
분노의 일격이 현수의 턱을 직격했다.
“꾸에에에엑! 구해줘~!”
저만치 날아가는 현수의 절규는 처절했지만, 그 도사를 향해 구원의 손길을 뻗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헉헉헉!”
분노로 인해 내공을 급격히 소모한 남궁상이 숨을 씨근덕거렸다. 이번 일격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힘을 불어넣은 탓이었다.
“저… 괜찮습니까?”
조심스럽게 다가온 공손절휘가 역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괘, 괜찮다.”
“얼굴이 시뻘건데요?”
공손절휘가 지적했다.
“시끄러. 괜찮다면 괜찮은 거야!”
부끄러움 때문에 벌게진 얼굴로 남궁상은 걸음을 더욱 빨리했다.
좀 전의 호쾌하고 장쾌한 일격 때문에, 사람들은 잔뜩 겁에 질린 채 두려움에 떨며 이 난폭한 귀신의 원한에 희생양이 되지 않고자 더욱더 멀리 피해 다녔다. ‘어서 빨리 이 상황을 타개하지 않으면…….’
그때 그의 눈앞에 구세주가 나타났다. 바로 그의 친우이자 사건의 내막을 제대로 알고 있는 주작단 일행이, 남궁상의 원귀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나 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동안 대사형 비류연 밑에서 단련된 민첩한 눈치를 통해 장내의 미묘한 기류를 즉각적으로 감지했다.
“이보게들! 마침 잘됐네. 자네들이 좀 뭐라고 해주게.”
친구들의 존재가 오늘만큼 반가운 적이 없었던 남궁상은 그의 구세주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아! 친구를 잃은 슬픔으로 이제는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구나!”
그가 다가오자 재빨리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며 외치는 현운의 부르짖음에, 반갑게 뻗어오던 남궁상의 손이 우뚝 멎었다.
“현운?”
“아아, 아아……! 그뿐 아니라 귀마저, 귀마저 들리지 않다니!”
남궁상은 잠시 당황하다가 급히 현운의 옆에 있는 또 다른 친구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노학!”
그러나 노학은 무슨 일인지 저 높은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으음… 궁상, 자넨 지금쯤 저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찬란히 빛나는 별이 되었겠지! 아아, 오늘 밤엔 새로 생긴 별을 바라보며 술잔이나 기울여야겠구나!” “다, 당삼?”
다행히도 당삼은 그의 손을 외면하지 않았다. 남궁상의 두 손을 꼭 맞잡은 당삼이 물기 어린 눈으로 말했다.
“궁상! 귀신은 여기 오면 안 돼! 저기 위로 가야지!”
턱으로 하늘 쪽을 가리키는 모습이 더욱 얄밉게 보였다.
콰쾅!
남궁상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폭발했다. 이제 유일한 희망은 그토록 보고 싶었던 한 사람뿐이었다. 당삼의 손을 홱 뿌리친 남궁상은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사랑스 런 연인을 찾았다.
다른 친구들과 한 발짝 뒤에 떨어진 곳에 그녀가 서 있었다.
“진령……..”
남궁상의 목소리가 잠겼다.
“상…….”
진령의 목소리 역시 깊게 잠겨 있었다.
“령..”
남궁상이 진령의 손을 와락 잡았다.
“흑!”
진령이 비통한 듯 고개를 돌렸다.
“상, 죽어서도 저를 잊지 못하는 당신의 마음은 가슴 미어지도록 절절하지만, 우린 이미 죽음의 강이 서로를 갈라놓은 몸. 부디 제 걱정은 마시고 편히 쉬세요.” 이 최후의 절망을 통해 남궁상은 자신의 임계점을 넘어버렸다.
“진령, 당신마저!”
콰콰콰쾅!
“크아아아아아아악!”
눈이 까뒤집힌 남궁상의 입에서 이 세상 것이라 할 수 없는 괴성이 터져 나왔다.
“다 죽었어! 크오오오오오오!”
마침내 폭발한 남궁상이 핏발선 두 눈을 희번덕이며 주작단 단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악! 원귀가 폭주한다! 어서 영환도사를! 제령사도!”
불난 들의 메뚜기 떼처럼 주작단 단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장난이 너무 심했나??
‘그러게.”
‘저 친구 많이 쌓였나 본데?”
그러나 이미 후회의 때는 늦었다.
“긴급! 긴급! 제령사랑 음양사는 지금 몽땅 당장 중앙 정원으로!”
그러나 분노한 원령의 진노를 막을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후, 이 사건은 ‘피의 부활제’라 일컬어지며 다시는 상기하고 싶지 않은 사건 순위 십위권 안에 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