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의 여유, 윤준호의 증언
-의혹, 아직 흐림
“왠지 미움받고 있는 것 같은데요? 장형, 옥 교관님께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습니까?”
효룡은 설명회가 끝나자마자 의기소침해 있는 장홍에게 물었다.
“그건 왜 묻나?”
“왜 저리 찬바람이 쌩쌩 부나 해서요. 평소 때도 무뚝뚝하고 차갑긴 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형의 죽음 이후 효룡이 마천각 출신이라는 건 이미 몇몇 지인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다들 알면서도 눈감아주는 것이었다.
“잘못이라… 확실히 그렇군.”
풀 죽은 목소리로 장홍이 답했다. 보기 안쓰러울 정도였다.
“도대체 어떤 잘못을 저질렀기에? 제가 혹시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한번 발동된 호기심의 불은 좀처럼 꺼질 줄 몰랐다.
“알 것 없네. 다 업보(業報)일세.”
장홍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서 효룡은 사십대의 애수를 느꼈으나 굳이 그 감상을 피력하지는 않았다.
‘도대체 뭘 숨기는 거지?”
저 철저한 감정 조절의 달인이 저토록 당황하다니 별난 일인 건 확실했다. 그러나 더 이상 캐물어봤자 장홍은 절대 답해주지 않을 모양이었다.
‘뭔가가 있긴 있어. 더구나 그 구체적인 숫자는 대체 뭐야? 아! 혹시 준호 저 친구는 뭔가 알고 있나?”
장홍이 힐문을 받을 때 윤준호 역시 덩달아 안절부절못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평소에도 거짓말이나 은폐에 서투른 저 순진 무쌍한 친구라면 보다 쉽게 내막을 밝 혀줄 것 같았다. 효룡은 혹여 윤준호가 도망이라도 갈까 두려운 듯, 고도의 운신법까지 사용해 가며 바람처럼 접근했다.
“이보게, 준호. 자넨 혹시 짐작 가는 바 없나?”
순식간에 다가간 효룡이 조용한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글쎄요, 없는 건 아니지만…….”
대답하던 윤준호가 말끝을 흐린다.
‘있구나!’
짐작은 들어맞았다. 윤준호와 대화할 때는 얼굴만 살펴봐도 진실 여부를 알 수 있었다. 숨기고 싶은 게 있어도 전부 얼굴에 드러나 버리는 순진무구한 친구다. 평 소엔 이 험한 세상을 어찌 헤쳐 나갈까 걱정스럽지만, 이럴 땐 이만큼 만만한 성격도 없었다.
‘역시 세상은 험난하다네, 친구! 날 용서하게!’
그는 가차없이 윤준호를 심문해 보기로 했다.
“자네, 짐작 가는 게 있군.”
효룡은 단정적인 어투를 써서 단숨에 접근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어제 일 때문인 것 같아요. 어제 복도에서… 장형이 저분과 부딪쳤거든요.”
듣고 있던 효룡의 눈이 불신으로 휘둥그레졌다.
“부딪치다니? 아니,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린가? 설혹 모퉁이 때문에 장 형이 안 보였다 쳐도, 저 공포의 나찰교관이 다른 사람의 기척을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잖 나?”
일반인이나 하수면 몰라도, 혈나찰처럼 이삼십 장 밖의 기척도 놓치지 않는 고수들에겐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사실인걸요…….”
효룡의 성토에 주눅이 든 윤준호가 모기만 한 목소리로 항변했다.
“이 친구, 답답하긴. 자세히 좀 얘기해 보게.”
효룡이 가슴을 치며 얘기를 재촉했다. 아무래도 상황 전체를 듣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그, 그러니깐 그게 말이죠…….”
그것은 어제저녁 무렵의 일이었다고 한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윤준호의 증언에 따르면, 피고 장홍은 잔뜩 겁먹은 얼굴로 기척을 최대한 감춘 채 움직이고 있었다. 벽에 스며들지 못하는 게 한이라는 듯 필 사적이었다고 한다.
그의 은신술은 실로 대단했다. 멀쩡한 두 눈으로 장홍을 보고 있던 윤준호조차 그가 진짜 이 자리에 있는 게 맞는지, 혹여 자신이 장홍의 환영을 보고 있는 건 아닌 지 의심할 정도였다. 마천각이 아무리 적진이나 다름없다곤 해도, 장홍의 강박적인 작태는 소심한 윤준호의 눈에도 조금 지나친 감이 있었다.
“장 형, 저기… 말하기 좀 그렇지만, 꼭 그렇게 살금살금 움직여야 하나요?”
당사자가 아닌데도 부끄러운지 윤준호가 얼굴을 붉히며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물론이고말고.”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장홍이 답했다. 본인은 이게 전혀 지나치다고 생각지 않는 모양이었다.
“목소리 낮추게. 여기가 어딘지 자넨 벌써 잊었나? 이곳은 적진이란 말일세, 적진! 적들이 똥통 구더기처럼 득시글거리는 곳이란 말이지. 이렇게 무시무시한 복도 를 어찌 안심하며 걸을 수 있겠나?”
하지만 정도가 좀 심해 보였다. 저건 단순한 주의 정도가 아니라 마치 비밀 임무를 수행코자 적의 요새에 잠입한 특수 요원 같았다.
“만약 그렇게 기척없이 가다가 누군가랑 부딪치기라도 하면..
윤준호는 여전히 걱정이 가시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하하, 이 친구 농담도 참! 내가 그런 실수할 리 없잖.
쿵! 물컹!
‘응? 물컹? 언젠가 느껴본 것 같은 감촉인데…….’
알 수 없는 기시감에 장홍이 고민하고 있을 때, 윤준호는 냉엄한 현실에 몸을 떨고 있었다.
“자, 장형…..”
사색이 된 윤준호가 덜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장홍의 머리 위를 가리켰다. 윤준호는 이리저리 몸을 꼬며 당황해하기만 할 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머릿속이 새하얀 백지장처럼 변한 상태였다.
“응?”
한없이 부드럽고 탱글탱글한 무언가로부터 시선을 살짝 들어올린 장홍의 얼굴이 삽시간에 거무죽죽해졌다.
차가운 분노로 싸늘하게 빛나는 한 쌍의 살기 어린 눈동자가 자신을 잡아먹을 듯 쏘아보고 있었다. 눈에 익은 얼굴. 바로 학생들 사이에서 혈나찰이라 불리는 혈옥 선자 옥유경 본인이었다.
“히에에에에엑! 아니, 저… 이건 그러니깐……!”
장홍은 화살이 날아오는 걸 본 듯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뒤쪽으로 펄쩍 뛰어 후다닥 물러났다. 그러나 이미 늦은 때였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장홍은 복부에 장력을 맞고 바닥을 뒹굴었다.
“쿠헉!”
챙 하고 소리가 나며 바로 검이 뽑혔다.
“무례한 놈!”
옥유경의 뒤를 수행하던 충실한 추종자 중 두 명이 분노해서 검을 뽑아 들었다. 그중 한 명은 바로 진홍의 검희 석류하였다.
“히엑!”
장홍은 비명을 지르며 두 팔로 얼굴을 감쌌다. 윤준호도 이제 끝이란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끝내 검은 떨어지지 않았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장홍이 교 차한 팔을 치우며 앞을 살펴보았다.
두 소녀의 검을 막은 것은 옥유경이었다. 달려들던 석류하와 또 다른 한 명은 바라던 칼부림도 제대로 못한 채 속으로 분을 삭여야만 했다.
‘언제든 분부만 내리십시오!’
그녀들의 이글이글 불타는 눈동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꼴사나운 장홍의 얼굴에 못 박힌 듯 고정된 옥유경의 두 눈에는 의혹과 불신이 가득했다.
“홍식?”
그녀의 입에서 무의식 중에 흘러나온 이름을 듣고 장홍은 우뚝 움직임을 멈추었다. 얼어붙은 모습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장홍은 헤픈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하! 무, 무슨 그런 말씀을. 호, 홍식이라니요? 멋진 이름이긴 하지만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암! 잘못 보셨고말고요. 전 홍식이 아니라 홍이라는 사람입니 Ct.”
그러나 장홍의 답변은 경악에 빠진 옥유경의 의혹을 거두기엔 미흡했다.
“성(姓)이 뭐죠?”
반드시 확인해 봐야겠다는 의지가 물씬 풍기는 말투였다. 그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장홍은 더욱더 곤혹스러워지는 것 같았다.
“이런 필부의 성은 알아서 뭘 하실려구요. 헤헤헤.”
장홍은 바보 같은 웃음을 흘렸다.
“장형, 괜찮아요?”
역시 바닥을 구를 때 심하게 머리를 다친 게 틀림없다고 확신한 윤준호가 근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쉿, 쉿!’
장홍은 기겁을 하며 윤준호에게 조용하라고 눈을 부라렸으나, 일은 이미 저질러진 다음이었다.
“흐흠, 이자의 성이 장씨인가?”
무척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옥유경이 물었다.
“그, 그렇습니다.”
순진한 윤준호는 정직하게 대답했다.
“아는 사이겠군?”
“예, 동기입니다.”
그 말에 여인의 눈이 다시금 휘둥그레졌다.
“동기라니? 자넨 아직 한참 어린 것 같은데. 학년이 어떻게 되나?”
여전히 경악한 목소리로 옥유경이 물었다.
“천무학관 삼 년차입니다.”
“그럼 자넨 스무 살은 넘었나?”
“그, 그렇습니다.”
사실 윤준호는 훨씬 더 어려 보이는 동안이었다. 성격이 소심하다 보니 더욱 어리게 보여서 십대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호오, 이십대 초반의 애들이랑 동기라… 나름대로 대단한 출세로군요.”
장홍을 바라보던 여인이 입매를 비틀었다. 비웃음이 역력했다.
“아니, 그건 그러니까…….”
다리가 풀렸는지, 아니면 여전히 제정신이 아닌지 바닥에서 일어날 생각도 못한 채 장홍이 손사래를 쳤다. 옥유경은 그런 모습을 그저 싸늘한 시선으로 노려볼 뿐 이었다.
그 시선에 장홍의 몸은 점점 더 위축되어 갔다. 반면 혈옥선자 옥유경의 안색은 들끓는 분노로 점점 더 붉게 변했다. 어마어마한 살기가 그녀의 전신에서 쏟아져 나왔다.
“잘도, 잘도…….”
무한한 분노 때문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장홍의 안색은 점점 더 파리해져 갔다. 그 얼굴에 떠오른 그것은 분명 공포였다.
“잘도 그 낯짝을 내게 들이밀었군요.”
챙!
옥유경의 발검술(拔劍術)은 섬광처럼 빨랐다.
“히에에엑!”
장홍은 기겁하면서도 검을 들어 그 쾌속한 일검을 막아냈다.
“감히 막아?”
장홍의 목젖을 향한 새하얀 검에서 검고 짙은 살기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참斬)!”
옥유경은 이성을 상실한 듯 무차별로 검을 휘둘렀다. 폭풍이 몰아치듯 무시무시한 일격에 장홍은 화급히 몸을 날렸다.
“히에에엑!”
저 검에 실린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명백한 살의였다.
“위, 위험해요, 장형!”
지켜보던 윤준호가 크게 놀라 외쳤다. 과연 마천각의 무교관. 그녀의 검은 사납기 짝이 없었다. 이대로는 장홍의 목숨도 태풍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웠다.
“그러니깐 내 얘기를…….”
장홍이 필사적으로 검초를 피하며 필사적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옥유경은 대화할 마음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쇄애애애애액!
무시무시한 살초가 쉴 새 없이 쏟아지며 장홍의 전신에 쇄도했다.
“아니, 잠깐! 여기엔 자초지종(自初至終)이…….”
생명이 다급해진 장홍이 경황없이 손사래를 치며 뭔가 변명을 하려 했다.
“문답무용(問答無用)!”
옥유경은 전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검광이 번뜩였다.
“죽어욧! 지금 당장!”
그녀의 검끝이 일곱 가닥의 붉은 궤적을 그리며 장홍을 향해 날아갔다.
“비장살초 혈풍란(血風蘭)!”
그 검초를 본 석류하가 의문이 뒤섞인 탄성을 터뜨렸다. 혈풍란씩이나 되는 초식을 써야 할 만큼 저 사내가 대단했나? 아무래도 도저히 그래 보이진 않았다. 그러 나 석류하는 곧 경악 속에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저 얼뜨기 같은 아저씨가 혈풍란의 붉은 난 일곱 촉을 모두 피해낸 것이다. “이럴 수가… 혈풍란이 상처 하나 입히지 못했다니……!”
직접 목격했어도 믿기 힘드니, 만일 말로만 들었다면 단박에 거짓부렁 취급 했으리라. 그러나 현실은 현실. 그자가 혈풍란을 피해낸 것은 바꿀 수 없는 사실이었 다.
‘저 남자 도대체 정체가 뭐지??
“헥헥헥!”
겨우 목숨을 건진 장홍이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헉헉헉!”
미꾸라지 뺨치는 회피 능력에 옥유경도 지친 것 같았다.
“잠시만요!”
그때 두 사람 사이로 윤준호가 끼어들었다.
“비키게. 이건 자네와 관계없는 일일세.”
“아닙니다. 관계있습니다. 저는 그의 친구입니다.”
“친구? 저 사람에게 친구라고?”
무척이나 뜻밖이라는 얼굴이었다. 옥유경은 윤준호와 장홍의 얼굴을 몇 번이나 번갈아 보았다. 여전히 불신이 한가득이다.
“정말 자넨 저자의 친구인가?”
“그렇습니다. 때문에 저는 교관님께서 살초를 펴시는 이유를 알아야만 합니다.”
평소의 소심한 모습으로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태도였다.
“그렇게 이유가 궁금한가? 그렇다면 가르쳐 주지!”
옥유경은 손가락으로 장홍의 미간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자는 배신자다!”
윤준호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배신자라니,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믿고 싶지 않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저자가 배신자라는 사실에 변함은 없다.”
옥유경의 말은 단호했다.
“장형, 아니죠? 배신자라니…….”
그런 건 장홍이 아니었다. 윤준호는 장홍이 자신의 입으로 부정해 주길 바랐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
장홍의 얼굴에서 갑자기 모든 표정이 사라졌다. 이제까지의 곤혹스러움도 겁먹은 기색도 모두 없어진 얼굴이었다. 가면이라도 뒤집어쓴 듯한 무표정이었지만, 어 찌 보면 ‘표정’이라는 가면이 떨어져 나가고 드러난 맨얼굴 같기도 했다.
장홍의 무표정은 그저 무심한 얼굴이 아니라, 그야말로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리는 표정이었다. 그 얼굴을 보고 있던 윤준호는 왠지 허무한 마음이 되어 할 말을 잃었다.
촤랑!
옥유경도 마찬가지였을까. 그녀는 자세를 가다듬으며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오늘은 흥이 깨졌다. 이야기의 계속은 다음으로 미루지.”
차가운 목소리, 차가운 눈동자. 절대로 용서를 허락하지 않는 눈이었다.
“일단 두고 보지요. 하지만 앞으론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장홍 학생!”
적의가 물씬 배인 말을 마지막으로 옥유경은 그 자리를 떠났다. 남겨진 장홍과 윤준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저런 여자가…….”
윤준호는 그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만.”
장홍이 입을 열었다.
영원히 침묵을 지킬 것 같던 장홍의 입에서 느닷없이 나온 말에 윤준호는 소스라치듯 놀랐다.
“그녀를 나쁘게 말하지 말게.”
피로에 지친 얼굴이었지만 좀 전보다는 훨씬 더 살아 있는 사람 같았다.
“장형.”
“다 내 잘못일세.”
이번 일은 어딜 봐도 저쪽의 잘못이었다. 길 가다가 부딪쳤다는 이유만으로 죽어라 검을 휘두르는 건 분명 잘못된 일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주고받았던 대화도 그렇고 당사자인 장홍이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뭔가 내막이 있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묻지 말아주게.”
윤준호는 아무런 질문도 할 수 없었다. 장홍은 다시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고뇌가 일렁거렸다.
“그리곤 헤어졌다고?”
윤준호의 목격담을 멍하니 듣고 있던 효룡이 되물었다.
“예, 그랬죠.”
“용케 살아 있었네, 장형.”
여고수의 손목 한 번 잘못 만졌다가 팔째 잘려 나간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보면 고의든 아니든 가슴을 건드리고 말았으니 그 정도로 모욕적인 민폐를 끼치고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러게 말이에요. 전 진짜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 일만 생각하면 윤준호는 간이 콩알만큼 오그라드는 듯했다.
“거참, 그런 황당한 일이 있었을 줄이야…….”
그렇다면 옥유경의 태도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석연치 않은 뭔가가 앙금처럼 남아 있었다. 윤준호의 증언뿐 아니라 설명회에서 제시된 기묘한 숫자도 그랬다.
“그 싸늘한 태도는 이해가 되는데, 뭔가 평소의 옥 교관님답지 않은걸? 꼭 원래부터 둘이 아는 사이 같단 말이야.”
그는 오히려 저 혈나찰에게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장홍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게 놀라웠다.
‘수상하다, 수상해.’
효룡의 본능이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아직 의혹이 말끔하게 개인 것은 아니었다.
의혹은 아직 흐림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