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리고 또 처음
그때 나는 그것이 첫 만남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그 일을 기억해 내기 바로 전까지 그것은 여전히 처음이었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온 그날, 망각에서 깨 어난 이후 그것은 더 이상 처음이 아니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인연으로 맺어져 있었다.
그녀도 나도… 그러했다.
***
그날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혼돈의 환마동마저 뺏을 수 없었던 찬란함을 몸에 머금고, 그녀가 나와 함께 귀환했던 날, 열광의 도가니 속에 들끓던 사람들 사이에서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 했던 그때를.
“오오! 예린아! 이것이 꿈은 아니겠지?”
백의의 노인이 예린을 덥석 끌어안는 장면을 본 것은, 장홍들에게 제자 녀석들의 조의금 영업 결과를 보고받으며 한창 주먹의 관절을 풀고 있을 때였다.
누군데 감히 내 허락도 없이 예린을 껴안는 것일까. 처음 당장 든 생각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노인은 어느덧 예린의 뺨까지 쓰다듬고 있었다. “네! 아버님! 다녀왔습니다.”
엷게 미소를 지으며 예린이 노인의 품에 안겼다.
아, 그 팔불출로 소문난 아버지였나? 비록 팔불출이라곤 해도 예린을 이 세상에 있게 해준 사람 중 하나. 그렇다면 감동의 부녀 상봉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군. “오오! 천지신명이시여! 감사드리나이다!”
아, 저런! 감격의 눈물까지…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등과 어깨의 미세한 떨림으로 노인이 울고 있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노인은 딸아이를 절대 놓치 지 않으려는 듯 다시금 예린을 세차게 끌어안았다. 뭐랄까, 사흘 밤낮은 그대로 끌어안고 있겠다는 모종의 의지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부친이라도 저건 좀 과한 것 아닌가.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할 때쯤 그 남자는 다행히도 예린을 슬며시 놓으며 소매로 눈물을 훔치느라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쾅!
머릿속에서 뭔가가 폭발했다. 일순간에 영혼을 뿌리째 뒤흔들 정도로 거대하고 강렬한 충격이 해일처럼 밀어닥쳤다.
이럴 수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저 남자가…….
흩어져 있던 과거가 그 순간 한 점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저 남자의 얼굴을!
그 얼굴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도 거의 달라진 바가 없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기쁩니다, 사부!”
나는 때마침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으며, 부서져 내리는 충격을 미소로 가다듬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찬찬히 생각해 볼 시간은 충분 하다.
그날은 진정한 의미에서 생환을 이룬 날. 그러니 그것을 자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날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