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시장조사
-물론 진심입니다!
“참가하겠다니! 연비, 진심이에요?”
“물론 진심이죠. 전 이래 봬도 지금 심각하다고요. 일종의 사전 탐사죠. 이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달려들 수는 없잖아요? 전 그렇게까지 무모하진 않아요.”
지금도 충분히 무모해 보였다.
“그렇지만…….”
“왜요?”
연비는 호안석 같은 눈동자로 나예린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뇨, 정말 망설임이 없구나 싶어서요.”
아무리 급전이 필요하다지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나예린은 그것조차 의문이었다.
그러자 연비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망설이는 건 일단 확인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잖아요? 내가 신 내린 무당도 아니고, 아무것도 모른 채 참가할지 안 할지는 결정할 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 “그, 그것도 그렇군요.”
“원래 난 자신의 눈과 귀로 보고 듣고 확인한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믿지 않는 주의거든요.”
그 말에 실린 의지는 감히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을 만큼 확고했다. 더 이상 연비를 말리는 건 불가능했다. 나예린이 눈에 띄게 망설이는 것을 보고 연비가 말했다.
“저어, 린?”
“예?”
“린은 여기서 돌아가요. 여기까지 함께 와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역시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이곳은 인간의 욕망과 광기가 난무하는 곳. 린하고는 너무 안 맞아요. 그러니 돌아가요.”
막상 와보니 이런 곳에 린을 함께 끌고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나예린의 정신이 이런 욕망과 광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서지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한단 말인가. 이 곳은 나예린과는 가장 상극인 장소였다. 아무리 그녀의 힘이 필요하다 해도 그런 희생까지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아니요, 전 돌아가지 않겠어요.”
“린?”
그것은 정말 뜻밖의 대답이었다.
“내키진 않지만 돌아가지 않겠어요.”
역시 그녀도 이미 느끼고 있는 것이다, 저 거대한 벽 너머에서 소용돌이치는 광기를.
“정말 괜찮겠어요? 위험할 수도 있어요. 괴로울 수도 있어요.”
“언제까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도망갈 수만은 없잖아요. 전 앞으로 나아가겠어요.”
저 안쪽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은 너무나 농후하고 거칠었다. 마치 풍랑 속에 소용돌이치는 바다와 같았다. 그 한복판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 너무 나 꺼림칙했다. 하지만 나예린은 물러설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자, 그럼 들어가 볼까요?”
나예린이 먼저 연비의 손을 잡고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비에게 그 손을 뿌리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미 결심한 이상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는 의지가 선명 히 느껴졌다. 나예린의 말대로다. 언제까지 피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공포와 맞서 싸우지 않으면 영원히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리라.
마침내 나예린은 연비를 따라 원통투기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경계를 넘는 순간 기화된 땀 냄새와 피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사람들은 예로부터 많은 경주들의 승패에 대해 돈을 걸어왔다. 말 경주, 쥐 경주, 귀뚜라미 경주, 개 경주, 거북이 경주, 돼지 경주, 거의 뛸 수 있는 모든 것에다 말 이다. 또한 인간들은 순위를 다투는 경주뿐만 아니라 승패를 다투는 싸움에 대해서도 많은 돈을 걸어왔다.
개 싸움, 소 싸움, 말 싸움, 벌레 싸움 등등. 그 싸움의 종류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그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열광하는 것은 인간과 인간이 피를 튀기며 살 을 가르는 투기장이었다. 이곳은 하루 동안에도 엄청난 현금이 오가는 곳이었다.
“괜찮아요, 린?”
단단히 각오를 하고 들어오긴 했지만 원통투기장 안의 기운은 상상 이상으로 탁했다. 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가는 것만으로도 나예린은 충분히 괴로웠다. 가장 잔인한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 서 있는 나예린은 태풍 속에 떠 있는 일엽편주처럼 불안해 보였다.
“괘… 괜찮아요, 전.”
대답하는 나예린의 안색은 무척이나 창백했다.
뿌려진 피가 이성을 마비시키고, 찢겨진 살은 본능을 격발시킨다. 검과 검, 검과 도, 창과 도끼가 불꽃과 굉음을 일으키며 생사의 한가운데서 격돌하는 이곳은 광 기와 폭력이 손을 맞잡고 춤을 추는 광란(亂)의 도가니였다.
“와아아아아아아!”
한 전사의 도끼가 상대의 어깨를 찍자 들끓는 듯한 함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 일격으로 승부는 확정되었다. 승자에게 돈을 건 쪽은 환호하고 반대쪽은 비통해 했다. 간명하게 나뉘어서 알기 쉬웠다.
나예린은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광기가 검은 뱀처럼 건물 전체를 감싸며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왜곡된 괴이함은 차라리 보지 않는 쪽이 편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그 뒤틀림마저도 남김없이 비추고 있었다. 본능적인 혐오감이 마음속으로부터 일었다.
“오래 있고 싶진 않은 곳이군요.”
이런 걸 오락거리로 만들려고 생각한 인간은 도대체 누굴까? 그리고 그걸 또 즐기고 있는 인간들은 또 어떤가.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수록 점점 더 혐오감 이 짙어져 갔다.
그녀 역시 무를 숭상하는 무림인의 한 사람이었지만, 이것은 무(武)라기보다 그저 폭력의 집합체에 불과했다. 이곳이 자신과는 맞지 않는 곳이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