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2권 16화 – 초대받지 않은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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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22권 16화 – 초대받지 않은 손님

초대받지 않은 손님

다리 위의 습격

연비와 나예린, 이 두 사람이 원통투기장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것은 관청 제출용 ‘쌍방비무합의문’에 서명하는 일이었다. 그 내용인즉, 결투 시에 부상을 당하거나 심지어 죽는 일이 있어도 상호 간의 동의에 의해 일어난 일이므로 법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다짐을 그 골자로 하고 있었다. 이 서류가 없으면 아무리 고 수라 해도 살인죄로 관청에 연행되어ᅳ일단 그 고수가 재빠른 도주와 격심한 저항을 하지 않는다는 얼토당토않은 가정하에─콩밥을 먹게 된다. 심한 경우 사형대 위에서 목이 댕강 잘릴 수도 있었다.

“유언장도 쓰시겠습니까?”

합의문과 달리 이것은 선택 사항이었다. 게다가 무려 공짜였다.

“발송비는 무료입니다. 부가 혜택입죠.”

조의금 대용이라면 정말 싸게 먹히는 셈이었다. 선수 당사자가 사망한 경우에 한해서 이 유언장은 지정된 장소로 발송된다고 했다.

“별로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군요. 어차피 이길 거니까.”

연비는 단호히 거절했다.

“저도 쓰지 않겠어요. 아직 령 언니도 찾지 못했는데 이런 데서 죽을 순 없죠.”

나예린도 거절했다.

“걱정 말아요.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으니깐.”

연비의 말투는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이럴 때의 연비는 믿음직스러웠다. 마치 그 사람처럼.

“이제 어쩌죠, 연비?”

본의 아니게 일정이 늘어나 버려서 새로운 조치가 필요했다.

“어차피 외박 허가도 받았으니 일단 숙소부터 잡는 게 좋겠네요. 궁상 대장한테도 그렇게 말해놨으니깐요.”

“궁상? 아, 남궁 대장 말씀이군요.”

그 미묘한 단어를 연비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뱉는 바람에 순간 못 알아먹을 뻔했다.

“마천각으로는 돌아가지 않을 건가요, 연비?”

“아직 돌아가긴 이른 것 같아서요. 게다가 초대의 진의도 밝혀지지 않았고, 함께 투기제에 참가할 만한 사람도 물색해 봐야 되고, 게다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궁리하던 연비가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왜요? 무슨 걱정이라도 있나요?”

연비는 무척 깊은 생각에 빠진 듯했다.

“아니요. 다만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어서요.”

“만나봐야 할 사람? 여기 아는 사람이라도 있나요?”

“아뇨, 물론 여기 사람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끈질기게 뒤따라다니는 지긋지긋한 인연이죠.”

그런 거라면 나예린도 경험이 잔뜩 있었다, 그것도 무척 안 좋은 경험이. 설마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된 나예린이 걱정되는 목소리로 물 었다,

“그게 누구죠?”

여차하면 자신이 힘이 되어주리라 생각하며. 그러나 연비의 대답은 그녀의 상상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시련(鍊)!”

연비가 대답했다. 그것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었다.

“시련?”

고개를 끄덕이는 연비의 입가엔 쓰디쓴 고소가 맺혀 있었다.

“지금 그것 이외에 다른 말은 떠오르지 않네요. 가능하다면 평생 만나고 싶지 않지만 역시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역시 도망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일까 요? 기습을 당하느니 차라리 이쪽에서!”

그렇게 말하는 연비의 호박색 눈동자는 잔잔하지만 단호한 결의로 빛나고 있었다.

“함께 가줄까요?”

나예린의 배려는 가슴 깊이 스미도록 고마웠지만 연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이건 나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에요. 린의 마음은 고맙지만 이것은 나누어 질 짐은 아니에요.”

아무리 고통스럽다 해도, 아무리 버겁다 해도 혼자서 가야만 하는 길이 있다. 연비는 지금 그 길 앞에 서 있었다.

쓸만하고 건전한 숙박 업소들이 모여 있는 북구(北區)는 투기장에서부터 동북쪽으로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서구(西區)의 투기장이 들어선 곳을 중심으로 근처 구역은 별다른 상점도 없이 외딴 섬처럼 텅 비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 근처가 모두 금적신 돈왕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도 그 위에 새 로운 건물을 세우고 장사를 시작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현명한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그런 시도를 했다가는 새 건물의 주춧돌이 세워지기도 전에 동정호 바닥 이 어떻게 생겼는지 관광 갈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노숙하는 취미가 없는 연비와 나예린, 두 사람은 서쪽으로 걸음을 옮겨야 했다.

그런데 보통 사람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들 두 사람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각자 짙은 푸른색 계통을 무복을 걸치 고 있었는데, 공통된 점은 뺨에 모두 특수한 문장이 찍혀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 문장은 마치 손바닥 같았다.

연비와 나예린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집요하게 지켜보는 그들은 서쪽에서 들여온 귀한 물건인 천리경을 오른쪽 눈에 대고 한시도 떼놓지 않고 있었다. 이 정도면 범죄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본격적이었다.

천리경. 특수하게 깎은 두 개의 유리를 기다란 통 안에 끼워 넣어 먼 곳까지 볼 수 있도록 만든 이 신기한 물건은 돈 주고도 쉽게 못 구하는 희귀품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뱃사람이기에 상대적으로 타국과의 교역이 활발해 이런 귀한 물건도 남들보다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먼 곳을 항해하기 위해 천리경은 매우 유용한 물건이었 다.

“아씁, 어때, 저 우측의 검은 우산 쓴 여자, 확실해?”

장강십용사의 우두머리 격이라 할 수 있는 일강(江)이 안력을 돋우며 물었다. 내공을 이용해 안력을 높이면 보통 때보다 두 배 이상 멀리 있는 물체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뱃사람들은 원래 눈이 밝았다. 장애물이 없는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일이 많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보조 도구로 천리경까지 이용했으니 살펴보 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지금이 아무리 어둑어둑한 밤이라 해도 말이다.

“예, 대형. 확실히 인상착의랑 일치합니다. 저 정도의 미녀들을 잘못 알아볼 리가 있겠슴까? 한데 이쁜 건 좋은데 거참, 이런 오밤중에 우산이라니…….”

손에 펼친 두루마리를 재차 확인하며 이강이 대답했다. 하긴 이런 화창한 날씨에 우산 펴고 다니는 정신 나간 여자가 여럿일 리 없었다.

“그런데 좀 아쉽네요, 쩝!”

“또 왜?”

“둘 모두 늘씬한 미녀라서요. 왜 그 옆에 키는 좀 작고 좀 어리게 보이는… 하지만 생기긴 되게 귀여운 애도 함께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죠.”

“너, 어린애 취향이었냐? 이 짐승!”

너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실망했다는 어조로 일강은 이강을 비난했다.

“지, 짐승이라니! 취향 차 가지고 그러지 맙시다, 같은 짐승끼리!”

발끈한 이강(二江)이 반발했다. 대상의 나이 차를 떠나서 밝힌다는 데는 공통점이 있는 두 사람이었다.

“내가 어째서 니놈과 같은 짐승과란 말이냐?”

일강은 이강의 말을 인정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투로 설명을 요구했다.

“솔직히 말해보슈. 까만 쪽이오, 하얀 쪽이오? 어느 쪽이오?”

“음, 난 까만 쪽! 난 좀 성깔있어 보이는 쪽이 취향이지! 정복하는 맛이 있달까.”

정복하려다가 복날 개 맞듯, 비 오는 날에 먼지 날 때까지, 안 나면 날 때까지 뼈와 살이 걸쭉해질 때까지 얻어터진 다음 신체 포기 각서 쓰고, 인격 포기 각서 쓰고, 평생 무보수 무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처지가 되지나 않으면 다행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는 일강이었다. 이럴 땐 무지(無知)가 행복을 가져다줄 수도 있 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한여름 밤의 꿈처럼 덧없고 짧디짧은 한순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거 보슈. 남자는 다 똑같은 거 아니겠수. 다 같은 짐승이라 이거유. 그러니 취향 차는 접어두고 그저 본능에 충실합시다.”

“그, 그런가…….”

이강이 펼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바로잡을 만한 지식도 정당성도 확보하지 못한 일강은 그런가 보다라며 의혹이 가시지 않은 채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 다.

“뭐, 어쨌든 겨우 찾았구나. 이걸로 이제 아가씨께 안 혼나도 되겠구나.”

일강은 뺨을 어루만지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뺨을 문지르는 것은 비단 그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그들 열 사람의 뺨에는 벌건 손자국이 사이좋게 찍혀 있었던 것 이다. 모두 그들의 왈가닥 아가씨, 해어화의 작품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지각이었다.

짜~악!

작렬하는 뺨따귀에 일강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가 마지막이었다. 십용사의 나머지 아홉 모두 손바닥으로 얼얼함이 가시지 않은 뺨을 쥐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앙?! 지금 오면 어떻게 해! 그년은 벌써 이 섬을 떠났단 말이야!” 아직도 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해어화는 숨을 씩씩거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가씨, 그러니까 저흰…….”

일강은 뭔가 변명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들은 정말 억울했다. 변명이라도 하지 않으면 낮밤을 가리지 않고 이곳 동정호까지 전속력으로 달려온 지난 삼 일이 너무 나 아까웠다. 노를 젓던 이들 모두가 힘이 빠져 일어서지도 못할 지경이 될 때까지 필사적으로 달려왔는데… 돌아온 보답은 볼때기가 떨어질 것만 같은 호된 따귀 였다. 그러나 이 왈가닥 아가씨는 그런 사소한 일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시끄러워! 닥쳐! 너희들이 늦어서 그년을 놓쳤잖아!”

연비의 모습을 단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불쾌한 기분에 휩싸인 해어화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깜빡였다. 감정이 얼굴에 친절하게 색상까지 띠며 나타나니 현재 의 기분 상태를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

아무리 채주의 딸이라 해도 그들도 나름대로 장강수로채에서 꽤나 지위가 있는데 이렇게 함부로 폭언을 퍼붓는 것은 무척 막돼먹은, 정말 싸가지없고 개념도 없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항의하고 싶어도 항의할 장소가 없다. 딸자식의 일이라면 무조건 오냐오냐하는 무시무시한 아비가 그녀의 뒤를 든든히 받쳐 주고 있는 탓이었 다.

“당장 강호란도로 달려가! 가서 그년을 없애 버려! 그년이 이곳 부두에서 내리는 꼴이 보이기라도 했다가는 아빠한테 다 일러바칠 줄 알아! 알겠어?”

표독스런 목소리로 해어화가 앙칼지게 외쳤다. 성난 고양이가 털을 쭈뼛 세운 채 캬르릉거리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예, 아가씨. 알겠습니다, 알구말굽쇼.”

장강십용사란 이름이 무색하게 그들은 진땀을 뻘뻘 흘려야만 했다.

“그럼 당장 떠나! 지금 당장!”

위험에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비단 군자만이 아니다. 그들이 비록 군자라기보다 악당에 가깝지만 고도의 위험을 회피하고픈 그 마음만은 같았다. 그들은 더 이상 저 왈가닥의 난동을 몸으로 겪고 싶지 않았으므로 서둘러 부랴부랴 자리를 떴다.

“아참! 인상착의는 가지고 가야지, 이 머저리들아!”

부랴부랴 출항 준비를 하는 그들의 등 뒤에서 고래고래 고함지르던 해어화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 몸서리가 처질 정도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대형?”

“왜?”

뚱한 목소리로 일강이 반문했다.

“보면 볼수록 둘 다 정말 끝내주게 이쁘네요! 으헤헤헤헤!”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을 생각도 안 하고 이강이 헤벌쭉한 얼굴로 감탄했다. 천리경이 오른 안구 안쪽으로 파고드는 게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그의 집요하게 두 여 인의 뒷모습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 것쯤 나도 안다!”

꽤나 잘났다고 자랑하는 그들의 아가씨도 저 두 사람에 비하면 명월 앞의 반딧불에 불과했다. 이건 애초에 비교가 불가했다.

“쩝, 아가씨가 그렇게 길길이 날뛰시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요.”

자신보다 너무 뛰어난 인간을 순순히 인정할 만큼 마음이 넓은 사람은 많지 않다. 게다가 그들의 아가씨는 특히나 질투심이 강하고 성품이 잔인했다. 집에서 오냐 오냐하며 세상에서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있었을 텐데, 저런 엄청난 현실의 압박을 용납할 리 없었다.

“입조심해라, 아우야. 사지 멀쩡하고 싶으면.”

일강이 좋은 마음으로 충고했다. 시답잖은 구업(業)으로 인해 장강용사가 구용사가 되는 것을 그는 원치 않았다. 빠진 인원 보충하는 것도 나름대로 큰일이기 때문이다.

“헤헤, 그럼 잠시 잡아서 재미라도…….”

짬밥이 안 돼서 천리경도 가지지 못한 채 안구가 충혈될 정도로 눈을 부릅뜨고 안력을 돋우고 있던 삼강이 들끓는 욕망을 숨김없이 발산했다.

만일 그렇게만 된다면 이런 삽질에 대한 최소한의, 아니, 최대한의 보상이 될 수 있으리라. 그러자 매가 날아왔다.

딱!

“아씁, 짜식, 생각하는 것 하고는!”

일강은 삼강의 머리통을 사정없이 쥐어박으며 한마디 했다.

“아쒸, 방금 대형도 분명 동했으면서!”

삼강이 항의했다.

“엥? 내가 언제?! 이 짜식이 인제 건방지게 모함까지!”

일강이 분노했다. 어디서 감히 기어오르려 한단 말인가. 이런 땐 재빨리 본때를 보여 대형으로서의 위엄과 존엄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아쒸, 그럼 그 입가의 침은 뭐요? 빗물이오, 아님 눈물이오?”

화들짝 놀란 진강이 소매가 자신의 입가를 얼른 훔쳤다.

‘헉! 어, 어느새!’

칠칠치 못하게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뭔가가 입 사이로 흘러나온 모양이었다. 황급히 소맷부리로 닦아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동안 열심히 사수해 왔던 대 형으로서의 위엄과 존엄은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이, 이건 그냥..

뭔가 변명할 거리를 찾기 위해 그는 필사적으로 팔을 흔들었다.

“큭, 뭔데요?”

“아쒸, 뭡니까?”

뭐라도 말하지 않으면 위험했다. 이대로 하극상을 당할 수 는 없었다. 그러나 팔을 젖는다고 해서 지력이 높아지진 않는 모양이었다.

“이, 이건 그냥 콧물이야!”

“……”

잠시 이어진 죽음과도 같은 정적!

물론 계량할 것도 없이 그것의 설득력은 한없이 무(無)에 가까웠다.

잠시 내부 논쟁이 있었지만, 합의에 오랜 시간을 할애할 만큼 두뇌 노동을 좋아하지도 않는지라 결론은 의외로 빨리 났다. 사실 매우 급하게 난 결론이었다. 서두 른 티가 역력하다. 언제나 욕망은 빠르고 이성은 느린 법인 모양이다.

일단 그들은 명령보단 욕망에 충실하기로 했다. 그들의 엄한 아가씨는 완전한 말살을 원하는 듯했지만, 그들은 생명을 소중히 여겨 그저 자신들에게 봉사시키는 선에서 끝내기로 했다.

비록 용사(勇士)라는 칭호를 쓰고 있지만 용사의 덕목인 용기와 사랑, 열혈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그들은 원래 흑도였으니 도덕심이나 정의감하고는 언제나 담 을 쌓고 산다는, 흑도인으로서 지극히 올바른 생활 태도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그런 망설임은 영업에 방해만 될 뿐이었다. 비록 그들의 피가 뜨겁다고 해도 제어 안 되는 그 피의 온도는 유혈 사태의 원인이 될 뿐이었다.

“그럼 어떻게 할깝쇼? 정면에서 칠깝쇼?”

삼강의 말에 일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십면매복’으로 가자!”

그러자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겨우 계집 두 명 잡는 데 십면매복진까지 써야 하우?”

창날과 창대가 일체인, 얼핏 보면 거대한 쇠기둥처럼 생긴 긴 창을 들고 있던 오하五河)’는 그게 무척 불만인 모양이었다.

“아씁, 생각은 없는 게 불평은!”

일강이 그런 그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 한성깔하는 아가씨가 설마 아무런 손도 안 써보고 채주님을 닦달해 우릴 불렀겠냐?”

“그건… 아니지우…….”

오하가 즉시 대답했다. 그 성깔, 그 성미로 미뤄봤을 때 이미 뭔가 한두 번 수를 썼다고 봐야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참했으리라. 사실 일강의 추측엔 거의 오차 가 없었다.

“아씁! 천무학관 사절단으로 뽑혀 여기 마천각까지 올 실력자였으니 범상한 실력은 아니겠지.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 우린 우리 목적만 달성하면 되는 거야.”

어차피 강호의 도의 따위 그들이 알 바 아니었다. 어느새 그 목적은 변질되어 있었지만, 원래부터 목적성 투철한 삶을 살아왔던 것도 아니었다. 애시당초 제대로 된 목표가 있었다면 이 바닥까지 굴러 들어오지도 않았을 터였다.

“쩝, 하긴 그렇쿤유. 대형 말이 참말로 맞습니다유.”

오하는 납득한 듯했다.

“이제 알았냐?”

의기양양한 얼굴로 일강이 말했다.

“십면매복을 발동할 장소와 각자의 위치는 모두 숙지했겠지?”

계획이 수립되자 일강이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물론입니다.”

철컥! 철컥! 철컥!

일강, 이강은 천리경을 접어 허리춤에 집어넣은 다음 자신들의 무기를 들어 올렸다. 삼강의 무기도 같은 것이었는데, 그것은 ‘노(弩:쇠뇌)’였다. 일종의 석궁인데,

그것은 기존의 석궁과는 좀 모양새가 달랐다. 무엇이 달랐냐 하면 화살이 나가는 곳에 길고 높은 함이 달려 있었는데, 그 함 옆에는 손으로 잡아 돌리게 만들어진 손 잡이가 달려 있었다. 그 손잡이를 빠르게 돌리며 재장전의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신속하게 쇠뇌를 쏠 수 있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무기는 바로 연노(連弩)였다. 그 것도 기존의 연노보다 사정거리가 두 배 이상 증가시킨 특수 개량품이었다.

“자, 그럼 사냥을 시작해 볼까?”

흥분한 일강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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