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3권 16화 – 한밤의 경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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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23권 16화 – 한밤의 경매장

한밤의 경매장

ᅳ어떤 거래

연비는 객잔을 나서기 전에 몰래 현천은린을 숨겨두고 무식하게 생긴 쇠몽둥이를 꺼내 들었다.

“자, 그럼 가볼까?”

오늘 밤은 조금 바쁠 듯했다. 그때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가 아니라 그전에 옷 갈아입을 곳부터 찾아야겠군.”

사부의 취향 때문에 이 복장으로는 일을 보러 갈 수 없었다.

“사람 번거롭게 하는 데는 정말 탁월하다니깐!”

연비는 투덜투덜거리면서도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되도록 은밀한 곳이 좋을 것 같았다. 여자란 정말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존재였다.

* * *

누군가의 날씬한 발이 힘차게 부두 위를 박차며 달려간다. 날랜 사슴처럼 재빠른 움직임은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아빠.”

타다다다다다닥!

해어화는 아버지 흑룡왕의 그림자가 보일 때부터 도움닫기로 달려오기 시작하더니 땅을 박차고 도약하여 이 장 거리를 붕 날아 아빠의 품에 냅다 안겼다. 딸아이 의 열렬한 포옹에 흡족해하던 흑룡왕이 깜짝 놀라 외쳤다.

“아니, 아가야! 우리 예쁜이가 몰골이 이게 뭐냐? 두 눈이 벌겋게 퉁퉁 붓질 않았느냐? 게다가 피부도 푸석푸석하고!”

정말로 해어화의 두 눈은 안와(眼)주위까지 벌겋게 부어 있었다. 딸 사랑이 지극하다 못해 넘치는 흑룡왕은 가슴이 모래밭 위에 세워진 부실공사 누각이 와르 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삽시간에 붕괴됐다.

아빠가 도착하기 전에 양파로 열심히 문지른 보람이 있자 해어화는 몰래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가증스런 거짓 울음을 터뜨리며 흑룡왕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흑흑, 아빠 자꾸만 절… 흑흑… 괴롭히는 애가 있어요. 흑흑.”

딸의 뜨거운 눈물이 가슴 섶을 적시자 흑룡왕은 불같이 분노했다.

“아니, 누가 감히 우리 착한 화아를 괴롭힌단 말이냐? 감히 누가!!”

‘착한’이란 말이 심각하게 오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낀 장강수로채의 몇몇 사람들은 속으로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처지라 아무도 입을 벙끗하는 이는 없었다. 해어화는 아빠의 분노에 감격하며 다시 품에 얼굴을 묻었다.

“흑흑, 그런 애가 있어요. 크흐흐흐흑. 전 어쩌면 좋아요, 아빠? 이대론 너무 무서워서 계속 못 다닐 것 같아요.”

딸의 눈물은 아버지에게 있어서 매우 강력한 무기였다. 게다가 그것이 남들보다 딸 사랑이 지나친 흑룡왕에게는 얼마만한 효과가 있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 다.

“도대체 어디가 순진하단 말이냐! ‘착한’이랑 ‘순진함이 다 얼어 죽었겠다!’

이렇게 외치고 싶은 부하들도 많았으리라. 하지만 흑룡왕의 광분이 무서워 아무도 그 사실을 지적할 수 없었다. 전투도 아니고 이런 곳에서 팔불출 아빠의 일격에 뒈지는 불명예스런 일은 겪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동안의 경험이 그들을 살려놓고 그들 안에 지혜를 전해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들 열 명은 어찌 되었느냐?”

그 녀석들이란 물론 딸의 사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급파했던 장강십용사를 뜻했다.

“그 녀석들은 다 쓸모없어요. 다 실패해 버렸다고요. 아마 분명 방심하다가 그랬을 거예요. 아니면 엉뚱한 생각을 했거나. 아빠가 날 위해 보냈는데 제 몫도 못하다 니, 정말 병신 같아요. 멍청이들이에요.”

흑룡왕은 딸의 험한 입버릇을 추궁하기는커녕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오냐, 오냐! 착한 우리 딸! 울지 말거라. 이 아빠가 다 해결해 줄 테니 잠시만 기다리거라. 아빠가 잠시 이곳 경매장에 볼일이 좀 있어요. 그것만 후딱 끝내고 우리 딸 일을 해결해 주마.”

“정말요?”

반문하는 해어화의 두 눈이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어느새 눈물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럼, 물론이고말고. 아빠가 이번에 좀 처리할 일이 있어서 애들도 많이 데려왔어요.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단다. 수호 삼호법까지 데려왔단다.”

“어머, 정말이네요?”

어깨 너머로 흑룡왕이 가리키는 곳을 보며 해어화가 외쳤다. 수십 명의 부하와 믿음직스런 호강, 호하, 호천 세 명의 수호 삼호법이 그곳에서 아빠의 명을 기다리 며 대기하고 있었다.

“그럼. 이 아빠가 우리 딸을 속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느냐! 걱정 붙들어 매거라.”

전투선 세 척을 나포해 간 이들의 힘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때문에 소수 정예를 이끌고 이곳으로 온 터였다. 특히 일류고수라고 불릴 만한 세 명 의 수호 삼호법, 이들은 장강십용사의 스승들이었다.

제자들이 한심하게 당했다는 말을 들었으니 지금쯤 아마도 제자들을 만나면 호되게 꾸짖어줄 요량으로 벼르고 있을 터였다. 감옥에 갇힌 장강십용사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스승과의 재회를 두려워하며 벌벌 떨었을 것이다. 악귀 같은 사부들을 만나느니 차라리 작두 밑에 목을 디미는 것을 택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 이제 안심이 되지? 우리 딸을 괴롭히는 놈은 누구든 이 아빠가 박살을 내놓으마!”

자신만 믿으라며 흑룡왕은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그러자 딸이 아빠를 불렀다.

“아빠.”

아빠 흑룡왕이 반문했다.

“왜에?”

“놈이 아니라 년이에요.”

“……”

흑룡왕은 딸 해어화와 함께 부하들을 이끌고 그 시건방진,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간 비대증 환자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쓴 게 분명한 서찰에 적힌 장소에 도착 했다. 경매장 옆에 위치한 경매장 전용 항구로, 이곳에는 갖가지 경매품들이 운반되어 오는 곳이었는데, 가끔은 경매물로 나오는 배를 정박시켜 놓기도 했다. 그러 나 경매장 역사상 이만큼 위험한 물건이 매물로 나온 적은 좀처럼 없었다. 그러나 그 출처 때문에 그 배의 가치가 실로 대단하고 갖고 싶은 이들이 많았음에도 불구 하고 단 한 명의 입찰자도 없었던 것이다.

지금 영업 시간이 끝난 경매장 옆에서 두 척의 흑룡선과 한 척의 해신을 배경으로 검은 옷을 입은 젊은이 하나가 서 있었다. 앞머리가 길어서 그런지 생김새가 잘 드러나지 않는 청년이었는데, 한 손엔 길쭉한 쇠몽둥이 하나를 들고 있었다.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채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던 비류연이었다.

주변에 인적이 드문 것은 다행이었다.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이 들통날 일이 적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짧아진 왼쪽 앞머리는 조금 불만이었다. 저번처럼 가려보려 하는데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겨우겨우 중간 부분 앞머리를 가져와 어떻게 가릴 순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느낌은 영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빨리 끝내고 다른 모습으로 돌아가던지 해야지 원, 적응이 안 돼서.’

그도 그럴 것이 앞머리를 내리고 다닌 지 십 년이 넘었으니 감각이 그곳에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연비의 모습일 때는 변장이라는 느낌이 있어 위화감이 덜했는데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니 위화감이 자꾸만 커져갔던 것이다. 어색한 이 모습을 빨리 그만두고 연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니 그런 그에게 자신을 기다리 게 한 이들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아함, 이제야 겨우 도착하다니, 정말 행동 한번 굼뜨군요. 기다리다 지쳐서 잠들 뻔했잖아요.”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쭉 켠다. 창칼을 든 수십 명의 수적들 앞에서 참으로 태평한 모습이었다.

척!

흑룡왕의 손짓 한 번에 부하들이 일사불란하게 달음질을 멈췄다. 십장 간격을 두고 한 사람과 십수 명이 대치하는 형국이 되었지만 비류연은 조금도 두렵지 않은 모양이었다.

흑룡왕은 조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저런 애송이 꼬마가 기다리고 있을 줄을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사방을 두리번거려 보아도 긴급 보고에 적혀 있던 ‘괴노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서, 설마 너냐, 서찰을 보낸 장본인이?”

천하의 장강수로연맹의 총맹주에게 간덩이가 퉁퉁 부은 협박 서한을 보낸 것이 저런 애송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맞는데요. 뭐가 이상한가요?”

“너 같은 애송이가 그런 싸가지없는 서찰을 감히 본좌 앞으로 휘갈겨 보냈다고?”

“그런데요?”

숨길 이유가 없는 비류연은 순순히 인정했다.

“허, 하, 참…….”

흑룡왕은 참으로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뭐냐? 석고대죄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느냐? 그거라면 이미 늦었다.”

그냥 지나치기엔 사건이 너무 컸다. 이럴 때 본보기를 보이지 못하면 최악에는 회 자체가 제거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몰랐다. 

“석고대죄?”

“그래, 석고대죄.”

“머리도 나쁘면서 어려운 문자 쓰시긴. 그럴 리가 없잖아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참으로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비류연이 반문했다.

“잘못한 게 없다고? 게다가 머, 머리가 나빠?”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으며 흑룡왕이 반문했다. 그는 자신이 머리가 나쁘다는 사실에 남다른 자괴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잘못이라면 오히려 그쪽에 있죠. 조용히 떠내려가던 사람 습격이나 하고, 그러다 되레 빼앗기기나 하고. 쯧쯧, 다 커서 도적질이나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 아요?”

“도적질이 아냐! 수적질이다!”

“그거나 그거나. 역시 머리 나쁘네요.”

이런 인간들은 사실 거짓 따위보다 본인의 성질이 더 중요했다.

“닥치고 용건이나 말해라!”

분노한 흑룡왕이 버럭 소리쳤다. 당장 달려가 사지를 찢어놓지 못하는 게 원통하다는 표정이었다.

“다만 흥정하러 온 것뿐이에요, 손님이랑.”

“무엇을?”

“그거야 물론 배 값이죠.”

“크하하하하하! 이 어르신과 흥정을 하려 하다니, 배짱 한번 좋구나!”

사나운 맹견이 으르렁거리듯 광소를 터뜨리며 흑룡왕이 한 발짝 나섰다. 물 위에서 그가 나타나기만 하면 모두가 무서워서 벌벌 떨었으니 그가 어디 이런 진귀한 경험을 해보기나 했겠는가!

비류연도 보다 경험의 폭을 넓혀줄 요량인 모양인지 흑룡왕의 우락부락한 얼굴을 한 번 힐끗 쳐다보며 시큰둥한 어조로 말했다.

“아무래도 그쪽 협상 대표자는 아저씨인 모양이군요?”

진귀하다못해 황당해진 흑룡왕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아저씨! 지금 이 몸을 보고 아저씨라고 한 게냐! 감히 이 몸을 보고! 내 앞에서?!”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난 흑룡왕이 시뻘건 얼굴을 하며 외쳤다. 그러자 비류연은 붉으락푸르락, 빨개졌다 파래졌다 하는 흑룡왕의 얼굴을 한참 뚫어져라 쳐다보다 니 이윽고 한마디 툭 던졌다.

“누구신데요?”

정말 누군지 모르겠다는 나름대로 순진무구한 표정이었다.

“하아, 이 몸을 모른단 말이냐?”

기가 막힌 흑룡왕이 주화입마 일보 직전의 상태로 물었다.

“알 리가 없죠, 통성명도 안 했는데. 바보 아녜요?”

“바보 아냐!”

동정호를 쩌렁쩌렁 울리는 괴성이 터져 나왔다. 천둥번개 소리 저리 가라는 듯한 대갈일성에 부하들은 양손으로 두 귀를 틀어막아야만 했다.

“바보네.”

그 행태를 시큰둥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비류연은 생각했다. 이럴 때 웃는 사람은 무서워도 화내는 사람은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가소로울 뿐이었다. “원래 정곡을 찔리면 더 세차게 반응하는 법이죠. 뭘 부정하고 그래요. 게다가 척 보니 그냥 바보도 아니고 딸 바보 아빠네요.”

옆에 함께 서 있는 해어화를 힐끔 본 후 비류연이 말했다.

“뭐, 뭣이라! 말 다 했냐?”

그러나 그 점은 그의 부하들마저도 동의하는 바였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부하들도 그렇데잖아요.”

천천히 올라간 비류연의 손가락이 흑룡왕의 등 뒤를 가리켰다.

홱!

도끼눈을 뜬 흑룡왕의 고개가 질풍처럼 뒤로 돌아갔다.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살기등등한 눈빛에 쏘인 수하들의 몸이 벼락 맞은 사람처럼 움찔했다.

‘돌아가서 두고 보자!’

흑룡왕의 매서운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절절한 의도를 감지한 부하들의 얼굴은 금세 푸르죽죽하게 변하며 사색이 되었다. 다시 비류연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린 흑룡왕이 엄지손가락으로 자기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듣고서 두려워해라! 본좌가 바로 장강의 패자이자 장강수로채의 채주인 흑룡왕님이시다!”

내공이 담긴 목소리로 흑룡왕이 외쳤다.

“아아, 매매자 본인이시군요.”

“매매자? 지금 본좌보고 매매자라 했냐?”

“매입자라 해드려요? 그쪽이 매입자, 이쪽이 판매자. 뭐가 이상한가요?”

비류연의 검지손가락이 흑룡왕과 자신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그는 이 개념에 대해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애송이 놈아! 네놈이 이 세 척의 배 주인이라도 된단 말이냐?”

흑룡왕이 버럭 소리쳤다.

“아뇨. 난 그저 대리인일 뿐이에요. 좋아서 이러고 있는 건 아니니까. 피치 못할 사정이란 게 나한테도 있거든요.”

장강십용사가 타고 왔던 ‘해신’도 연비가 노획한 것이지 비류연이 노획한 것은 아니었다.

“잔말 마라! 그 괴노인은 어딨느냐?!”

보고서에 적혀 있던 주적에게 그는 볼일이 있었지, 여기서 저런 애송이랑 실랑이를 벌일 시간 따윈 없다는 게 그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게 어디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괴노인이요? 아아, 그 사람이요. 몰라요. 그 망할 노인네는 지금쯤 또 어디선가 술이나 퍼마시고 있겠죠. 귀찮은 일은 다 나한테 떠맡기고요. 아아, 정말 미워 죽 겠어요. 내가 왜 여기서 별로 내 주머니에도 안 들어오는 일이 해야 하는 건지 원! 정말 부조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글쎄.

그런 걸 나한테 물어보면 안 되지…….?

세상에 가득한 부조리를 향해 외치고 있는 듯한 울분이 흑룡왕 자신을 향하자 그는 어떻게 대답해야 될지 알 수가 없어 잠시 주춤하고 말았다. 그는 어느새 자신의 호흡을 잃고 비류연의 호흡에 말려들어 있었다.

“하아, 역시 안 되는군요. 기대한 내가 바보네요.”

“흥, 미안하군.”

흑룡왕이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뭐 하세요? 빨리 준비하지 않고?”

한숨을 푹푹 내쉬던 비류연이 대뜸 말했다.

“뭘 말이냐?”

커다란 두 눈을 끔벅이며 흑룡왕이 반문했다.

“어차피 대화를 나눌 생각도 없잖아요? 설득에 넘어갈 생각도 없고.”

“물론 그렇다!”

자랑이 아닌 것을 자랑인 듯 외치는 흑룡왕이었다. 잘도 아랫사람들을 다스려 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다면 무림인에게 해결 방법은 하나뿐이죠.”

“그게 뭔데?”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은 흑룡왕이 눈을 끔벅이며 물었다.

“힘!”

그것만큼 대중적이고 즉각적인 해결 방법은 따로 없었다.

“힘? 력(力)?”

자신의 불끈불끈거리는 오른 팔뚝을 들어 보이며 흑룡왕이 되물었다.

“그런 흉한 거, 함부로 보여주지 말아요. 눈 버리고 말았잖아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비류연이 힐난했다.

“내 근육이 어때서?”

흑룡왕이 항의했다.

“꼭 아저씨 같은 사람들이 있죠.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몸매가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착각하는데, 그건 크나큰 오산이에요. 여자든 남자든 그런 땀내 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구요. 무엇보다 우아함이 없잖아요.”

“뭐라고! 감히 나의 멋진 근육들을 무시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덤벼라! 작살을 내주마!”

“하아, 역시 그것밖에 없는 건가…….”

애초에 매매라는 것은 염두에 안 두고 온 놈들이니 대화가 될 리가 없었고, 대화가 시작도 안 되니 협상에 들어갈 여지도 없었다. 그걸 이미 알고 사부가 자신을 이

곳으로 보낸 것이 분명했다. 이런 자잘한 귀찮은 일들을 처리하라고 말이다. 자기가 잔뜩 일 벌여놓고 뒤처리는 제자한테 맡기다니, 정말 사부다운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자기 자신도 비슷한 행동으로 주작단을 달달 볶은 일이 있다는 것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비류연이었다.

“우리와 겨루겠다니, 배짱 한번 좋구나. 나중에 저승 가서 울면서 후회해도 소용없다!”

비류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겨루려고 하는 사람은 당신네들 전체가 아니라 당신 하나예요. 그러니 우리라는 표현은 잘못된 거죠. 귀찮게 번거로운 절차 거치지 말고 일 대 일로 승부를 결정짓는 게 어때요?”

“그 말, 진심이냐? 너같이 어린 꼬맹이가 이 흑룡왕 어르신과 일 대 일로 붙는다고?”

비류연이 맞다는 의미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하!”

흑룡왕의 입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그의 삼호법을 비롯한 부하들 모두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개중에는 배꼽을 잡는 이도 있었다. 비류연만이 웃고 있지 않았다.

“웃을 테면 지금 실컷 웃어두세요. 조금 후면 다시는 웃지 못하게 될 테니.”

“흥, 허풍 한번 세구나! 하지만 이 일을 어쩌지?”

“왜요?”

“이 어르신은 워낙 공사다망하다 보니 귀찮게 이런 장난칠 시간이 없거든. 본좌가 좀 바쁘시단다.”

흑룡왕이 손을 들어 신호하자 기다리고 있던 수십 명의 부하가 각자의 무기들을 꺼내 들고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왔다.

“비겁하네요.”

시큰둥한 목소리로 감상을 내뱉었다. 사실 이들에게 정정당당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었다. 흑룡왕이 팔짱을 낀 채 우뚝 서서 말했다.

“비겁한지 비겁하지 않은지는 이긴 다음에 생각해도 돼. 물 위든 땅 위든 이기면 장땡이야. 그게 무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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