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2권 4화 – 폭풍은 엉뚱한 곳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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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22권 4화 – 폭풍은 엉뚱한 곳으로부터

폭풍은 엉뚱한 곳으로부터

-운명의 전환점

“항해는 순조롭습니다, 국주님!”

“음, 좋은 바람이야. 이대로라면 내일 중엔 도착할 수 있겠어.”

장우양은 고개를 들어 자랑스러운 시선으로 돛대 위를 바라보았다. 강바람을 맞으며 백호기와 연화검기가 나란히 펄럭이고 있었다.

“이젠 여기까지 왔군!”

멀고도 다난한 길이었다. 변방의 조그만 표국에서 시작해 이제는 천하를 무대로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다시 처음부터 걸으라 하면 아마 걸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리라.

“이제 곧 동정호에 진입합니다.”

“음.”

이제 이 협류만 빠져나가면 바로 넓디넓은 동정호가 그들은 반길 터였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마천각이 아니었다. 마천각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는 장우양도 몰랐 다. 다만 동정호변의 한 마을에 배를 대놓으면 표물을 인수하러 마천각에서 사람이 올 거라고 했다.

여기까지 와서도 마천각엔 들어가지 못한다니.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군.”

그런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노야께선 어쩔 셈이실까?”

분명 노야는 마천각에 들어가신다고 했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마천각에 발을 들일 기회는 전무하다. 그렇다고 노야가 ‘이런, 그럼 할 수 없군!’이라며 그냥 물러날 사람은 절대 아니다. 만난 지는 오래되지 않았으나, 그 정도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설마…….”

문득 머릿속으로 불길한 상상이 유성처럼 스쳐 지나갔다. ‘에잇, 아니겠지.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 암, 그렇고말고.’ 그러나 강하게 부정하면 할수록 불안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장우양은 무사태평을 바라며 천지신명에게 열심히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심이 부족했던 탓일까? 그의 기도는 채 일각도 되지 않아 먼지처럼 부스러 지고 말았다.

땡땡땡땡!

돛대 위에서 주변을 감시하던 선원이 요란스레 비상종을 쳐댔다.

“큰일 났다! 흑룡선이 나타났다!”

절규에 가까운 외침에, 좀 전까지 안온한 평화를 만끽하던 갑판은 아비규환의 수라장으로 바뀌었다.

“뭐라고! 그놈들이 여긴 왜? 여긴 영업 장소도 아니잖아!”

보고받은 장우양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흑룡선. 검은 돛과 검은 용이 새겨진 검은 깃발을 두른 흑선이었다. 물길에 어두운 장우양이지만, 장강수로채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장강을 저희들 맘대로 휘젓고 다 닌다는 악명 높은 수적 집단에 대해서는 익히 들은 바가 있었다.

‘젠장, 기도할 때 향도 피우고 지전(錢)도 태울걸! 죽자 살자 기도하는 것들이 한두 놈이 아닐 텐데! 건방지게 맨 입으로 빌었다고 천지신명이 도리어 진노했구 나!’

그는 되지도 않는 생각을 하며 이를 악물고 후회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제기랄!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천지신명의 야속함을 원망하면서도 장우양은 서둘러 뱃머리에 바싹 붙어 눈을 부라렸다. 사태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수평선 너머로 물길을 거스르며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그 모습 드러냈다.

그것은 온통 불길한 검은색으로 칠갑되어 있었다. 배를 이루는 골조도, 선체도, 돛도, 깃발도, 노도 모두 검게 칠해져 있었다. 지금이 밤이었다면 어둠 속에 묻혀서 코앞까지 다가왔어도 눈치 채지 못했으리라. 그래서 흑룡선의 별칭은 일명 ‘그믐의 사신’이었다.

야밤에 그들을 만나 무사했던 배는 지금껏 단 한 척도 없었다. 어지간한 기술 없이 밤에 물길을 가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야밤에 나다니는 배가 원래 적기는 했

지만.

중양표국 역시 안전을 기하고자 해가 저물 때쯤이면 항상 뭍에다 배를 안착하곤 했었다. 게다가 마천각에 표물을 전달하는 입장인 만큼, 이런 데서 벌건 대낮에 수 적을 만날 줄은 상상도 못했던 터였다.

“도망가 봐야 잡히겠지. 선택의 여지는 없겠군.”

흑룡선은 타협을 모르는 맹수였다. 통행세 따위로는 턱도 없었다. 찔끔찔끔 뺏느니 시원하게 털자는 게 그들의 신조였다. 그래선지 배 자체도 오로지 공격과 파괴 와 약탈을 목적으로 만들어놓았다. 선수(船首) 밑으로 튀어나온 두 개의 강철 충각(衝角)은 무소의 뿔을 연상케 했고, 그 어떤 폭풍에도 끄떡없을 듯한 돛대와 일사 불란한 스물네 개의 노는 보기만 해도 압도적이었다.

싸우면 죽고 도망치면 잡힌다. 그러니 얌전히 포기하고 모든 것을 고스란히 바치라고 그 불길한 검은 배는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칠 만한 게 있나? 그래 봤자 사절단 학생들 짐인데.’

값비싼 상품들은 거의 없는 배. 저들의 정보망이라면 이미 그쯤은 익히 알고 있을 텐데,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처사였다. 아무튼 흑룡선은 어느덧 유유히 접근해 서는 적당한 거리에서 멈춰 섰다. 갈고리와 밧줄을 던지기에 딱 좋은 거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어깨 근육이 부담스러운 거한 하나가 칭칭 감고 있던 굵은 밧줄을 머리 위로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회전하던 밧줄이 날아가자마자 그 뒤에서 또 다른거한이 나타나 밧줄을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이잉!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밧줄이 날아왔다. 밧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배의 난간에 강철의 발톱을 박아 넣었다.

“어서 밧줄을 잘라라!”

다급한 목소리로 장우양이 외쳤다. 두 눈 멀쩡히 뜨고 다리를 만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표두 몇몇이 나서서 다급히 검으로 밧줄을 내려쳤다. 그러나 시커먼 밧줄들은 특수한 처리가 되어 있는지 흠집만 날 뿐 끊어지질 않았다. 쇠심줄보다도 질긴 밧줄이었다.

날아드는 밧줄들 속에서 장우양은 침착해지려고 애쓰며 앞으로 나섰다. 표행의 안전을 위해선 뭐든 시도해 보아야 했다. 그는 배의 선미로 나가 포권을 하며 대화 를 시도했다.

“본인은 사천의 중양표국을 이끄는 국주 장우양이라 하오. 귀하들은 어느 곳에서 오신 형제들이시오?”

내공이 실린 목소리라서 또렷이 울려 퍼졌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우양은 내공을 실어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외쳤다.

“다시 한 번 묻겠소! 어느 곳에서 오신 형제들이시오?”

그러나 대답은 또다시 침묵이었다. 그래도 우두머리인 국주가 침착하게 대처하자 처음엔 당황하던 표사들도 서서히 차분함을 되찾아갔다. 전열을 가다듬을 좋은 기회였다.

“처리해라!”

얼굴이 사각형처럼 네모진 사내가 험악하게 외치자, 검은 밧줄을 밟으며 열두 명의 돌격대가 날쌔게 달려들었다. 언제나 선봉에서 피를 부르는 흑룡선의 정예 ‘십 이아(十二牙)’였다.

이때, 선실 문이 열리며 한 노인이 걸어나왔다.

“시끄럽다. 대체 웬 소란이냐? 잠도 못 자게.”

노사부였다. 밧줄을 밟으며 날렵하게 뛰어오는 이들에겐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노사부는 곧바로 장우양에게 상황을 캐물었다. 그 등 뒤를 향해 흑룡선으로부터 십이아가 질풍처럼 달려들었다. 이런 꼬부랑 노인네쯤은 장우양과 함께 베어버리면 그만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조심하십시오, 노야!”

등 뒤에서 달려드는 열두 그림자를 보며 장우양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들 십이아의 목적은 장우양의 목이었다. 그 외에는 관심도 없었기에 갑작스레 나타 난 노사부는 그저 단순한 방해물에 불과했다. 그저 언제나처럼 싹둑 베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항상 통용되던 그 법칙이 오늘만큼은 작용하지 않았다.

쿵, 쿵, 콰다당!

“뭘?”

시큰둥한 목소리로 노사부가 반문했다.

‘헉!’

장우양은 기겁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사실 그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있었지만 사태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질풍처럼 달려들던 저 열두 명이 순간 공중에 멈춘 듯했는데. 그다음에… 그다음엔…….

기억에 단절이 일어난 듯 그 부분만 텅 비어 있었다. 마치 기억의 한 부분을 송두리째 도려낸 기분이었다. 그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결과적인 현상뿐. 지금 그 의 눈앞에는 갑작스레 모든 힘을 잃고 후드득 바닥으로 떨어진 열두 명의 그림자가 나뒹굴고 있었다. 어째서 저런 알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났는지 그 원인은 끝내 파 악되지 않았다. 그제야 등 뒤를 향해 기계적으로 고개를 돌린 노사부가 한마디 했다.

“뭐냐, 별것도 없잖아?”

아래는 볼 생각도 없는 모양이다. 항상 그랬지만 사소한 것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게 나름의 원칙인 듯했다.

“아, 예…….”

장우양은 그 무덤덤한 모습에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장우양이야 얼이 빠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은 채 노사부는 자신이 탄 배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흉측하고 불길한 검은 배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음?”

대부분의 일들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노사부의 시선을 끌었다는 점에서 일단 이 검은 배는 합격점이라 할 수 있었다. 분명 그 합격과 동시다발적으로 십 중팔구 불행 당첨일 게 불 보듯 뻔했지만, 그들로선 지금 이 순간 남아 있는 약간의 기회나마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 될 판이라는 것을 알 도리는 전혀 없었다. “흐음…….”

한참 동안 검은 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노사부가 물었다.

“이보게, 저 까만 배, 비싼가?”

처음에 장우양은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사고 체계 너머에 존재하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예? 죄, 죄송합니다. 잘 듣지 못했습니다.”

당황한 장우양이 허겁지겁 사죄했다.

“쯧쯧, 아직 젊은 녀석이 그리도 귀가 어두워서야.”

그러나 노사부는 친절하게도 더 추궁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저 까만 배, 단가가 꽤 세냐고 물었네.”

그제야 장우양도 겨우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납득할 수는 없는 대화였지만 의사소통에 그리 큰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아마도 상당히 비쌀 것으로 사료됩니다. 일단 무엇보다 특별 주문 제작품일 게 틀림없으니까요.”

이미 예상한 답변이라는 듯 노사부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흐흠, 역시 그렇겠지?”

“그… 그렇습니다, 노야.”

가슴 저 밑바닥, 무의식의 밑바닥으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장우양의 목소리에 균열을 만들어냈다.

“그럼 접수해야겠군.”

내용과 맞지 않게 너무나 평온한 목소리에 장우양은 그만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말았다.

“예에? 접수라니, 저 배를 손에 넣는다는 말씀입니까?”

‘아니, 자넨 아까부터 가는귀가 먹었나?”라고 말하는 노사부의 시선을 감내해 가며 장우양이 반문했다.

“접수해서 어쩌시게요?”

“팔아야지.”

“파, 팔아요?!”

지나치게 경악한 나머지 장우양은 하마터면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러나 노사부는 여전히 태연하기만 했다. 마치 이런 일이 삼시세끼를 챙겨 먹는 것과 크게 다 를 바 없는 일이라는 듯이.

“저 정도로 잘 만든 배라면 꼭 도적질용이 아니라도 수요가 있겠지. 아마 있을 거야. 일단 쓰레기 청소부터 하고 접수해야겠군. 갈 길을 막았으니 그의 대한 대가는 치르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시간은 금이라는 말도 있고.”

“그, 그렇지만…….?”

겨우 길을 막았다는, 그리고 비싼 배라는 이유만으로 그 악명 높은 흑룡선과 정면으로 부딪치겠다는 것일까. 아무리 그 끝을 알 수 없는 노야라지만 보통 사람인 자신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사고방식이었다.

“쓸데없이 시비 거는 놈들이야 있으나 없으나 별 상관 없지만, 저만한 배는 쓸모가 있으니 상하지 않도록 조심조심 다루게나. 사회의 독초들이 중간에 방해하려 들면 물고기 밥으로 던져 버리고.”

노사부의 지시는 매우 상세하고 구체적이었다. 다만 그 일을 누가 하는가 하는 소소하고도 현실적인 문제가 남았을 뿐이었다.

“거기, 늙다리! 뭘 그렇게 자꾸만 씨부렁거리나!”

성질 급한 수적 한 명이 배 저편에서 걸걸한 목소리로 고래고래 욕지기를 퍼부었다. 위협할 생각인지 흉흉한 밧줄을 채찍처럼 휘두르며 철썩철썩 갑판 바닥을 치 고 있었다.

‘히에엑!’

그 안하무인의 극치를 달리는 무례한 광경을 목도한 장우양은 얼굴이 핼쑥해졌다. 그러나 노사부는 별로 개의치 않는 것인지 여전히 안색이 태연하기만 했다.

“역시 그냥 다 물고기 밥으로 던져 버리는 게 좋겠네. 개야 아무리 짖어도 상관없지만, 꼴을 보니 저러다 배 망가뜨리겠군. 약간 시끄럽기도 하고.”

노사부는 장우양을 빤히 쳐다보며 조분조분 말했다. 핏기가 사라진 장우양의 얼굴은 이젠 하얗다 못해 탈색될 지경이었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건너편 흑룡선에 타고 있는 이들의 귀에도 한 자 빠짐없이 똑똑히 들렸다. 흑룡선의 총수권자로서 네모진 얼굴의 사나이, 일명 사각(四 角)선장은 험악한 목소리로 커다랗게 외쳤다.

“흑룡뇌전(黑龍雷箭), 준비! 저 재수없는 늙다리를 좌표의 중심으로 넣어줘라!”

그의 손끝이 노사부의 미간을 가리켰다.

끼리리리릭! 그르르릉!

사각선장의 등 뒤에서 묵직한 기관음이 들렸다. 그와 동시에 사각선장의 자식들인 양 직사각형으로 생긴 상자가 노사부 쪽으로 향했다. 아래위로 각각 여섯 개씩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는 무척 특이한 모양의 물건이었다.

“노야, 저것은……!”

그것을 본 장우양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도 소문으로는 익히 들은 바가 있었다.

흑룡뇌전!

그것은 흑룡선이 자랑하는 거대한 십이 연발 쇠뇌로, 화살 하나의 크기가 무려 사람 키만 한 무시무시한 물건이었다. 단 일격에 배의 외벽을 부수고 선저까지 꿰뚫 을 수 있는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대함무기(對艦武器)였다. 확실한 건, 절대로 사람에게 쓸 법한 대인무기는 아니라는 점이었다.

“바다 사나이들을 모욕한 죄에 대한 응징이다!”

사각선장은 염라대왕이라도 된 것처럼 한쪽 손을 들어 올리며 엄숙하게 선언했다.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으나, 억울해진 장우양은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바다? 그건 아니잖아아!’

“지옥에 가서 참회하라, 늙다리! 일번 발사!”

올라갔던 손이 떨어짐과 동시에 천둥이 울려 퍼지며 폭풍이 몰아쳤다. 장우양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

“히익!”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려 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아래로 굽혀지지 않았다. 바람처럼 보이지 않는 힘이 그의 행동을 저지하고 있었다.

쉐에에에에에엑!

바람을 찢는 소리가 바로 코앞에서 들려왔다.

“…….”

감았던 눈을 빼꼼히 뜨고는 상황을 살피던 장우양의 입이 충격으로 쩍 벌어졌다.

엄청난 위력을 품고 발사된 흑룡뇌전 하나가 노야의 손아귀에 얌전히 잡혀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노사부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무덤덤하게 그 것을 받아 들고 있었다.

“일, 일번 뇌전은 고장인가!”

사각선장은 경악과 불신에 빠져 자신이 본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가 상상한 것은 흑룡뇌전의 살인적인 위력에 으스러져 형체를 잃어버린 노인의 잔해들이었다. 저렇게 무덤덤한 얼굴로 노인이 태평하게 서 있는 광경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었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이 생소한 감각을 어떻게든 떨쳐 내기 위해선 시급히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이번에서 십이번까지 전탄(全彈) 준비!”

광기와 혼란에 가득 찬 목소리로 사각선장이 외쳤다.

“저, 전탄 준비!”

두렵기는 등 뒤의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흑룡뇌전 정도의 병기를 한꺼번에 발사하려면 통상적으로 좀 더 준비 시간이 걸리는 게 정상이었겠지만, 선원들의 공포 는 그 시간을 놀랍도록 단축시켰다.

“배고 늙다리고 단숨에 부숴라! 일제 발사!”

슈슈슈슉! 쒜에에에에엑!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는 열한 발의 흑룡뇌전이 노사부와 중양표국의 표선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우선 반쯤은 부숴놓고 나서 털든 버리든 할 셈인 모양이었다. 장 우양은 절망했다. 이래선 행여 노야가 목숨을 건진다 해도 배와 그 위의 사람들은 무사할 수 없을 터였다. 노야가 아무리 막강하다곤 하나 그 몸은 하나였고, 대책없 이 날아오는 화살은 총 열한 발이었던 것이다.

‘끝장!’

장우양이 유언을 생각할 틈도 없이 그렇게 뇌까린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스르르르르륵!

아무래도 그는 진짜 염라대왕으로부터 아직 인생을 끝내기엔 너무 이르다는 판정을 받은 모양이었다.

단 하나였던 노사부의 몸이 두 개로 늘어났다. 두 개는 다시 네 개로, 네 개는 다시 여덟 개로, 여덟 개는 열여섯 개로 나뉘어졌다. 파바바바박!

그 신형들을 향해 흑룡뇌전이 매서운 속도로 꽂혔다.

“마, 말도 안 돼!”

여전히 사태를 납득하지 못하는 사각선장이었다. 그러나 그의 상황 인지력이 짧음을 탓할 일만은 아니었다. 바로 그 순간, 장우양도 똑같은 말을 입에 담았던 것이 다. 그것도 그럴 것이 노야에게서 나뉘어 나온 열한 인영의 손에 모두 흑룡뇌전이 하나씩이 들려 있었던 것이다. 허공을 찢는 쾌속함으로 성벽마저도 으스러뜨릴 것 같던 무서운 회전력은 어디에다 갔다 버렸는지, 열한 노야의 손에 들린 열한 대의 화살은 새색시처럼 얌전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다섯 명의 인영은 빈손이었다. 그중 한 노야가 자신의 빈손을 으쓱 들어 올리며 불평했다.

“뭐야, 너무 많이 나눴나?”

“그러게.”

“너무 오랜만에 쓰다 보니.

“힘이 과했던 듯.”

“쩝!”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할 일 없는 네 인영이 사라졌다. 열두 명의 노사부가 사각선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서 있을 힘도 없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아까 전의 그 위용은 귀신을 본 듯한 표정에 묻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뇌전?”

노사부의 얼굴에 뭔가 못마땅한 기색이 떠올랐다.

“쯧쯧, 이런 허접한 장난감에 감히 ‘뇌(雷)’라는 이름을 쓰다니……. 사칭 죄는 죗값이 크지.”

하고 싶은 말은 그거였던 모양이다.

스르르륵, 나뉘어져 있던 열한 분신이 한곳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맨 처음 날아온 일번을 포함한 열두 발의 화살은 장우양의 앞에 서 있던 노사부 앞에 차곡차곡 쌓였다.

“부숴 버릴까도 싶지만, 꽤 값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으니…….”

그러니 참는다는 뜻이었다. 노사부가 뒤를 돌아보며 한마디 했다.

“이해했나?”

빠릿하게 직립 부동자세를 취하며 장우양이 대답했다.

“옙, 이해했습니다, 노야!”

장우양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실히 이해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군. 이제 중양표국도 새 깃발을 걸었으니 새로운 무용담도 하나쯤 있어야겠지. 마침 하는 김에 오늘 한 건 올려들 보게나.”

장우양의 어깨를 툭툭 치며 노사부가 말했다.

“그, 그런 겁니까?”

“음, 그런 걸세. 아참, 그리고 사망자는 단 한 사람도 내지 말아야 하네! 웬만하면 부상자도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게!”

“노… 노야…….?”

그렇게까지 저희들의 안위를 걱정해 주시다니요. 장우양은 북받쳐 오르는 감격을 이기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뭘 울 것까지야. 이런 것쯤은 여유롭게 압승해 줘야 선전에 더 도움이 되니까 그렇지. 이상한 데서 일일이 감동하면 곤란해.”

노사부는 잔혹한 진실을 가려주는 자비를 베풀 생각이 조금도 없는 것이 분명했다.

“헉! 그, 그런 겁니까?”

“그런 거야. 그러니 죽지 마. 다치지 마. 단 한 명도 다치지 않고 이겼을 때만이 그 효과가 극대화될 테니.”

“예! 명심하겠습니다!”

여전히 부동자세로 장우양이 대답했다.

“아참! 아까 말했듯이 그 요상한 쇠뇌는 그냥 놔두도록!”

“예? 지, 진담이셨습니까?”

저 물건은 감히 노야를 향해 이빨을 드러낸 버릇없는 맹수였다. 당연히 그 죄를 물어 산산조각 내야 마땅했다.

“무기에 무슨 잘못이 있겠나, 그걸 쓴 놈들이 문제지. 사람은 미워하되 무기를 미워해선 곤란하지. 특히나 희귀한 무기는 비싸게 팔리는 법! 알겠나?”

잠시 동안 넋을 잃은 장우양을 무시한 채 노사부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것이 신호였다.

한쪽엔 절망의 선율을, 다른 한쪽에 승리를 향한 환희를 울려 퍼지게 할 분기점이었다.

“돌격!”

“적을 제압하라!”

장우양이 검을 빼 들며 외쳤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발라버리자!”

사기충천한 함성과 동시에 표두들과 표사들이 겁도 없이 당당하게, 저들이 만들어둔 밧줄 사다리를 밟으며 흑룡선을 향해 용감하게 도약했다.

의외로 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관전할 자세로 의자까지 대령해서 자리에 앉은 노사부는 한가로이 귀를 후비면서 중양표국의 표두들과 흑룡선의 선원들이 한데 섞 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미 괴노인의 신위에 사기가 완전히 꺾였는지 흑룡선의 사내들은 생각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뒤쪽에서 노사부가 버티고 있는 한, 그 시점에서 이미 이야기 는 끝나고 막은 내려간 것이다.

그 뒤에 일어난 중양표국의 표사들의 용맹한 진입은 그저 무대 뒷정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무대의 주인공 대부분은 뒷정리에 그 다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꿈이야! 이건 꿈이야! 이건 꿈이야!”

사각선장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했던 흑룡선의 선주, 심야사신 흑사각은 절망에 물든 눈으로 그렇게 반복해서 외쳤다.

물 위에서만은 최강이라고 자부했었다. 어둠 속의 어둠, 흑도의 정점 중 하나인 장강수로채 안에서도 일부 수뇌부밖에 모르는 그들은 장강수로채가 밖으로 내놓고 할 수 없는 일들을 어둠 속에서 은밀히 처리하는 해결사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언제나 싸움 속에 있었다.

그들이 지난 나날 동안 맡아온 일에 비하면, 겨우 이제 갓 이름을 얻기 시작한 표국의 표선을 물밑으로 장사 지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너무 쉬워서 오히려 불쾌 할 정도였다. 그렇다. 그들이 예상한 건 결코 이런 지옥과도 같은 광경이 아니었다.

“물 위에서는 최강’ 이제 그것은 이미 지나간 덧없는 과거에 불과했다. 흑룡선의 나머지 부하들 역시 별다른 저항 한 번 제대로 해볼 생각도 못하고 모두들 사로잡 히고 말았다.

노사부는 갑판에 마련된 간이 의자에서 아예 눈을 감은 채 느긋하게 누워 있었다. 배 저편에서 잠시 잠깐의 소란이 있었지만, 그 소란은 금세 잠잠해졌다. 잠시 후 한 사람이 다가왔다.

“모두 끝났습니다, 노야!”

한바탕의 격전 때문인지 보고하는 장우양의 이마엔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음, 끝났나? 예상보다 빠르군. 조금 더 걸릴 줄 알았는데.”

눈을 빼곰 뜨며 노사부가 말했다.

“다 노야 덕분입니다.”

그 자신도 이렇게 쉽게 그 악명 높은 장강의 무법자 흑룡선을 접수할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었다. 그 일을 완수한 지금도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알 쏭달쏭했다.

“결과는?”

노인이 짧게 물었다.

“송구스럽게도 아직은 힘이 미진하여 부상자가 여섯 명 나왔습니다. 아, 중상은 아닙니다. 배도 그 이상한 무기도 별다른 손상 없이 점거했습니다. 적들 중 생각만 큼 격하게 저항하는 자는 적어서 거의 다 생포했습니다. 물에 뛰어든 놈들도 대략 건져 냈습니다만, 혹 없어진 놈이 있는지 좀 더 시간을 두고 수색해 볼까요?”

지금껏 수장시킨 배만 해도 백여 척에 달하는 그 흑룡선을 상대로 대단한 전적이라 할 수 있었다. 아니,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눈앞의 이 노인이 없었다면 이루어 지지 않았을 기적.

“됐네. 한 마리 정도야 뭐.”

“네?”

“아닐세. 그나저나 흠집이 별로 없다니 좋구먼. 함께 끌고 가게. 생포한 놈들은 관아에 넘겨 현상금과 맞바꾸면 되겠고, 배는 끌고 가다가 괜찮은 곳이 있으면 팔아 야겠군. 요 근처에 저만한 배를 사줄 만한 곳이 있을까 모르겠군.”

“역시 파는 겁니까?”

“그럼 뭣하러 이렇게 귀찮고 번거로운 과정을 거쳤겠나? 그냥 한 방에 침몰시켜 버리면 그만인 것을.”

“한 방 말입니까?”

“그래, 한 방.”

아무래도 농담처럼 안 들린다는 점이 무서웠다.

“노야라면 가능할지도…….”

어느새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 장우양이다.

“일반 배라면 구입처가 많이 있겠지. 하지만 저놈은 전투선이야. 오직 물 위에서의 유효한 전투를 상정해서 오직 그것만을 위해 건조되고 개량된 물건이지. 제값 을 받기 위해선 그 가치를 알아줄 구매자를 찾아야 할 게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저걸 팔 만한 장소는 장우양이 알기에 딱 한 곳뿐이었다.

“제가 그럴 만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그곳이라면 아마 저 정도 되는 배를 사줄 사람이 나타날 것 같습니다.”

“호오?”

계속해서 감겨 있던 노인의 눈이 슬며시 열렸다. 그리고 물었다.

“그곳이 어딘가?”

장우양이 허리를 숙이며 공손히 대답했다. 자신의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폭풍이 몰아칠지 알지 못한 채, 그는 입을 열었다.

“그곳은 바로…….”

장우양은 잠시 한 박자 쉰 후 말했다.

“강호란도(江湖亂島)라는 곳입니다.”

운명을 훔쳐보는 눈이 있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그 한마디가 마침내 소리가 되어 울리며 세상으로부터 의미를 부여받았다.

드디어 한 사람의 운명이 거센 폭풍의 궤도 속으로 한 발짝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

중양표국의 표선과 약 삼십 장 정도 떨어진 곳에 동동 떠 있던 나무토막 밑에서 불쑥 팔 두 개가 튀어나오더니 사람이 하나 솟아 나왔다. 혹여 누가 그 광경을 봤다 면 물귀신이라도 나타난 줄 알고 혼비백산했으리라.

탈탈탈!

피수의를 입고 나무토막을 꼭 껴안은 사내가 흠뻑 젖은 머리칼을 요란하게 털어댔다. 물을 털어내려는 건지 진저리를 치는 것인지 애매한 움직임이었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는 것도 비단 물의 차가움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젠장, 들킨 건 아니겠지? 아니, 들켰나? 그런데 그냥 보내줘?”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분명 혼란한 틈을 타서 부랴부랴 남몰래 배를 빠져나와 한참을 잠수해 있었다. 하지만 찜찜했다. 마치 뭔가가 자신을 계속 보고 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장강수로채의 정보 기관인 심해전의 일급 비밀 요원인 장강어묵 장용, 그의 주 임무는 흑룡선에 대한 밀착 감시였다. 사실 그와 흑룡선은 장강의 물밑 존재란 점에 서 동류였다. 흑룡선이 비밀 임무를 수행하면서 혹여 뒤로 횡령하는 게 없는지, 보고를 확대하거나 축소하지는 않는지 감시하는 것이 그의 주요 임무였다. 흑룡선 그 자체만으로 매우 강한 힘이라 따로 이렇게 감시원을 붙여두지 않으면 아무리 장강수로채의 주인이라 해도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저 흑선 한 척이면 장강수로채의 쾌선 열 척도 능히 당해낼 수 있는 물건이다. 장강수로채에서도 그 막대한 건조비 때문에 단 세 척밖에 없다는 그 흑룡선이, 겨우 사천 변방의 신흥 표국이 운영하는 표선을 공격하다 되레 제압당하다니! 직접 보지 못했다면 믿지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흑룡뇌전을 맨손으로 잡다니, 그것도 분 신술까지 하면서! 그 자신도 지금은 헛것을 봤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말은 빼는 게 좋겠지?”

너무 신빙성없는 이야기를 넣으면 꿈꿨냐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배를 판다고 했으니, 목적지는 역시 그곳일 수밖에. 이만하면 본채에서도 만족하겠지.”

그건 정말로 큰 성과였다. 그래도 설마 그걸 팔 생각을 하다니, 정말 담대한 배짱이었다.

“이 사실도 넣어야 하나?”

믿어주지 않을 것 같은 사실 또 하나를 과연 집어넣을지 말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노인의 정체는 알아낼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건 가장 중요한 정보였 다.

“아참! 이럴 때가 아니지! 어서 지급으로 알리지 않으면!”

곧이어 장강 위를 한가롭게 떠다니던 쪽배에서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푸드득!

비둘기 한 마리 때문에 장강수로채가 들썩거릴 정도로 소란스러워졌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특일급(特一級) 서신, 그것도 ‘지급’을 지닌 비 둘기라는 것을 알았다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리라.

채주 집무실로 향하는 수리전주 이맹의 발걸음에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손에는 방금 전 받아 든 서신이 꽉 쥐어져 있었다.

과연 채주의 반응은 어떨 것인가? 내심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뭣이? 뺏겼다고!”

역시나 흑룡왕은 대뜸 고함부터 쳤다.

“예, 그렇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해? 그걸 어떻게 뺏길 수 있어?”

“그게… 불명입니다.”

빡!

“불명이라고? 지금 장난해? 흑룡선이 제압당했는데 어떻게 그 이유가 불명일 수 있냐! 그 위에 무슨 천무삼성이라도 떼거리로 타고 있었대?”

“그렇다는 보고는 없었습니다.”

“약 먹었냐?”

“아직 안 먹었습니다.”

“그래? 난 또 한꺼번에 약 집어먹고 훼까닥한 줄 알았지. 자네도 그게 얼마짜린지 알지?”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좋다. 어떻게든 그걸 다시 찾아와!”

“진정하십시오, 채주님!”

“이런 썅! 지금 진정하게 됐냐? 배 열 척 값을 잃게 됐는데?”

“다행히 목적지는 알아냈습니다.”

번쩍!

이맹의 말을 듣는 순간 흑룡왕의 광란이 잠시 멈추었다.

“뭐라고? 그런 건 빨리 좀 말하란 말이야! 그래, 어디야?”

“보고에 따르면 강호란도라고 합니다.”

틀려도 자신에게 전혀 책임이 없다는 태도로 이맹이 대답했다.

“그래? 좋아! 틀리면 죽을 줄 알아?!”

그건 사양하고 싶었지만 주먹이 너무 가까워 속으로만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럼 누굴 보내시겠습니까?”

이맹이 조심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직접… 아니, 아니지! 부채주를 보내. 그 녀석도 요즘 한 일이 없었으니 가끔은 일하라 그래. 아무리 친동생이라지만 요즘 세상에 놀고먹을 수야 없지.” 당연하지만 부채주 역시 혈육이란 이유만으로 부채주 자리를 꿰찬 건 아니었다.

일례로 그의 현상금 값은 그의 형보다 높았다. 그만큼 저지른 일들이 다종다양했다는 반증이다. 그 때문에 무척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 왜 나보다 현 상금이 높아, 하며 추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부채주님을 말입니까?”

떨떠름한 어조로 이맹이 반문했다. 실력은 있지만 성정이 너무 폭급하고 잔인해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 그 녀석. 그 녀석을 보낸다. 흑룡선 이호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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