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2권 3화 – 미안하오, 다음 생(生)엔 꼭…….

랜덤 이미지

비뢰도 22권 3화 – 미안하오, 다음 생(生)엔 꼭…….

미안하오, 다음 생(生)엔 꼭…….

– 삼재(三才)의 비밀

“은, 은 소저?”

우물가에서 걸레를 빨고 있던 모용휘는 멀리서 은설란이 나타난 것을 발견하고는 일시정지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벌떡 일어선 그는 전광석화처럼 걸레와 세탁 도구들을 우물 뒤쪽에 무참히 처박아 버렸다. 허리에 둘렀던 청소용 치마도 바람처럼 우물 뒤쪽으로 날려 보냈다.

‘됐어! 좋아, 이제 옷매무새를 점검한다! 소매! 바지!?

소맷단과 바짓단을 걷어붙여 동여맸던 끈들이 신속히 처리되었다. 웬만한 고수가 아니라면 이 모든 과정이 그저 우물가에 회오리가 한차례 지나는 것처럼 보일 지 경이었다.

마지막으로 소매를 털어내고 가슴을 펴는데, 어느새 청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에요, 모용 공자.”

두근! 쿵!

그녀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아, 네, 오랜만… 입니다.”

모용휘는 은설란을 마주 보다가 얼른 시선을 돌렸다. 이상했다. 그날 밤, 술 취한 그녀를 방에 옮겨다 준 이후부터 왠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기가 힘들어졌다. 마 음은 보고 싶은데도 몸은 반사적으로 자꾸만 도망가려고 한다. 아니, 그 반대인가? 은설란을 보고자 하는 것이 어느 쪽인지, 피하고자 하는 것은 또 어느 쪽인지, 이 제는 모용휘 자신도 혼란스러웠다.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자신의 상태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무서웠다. 두려웠다. 그래도 이렇게 보고 있으면 역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붉은 입술에 가 서 눈이 멎는다.

두근. 다시금 심장이 세차게 맥동한다. 모용휘는 또 한 번 자신을 책망했다. 평상심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수행 부족 탓이라는 자책이었다. 그게 자 연스러운 반응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는 듯했다. 그런데 기분 탓일까, 자신을 보는 은설란의 눈빛이 기묘했다.

‘혹시, 음흉한 놈이라고 여기는 건가?”

만일 그렇다면 자신에게 남겨진 길은 기연도 안 나올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길뿐이다.

“모용 공자?”

“예? 옛! 크흠!”

당황한 티가 역력한 대답에 은설란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켜 보였다.

“저기, 머리에..

“예? 머리요?”

뜬금없는 말에 모용휘는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머리는 왜…… 턱! 무의식적인 반응으로 머리를 향하던 자신의 손에 뭔가 펄렁거리는 것이 잡혔다.

있었다! 청소용 머릿수건이…….

“아, 아니… 그러니까… 이건…….”

먼지에 대한 대비책으로는 훌륭했지만, 그다지 타인에게 보이고픈 모습은 아니었다. 특히 마음에 두고 있는 여성에게는 더더욱.

“쿡! 잘 어울리네요. 빨래하러 나온 새색시 같아요.”

모용휘의 두 손이 머릿수건을 잡아채 꼬깃꼬깃 뭉치는 동안 그의 혼백은 기연없는 절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모용 공자랑 혼인하는 사람은 상당히 힘들겠어요. 그 높은 청결 수준을 유지하려면 말이죠.”

“아니, 전 결코 은 소저를 힘들게 할 생각은… 청소 같은 건 제가 해도…….”

라고 화급히 손사래를 치다가 모용휘는 그만 그대로 얼어붙었다.

‘방금 나, 뭔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하지 않았나?”

등 뒤에서 식은땀이 좔좔 흘렀다. 그는 불호령이 날아올 것을 각오하고 쭈뼛쭈뼛 은설란의 기색을 살폈다.

“…..”

그러나 상대로부터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불호령은커녕 은설란도 그처럼 얼어붙은 것인지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왠지 볼이 발그레해 보였다.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떻게든 이 위기를 모면하지 않으면 안 돼!’

모용휘는 혼란 속에서 서둘러 변명거리를 찾았다.

“아, 아니, 그러니깐… 그러니깐… 은 소저 얘기가 아니라… 장차 혼인할 소저라고 말하려던 것이 말이 헛나왔네요.”

그의 횡설수설한 변명에 은설란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그런가요? 그렇군요. 이제야 확실히 알아듣겠어요.”

칼날처럼 예리하고 싸늘한 목소리가 북풍한설을 연상케 했다.

“예? 어, 무슨.”

무언가 엄청난 실수를 한 것 같은데 그게 뭔지 확실히 짚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검술에 능해도 인간관계, 특히 여성과의 관계에서는 백치나 다름없는 모용휘였다.

“누구인진 몰라도 혼인할 소저는 좋겠네요. 제 얘기도 아닌데 참견해서 미안해요. 그럼 잘 지내시길.”

차갑게 얼굴을 굳힌 은설란이 몸을 홱 돌렸다. 순간, 눈가에 빛이 아롱지는 게 마치 눈물이 맺힌 것처럼 보였다. 모용휘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다리세요, 은 소저! 그건 아닙니다! 그건 아니에요! 은 소저 얘기가 아닌 것이 아니고… 언제든 참견해도 괜찮습니다! 참견하십시오!”

그는 은설란을 향해 손을 뻗으며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되는대로 절박하게 외쳤다.

“…..!”

얼굴을 붉히며 돌아본 은설란의 커다란 눈동자가 의혹으로 물들었다. 시선의 끝은 뻗어진 손끝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건 또 무슨 뜻이죠?”

아차!

내밀었던 손에서 꼬깃꼬깃 뭉쳐진 머릿수건을 발견하고 모용휘는 서둘러 그것을 다시 등 뒤로 숨겼다.

“이, 이건 아닙니다.”

“그럼 방금 전에 하셨던 말씀은 무슨 뜻인가요?”

이건 마지막 기회였다. 아무리 둔한 모용휘라도 그것만은 알아차렸다. 무인으로서의 본능이, 아니, 남자로서의 생존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지금이 무언가가 결판 나는 중대한 국면이라는 것을.

‘잘못하면 내일은 없다!’

긴장한 그는 은설란에게 답변할 말을 황급히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서오경과 명언집, 무공 지식을 포함한 모든 학식과 지식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여자들과의 결핍된 대화 경험, 또한 부족한 융통성이 지금 이 순간 그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무한정하지 않았다. “됐어요!”

은설란이 마침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사내가 이렇게 용기가 없다니! 이래서야 그날의 재탕이군요!”

실망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모용휘의 정신은 충격 속에 비틀댔다.

‘그, 그날이라니…….?

차라리 짐작 가는 날이 없었다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그녀가 진탕 퍼마시고 쓰러진 그날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아직도 자신의 등은 그녀의 온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의 일이 떠오르자 갑자기 뇌 속이 뜨끈뜨끈해지는 것 같았다. 시야가 일렁거렸다.

“얼마나 용기를 냈는지도 모르면서.. 무슨 남자가 겨우 털끝 하나 남겨두고 포기를. .!”

그날,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서 바라본 그녀의 그 무방비했던 얼굴이 모용휘의 뇌리 속을 가득 메워 버렸다. 흑단(黑緞)처럼 빛나던 머리칼, 뽀얗고 따사로운 피부, 수려한 눈매, 단아한 콧날, 그리고 촉촉하게 빛나던 붉은.

모용휘의 얼굴은 이제 잘 익다 못해 불타오를 정도로 새빨개졌다. 그의 머리는 이미 먹통이 되어서 내공으로 안색을 다스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 와중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날, 서… 설마 깨 있었습니까?”

“그랬다면요? 뭐 달라지는 거라도 있나요?”

빨갛기는 매한가지인 얼굴로 은설란이 눈을 흘겼다.

“아,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렇게 되묻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는 오늘 저녁 유서에 무슨 말을 적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은 소저, 미안하오. 다음 생(生)엔 꼭, 꼬옥..

유서에 적을 뒷말을 구상하며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모용휘를 향해 은설란이 후속 공격을 날렸다.

“호색한도 나쁘지만, 우유부단 지지부진도 나쁘긴 똑같아요!”

흠칫!

그 말은 송곳이 되어 모용휘의 가슴을 찔렀다.

“기다리는 것도 정도껏이지, 애간장 태우면 재미있어요? 여자가 꼭 먼저 말해야 하나요? 부끄럽게! 나도 여자예요! 알겠어요?”

“아, 옙! 알겠습니다.”

얼떨결에 부동자세로 대답하고 말았다.

“바보!”

마지막 치명타를 날리고 은설란은 표표히 사라졌다. 모용휘는 감히 멀어져 가는 그녀를 잡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의 용기는 이미 바닥난 상태여서 더 이상 짜낼 여분이 남아 있지 않았다.

“바보?”

남겨진 모용휘는 멍하니 은설란이 남기고 간 말을 곱씹어보았다.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아무래도 그녀의 평가는 사실인 것 같았다.

***

얼빠진 얼굴로 은설란이 사라진 방향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모용휘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쯧쯧쯧, 뭐 하는 게냐?”

모용휘가 깜짝 놀라 몸을 틀었다.

“노야?!”

우물가 뒤의 나뭇가지를 젖히고 걸어나온 노인이 곰방대를 입에 물며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바로 혁중 노인이었다.

“오, 오셨습니까?”

“사내 녀석이 여심 하나 제대로 못 읽어서야 어디다 쓰겠느냐?”

혁중 노인이 혀를 차며 말했다. 모용휘는 얼굴이 화끈해졌다.

“쯧쯧, 뭐 나도 그쪽은 전문이라 할 수 없으니 뭐라 할 처지는 아니다만……. 뭐, 됐다. 그건 그렇고, 오랜만이구나.”

노인이 몇 가지 과제와 고약한 사부 둘만 붙여준 채 휙 사라진 후로, 벌써 두 달은 족히 지나 있었다. 천무학관에서 헤어졌는데 설마 마천각에서 만날 줄이야. 하긴 이 노인이 마음만 먹는다면 강호상에 갈 수 없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응? 아, 몇몇 처리할 일이 있어서 약간 바빴다. 미아 찾아 삼만리라고나 할까…….?”

적당히 둘러대는 말투였다.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라 모용휘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래, 그동안 진전은 있었느냐?”

혁중 노인은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송구스럽습니다, 노야.”

모용휘가 고개를 푹 숙였다. 염도와 빙검에게 호된 수련을 받았으나 그다지 만족스러운 성과는 없었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벽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뭐, 됐다. 크게 기대했던 건 아니니까. 그냥 천재도 아니고 무신(武神)이라고까지 불리던 녀석의 진전이다. 네가 아무리 천재적인 자질이 있다 해도 쉽게 체득하 긴 어렵겠지.”

감당하기 힘든 말로 느껴졌는지 모용휘는 손사래를 쳤다.

“처, 천재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저 같은 범재에겐 너무나 과분한 호칭입니다.”

모용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한 점 거짓없는 진심이었다. 시대를 바꿀 역량을 지닌 자만이 천재라 불려도 부끄럽지 않은 법. 무신은 전란의 시대를 누비면서 무림사(武林史)에 지워지지 않을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아직도 검성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반 발자국도 내딛지 못해 아등바등하는 자신은 그런 재능도 기개도 턱없이 부족했다.

“네가 천재인지 아닌지는 아직 너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평가란 항상 후대에 이루어지는 거니까. 너는 그저 어떻게든 그 비밀을 풀고 그것을 익히 는 수밖에.”

“비밀이라시면 그 건곤조화경의…….”

“그래, 그것 말이다. 그 두 녀석은 좀 어떠냐?”

“여전하십니다.”

“끙, 아직도 쌓아둔 앙금 때문에 티격태격하는 모양이구나. 자기 둘을 쓰러뜨린 자만이 그걸 볼 자격이 있다니, 그놈들도 참 어지간히 해야 할 텐데. 이그, 한심한

것들.”

노인이 보기에 그들이 내건 조건은, 정말 실력있는 이를 찾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서로 합치기 싫어서 부리는 투정에 불과했다.

“하나 어차피 그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앞으로 네가 싸워야 할 적들은 그 이상의 고수들일 테니까.”

도대체 싸워야 할 적들은 어떤 자들이기에? 모용휘는 아연해졌다. 현재 그의 목표는 화산에서의 굴욕을 되갚아주는 것밖에 없었다. 보이지 않는 적은 그 존재조차 의문이 들 정도로 현실감이 없었다. 아마 화산의 화겁(劫)이 없었다면 여전히 그러했으리라.

“좋다! 그렇다면 그 녀석들을 이길 수 있는 비책을 가르쳐 주마! 오체투지하며 감사하도록! 음하하하!”

홍소를 터뜨리며 자신만만한 어조로 말했다.

“정말 그런 게 있습니까?”

요령이나 비책 정도로 단숨에 메워질 만한 격차는 아니었다. 단련을 받으면 받을수록 그 격차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 둘에 비하면 자신은 아직 새파란 애송이. 그 들이 서 있는 곳까지는 아직도 머나먼 길을 걸어가야 했다.

“그럼, 물론 있고말고. 이건 나중에 가르쳐 줄 생각이었는데, 계획을 변경하는 수밖에. 어차피 이걸 깨닫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도 없고…….”

“그게 무엇입니까?”

“나도 정확히는 몰라.”

툭 던져 주듯 내뱉는 답변이었다.

“예?”

어이가 없었으나 별로 농담 같지도 않았다.

“아, 오해 말거라, 아가야. 난 그냥 전언자일 뿐이니까. 전혀 모르는 건 아니지만, 정수를 얻었다고 말할 수는 없구나. 이건 내 친구가 남겨준 말인데, 건곤조화경의 열쇠라고 하더구나.”

그 말인즉, 이 이치를 깨닫지 못하면 건곤조화경의 무공을 습득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모용휘는 노인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궁극의 가르침에는 그에 상응하는 예를 표해야만 하는 것이다.

“오래전, 친구에게 부탁받았던 가르침을 지금부터 너 모용휘에게 전하겠다.”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삼재(三才)의 이치를 깨달아라!”

그리고는 말했다.

“끝!”

비책의 전수 과정이라기엔 너무나 짧아서, 진짜 비책인지마저 의구심이 들었다. 혹시 장난치는 게 아닌가 의심될 정도였다. “표정이 꼭 돌 맞은 개구리 같구나. 걱정 마라, 장난 아니다.”

아무래도 마음이 읽힌 모양이었다. 그렇게 티가 나는 얼굴이었나 하며 모용휘는 잠시 반성했다.

아무튼 그 안에 어떤 비의(秘意)가 들어 있다 해도,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단기간에 효과 보기란 절대 불가능하다는 정도였다.

“저어, 삼재라 함은 천지인(天地人), 그 삼재 말씀이십니까?”

확인차 물었다.

“그래, 그거다. 그거 말고 다른 삼재도 있느냐?”

당연한 걸 괜스레 물어본다는 어투였다.

“삼재검법이라고 할 때의 그 삼재요?”

“그래, 바로 그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그런데 그 삼재에 뭔가 비밀이라고 할 만큼 거창한 게 숨어 있었나?

삼재검법. 말이 검법이지 그냥 인(人)의 종 베기, 지(地)의 횡 베기, 천(天)의 찌르기, 이 세 가지 기본 초식을 총칭하는 말일 뿐이었다. 검법의 걸음마며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그건 기본 중의 기본 아닙니까?”

그런 게 무슨 염빙(焰氷) 공략의 비책이 된단 말인가?

딱! 모용휘의 머리통에서 불꽃이 튀었다.

“떼끼! 기본을 무시하지 마라. 모든 것은 언제나 기본부터 시작하는 법이야! 요즘 젊은것들은 어찌 된 게 하나같이 바로바로 성과를 얻으려 든단 말이야. 쯧쯧쯧.”

‘말세야, 말세!’를 부르짖으며 혁중 노인은 혀를 끌끌 찼다. 모범생 모용휘는 황망해져서 우왕좌왕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어느 정도 본심을 지적당했기에 더욱 당황

스러웠던 것이다.

“반성하고 있느냐?”

모용휘를 흘낏 바라보며 혁중 노인이 물었다.

“예,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모용휘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음, 그럼 됐다. 다음부턴 안 그러면 되는 것이지. 네 녀석은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할 녀석이 아니라고 믿는다.”

“감사합니다, 노야.”

그제야 노인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 귀를 열고 잘 듣도록 해라. 기본과 기초를 명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모든 공부는 사상누각일 뿐이다. 언제부터 천지인 합일이 칼 들고 똑 바로 서 있는 것으로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안에 담긴 비의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그런가??

아무리 생각해도 천지인 삼재에서 더 끄집어낼 것은 없어 보였다.

“내 친애하는 친구 녀석이 그러더군. 천, 지, 인, 삼재(三才)의 비밀을 깨달을 때 태극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고!”

모용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말을 가슴속 깊이 새겨 넣었다.

“이 말에 담긴 의미를 궁구(窮究)하지 않고서는 결코 이치에 도달하지 못하리라. 알겠느냐?”

“예, 명심하겠습니다.”

대답은 똑 부러졌지만 삼재의 비밀이라니. 그동안 숨 쉬듯 당연하게 여기며 조금도 숙고하지 않았던 문제가 갑작스레 화두로 던져졌다. 뚝딱하고 금방 답이 나올 리 없었다.

“하아, 이제 어쩌지? 당분간 이 비밀을 풀 때까진 답보(踏步)…… 뭐, 그런 걸까?”

여태껏 걸음마 단계라고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걷지 못하고 답보라니. 이래서야 걸음마는커녕 배밀이 상태였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