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에 눈이 벌게져
-깊어가는 강호란도의 밤
마음 내키는 안내자가 아닌 백결은 천무학관 사절단을 강호란도의 동구로 안내했다. 그곳은 밤을 불태우며 도박에 매진하는 이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곳은 돈만 있으면 어느 누구라도 반겨 맞이하는 곳이었다. 물론 돈이 다 떨어지면 문밖으로 쫓겨나기 일쑤였다. 강호란도에는 온갖 도박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었다. 특히 마작 이나 검패 같은 반드시 판에 뛰어들기 전에 복잡한 규칙들을 숙지해야 하는 도박뿐만 아니라 거북이 경주, 귀뚜라미 경주, 개 경주, 닭싸움 등의 아무런 규칙을 몰라 도 할 수 있는 도박이 얼마든지 있었다.
“하하, 저희들은 가족 모두가 언제나 함께 즐길 수 있는 행복한 도박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처음 소개받아 들어간 ‘정전자란 도박장의 지배인 주씨가 손바닥을 비비며 한 말이었다.
“도전은 이미 받았을 줄로 아오. 다들 하룻밤 즐기기엔 충분할 거요. 그럼 이만.”
백결은 한시라도 이런 사람이 드글드글한 장소에 있기 싫은지 재빨리 용건만 말하고 몸을 돌렸다.
“가는 거요?”
“이런 더러운 곳에 계속 있다간 폐가 상하오. 병에 옮을지도 모르고. 생각만 해도 끔찍하오.”
“당신은 도박 안 하시오?”
그러자 백결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수많은 더러운 손이 거친 그런 더러운 물건을 만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소.”
“당신은 그럼 돈도 안 쓴단 말이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는 것은 도전만 아니라 그냥 돈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그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유통되라고 만든 것이었다.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 것들에게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처사였다. 백결의 대답은 황당함에 있어서 걸작(?)이었다.
“난 은(銀)만 쓰오. 그것도 용광로에 팔팔 끓여 불순물을 제거한 순수한 은만 말이오.”
그렇게까지 청결에 대해 집요할 수 있다니 할 말이 없었다. “그럼 수은(水銀)을 먹어보면 어떻겠소?”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눌러 참았다. 사실 친절하게 수은을 떠 먹여주고 싶은 생각까지도 있었다. 그러나 참기로 했다. 자신은 일단 대장이니 체통을 지켜야 했다.
“그럼 가겠소. 잘 노시오.”
붙잡지 말라는 기운을 물씬 풍기고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귀찮게 해주기로 했다.
“정말 마음 놓고 놀아도 되겠소?”
마지막으로 남궁상이 떠보는 질문을 던졌다. 여기에 함정은 없냐고 물은 것이다. 물론 답을 기대하진 않았다. 남궁상이 보고 싶은 건 순간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백결의 반응은 시시했다.
“마음 놓고 놀게 될 거요.”
수수께기 같은 말을 던지며 백결은 도박장을 나섰다. 벌써부터 뒤쪽은 사내들이 이런저런 도박들을 둘러보며 왁자지껄하고 있었다. 온 가족 유희장을 표방하는 곳 답게 여자들이 관심 가질 만한 아기자기한 도박들도 많이 있었기에 슬슬 여자 관도들도 반응을 보이며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기 시작했다.
“일단 즐기라고 줬으니 즐기는 게 좋겠지.”
그러나 이때의 판단이 얼마나 안이한 판단이었는지 확인하는 데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인간의 심리란 참 묘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 최대로 활용하는 곳이 바로 도박장이란 곳이었다. 수많은 빈털터리들이 그러했듯 그 들도 처음에는 조촐하게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