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1권 12화 – 자죽도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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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21권 12화 – 자죽도의 실체

자죽도의 실체

-피를 부르는 전통

옥유경의 설명회가 끝나고 흑십자회의 쌍둥이들이 마천각의 주요 장소를 안내하는 시간이 있었다. 흑일은 일행들에게 사절단 통행 구역이라고 표기된 비단 지도 를 나누어 주었다. 색실로 일일이 수를 놓은 정교한 그림과 또렷한 글씨가 일품이었다. 품 안에 구겨 넣거나 물에 빠져도 염려없도록 종이와 먹물을 쓰지 않고 만든 것으로, 치밀하고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는 지도였다.

사절단이 갈 수 있는 곳은 푸른 실로 수놓은 ‘자유 통행 구역’과 붉은 실로 수놓은 ‘안내자 동반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잿빛 실로 테두리만 수놓은 부분은 모두 비공개 구역이었다. 안내자 동반 구역까지 합해봤자 사절단이 발을 들일 수 있는 곳은 마천각 전체의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사절단 일행은 곧이어 흑월에게 사(使)라고 수놓은 은색 띠를 하나씩 받았다. 통행증과 신분증을 겸용한 띠였는데, 새겨진 문양들이 부적처럼 보이는 게 조금 찜 찜했다.

“마천각에서 지내는 동안은 모두들 이 띠를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착용해 주세요. 후후훗, 부끄럽지만 귀인 여러분을 위해 제가 특별히 강녕(康寧)의 염원을 담아 ‘그것’을 넣어 제작한 거랍니다!”

‘그것’이 대체 뭘까 고민하며 사람들이 수상쩍은 배려의 산물을 쿡쿡 찔러보고 있을 때, 누군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저어… ‘그것’이란 건 무엇인지요? 그리고 띠를 잃어버리거나 착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자아! 그럼 견학을 시작해 볼까요? 우선 다 함께 띠를 착용해 봅시다! 즉시!”

초여름 산딸기처럼 상큼한 목소리,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처럼 발랄한 미소였다.

일체의 미동도 없이 두 눈을 반짝이며 ‘착용’을 기다리는 흑월의 그 풋풋한 모습에 사절단 일행은 왠지 덧없는 허무함을 느끼며 무념의 상태에 빠져들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제각기 몸 어딘가에 띠를 착용한 뒤였다. 지나친 친절은 때때로 독보다 무섭다는 사실을 경험하고만 사절단 일행이었다.

일행은 편의상 두 갈래로 나뉘어 각각 흑일과 흑월을 따라 견학을 시작했다. 잠시 후, 흑일 또는 흑월을 따라 주요 구역들을 방문하면서 그들은 하나같이 혀를 내 둘렀다. 기껏해야 호수 속에 있는 작은 섬일 뿐이라고 치부할 게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 한 명이 편히 눕는 자리를 약 한 평이라 치면, 동정호에는 약 십오억 천만 명 이상이 편히 누워 잘 수 있다. 그 엄청난 면적이 사방으로 이리저리 펼쳐진 곳이 바로 팔백 리 동정호. 말이 호수지 바다나 다름없는 곳이다. 그러니 그 안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섬 하나라 해도 결코 우습게볼 크기는 아니었다.

특히 자죽도는 백만 평 정도의 넓이로, 탑이나 복층 건물, 지하 공간 등을 통해 활용 공간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숨겨진 공간이나 동서남북의 섬 네 개를 합하면 웬만한 도성 한두 개의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을 듯했다. 때문에 우선적인 주요 구역만을 견학하는 데만도 두 시진에 가까운 시간이 소모되었다. 점심 때가 다 지나기 직전에야 사절단은 겨우 식당으로 향할 수 있었다.

식당에 도착한 나예린은 식사를 함께하자고 연비에게 말을 건네려는 순간, 덥석 달라붙는 이진설에게 한쪽 팔을 붙들렸다. 이진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표정 으로 다짜고짜 나예린의 팔을 잡아당겼다.

“언니! 우리랑 같이 식사해요!”

그리고는 나예린의 얼굴이 굳어지려는 찰나에 아주 조그만 소리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뭐, 연 소저도 같이.”

마지못한 말이었다. 연비의 존재가 영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자신의 경애(愛)하는 언니를 송두리째 빼앗긴 느낌 때문이었다. 물론 이진설에게는 연인이 있었 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머리에 머리띠를 둘렀다고 해서 허리에 허리띠를 두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연비는 불편하지 않겠어요?”

나예린은 우선 연비에게 양해를 구했다. 연비는 이진설이나 효룡 등과는 아직 제대로 인사를 나눈 적이 없었다.

“난 상관없어요, 린.”

연비가 대답했다.

나예린이 연비에게 양해를 구하는 모습을 보며 이진설은 몰래 입을 삐죽거렸다.

이진설이 데려간 자리에 있는 사람은 효룡과 장홍, 윤준호, 이 세 사람이었다. 나예린은 비류연이나 이진설 덕분에 이 세 사람과 몇 번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었다. 남은 건 연비였다.

이진설이 일행에게 연비를 소개해 주었다. 그녀는 나예린의 소개로 오는 도중에 이미 연비와 통성명을 나눈 뒤였다.

“연비라고 합니다.”

고개를 살짝 숙이며 연비가 먼저 인사했다. 차분하면서도 상쾌한 목소리였다.

“유, 윤준호라고 합니다.”

“장홍이라 하오.”

“제 이름은 효룡입니다.”

윤준호의 볼에는 붉은 기운이, 장홍의 눈에는 의혹의 기운이, 효룡의 입에는 미소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장홍은 정보 수집에 들어갔다.

“특이한 우산이로군요? 질감도 굉장히 특이하고…….”

그는 연비가 항상 들고 다니는 매화 문양의 검은 우산에 호기심을 나타냈다. 지금은 실내여서 우산을 접고 있지만 실외에서는 화창한 날에도 거의 항상 우산을 쓰 고 다녀서 검은 우산은 벌써부터 연비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몇몇 남자관도들은 ‘우’라는 말만 들어도 열을 올리며 연비에 대한 얘기를 나눌 정도였다. 특히 백도 최고의 미녀라고 공인된 빙백봉 나예린의 옆에서 연비가 우 산을 쓰고 함께 걸으면, 흑백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아름다움이 두세 배로 증폭했다. 그럴 때면 주변에 있던 남자들의 시선이 자석에 끌려가듯 두 사람에게 고정 되곤 했다.

“아, 특제품이랍니다. 현천은린이라고 하는데, 평소엔 줄여서 은린이라고 부르지요.”

현천은린, 검고 그윽한 하늘에 은빛의 불꽃이라는 뜻이다. 그 묵빛 배경 위로 산화하듯 흩뿌려진 은빛의 매화라면 가히 은빛의 불꽃이라 칭할 만했다.

“멋진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우산은 재질이 종이가 아니군요. 물론 천도 아니고. 뭔가 다른… 이를테면 뭔가의 가죽이나…….”

장홍의 눈썰미는 상당히 날카로운 데가 있었다.

“글쎄 뭘까요? 가르쳐 드리고 싶지만…….”

연비가 말끝을 흐렸다.

“싶지만?”

“사정상 비.밀.이에요.”

연비가 검지를 세우며 말했다.

“어쨌든 이 재질 덕에 매우 튼튼하긴 하죠. 물이 새지 않아서 비 올 때도 유용하답니다.”

연비의 말투에서 장홍은 몇 가지를 추론해 냈다. 우선 저것은 확실히 무기였다. 비 올 때도 유용하다니, 그렇다면 본래는 다른 용도가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 면 늘 우산을 몸에 달고 다니는 이유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저런 우산을 무기로 쓰는 문파가 있기는 했는데…….?

그러나 저렇게 특수한 재질, 강렬한 우산을 무기로 쓰는 문파는 기억에 없었다. 물론 저런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장인(匠人)은 그리 많지 않으니 특출한 명장들을 쫓 다보면 저 물건의 내력을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들이 입을 열지는 미지수였지만.

“뭔가 확실히 숨기는 게 있어, 이 아가씨!’

장홍은 그쯤에서 생각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가장 두려운 가정에 대해서는 일단 회피하는 장홍이었다.

식사는 바삭바삭하고 맵싸하면서도 달콤한 닭 요리 동안자계(東安鷄)와 생선 살을 빚어서 향긋하게 만든 어환(丸) 신선로, 담백한 도삭면(刀削麵) 등이었다. 천무학관과 마천각 간의 사전 협의 및 비용 협상 때문에 음식은 주는 대로 먹어야 했지만,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요리들이었다. 호남의 요리들은 짙고 매우며 독특 하다는 세간의 평에 비하면 맛의 조화가 잘 맞았다. 그릇이나 수저에 지역과 상호명, ‘많이 찾아주십시오’ 등이 여기저기 적혀 있는 것은 다소 찜찜했지만.

식사 뒤에는 동정호의 작은 섬 군산(君山)에서만 난다는 명물, 군산은침(君山銀針)을 맛볼 시간이었다. 은침처럼 가느다란 찻잎들이 청량한 향기를 뿜으며 달콤한 등황빛으로 우러났다. 일행은 차를 즐기며 옥유경이 남기고 간 숙제에 대해 논했다.

“반장을 뽑으라니, 무슨 뜻으로 한 말일까요?”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이진설이었다. 옥유경의 어투는 단순한 반장 선거라기엔 뭔가 비장한 감이 있었다. 어차피 이곳은 흑도의 양대 축 중 하나인 마천각이다. 그 이면에 다른 뜻이 내포되어 있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저기 효룡이란 분은 뭔가 알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찻잔을 내려놓으며 연비가 싱긋 웃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연비는 그의 반문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으음, 얼굴이 그래 보였는데… 아니었나 봐요?”

“아, 아니, 맞았소.”

효룡은 연비의 여유에 당황하며 대답했다.

‘좀 전에 막 소개받았을 뿐인데…….’

마치 수년 동안 알고 지낸 것처럼 친숙감과 익숙함이 느껴졌다.

번쩍!

순간 이진설의 눈에서 경계의 빛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효룡은 차를 한 모금 들고 나서 설명을 시작했다.

“아까도 들으셨겠지만 마천각의 기숙사는 모두 독립적인 부대입니다. 기숙사당 인원은 평균 백 명 정도인데, 열 명가량은 상황에 따라 오차가 있지요. 그리고 각 각 상위 오십 명까지는 엄격한 서열이 매겨져 있습니다.”

“서열 외(外), 그러니까 오십 명 이외는 어떻게 되죠?”

“그들은… 소위 잔챙이라 불리게 되지요.”

“오십보백보란 거군요. 그런데 서열의 기준은 뭔가요?”

“물론 성적순, 아니, 실력순이지요. 서열은 삼 개월에 한 번씩 있는 시험이나 대결에서 조정됩니다. 다만 그사이의 사적인 비무 결과도 즉각 서열에 반영하는 것이 마천각의 전통입니다.”

상당히 무지막지하고 흉흉한 전통이 아닐 수 없었다.

“피를 부르는 전통이로군요.”

“연 소저 말이 맞습니다. 칼은 피 속에서 강해진다는 것이 흑도의 믿음이니까요. 사실 그 편이 제일… 그런데 저쪽 분은 이쪽에 뭔가 용무가 있으신 게 아닐까요?”

효룡이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연비의 좌측 어깨 뒤를 가리켰다. 그제야 연비는 고개를 돌려 뒤쪽에 선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연비와 시선이 마주치자 얼굴을 붉 히며 안절부절못했다.

“어머, 일전에 뵈었던 분이로군요.”

마치 그제야 눈치 챘다는 듯한 말투.

“아, 예… 옙! 그렇습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 멀뚱멀뚱 서 있던 남자가 즉시 부동자세를 취하며 답했다.

“그러니까 성함이 공손……..”

기억이 잘 안 나는지 연비가 말끝을 흐렸다.

“아, 옙! 고, 공손절휘라고 합니다.”

공손절휘는 또다시 직립 부동자세를 취하며 긴장했다. 얼굴도 근육도 온통 경직된 것이, 아무래도 여자를 대하는 일에는 숙맥인 모양이었다.

“아, 공손 소협도 효 공자의 말씀을 듣고 싶으셨나 봐요.”

공손절휘는 연비의 화사한 미소를 감당하지 못하고 즉시 고개를 푹 수그렸다.

“아니… 저는…….”

공손절휘가 열심히 용기를 짜내고 있을 때 연비가 대뜸 말했다.

“음, 저쪽 효공자 옆 자리가 하나 비었네. 앉으시지요. 한 분쯤 더 계셔도 효 공자는 개의치 않을 터. 그렇지요?”

효룡을 보며 연비가 초롱초롱 눈을 빛냈다.

“무, 물론이오.”

보석처럼 빛이 아롱지는 연비의 눈동자와 마주치자 효룡은 무의식 중에 당황하며 얼굴을 붉혔다. 이진설은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대체 왜 얼굴을 붉히는 거얏!’

분노의 일격이 효룡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크흡……!”

간신히 비명은 되삼킬 수 있었지만, 허파와 심장을 뒤흔드는 충격에 효룡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회, 회전까지 먹여서…….’

지나치게 훌륭한 일격이 그의 오장육부를 뒤흔들었다. 나날이 날카로워지는 기술에 이제는 생명의 위협마저 느껴졌다. 다음 일격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슬 프지만 보장할 수 없었다.

‘크르르르르!’

이진설은 속으로 사나운 맹견처럼 으르렁거리며 연비를 쏘아보았다. 연비는 아는지 모르는지 공손절휘에게 계속 자리를 권했다.

“그럼 앉으시지요.”

효룡이 이를 악문 채 옆구리를 부여잡고 땀을 뻘뻘 흘리는 동안 공손절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아니, 그러니깐 전….”

용기의 농축액이 여전히 목구멍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미적거리자, 연비는 의아한 얼굴로 반문했다.

“무슨 문제라도? 아, 혹시 제가 섣불리 괜한 권유를 했나요?”

공손절휘는 재빨리 손사래를 치며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책망했다.

‘헉! 이런 못난 놈! 연 소저가 자신이 실수했다고 생각하게 하다니. 이런 한심한!’

이렇게 된 이상 별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아, 아닙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앉겠습니다. 앉고말고요! 제가 바라던 게 바로 그겁니다!”

그리고는 냉큼 자리에 앉았다. 연비한테서는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였다. ‘좌천이다!’

순간 모두의 머릿속을 너나할 것 없이 동시에 스쳐 지나간 생각이었다.

“너무 멀어! 목표 지점은 좀 더 근거리였을 텐데?!’

“설마 떨려난 것도 눈치 못 챈 건가?”

하지만 그 정도로 둔치인 것 같지는 않았다. 구석에 자리를 잡은 공손절휘의 눈에는 아련한 절망과 애절한 한이 배어 있었다.

‘헉, 운명을 수용했다! 모든 걸 받아들이고 있어!”

“불쌍하게 됐군, 쯧쯧. 다음 기회를 노리게, 좌절공자.’

하지만 공손절휘의 앞날은 그다지 밝지 않았으니……. 이날부터 시작된 여러 가지 비화로 인해 공손절휘는 훗날 천무학관의 관도들 사이에서 공손좌천, 좌절공 자, 혹은 공손좌절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자, 그럼 계속할까요?”

“아, 그러지요.”

잠시 측은한 시선으로 공손절휘를 바라보고 있던 효룡은 연비의 재촉에 얼른 이야기를 재개했다.

“아무튼 정점에 선 서열 일위의 실력자가 바로 반장, 통칭 대장이죠. 이들은 기숙사 내의 행정, 경제, 징벌 등에 관한 모든 결정권을 가집니다. 참고로 대장을 보좌 하는 부대장과 참모, 수행관과 정보관도 한 명씩 있습니다.”

“합해서 모두 다섯이군요. 서열 오위까지가 수뇌부인가요?”

나예린의 말에 효룡은 고개를 저었다.

“대장 밑은 부대장, 부대장 밑은 수행관이지만, 참모와 정보관은 성격상 그 밖의 요소로 정해집니다. 천재적인 두뇌만 있다면 ‘서열 외(外)’의 약자도 참모를 할 수 있지요. 그런 일은 거의 없지만 말이죠. 어쨌든 참모는 수뇌부 가운데 무공이 가장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보호를 위해 서열 삼위인 수행관이 항상 동행합니다.” “흐으음.. .!”

천무학관에서는 상상도 못할 치밀한 안배에 사람들은 침음성을 흘렸다.

“정보관은 그럼 누가 맡나요?”

어느새 윤준호의 뒤에 나타난 진령이 물었다. 남궁상과 모용휘까지도 그녀의 옆에 서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효룡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은신술과 정보 수집, 뛰어난 첩보 능력의 달인이라던가, 거미줄처럼 촘촘한 인맥을 자랑하는 자가 맡습니다. 참모와 대장이 서열권의 오십 명 가운데서 선발하는 데, 필요에 따라선 수뇌부 이외의 대원들에게는 누가 정보관인지 공개하지 않습니다. 대원들 내부의 좋지 않은 움직임은 시작하기도 전에 진압을 할 요량이죠.” 효룡은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이고 나서 말을 계속했다.

“그런 고로 실질적인 수뇌부는 대장, 부대장, 참모, 수행관, 총 네 명이지요. 수뇌부가 바뀌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여기에 장차 수뇌부의 후보가 될 수 있는 서열 사위와 오위를 덧붙인 총 여섯 명이 제일조입니다. 그 밑으로는 오 인 일 조로 스무 개 이내의 조가 구성되지요. 이를테면 서열 육위부터 서열 십위까지가 이조이고, 서열 육위는 이조의 조장이 되는 식입니다.”

“이거야 원, 완전 군대 조직이네요.”

질렸다는 듯 윤준호가 한마디 했다.

“언제 어디서든 일사불란하게 전투에 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마천각의 방침이니까요. 조장이 움직이면 조원들도 움직이고, 조장을 움직이는 건 수뇌부밖에 없으 니 혼선도 없지요.”

당연하다는 어투로 효룡이 말했다. 연비가 물었다.

“그런데 교관님은 왜 그런 중요한 얘길 다 안 했을까요?”

“필요한 정보는 스스로 알아내는 게 마천각 교육 방침이거든요.”

“정보 수집도 능력, 그런 건가?”

뒤에 서 있던 모용휘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셈이지. 그건 그렇고…….”

효룡이 주위를 휙 둘러보며 말했다.

어느새 남궁상, 진령, 모용휘뿐 아니라 장홍 주위로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들에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개중에는 용천명, 마하령도 있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실로 두렵구나…….?

효룡의 말을 들은 남궁상의 손엔 식은땀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이곳은 천무학관과는 완전히 달랐다. 별세계라 해도 좋았다. 이곳은 생활부터 군대나 다름없었다. 자신들이 천무학관에서 서로 무용하게 티격태격할 때도 이들은 꾸준히 전쟁 준비를 해온 것이다.

주위를 살짝 둘러보니 용천명과 마하령의 안색도 썩 좋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중이리라.

심각함은 빠르게 전염된다. 어느새인가 장내는 무거운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무도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어라? 어라?”

효룡은 주위를 빙 둘러본 후 급격하게 변한 공기에 당황하며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이건 혹시 나 때문?”

나예린과 연비를 포함한 동료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 선출이라… 대충 어떻게 진행될지 뻔하군요.”

남궁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까지의 전적으로 보면 십중팔구 대장엔 용천명, 부대장엔 마하령이 뽑힐 가능성이 컸다. 물론 마하령이 순순히 그 의견을 받 아들인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대장에 마하령, 부대장에 용천명이 되는 구도도 생각할 수 있었다. 용천명에 비하면 마하령의 실력은 약간 부족한 감이 있었지만, 소문에 의하면 도성으로부터 지 난 겨우내 뼈를 깎는 수행을 거쳤다지 않는가. 그러니 이번만큼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뻔하다라… 과연 그럴까요?”

연비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다른 가능성이 있단 말입니까? 변수는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의아한 남궁상이 반문했다.

“그거야 두고 봐야 알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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