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0권 25화 – 운명의 비무, 막이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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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20권 25화 – 운명의 비무, 막이 오르다

운명의 비무, 막이 오르다

-간파하지 못하면 죽는다

챙!

남궁상의 손에서 겨울 새벽의 서리처럼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애검 섬뢰(閃)가 한광을 발했다. 그의 긴장된 시선이 무림의 큰 기둥 중 하나인 아름다운 삼십대 여인을 향했다.

“좋은 검이구나.”

“감사합니다.”

천상의 선녀처럼 아름답지만 요지(池)의 구천현녀 같은 당당한 위엄 또한 갖추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진소령. 그녀를 아는 모두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그보다 그 뛰어난 검예(劍藝)에 경의를 담아 아미신녀라는 별호를 붙여주었다.

검집에서 뽑혀 나온 검은 그녀의 분신이자 그녀 자신이었다. 진소령의 애검 ‘옥현(玉)’은 고요한 자태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형의 검기로 남궁상의 심신을 짓 누르며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이미 그 누구도 이 비무를 멈출 수는 없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남궁상이 감회 어린 목소리로 자조했다. 진소령 역시 만감이 교차하긴 마찬가지였다.

“이제야 겨우 자네랑 검을 마주 들게 되었군.”

남궁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 생각 이상으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으니까요.”

어디 있다 뿐이겠는가.

“하지만 설마 죽었다 다시 부활하기까지 할 줄은 몰랐다. 생각한 이상으로 여러 가지 재주를 지니고 있는 모양이더구나.”

“그, 그 일은 저에게도 예정 밖의 일이었습니다, 고모님.”

공손한 목소리로 남궁상이 대답했다. 그 일에 반영된 그의 의지는 흐름을 바꾸기에는 너무 미약했다.

“또 그렇게 부르는군. 누차 얘기했다시피 난 아직 자네의 고모가 아닐세. 그러니 그 말은 아직 아껴두는 것이 좋을 걸세. 자네가 나를 이기기 전까지.” 진소령이 조용하고 위엄있게 경고했다.

‘역시 얼렁뚱땅은 안 되는 건가??

하긴 그런게 통할 사람이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저주스런 빌어먹을 놈의 절망의 편지가 도착한 이후 자신은 언제나 눈앞에 지옥의 풍경을 걸어놓고 생활해야 했다. 오늘이 그 지옥으로부터 해방의 날이 될지 아니면 자신을 저 지옥 밑바닥으로 삼켜 버릴 최후의 날이 될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만일 이 비무에서 진다면 대사형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것과 예외적으로 이번에는 진령도 대사형과 똑같이 나올 가능성이 엄존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준비되었느냐?”

나직한 목소리로 진소령이 질문했다.

“준비되었습니다. 오십시오.”

남궁상은 자신의 애검을 붙잡은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이기어검술만 쓰기로 약속했었지? 그것이 약속이니 사양하지 않겠다.”

이 비무에는 제약이 있었고, 두 사람 모두 그것에 동의한 이상 그 제약을 지켜야만 했다.

“물론 사양하실 필요 없습니다.”

사실 그건 거짓말이었다.

“난 이미 자네의 비책을 알고 있네. 그러니 그걸 감안하는 게 좋을 걸세.”

남궁상이 얻었고, 진소령이 감탄했던 ‘초감각’ 영역. 지금 그녀가 말하는 비책이란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남궁상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아미파(峨嵋派) 독문검법(獨門劍法). 난화검(亂花劍).

비기(秘技).

이기어검술식(以氣御劍術式).

“비상련화(飛翔蓮花)!”

피육!

진소령의 검이 하늘을 향해 한 마리 은어처럼 솟구치더니, 어지러이 허공중에 화려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손에서 벗어난 검을 이처럼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 다는 것은 그녀의 어검술이 이미 조화경에 달했다는 의미였다.

“오오오오!”

그녀의 빼어난 검기는 중인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것은 보는 이에게는 무한히 아름답지만 당사자에게는 죽음의 입맞춤처럼 느껴지는 가공 할 위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야! 요리조리 잘 피하네!”

비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 사이의 공방을 바라보며 남궁산산이 감탄성을 터뜨렸다.

“그러게 말이오. 수련이 헛되진 않은 모양이오.”

함께 관전하고 있던 현운이 대답했다.

그때 그녀의 옆구리를 아프게 찌르는 손가락 하나가 있었다.

“아야! 뭐, 뭐야?”

진령이었다.

“난 아까부터 조마조마해서 잘 못 보겠어. 산산아, 지금은 어떠니?”

진령이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물었다.

“으응! 대단해!”

“뭐, 뭐가?”

“아직 살아 있어! 궁상 씨!”

남궁산산이 힘주어 대답했다.

“그, 그걸 말이라고 하니!”

여전히 눈을 가린 채 진령이 소리를 빽 질렀다.

“왜 소린 지르고 그래? 귀 아프게.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봐. 현실을 외면한다고 현실이 없어지겠니?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며 마음 졸이느니 차라리 그냥 맞대면하 는 게 더 낫겠다, 안 그래?”

“안 그래!”

진령이 빽 소리쳤다.

“쯧쯧, 궁상 씨도 불쌍하다.”

남궁산산이 혀를 차며 한마디 했다.

“왜?”

진령으로서는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뿐인 연인조차도 자길 안 믿어주잖아. 만일 신뢰하고 있다면 그렇게 두려워할 이유도 없잖아. 안 그래? 그러니 내 동생 얼마나 불쌍해?”

“아냐! 믿어!”

진령이 다시 소릴 빽 질렀다. 항의하는 그녀의 두 손은 어느새 아래로 내려져 있었다.

“우와아아아아아!”

그때 다시 함성이 울려 퍼졌다. 집요하게 남궁상을 노리며 무찔러가던 진소령의 검이 돌연 둘로 분리되었던 것이다.

‘이분영!’

진령은 두 자루로 분리된 검이 연인을 향해 위협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직접 목도할 수 있었다.

“위험해!”

그녀의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그녀의 비상련화 발동 초식은 화려했다.

검을 수평으로 쭉 뻗자 고요함과 침묵이 검끝에 내려앉았다. 내리누르는 듯한 정적 속에서 뭇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의 검끝에 가서 멈추었다.

잠시 후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시작되었는지 모를 떨림에 그녀의 검끝이 파르르 진동하고 있었다. 다음 순간 열두 줄기의 빛이 폭사되었다. 어 떻게 대항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우물쭈물하고 있던 남궁상은 급히 검을 들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기를 튕겨냈다.

“조심해, 뒤……!”

미처 경고가 끝나기도 전에 남궁상의 뒤통수에서 검이 나타났다. 흩날리던 눈꽃도, 폭사된 검기도 모두 검의 이동을 감추기 위한 허초에 불과했다.

급히 검을 면면부절 휘둘러 검막을 만들어 간신히 막아낸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이분영’의 어검분영이 날아든 것이다.

“더 이상 이 수법에 당하진 않아!’

이 수법이라면 지난 이 주간 수백 번도 넘게 체험해서 이제는 지긋지긋하다 못해 몸에 새겨져 있을 정도였다. 이 수법을 피하는 데 가장 적절한 보법을 그의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침착하게 보법을 밟으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두 개의 검을 피해냈다.

진소령은 자신의 비기를 남궁상이 능숙하게 받아내자 깜짝 놀랐다.

“놀랍구나. 이 초식을 그토록 쉽게 받아내다니?”

남궁상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마 이번이 첫 번째라면 받아내지 못했겠죠. 하지만 한 백 번쯤 반복하다 보니 없던 요령도 생기더군요. 인간의 적응력이란 건 무시무시한 모양입니다. 죽지 않 고 받아내는 데 성공했으니깐요.”

“호오? 명사(名師)께 수련을 받은 모양이구나!”

아무리 강호가 넓다지만 이기어검 이분영이 가능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명사는 무슨 놈의 얼어죽을!”

그 소리를 들은 염도가 이를 갈며 한마디 했다.

“부러우면 부럽다고 하게.”

빙검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한마디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차가운 얼굴에는 작은 승리감이 배어 있었다.

진소령의 표정이 더욱 진중하게 변했다.

“확실히 너의 실력은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아직 자만하긴 이르다. 자만은 이걸 받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아.”

아직 그녀의 실력은 바닥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저 친구, 더 빨라졌는걸!”

관전하고 있던 현운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같은 구룡인데도 자꾸만 격차가 나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진짜네! 하마터면 놓칠 뻔했는걸.”

당삼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검이 빠르려면 발도 빨라야 하지. 검이 빨라도 발이 느리면 어차피 느린 것이니까.”

빙검이 그 모습을 보고는 꽤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의 훈련이 성과가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던 것이다.

“상대방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지. 거리를 자기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누차 강조했는데 잊지 않은 모양이군.”

“흥, 지금 시비 거는 거냐?”

옆에 있던 염도가 인상을 구기며 한마디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자네도 항상 검보다 발이 느리다고 사부님께 지적받곤 했었군!”

그걸 왜 이제야 생각해 냈을까. 조금만 더 일찍 생각났더라면 훨씬 더 긴 시간을 두고 놀려먹을 수 있었을 텐데 무척 아쉽다는 투로 빙검이 말했다. 그의 표정은 여 전히 무뚝뚝했다.

“이, 얼음땡이 자식이!”

염도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흥! 하지만 이기어검의 무서운 점은 검권이 무지막지하게 넓다는 점이지. 쫄래쫄래 피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그거야 두고 봐야겠지.”

진소령의 검지가 다시 위를 향해 움직였다.

“이것도 받아낼 수 있을까?”

부우우웅!

허공중에 떠 있던 진소령의 검들이 다시 둘로 갈라졌다. 즉, 합해서 도합 네 자루가 된 것이다.

“자, 이것도 받아볼 수 있을까?”

남궁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헉, 사분영!”

이건 정말 뜻밖의 일인지라 빙검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가, 얼음땡이? 저 사태에 대해서도 뭔가 대책이 서 있나?”

“…..”

“왜 대답이 없나?”

“아니! 사분영에 대해서는 대책이 서 있지 않네.”

빙검의 목소리엔 침중함이 가득했다.

“그럼 가겠네!”

진소령이 선언했다.

“아니, 저… 안 오셔도 되는데요.”

남궁상이 대답했다.

그러나 진소령은 그의 대답이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미파峨嵋독문검법(獨門劍法).

난화검(花).

비기(秘技).

이기어검술식(以氣御劍術式).

비상련화蓮花화花影).

허공을 수놓으며 네 송이 연화가 화려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지거라, 사련화여!”

네 송이 거대한 연화에서 흩어진 꽃잎들이 세찬 바람에 실려 남궁상을 향해 날아갔다.

“저거 위험한데?”

빙검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설마 진소령의 실력이 저 정도일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좀 더 고난이도의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는데…….’

자신의 수련이 너무 물렀던 게 아닌가 반성하게 되는 빙검이었다.

“것봐! 안일한 대처가 끔찍한 결과를 불러오는 법이지. 지면 자네 책임일세.”

염도가 지적했다.

“무사할까요, 남궁 공자?”

나예린이 물었다.

“무사해야죠.”

비류연이 대답했다.

‘보인다!”

절체절명의 위급한 상황에서도 남궁상은 단 한 번의 눈깜빡임도 없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치명적인 꽃잎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막 심안의 초입 단계에 들 어선 남궁상의 감각은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있었다. 그동안의 투자가 헛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단 하나!”

과연 그의 몸이 그 속도 이상으로 움직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버텨줘라! 내 몸아!”

그는 그가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몸을 움직였다.

남궁세가(南宮世家) 독문보법(獨門步法).

전영보비기(秘技).

뇌광산란(雷光散亂).

남궁상의 신형이 순간 흐릿해지더니 긴 꼬리를 갈지자로 그리며 뒤쪽으로 순식간에 이동했다.

전영보라 불리는 보법으로, 번개 그림자처럼 빠른 보법이었다.

“저, 저런 빠르기를!”

친구의 수준을 한 단계 아래로 잡고 있던 현운은 경악과 함께 자신의 판단에 칼을 댈 수밖에 없었다.

“미, 믿을 수 없어!”

이대로 있다가는 뒤처지기만 할 것 같다는 위기감이 그를 엄습했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면 소득도 없다더니…….’

갑자기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해졌다.

“저것이 위험을 무릅쓴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란 말인가…….”

예전에는 고생하고 구박당하며 수련받던 남궁상을 참 안되고 불쌍하다고 물기 어린 눈과 연민 어린 마음으로 쳐다봤었지만, 이제는 자신을 연민해야 될 처지에 놓 이게 된 것이다.

“믿을 수가 없군. 그걸 피하다니!”

자신이 내보인 비장의 초식이 무위로 돌아갔다는 사실에 진소령은 경악했다.

“뭘요. 운이 좋았습니다. 이번에는 사실 자신이 없었거든요.”

남궁상의 겸손에 진소령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자넨 자네의 실력으로 이 초식을 피해낸 것이네. 훌륭하군.”

“아, 아닙니다… 아직 한참 멀었는걸요.”

여전히 겸양하며 말했다.

“이렇게 되면 자넬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군.”

“그, 그럼 허락하시는 겁니까?”

남궁상이 반색하며 반문했다.

“좋네. 마지막으로 이것 하나만 받아내면 자넬 인정하고말고.”

“마지막 하나… 라니요?”

“본인이 가장 최근에 얻은 성취 중 하나라네. 이걸 자네에게 보이게 된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하네. 오늘 첫선을 보이는 것이니 미숙함이 있더라도 이해해 주기 바 라네.”

‘설마 또??’

그건 설마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던 남궁상의 예상은 무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다시 하나로 합쳐졌던 진소령의 검이 처음 둘이 되더니 다음엔 넷이 되고 그 다음은 여덟이 되었다.

도합 여덟 자루의 검이 하늘을 날자 허공중에 여덟 송이의 아름다운 연화가 피어났다.

“팔분영..

비상련화의 최종 변환식이라 할 수 있는 공격이자 이기어검술의 최종 형태라 해도 과언이 아닌 궁극오의였다.

같은 이기어검술이라도 시전자에 따라 차원이 달라질 수 있다고 그녀는 검으로 말하고 있는 듯했다.

“어떤가? 항복하겠나? 지금 패배를 인정하면 목숨만을 건질 수 있을지 모르네.”

남궁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지금 두 손 들고 항복한다 해도 죽긴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그렇다면 끝까지 운명과 싸우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합 니다.”

남궁상이 의지 가득한 눈을 빛내며 당당하게 말했다.

“좋은 배짱이군. 그럼 받아보게나.”

아미파(峨嵋派) 독문검법(獨門劍法).

난화검(花).

비기(秘).

이기어검술식(氣御劍術式).

비상련화(飛翔蓮花).

팔련화린蓮花난화만천花滿天).

창공에 피어난 여덟 송이의 연화가 푸른 허공을 검광으로 가득 채우며 화려하게 흩어졌다.

“이제 어떡할 텐가, 얼음땡이?”

염도가 물었다.

“향이라도 한 통 사놔야겠지.”

빙검이 무심한 어조로 대답했다.

“향은 왜?”

“명복은 빌어줘야 하지 않겠나?”

그 빠르기가 섬전 같다는 전영보도 비무대를 가득 메우는 꽃비 속에는 무용지물이었다. 빗속을 아무리 빨리 달려도 몸에 비가 묻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렇다면 검막으로…….’

남궁상이 급히 구명절초인 성막밀밀을 시전했다.

그러나 가벼워 보이는 꽃잎 한 장 한 장에 만근거력이 숨어 있었기에 남궁상의 검막은 이 꽃비 속에서 든든한 우산이 되어주지 못했다. 챙!

“큭!”

필사적으로 쥐고 있던 남궁상의 하나뿐인 검이 손아귀가 찢어지는 충격과 함께 허공중에 빙글빙글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며 날아올랐다.

그 광경을 본 진령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그녀의 두 호수에 절망이 가득 차올랐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안 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단말마 외침이었다.

“끝이다!”

누군가 외쳤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수는 남아 있지 않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다. 단 두 사람을 제외하고.

“아직이다!”

비류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허공중에 강제적으로 내팽개쳐진 남궁상의 검이 어느새 마치 의지가 깃든 물건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남궁상은 필사적이었다. 그는 죽을 각오로 자신의 한계에 부 딪쳤다. 그리고 뛰어넘었다.

“이기어검의 가장 큰 효용이 뭔 줄 알아? 그건 바로 의외성이야. 의표를 찌르는 의외성, 보이지 않는 한 수! 상상 밖의 한 수!”

“우오오오오오오!”

남궁상은 자신의 두 손을 쭉 뻗어 자신을 검을 향했다. 그 검과 자신의 팔 사이에 결속이 있다고 굳게 믿으며 그는 낚시라도 하듯 두 팔을 앞으로 내던졌다. 애검 섬 뢰는 그의 믿음에 보답했다.

슈우우우우욱!

살아있는 화살처럼,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은빛 빙어처럼 방대하고 광활한 하늘을 가로지르는 검은 회전하고 선회하고 가속한 다음 진소령의 목 뒷덜미에 가서 우뚝 멈추었다. 그리고는 하나의 상징만 남긴 채 힘을 모두 소진하고 바닥에 내리 꽂혔다.

“헉헉헉!”

모든 기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남궁상의 몸은 텁텁한 마른 모래와 마찬가지의 상태였다. 더 이상 버틸 기력 따윈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은 그의 다리가 파도에 휩쓸린 해변가의 모래처럼 스러졌다. 동시에 그의 몸이 붕괴됐다.

“상!”

깜짝 놀란 진령이 자리를 박차고 달려갔다. 죽은 줄만 알았다고 진령은 후에 당시 그 상황을 회상했다. 그만큼 남궁상의 모습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모든 것을 불태운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비류연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이제 겨우 하나 뛰어넘었군.이십 년 동안 자기 스스로 만들고 다져 논 한곌 말야. 저 녀석이 그 다음 한계를 뛰어넘는 건 또 언제일까?”

막 하나의 일을 끝낸 사제이자 제자에게 그는 단지 이것이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실로 다행스러운 점은 현재 기절한 남궁상의 귀에는 그 목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의 무의식은 깊은 수면 속에서도 깨어 있었는지 진령의 따뜻한 품에 포근히 안겨 있던 남궁상의 몸이 잠시 부르 르 떨렸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왜 그러는지 그 이유를 짐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자신의 사랑하는 조카의 품에서 곤하게 잠들어 있는―기절했다고 보는 편이 훨씬 타당한ᅳ남궁상의 파리하면서도 한편으로 안심하고 있는 무방비의 얼굴을 바 라보는 진소령의 얼굴에는 아직 불신의 빛이 구름 낀 밤하늘의 별처럼 명멸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은 그녀가 그려본 가상 대결 중에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태였다. 남궁상의 행동은 그녀의 상상력을 뛰어넘고 말았다.

그에 대해 대신 대답을 던져 준 이는 빙검이었다.

“진 여협,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것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아는 방법은 그것을 직접 몸으로 경험해 보는 것이라오. 그 경험이 이기어검을 단지 상대하는 것, 즉 그 기 술을 받아내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외다. 그런 것은 단지 겉 핥기에 불과할 뿐, 그것만으론 이기어검의 본질에 도달하지 못하오. 직접 이기어검을 익히 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책은 없소. 그것이야말로로 그 안으로 직접 뛰어드는 진정한 경험이라 할 수 있지요.”

“직접 가르치셨단 말씀이신가요?”

“여덟 개의 어검분영을 만들어내는 그대의 존경할 만한 높은 경지에는 한없이 미치지 못하는 미약한 수준이지만… 그렇소이다.”

“정말 대단하군요. 날 꺾기 위해 그 정도까지 준비했다니 정말 놀랍군요. 한쪽은 자신의 수가 읽히고 한쪽은 자신의 수가 끝까지 읽히지 않았으니 읽힌 쪽이 지는 게 당연하군요.”

“그것은 틀렸소.”

빙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째서 그렇죠?”

“당신만한 절정고수를 단지 읽어냈다는 것만으로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소. 그래서 그 읽어낸 승리의 가능성을 체현할 수 있는 몸을 만드는 데 우리는 주력했던 것 이오.”

“우리라… 언제나 겨울의 난초처럼 혼자시던 빙검 노사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어떤 분이 노사님을 그렇게 변모시켰는지 궁금하군요.” 빙검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런 것은 진 여협이 관심 둘 만한 그런 것이 아니니 신경 쓰실 필요 없소. 귀중한 심력을 낭비하기만 하는 하찮은 일일 터. 모르는 것이 낫소이다.”

빙검이 정색하며 대답했다. 진소령으로서는 이런 반응이 더 낯설었다.

“어쨌든 제가 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겠군요.”

진소령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자신을 과신하다니……. 산속에 틀어박혀 있던 사이에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다는 것을 잠시 잊어버리고 말았군요.”

남궁상이 정신을 차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상, 정신이 들어요?”

“여, 여긴…….”

“아직 비무대 위예요.”

“응? 비무대 위? 승부는 어찌 되었소?”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튕기듯 벌떡 일어나며 남궁상이 물었다.

“…당신의 승리예요, 상!”

“내 승리?”

남궁상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직 믿겨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요, 당신의 승리예요.”

그때 진소령이 조용한 걸음으로 남궁상에게 다가가더니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남궁상, 자네의 승리일세. 진령이를… 잘 부탁하네.”

“가, 감사합니다, 고모님!”

진소령은 그 호칭에 대해 더 이상 지적하지 않았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관전석에서 일제히 비무대가 떠나갈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진령은 기어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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